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다른 사람에게 너무 잘해주지 않는 성연이다.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말이다.강무진처럼 겨우 몇 번 본 사람 때문에 이처럼 노심초사하기는 처음이다.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강씨 집안에서 지내야 한다. 바로 그 점을 고려해서 친절한 마음으로 강무진을 돕기로 한 것이다.불쑥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강무진은 절대 휠체어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또 저런 모습이어서도 안 된다는…….여기까지 생각한 성연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나가서 무진을 불렀다.무진이 어제처럼 욕조에 몸을 담구었다.깨끗이 씻고 나와 보니, 성연은 이미 잠들어 있다.물기에 젖어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닦던 무진이 아무 생각 없이 잠든 성연을 쳐다보았다. 스트레스가 심했던 모양이다.침대에 머리를 묻고 잠든 성연의 긴 머리카락이 등뒤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오목조목 그린 듯이 어여쁜 얼굴이 보였다.무척이나 섬세한 피부는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모공이 보이질 않는다.헐렁한 잠옷 깃이 살짝 벌어지며 그 사이로 선명한 쇄골선이 보였다. 뛰어난 발육 상태를 자랑하는 작고 깜찍한 몸매는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와야 할 곳은 확실하게 나와 있었다. 자라야 할 곳은 이미 완벽하게 자란 상태인 셈이다.무진은 자제력을 잃을 정도로 반응하진 않았다. 다만 눈길이 갈 만큼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성연의 곁에 누운 무진은 그날 밤도 예외 없이 곧바로 잠이 들었다.아침.성연이 깨어날 때면 매번 무진은 벌써 일어나 보이지 않았다.강무진은 무섭도록 자기 절제가 강한 생활 습관을 가진 듯하다.하품을 하고 일어난 성연이 커튼을 열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게 했다.차분한 색조의 인테리어를 좋아하지만, 어두운 분위기는 싫었다.여기에 오래 있으면, 좀 답답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햇빛이 구석구석 스며드는 것을 본 성연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손뼉을 쳤다.욕실에 가서 세수하고 교복을 입은 성연이 책가방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성연의 책가방은 늘 가볍다. 선생님이 책을 집에 가져가
한 번 쳐다본 후, 성연은 고개를 숙인 채 죽을 떠먹었다. 마치 식탁 위의 죽이 수표보다 더 중요하다는 듯이. 그다지 가슴이 뛰지도 않는다는 듯이.성연이 웃었다.“100억, 음, 내가 겨우 100억 가치란 거예요?”곁에 서 있던 손건호가 곁눈질로 성연을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이 100억, 다른 사람 같으면 엄청나다고 여길 텐데, 역시 이 분은 눈에 차지도 않으신가 보군.’이점 역시 순박한 시골 사람의 기운과는 다른 듯하다.그런데, 손건호를 더 놀라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한쪽편에 앉은 강무진이 성연의 소감에 동의한 것이다.“그러게. 100억은 확실히 좀 싸군. 아무리 해도 1000억은 돼야 할 텐데 말이야. 하지만 송종철은 이 액수에 맞지. 100억은 너에 대한 가치가 아닐 거야…….”강무진의 눈에, 사실 이 녀석이 보여주는 것들은 가치를 따질 수가 없었다.‘이 말은 듣기 좋네. 마음에 들어.’성연이 뻗쳐 일어난 성질을 잠시 가다듬었다.입가를 닦은 성연이 그릇 안의 음식을 깨끗이 비웠다.식탁 위의 수표를 집어 가방에 넣고 지퍼를 채운 뒤에 가방을 툭툭 쳤다.“송종철은 1000원도 받을 자격 없어요.”성연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송종철이 그녀에게 쓴 시간과 에너지는 겨우 한 손으로 세고도 남았다.기억을 하는 순간부터 성연은 줄곧 외할머니와 살았다.만약 가끔씩 찾아와서 위선적으로 굴지 않았더라면, 저런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성연에게는 더 이상 중요하지도, 아무 것도 아니었다.가뿐하게 100억을 번 성연은 기분 좋게 학교로 갔다.힘 하나 들이지 않고 100억 번 걸 기념하는 축하 파티를 해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점심 시간에 서한기를 불러 샤브샤브를 먹으러 가야지.’성연이 학교에 가고 난 뒤, 망설이던 손건호가 한 마디 했다.“보스, 사모님께 너무 잘해 주시는 건 아닌지…….”이건 잘해 주는 정도가 아니라, 숫제 성연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는 정도의 방임에 가까웠다.“우리는
무진의 눈빛이 점점 차가워졌다.둘째 할아버님 일가와 셋째 할아버님 일가의 비밀스러운 움직임은 사실 오래전부터 본가에 눌려 지내는 내내 빈번하게 있어 왔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된 건가?‘하지만, 그럼 또 어찌 될까? 저들을 핑계로 판을 한 번 뒤집어 봐?’‘우습군.’저들 눈에 강무진은 겨우 조광증이나 앓고 있는 쓰레기였다.강무진이야말로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진짜 주인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무진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이 일, 회장님께 보고했나?”손건호가 고개를 끄덕였다.“회장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십니다.”무진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할머님이 걱정하시지 않도록 이 일을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겠군.”“보스, 당신의 능력은 이미 회장님이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회장님께선 먼저 주주들을 다독이실 겁니다.” 손건호의 어조에는 일말의 감탄이 묻어났다.강무진의 능력은 모두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바이다.더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숨겨왔을 뿐이다.대답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무진의 눈빛이 점점 깊어져 갔다.송씨 집안.송종철과 임수정은 침대에 누워 엎치락뒤치락하며 밤새도록 편히 자지 못했다.어깨를 으쓱하게 해주던 딸이 경찰에 구류 중이었고, 임씨 집안에서는 합의를 해주지 않아 정말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쫓아다닌 며칠이다.현재 세력도 인맥도 없는 송씨 집안으로서는 도움을 청할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송종철은 죽기 살기로 악착같이 일해서 오늘날에 이른 사람이었다.그러나 겨우 상층부 한 귀퉁이에 비집고 들어섰을 뿐, 그 중심부의 집안에서는 송씨를 안중에도 두지 않을 터였다.하물며 이번에 건드린 게 임씨 집안의 아들이다.임씨 집안은 북성에서 이름난 상류층 가문이고.그러니 누가 작은 회사를 경영하는 송종철을 보고 임씨 집안에 미움 살 짓을 하겠는가?임수정은 잠이 오지 않자 아예 일어나 물 한 잔을 들고 침대 옆을 서성거렸다.가뜩이나 마음이 답답하던 송종철은 임수정의 발소리에 결국 참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송종철은 바로 강씨 집안의 WS그룹으로 달려갔다.“실례지만, 어디를 찾으십니까?” 프런트 데스크의 안내원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송종철에게 물었다.“회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웅장하면서도 기품이 넘치는 건물 인테리어를 둘러보며 모처럼 불편한 감정을 느낀 송종철이 불안한 듯 두 손을 비벼댔다.“예약은 하셨습니까?” 프론트 데스크의 안내원이 다시 물었다.송종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오. 하지만 회장님에게 송종철이라고 하면 바로 만나 주실 겁니다.”“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위층의 사무실로 전화를 건 안내원이 상황을 보고했다.송종철이 찾아왔다는 보고를 들은 안금여가 바로 올라오게 했다.“왼쪽으로 가셔서 엘리베이터를 타십시오, 회장실은 꼭대기 층에 있습니다.” 프런트의 안내원이 팔을 내밀며 안내하는 자세를 취했다.맨 위층으로 올라와 비서실을 거친 송종철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신 후, 손을 들어 노크했다.“들어와요.” 안에서 안금여의 음성이 들렸다.송종철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사무실을 한 바퀴 둘러보니, 과연 강씨 집안다웠다. 이 사무실 안에 진열된 골동품만해도 어림잡아 수십억 원일 터였다.모두 둘러본 후 눈길을 거둔 송종철이 안금여를 향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회장님, 애초에 우리 성연일 보낼 때, 약속하셨잖습니까? 회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로요.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줄곧 인기척이 없어서 찾아왔습니다…….”완곡한 표현을 사용한 송종철은 민감한 단어를 직접 말하지는 않았다.돈을 받으러 왔다는 말을 들은 안금여가 웃으며 말했다.“지참금은 내가 주었습니다. 내 손자에게 있으니, 조만간 넘겨주겠지요. 좀 기다리시죠.”‘송성연, 참 불쌍하기도 하지. 그처럼 착한 아이에게 이런 탐욕스러운 아비가 있다니.’‘돈 때문에 아이를 팔아 넘기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 리가.’송종철이 어색하게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어째서 그 미치광이가 가져갔지? 만약 자신이 가서 달라고 하면 돌려줄까?’‘내가 갔
안금여는 관여할 생각이 없는 게 분명해 보였다.송종철이 성연에게 잘해서, 성연이가 부탁한다면 어쩌면 도와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한 딸은 치켜세우고, 또 한 딸은 패대기치는 송종철의 말에 정말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똑같은 딸인데 어찌 이리 차별하는 게야.’하지만 송종철이 성연에게 잘했다면 강씨 집안으로 시집보내지도 않았을 터.소위 명문 세가의 영애들은 강씨 집안을 무슨 독처럼 피한다는 걸 안다.‘성연이를 귀하게 여기는 자신이 어찌 그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하겠나?’안금여는 그저 접대성 대답만 했다.“그런 일이 있었군요. 대충 알겠습니다. 나중에 사람을 보내 상황을 알아보지요. 만약 성연이의 잘못이라면 반드시 잘 훈계하겠습니다. 이렇게 버릇이 없으면 안되지요.”이어 말머리를 돌렸다.“사돈, 잠시 뒤에 회의가 있어 먼저 자리를 비워야 합니다. 편하게 있다 가세요.”할 말을 마친 안금여가 바로 일어나 나갔다.송종철 역시 예의를 차려 대답했다.“무척 바쁘신 분인데, 볼 일 보셔야죠.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안금여가 나갔으니 그 역시 더 머물 수가 없었다. 안금여는 명명백백히 그에게 축객령을 내린 것이다.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대단한 귀중품들이다. ‘‘만약 잃어버리거나 깨기라도 한다면…….’ 송종철은 생각만해도 끔찍했다.송종철은 그저 씩씩거리며 나갈 수밖에 없었다.강씨 집안의 WS그룹을 나오는 송종철의 기분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돈도 받지 못하고, 아연이도 유치장에서 꺼내지 못했다.이제 안금여도 늙어 노망이 들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여전히 늙은 여우였다. 하나도 제대로 얻어낸 것이 없었다.‘사람 하나 풀어주는 건데, 간단하지 않아? 늙은 할망구 말 한마디면 될 것을.’그런데 방금 안금여는 분명 일부러 얼버무리는 태도였다. 송종철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었다.임수정은 하루 종일 집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남편 송종철로부터의 희소식을 기다렸다.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송종철이 돌아왔다.
임수정이 따졌다.“그럼, 우리 딸은 어떡해?”‘아연일 계속 경찰서에서 고생시킬 순 없잖아?’송종철이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내가 다시 임씨 집안과 얘기해 볼게…….”송종철이 안금여를 찾아간 일에 대해, 성연은 전혀 몰랐다.어제는 속이 좋지 않아 서한기와 샤브샤브를 먹기로 한 걸 오늘로 미루었다.점심에 서한기와 학교 밖의 음식점 룸에 앉아 즐겁게 식사를 했다.옆에서 서한기가 열심히 고기를 데쳐 성연에게 주며 물었다.“보스, 스카이 아이 시스템은 어떻게 됐어요?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소식이 없네요. 서두르지 않다가 저쪽에서 개발이라도 할까 걱정입니다”먹느라 입술이 빨갛고 이마엔 온통 땀범벅이 될 정도였지만, 성연은 즐거웠다.얼큰하고 매운 게 아주 자극적이다.서한기의 말을 들은 성연이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신 뒤, 냉소를 지으며 대꾸했다.“그럼 먼저 비밀번호부터 풀어야지. 비번은 못 풀어. 결국 땅 속에 매장된 거액의 보물을 손 안에 넣은 꼴이지.”자신이 디자인한 것에 대해 엄청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성연이었다.그녀의 물건을 가지려 한다면,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서한기가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뭐, 그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 이제 움직여야지.”‘결국 드넓은 세상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도 있지. 진짜 해독할 사람이 나올 수도 있을 터. 그때는 이미 늦는다.’여기까지 생각한 서한기는 젓가락을 재빠르게 놀리는 성연을 원망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리고, 보스, 잠만 자서는 안 됩니다! 본업에 집중 하셔야죠!”성연이 서한기를 흘깃 보았다.“네 말 대로, 학생의 본업은 잠을 자는 거야.”‘학교에서 잠을 안 자면 소금에 절인 생선이랑 마찬가진데?’게다가 수업 내용들은 성연이 이미 다 아는 것들이었다.매일 반복해서 듣다 보니 이제 뇌에 마비가 올 것 같다.‘잠을 좀 자면서 자신을 위로하면 안되나?’듣고 있던 서한기는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학생의 본분은 학교에 다니는 것 아니
송씨 집안의 일은 무진에게 맡기는 게 확실히 더 타당할 터.그에 대해 안금여 또한 이견이 없었다.원래 오늘 방문한 것도 무진이 얼굴이 보고 싶어서였다.그렇게 차를 한 잔을 나눈 뒤, 안금여가 돌아갔다.바쁜 가운데 잠시 짬을 낸 집사가 거실에 앉아 있는 무진에게 다가왔다.“도련님, 저녁에는 무엇을 드시겠습니까?”무진의 입은 그리 까다롭지 않은 편이었지만, 집사는 매번 조리법을 바꾸어 영양이 풍부한 음식들을 만들어 주려 했다.매번 물어본 후에야 주방에 신선한 식재료를 준비하게 하고, 또 몸을 보양하는 음식을 만들게 했다.무진이 바로 대답했다.“샤브샤브.”‘샤브샤브?’집사는 의아했다.‘도련님이 한 번도 드셔 본 적이 없는 것인데?’또 나이가 들어 귀가 약해진 게 아닌가 의심했다.메뉴를 말한 무진은 집사가 여전히 제자리에서 꼼짝도 않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또 뭔가?”“아닙니다, 도련님. 다시 한 번 확인하겠습니다. ‘샤브샤브’, 맞으십니까?” 무진이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특히 ‘샤브샤브'를 강조하며 물었다.“응.” 무진이 조용히 대답했다.왠지 언짢은 듯한 기운을 느낀 집사가 잠시도 지체 않고 얼른 주방으로 달려 갔다.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성연은 식탁에 올려진 샤브샤브 용 화로를 보고 눈썹이 찌푸려졌다.“오늘 저녁, 이거 먹어요?”화로 옆에 앉아 있는 무진은 블랙 셔츠 차림이었다. 온몸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인간계의 화식은 먹지 않는 듯, 김이 무럭무럭 나는 샤브샤브와 조금도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잘 먹는다고 해서.”무진의 대답에 성연이 벙 쪘다. 잠시 후,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누구한테 들은 거예요? 이런 엉터리 정보라니. 가끔 한 번씩 먹으면 몰라도, 두 끼 연달아 먹으면 누가 견디겠어요?”점심에 서한기와 먹었던 것도 아직 소화가 안되어 위가 불편한 느낌이었다.그런데 의외로 무진이 성연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식기를 세팅하게 했다.팔
무진이 묻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래, 성연이 집에 돌아와 공부 비슷한 걸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성연은 무진의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괜찮아요. 어차피 나도 할 생각 없고.”귀를 쫑긋 세우고 듣던 손건호는 속으로 의심스러웠다.‘숙제도 안 하고, 완전 낙제생 아냐? 그런데 만점을 받았다고? 정말 우리 보스가 돈 주고 만든 거 아니야?’ 무진이 성연을 보며 진지하게 질문했다.“공부에 관심도 없으면서, 왜 굳이 학교에 가서 자?”성연이 턱을 괴고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자신의 본분을 다 해야지.”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손건호의 입에서 물음이 튀어나왔다.“무슨 본분요? 잠자는 본분?”기분 나쁘다는 듯이 성연이 손건호를 흘겼다.“청춘을 체험하는 거지.”보건실에서 서한기에게 한 말과 똑같았다.물론 되는 대로 지껄인 것이 분명하지만.성연에게 당한 손건호는 정말 말로는 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성연의 말을 들은 무진은 입술 끝을 올린 채 더 이상 묻지 않았다.손에 들고 있던 게임 조종기를 내려놓은 성연이 슬리퍼를 질질 끌며 주방에 가서 요구르트 하나를 꺼내 왔다.막 거실로 들어가려던 순간, 무진이 언뜻 보였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주방에 가 요구르트 하나를 더 꺼내 왔다.TV 앞으로 걸어간 성연이 요구르트를 무진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내가 당신한테 얼마나 잘하는 지 볼래요? 요구르트도 가져다주잖아요.”무진이 요구르트를 들어 올렸다. 방금 냉장고에서 꺼낸 요구르트는 아직 차가웠다. 손으로 잡으니 물방울도 맺혔다.아연실색한 손건호가 멍하니 성연을 쳐다보았다. ‘아니, 우리 보스에게 요구르트를 주다니.’‘요구르트, 저거 어린애들이나 먹는 거잖아. 우리 보스가 저걸 마시겠어?‘아예 싫어할 걸?’성연의 손에 들린 요구르트는 곧 빈 병이 되었다. 그런데 무진이 여전히 들기만 한 채 꼼짝도 않자 성연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왜요? 먹기 싫어요?”계속 말이 없자, 성연이
이전에 엄격한 훈련 과정을 거쳤던 두 사람은 조직에서의 실력도 막상막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랬다.한 차례 맞붙는 모습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아주 격렬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상대방을 다치게 할 수 부분은 전혀 없었다.“아빠!” 두 사람이 싸우고 있을 때, 소파에 앉아 있던 두 아이가 온통 눈물 범벅인 얼굴로 무진에게 달려왔다. 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을 한 채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무진에게 달려갔다.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흐느끼는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무진의 가슴을 뒤흔들었다.무진이 고개를 숙이고 두 아이를 바라보자, 익숙한 두통이 다시 찾아왔다.“아빠, 저 아줌마가 아빠가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아빠는 우리가 싫어요?”작은 얼굴이 눈물에 젖은 채 흐느끼는 사진의 모습은 그야말로 눈물공주의 모습이었다.사무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했다. 여동생처럼 펑펑 울지는 않아도 줄곧 눈물이 눈가에 맺혀 있었다.사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무진을 바라보면서 물었다.“아빠는 정말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요?”무진은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마음속에서 어떤 느낌이 더욱 짙어졌다.‘나를 아버지라고 부른 두 아이가 송성연 씨 아이였어.’ ‘게다가 이번에 송성연 씨를 만났을 때도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며칠 동안 이어진 장면들이 지금 마치 파노라마처럼 무진의 머릿속을 빠르게 맴돌았다.“아빠, 사진이는 아주 말을 잘 들어요. 우리가 말을 잘 들으면, 아빠가 우리하고 같이 있을 거예요?”다시 고개를 든 사진의 눈에는 어느새 다시 눈물이 맺혀 있었다.작고 하얀 두 손을 천천히 펼치면서 무진이 안아 주기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아이의 이런 모습을 본 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손을 내밀고 두 아이를 품에 안았다.아무 말없이.여전히 성연에게 붙잡혀 있던 예민주는 필사적으로 벗어나려고 했지만, 벗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다른 한쪽에서 손건호는 여전히 서한기와 뒤엉킨 채 막상막하인 상태였다.
성연은 그저 비웃기만 하면서 핏발선 눈으로 무겁게 무진을 쏘아보았다.“지금 저 여자를 두둔하는 건가요?”미간을 찌푸린 채 성연은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도 없는 위엄이 담긴 목소리로 조용히 남자를 쏘아보았다. ‘이게 무슨 대화로 하자는 거야? 완전히 도발하는 거지!’그러나 지금 완전히 통제불능 상태인 성연에게는 무진의 눈빛이 그렇게만 보였다.심지어 다시 이전의 두통이 반복되었다. ‘아주 뚜렷하고 강렬한 느낌이야.’‘매번 이 여자를 마주할 때마다 이런 전에 없던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우리는 도대체 어떤 관계인 거야!’무진이 멍하니 있을 때, 줄곧 주의하지 않았던 예민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진 오빠, 빨리 구해줘요!”무진은 그제서야 비로소 예민주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조금 떨어져 있던 예민주의 두 볼이 빨갛게 부어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손건호, 아직도 거기에 서서 뭐 하는 거야?”남자는 차갑게 지시하면서 셩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네!” 지시를 받았지만 손건호는 여전히 다소 망설였다. 결국 자신이 상대해야 할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무도 익숙했던 성연이기 때문이다.지금은 마치 어떤 이유 때문에 자신의 대척점에 서 있는 듯했다.이런 느낌에 손건호는 막막하기만 했다.‘하지만 나는 결국 보스의 수하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해.’“송성연 씨, 예민주 씨를 놓아주십시오.”성연의 앞에 다가간 손건호는 성연을 직시하지도 못한 채 공허한 눈빛이었다.성연은 여전히 예민주의 멱살을 꽉 쥔 채 전혀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손건호, 이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끼어들지 마.”그 말을 듣자, 손건호는 마치 망치에라도 맞은 것처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러나 그저 잠시만 그랬을 뿐. 손건호의 눈빛은 이미 빠르게 수습되었다.“송성연 씨, 죄송합니다만 이게 제 일입니다. 저를 난처하게 하지 마십시오.”이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손건호 자신만이 알고 있을 뿐.말을 마친 손건호가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