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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1화

Author: 이제리
덕 태감이 돌아간 후, 북진연은 온사에게 물었다.

“경성에서 쉬고 갈 거야? 아니면 일단 수월관으로 돌아갈래?”

란씨 가문 저택은 이미 수리가 되었으니 너무 피로하면 그곳에 가서 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북진연은 그 저택을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그녀의 마음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온사는 그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오래 수월관을 비웠으니 사부님께서 분명 걱정하고 계실 겁니다. 빨리 수월관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그래, 그럼 사람을 보내 수월관까지 호송하도록 하지.”

북진연은 그녀와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그도 왕부를 비운 시간이 꽤 오래 지나서 돌아가봐야 했다.

온사는 그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이때, 신경 쓰이는 인물이 다가왔다.

“누님, 어디로 가시려고요? 저도 따라가도 될까요?”

범숙취가 고개를 내밀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온사는 눈을 흘기며 그의 머리를 탁 쳤다.

“넌 당연히 따라가면 안 되지.”

출가한 여승들만 있는 수월관에 사내인 범숙취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온사가 그를 란 집사에게 맡길까 고민하던 사이, 북진연이 소년의 덜미를 잡더니 담담히 말했다.

“넌 나와 가자. 내 네가 살만한 거처를 안배해 주지.”

범숙취는 거절하고 싶었다. 그러나 거절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의 속마음을 눈치챈 북진연이 싸늘하게 말했다.

“거절은 사양할게. 비록 성녀가 네 신원을 보장해 주었다지만 네가 위험인물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 그러니 네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범숙취는 침을 꿀꺽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게 뭔가요?”

“나와 같이 왕부로 가서 내 밑에서 얌전히 있든지, 아니면 지금 내 손에 죽든지.”

둘 다 끔찍한 선택지였다. 온사와 함께 가고 싶은 범숙취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무력으로는 북진연을 꺾을 수도 없으니 싫지만 그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온사는 오히려 그게 안심이 되었다. 북진연의 말처럼 범숙취가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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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의 온사는 황궁에 자신을 기다리는 또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수월관으로 돌아간 온사는 사숙과 사저들에게 둘러싸였다.“돌아왔으면 됐어. 사부께서 안 그래도 최근 네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 관내의 제자들과 함께 매일 너와 창주 백성들을 위해 기도했어.”무고 사저가 온사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사부님께서는 널 위해 공덕경을 필사하고 계실 거야. 어서 가봐.”온사는 미소를 지으며 바로 막수 사태를 찾아갔다.“사부님, 사부님!”온사는 막수 사태의 처소 밖에 도착하자마자 사부를 불렀다.대문 앞에 도착하니 벌써 막수 사태가 버선발로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무우니?”막수 사태는 반가운 얼굴로 그녀를 맞아주었다.“사부님, 다녀왔어요.”온사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니 막수 사태가 눈시울을 붉혔다.“이 녀석, 꼭 위험한 곳만 찾아서 가더라! 사부에게 말 한마디 안 해주고 창주까지 가다니! 넌 정말이지…”막수 사태는 웃고 있는 그녀를 보더니 곱지 않게 그녀를 흘기며 어깨를 툭툭 쳤다.온사는 화가 나서 그러는 게 아니라 자신을 많이 걱정해서라는 것을 알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사부님….”온사는 바로 막수 사태의 손을 잡으며 애교를 부렸다.“화 풀어주세요. 무사히 돌아왔잖아요. 정말 아무 일 없어요.”“뭘 아무 일이 없어? 전에는 추월이 늘 네 곁에 있어서 안심했었는데 창주로 가면서 추월도 안 데리고 갔더라?”막수 사태는 임연주에게서 온사가 창주로 떠난 것을 알고 걱정은 됐지만 추월이 있어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날에 온사의 명을 받은 추월이 임 태사를 수월관으로 데려온 것을 보고 막수 사태는 가슴이 철렁했다.추월 역시 온사가 걱정되었기에 그 길로 다시 경성을 떠나 창주로 향했다.“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널 노리고 있는지 알면서 그런 위험한 수를 두다니! 어쩜 그리 겁이 없어!”오랜 시간 걱정하던 제자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 막수 사태도 마침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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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내내 온사는 말 많은 범숙취에게 시달리고 있었다.매번 다른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하면 그는 순진무구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하지만 제가 아는 사람은 누님뿐인걸요. 다른 사람은 잘 몰라요. 섭정왕 전하는 알지만… 그분은 너무 무서워요.”범숙취는 아주 당당하게 북진연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냈다.온사는 그가 그럴수록 짜증이 치밀었다.결국 참다못한 그녀는 그를 범씨 일족을 압송하는 압송차로 가서 범수란을 찾으라고 허락했다.“그럼 인간 돼지로 만들어도 되나요?”소년은 범수란을 찾아가도 좋다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안 돼. 가다가 중도에 죽기라도 하면, 네가 책임질 거니?”“그럼 손발을 모두 잘라버려도 될까요?”“당연히 안 되지. 손발을 모두 잘라버리면 인간 돼지랑 뭐가 다르지?”“당연히 다르죠.”범숙취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말했다.“인간 돼지를 만들려면 단지에 담아 돼지우리에 넣어야 하는데, 저는 그저 손발만 자르겠다 했을 뿐인걸요.”분노한 온사가 소리쳤다.“당장 내 앞에서 썩 꺼져!”“예, 누님!”결국 범숙취는 범수란을 찾아갔다.그러나 그전에 온사의 허락을 받아내지 못했으니 북진연을 먼저 찾아갔다. 그러고는 몰래 자신이 온옥지를 죽여 누님의 복수를 한 일을 들먹이며 그에게서 다친 죄수에게 침을 놓아준다는 명분을 얻어냈다.그렇게 이어지는 며칠간 범숙취는 어느 의원에게서 빌린 약상자를 들고 범씨 일족을 진료해 주러 갔다.그러나 매번 치료대상은 언제나 범수란이었다.“네가 많이 아픈 듯하니 침을 몇 방만 놓아주지.”그렇게 범수란은 가는내내 시달리다가 경성에 거의 도착할 때쯤에는 목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 상태가 되었다.“소인, 섭정왕 전하와 성녀 전하를 뵈옵니다.”황제 신변의 덕 태감이 성문까지 마중을 나와 그들에게 인사를 올렸다.“폐하께서는 이번 재난 구제를 위한 창주행에서 섭정왕 전하와 성녀 전하께서 백성들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수고해 주신 것을 높이 치하하시며 노곤하셨을 텐데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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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숙취는 눈만 깜빡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렇군요. 다음에 더 노력해서 누님의 칭찬을 받는 수밖에 없겠군요.”온사는 그 말을 무시하고 그에게 말했다.“시간이 정확히 정해진 건 아니지만 곧 경성으로 돌아갈 거야. 너도 우리와 함께 갈 생각이라면 돌아가서 준비를 하렴.”그 말을 들은 범숙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예. 그럼 저는 돌아가서 준비 좀 하겠습니다. 참, 누님. 범수란은 어찌 처리하실 겁니까?”범숙취가 갑자기 물었다.“그건 왜 묻는 거지?”온사의 질문에 범숙취는 생글생글 웃으며 답했다.“저와 범수란 사이에 개인적인 원한관계가 좀 있어서요. 인간 돼지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데 혹여….”온사는 싸늘하게 대꾸했다.“꿈 깨. 범수란은 범씨 일족과 함께 경성으로 압송될 거야. 나중에 단두대에 오를지 능지처참형이 내려질지는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알겠어요.”범숙취는 잔뜩 실망한 얼굴로 돌아갔다.온사는 야윈 그의 뒷모습을 보며 표정이 굳었다.역시나 위험한 인물이었다. 이 아이를 경성에 데려가는 게 화가 될지 도움이 될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북진연이 선두지휘하니 창주의 재난 지원 업무는 순차적으로 척척 진행되었다.그가 데려온 일만 흑기군의 절반은 창주성 근처의 각 관아로 가서 보급과 감독을 맡았다. 물자를 충족하게 가져갔기에 각 지역의 관아도 매우 협조적이었다.물론 예외는 있었는데 범씨 일족과 결탁한 잔당들은 그들을 환영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북진연의 목을 치라는 한마디에 대부분 반발하려는 자들은 생각을 접었다.조정에서는 창주지부를 맡을 새로운 관원을 파견했다.인수인계가 끝나니 온사와 북진연도 드디어 귀경길에 올랐다. 범씨 일족을 압송하는 마차가 창주를 떠난 즉시,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던 폭설도 드디어 기적처럼 멈추었다.“큰눈은 재앙을 가져왔지만 어쩌면 죽은 자들이 억울함을 토로한 것일지도….”온사는 마차밖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누님, 약재 점포가 개업한지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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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숙취는 절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잘 떨어졌네.”그러고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중얼거렸다.“이제 누님에게 칭찬받으러 가봐야겠군.”그의 손에는 온옥지의 머리카락이 들려 있었다.범숙취는 그 머리카락을 들고 창주성으로 돌아갔다.그는 일단 흑기군 영지로 가서 온사를 찾았지만 온사는 그곳에 없었다.그래서 창주성으로 갔더니 새로 연 약방 앞에 약재를 추가하는 온사가 보였다.“제가 도와드릴까요?”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온사의 시야에 능글거리는 웃음을 짓는 범숙취가 들어왔다.“벌써 다 처리했어?”온사는 좀 놀랍다는 얼굴로 물었다.범숙취는 칭찬을 바라는 어린애처럼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고작 살인 가지고. 이런 건 제게 있어서 가장 쉬운 일이랍니다.”“이거 보세요. 그 온옥지 놈의 머리카락이에요. 일부러 증거로 가져왔으니 확인해 보세요.”“됐어.”온사는 그가 내민 머리카락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말했다.“누님은 저를 그렇게 믿으시나요?”범숙취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물었다.온사는 그를 힐끗 보고는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잡았다.범숙취는 온사가 자신을 해하려는 줄 알고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곧이어 온사는 다시 손을 내렸다.그리고 범숙취는 그녀의 손등에 조금 전에는 없던 작은 개미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을 보았다.“이… 이건 약충인가요?”범숙취는 범가에 있을 때 약충을 본 적 있었다. 그래서 좀 특이해 보이는 벌레를 보자 가장 먼저 약충을 떠올렸다.“누님도 혹시 약충 소환사인가요?”온사는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아니.”그러나 범숙취가 또다시 의문을 제기하기 전에 귀찮은 듯 말했다.“이건 독벌레야. 뭐, 약충으로 봐도 상관없고.”온사는 거미로부터 범숙취가 일을 행한 모든 과정과 온옥지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확인했기에 그가 임무를 완수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그녀는 범숙취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거미를 공간으로 돌려보낸 후, 단약 하나를 꺼내 건넸다.“이제 가도 돼.

  •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제867화

    “그래요? 형님은 역시 통이 크시네요. 진국공가의 공자님 다워요.”범숙취는 싱글벙글 웃으며 마치 온옥지의 제안이 매우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했다.그러나 온옥지는 상대가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는 어떻게든 범숙취의 마음을 돌리려고 말했다.“물론이지. 네 말처럼 난 진국공가의 아들로서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켜. 그러니 걱정 말고 날 좀 끌어올려줘. 후회하지 않을 거야.”“그래요. 형님이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니 걱정할 필요가 없죠. 제가 형님을 여기서 끌어올려 드리면 되는 거죠?”“그래, 날 올려주기만 하면 돼.”온옥지는 올라가기만 하면 주도권을 잡을 자신이 있었다.이번 여정을 떠나면서 아무런 준비도 안 해온 것은 아니었다. 많은 독약을 챙기고 있었기에 올라가기만 한다면 상대를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그때가 되면 빌어야 할 사람이 누가 될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그러나 온옥지의 생각과는 다르게 소년은 한참이 지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웃으며 그를 쳐다보고 있기만 했다.온옥지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내 부탁을 수락했으면서 왜 아직도 날 올려주지 않는 거지?”범숙취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말했다.“제가 형님의 부탁을 수락하긴 했지만 저는 누님의 부탁이 먼저인걸요. 누님께선 당신을 죽이라 명하셨으니, 형님이 죽은 이후에 끌어올려 드리겠습니다. 어때요?”온옥지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지금 날 농락한 거야?”범숙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요! 오해세요, 형님. 정말 형님을 끌어올려 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형님께서도 살아 있을 때 끌어올리라는 얘기는 없으셨잖아요. 먼저 누님의 부탁을 들어드리겠다 약속했으니 당연히 형님이 죽은 후에 시신을 끌어올려 드려야죠.”“너!”온옥지의 얼굴은 분노로 퍼렇게 질렸다.점점 힘이 딸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못가 저 절벽 아래로 추락할 것이다.온옥지는 치미는 분노를 참으며 그에게 말했다.“대체 원하는 게 뭐야? 뭐든 말만 해!”그는 범숙취가 탐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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