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등불이 언제 꺼졌는지는 둘 다 몰랐고,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창호지가 희끗했으며 방 안 물건들이 윤곽만 있었다.소반이 한쪽으로 밀려 있었고, 그 위에 놓였던 거간 장부가 방바닥에 떨어져 있었다.떨어진 채로 아무도 줍지 않았다.옷고름 하나가 문지방 가까이 가 있었다.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알 수 없었다.한경이 몸을 조금 움직였다. 등이 따뜻했다.뒤에서 팔이 와 있었고, 그 팔이 허리를 지나 반대쪽 손목까지 가 있었으며 자면서도 그 손을 놓지 않았다.숨이 목덜미에 닿았는데, 고르고 깊었다.열 해 동안 벽 너머로만 듣던 숨이었다.한경이 그 팔에 손을 얹자 팔이 조금 조여들었다. 깨지는 않았다.* * *날이 밝기까지 오래 걸렸다.밝아 오는 동안 방 안의 것들이 하나씩 색을 얻었는데, 흐트러진 이불의 남색, 방바닥에 떨어진 장부의 누런빛, 소반 다리에 걸린 옥색 치맛자락.한경이 방 안의 것들을 하나씩 봤다.몸 어디가 아픈지도 하나씩 알았는데, 어깨 뒤가 당겼고 손목에 자국이 있었고 목 아래가 아직 얼얼했다.아픈 데를 세는 것이 이 사람의 버릇이었으므로 세다가, 세면서 웃었다.웃는 소리에 뒤에서 숨이 바뀌어, 얕아졌다가 도로 깊어졌다."부인."목소리가 잠겨 있었는데, 자다 깬 목이었다."깨셨어요?""…""왜 대답을 안 하세요."팔이 조여들었고, 등이 그의 가슴에 붙었다."무섭소."한경이 고개를 돌리려는데 그가 못 돌리게 했다."부인 얼굴을 보면 이것이 정말 있었던 일이 되오.""있었던 일 맞는데요.""…""나리. 나 지금 어깨 아파요.""…""그것도 나리 때문이고요."뒤에서 소리가 났는데, 웃음을 참는 소리가 났다.팔이 풀렸다. 한경이 돌아누웠다.가까이서 그 얼굴을 봤는데, 새벽빛에 눈 밑 그늘이 옅어져 있었다.열 해를 곤두서 있던 얼굴이 거기 없었다."나리.""예.""잘생겼어요, 오늘도."육정이 이불을 끌어올려 제 얼굴 반을 가렸다.* * *해가 다 뜨고서야 일어났다.한경이 방바닥의 장부를 주우
육정이 그 말을 들은 것은 관가에서였다.성 안에 하루면 도는 말이었고, 관가에는 반나절이면 왔다.육 대인 댁에 심가 아씨가 들어온다더라는 말이 서리들 사이에서 오갔고, 오가는 것을 그가 등 뒤에서 들었다.돌아온 것은 해가 지고서였고, 말에서 내려 중문을 들어서는데 마당에 아무도 없었고 안채에도 불이 없었고 행랑에도 없었다.서하당에만 하나 있었다. 그리로 갔다.* * *문을 열자 한경이 등불 하나만 켜 놓고 무릎 위에 무언가를 펴 놓은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거간 장부였다."부인.""오셨어요."한경이 장부를 접어 옆으로 밀어 놓았고, 육정이 문을 닫고 그 앞에 앉았다."들으셨소?""뭘요.""…""심가 아저씨가 딸 보내겠다는 거요? 들었어요."한경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을 육정이 봤다."아니 될 일이오.""왜요.""…""열여덟이라던데요.그 나이면 애 잘 낳을 거예요."육정의 손이 무릎 위에서 주먹으로 쥐어졌다."부인.""진짜예요. 열여덟이면 몸도 좋고, 사촌이라 집안도 알고.나리 어머니도 심가 피면 마음이 놓이실 거고요.""그만하시오.""의원으로 말하는 건데요."육정이 고개를 들었는데, 드는 데 한 박자가 걸렸다."…부인은 지금 의원으로 말하고 있지 않소."* * *방이 조용해졌다. 한경이 치마 위의 손을 폈다가 도로 접었다."나리.""…""나 열 해 동안 이 집에서 애를 못 낳았대요."육정이 무어라 말하려다 못 하고, 입을 도로 다물었다."오늘 그 말 듣는데, 나는 열 해가 없잖아요.나는 여름부터인데.""…부인.""그런데 그 열 해가 내 거래요.내가 못 낳은 거래요."한경이 등불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불빛이 얼굴 옆으로 들어왔다."웃긴 게 뭔지 아세요?나 오늘 그 말 듣고 아무 말도 안 했어요.화도 안 났어요.""…""근데 저녁을 못 먹겠더라고요."육정이 그 앞으로 무릎을 옮겼는데, 한 자였던 것이 반 자가 됐다."부인.""…""열 해 동안 내가
심경이 육가에 든 것은 상복을 벗고 처음이었다.빈손으로 오지 않아서, 남방 비단 두 필과 말린 해삼 한 궤짝을 들여놓았고 곧바로 대부인 처소에 들어가 절을 두 번 했다.굳은 손을 잡고 한참 있었고, 안부를 묻는 동안 목소리가 낮고 고르게 나왔다."…형수님. 형님이 가시고 조카님이 이 댁에 있어 제가 마음이 놓입니다."대부인의 염주만 천천히 돌아갔다."다만."찻잔이 소반에 놓이는 소리가 났는데, 놓는 데 힘이 들어가 있었다."…형님 생전에 늘 마음에 걸려 하시던 것이 하나 있었지요."박씨가 부채를 접었고, 육설이 문가에서 눈을 들었다."열 해입니다, 형수님."대부인의 염주가 멎었고, 멎은 알이 손안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 * *아이 이야기였고, 육가에 십 년째 후사가 없다는 것이었다.심가에서 보낸 딸이 그러하니 심가가 면목이 없다는 말이 앞에 붙었고, 그래서 심가가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 뒤에 붙었다."…제 여식이 열여덟입니다."방이 조용해졌다. 마루 쪽에서 누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열여덟이면 좋을 때네요."박씨였다. 말해 놓고 방 안의 얼굴을 하나씩 보더니 부채를 펴서 제 얼굴 앞을 가렸다."…아니 저는 그냥, 나이가 좋다는 뜻으로.""조카님과 사촌 간이니 촌수가 가까워 흠이 됩니다만, 첩이라면 흉이 되지 않지요.같은 심가 피니 형수님 보시기에도 남보다 낫지 않겠습니까."박씨가 소매로 입을 가렸고, 가린 손 위로 눈이 웃었다.육설이 문가에서 한경 쪽을 봤다. 웃지 않았다.대부인이 염주를 도로 돌리기 시작했다.알이 하나 굴렀다."…내 아들은 아직 젊다.""예. 젊으시니 더 늦기 전에.""…""형수님. 육가 사대에 어공이 끊긴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들었습니다.집안이 흔들릴 때 사람들이 무엇부터 보는지 아십니까."심경이 찻잔을 들고 나서 마시지 않았다."…대를 봅니다."대부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굳은 손이 이불 위에서 반쯤 오므라들었다.한경은 문가에 선 채로 그 말을 끝까지 다 들었고, 듣는
강목이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는 데 익숙해지고 있었다.사랑채 건넌방에 자리를 잡은 지 엿새로, 아침저녁으로 왼팔을 뜨거운 물에 담갔다가 주무르고 나머지 시간에는 문서를 옮겨 적었다.태의원에 못 나가는 동안 제 손으로 남길 것을 남겨 두려는 것이었다.한경이 물그릇을 들고 들어갔을 때 그가 종이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붓이 이미 멎어 있었다."왜요.""글자 하나가 걸립니다."한경이 옆에 앉아 종이를 가만히 봤는데, 약재 이름이 줄줄이 적힌 문서였고 중간쯤에서 멈춰 있었다."뭐가 걸리는데요."강목이 붓을 들어 한 자를 쓰다가 마지막 획을 긋지 않고, 오른쪽 아래 삐침 하나를 그대로 비워 두었다."…이렇게 씁니다.""왜 하나를 빼요?""쓰면 안 되는 글자라서요."* * *한경이 그 글자를 봤다.획이 하나 빠지니 글자가 다른 것처럼 보였고, 알아볼 수는 있는데 온전하지 않았다."안 쓰면 되잖아요.""약재 이름에 들어갑니다.안 쓸 수가 없습니다.""그럼 왜 쓰면 안 되는데요."강목이 붓을 놓았고, 놓는 손이 종이에서 멀어졌다."…폐하의 휘이옵니다."한경이 그를 봤는데, 비워 둔 획 쪽으로 눈이 한 번 갔다."휘요?""폐하께서 나시면서 받으신 이름입니다.그 글자는 온전히 쓰지 않습니다.쓰는 것도 죄이고, 입에 올리는 것은 더 큰 죄입니다.""…""소신이 이 문서를 온전한 획으로 올리면, 소신을 미워하는 자가 그 종이 한 장으로 소신을 벨 수 있습니다."한경이 그 종이를 오래 봤는데, 획 하나가 빠진 글자가 종이 가운데 있었다."…그럼 그분 이름이 뭔데요?"강목이 대답하지 않았고, 종이를 뒤집어 놓았다."강 나리.""…부인.""이름이 뭐냐고요."강목이 붓을 종이 위에 놓았고, 먹이 번지는 것도 보지 않았다."…소신도 소리 내어 본 적이 없습니다.""들어는 봤어요?""…""들어는 봤냐고요."강목이 고개를 젓고 나서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나라에 그 소리를 들어 본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편전 조회에서 그 말이 나온 것은 열흘이 지나서였다.대신 하나가 먼저 아뢰었다.요사이 궁문이 밤에 열린 일이 있었다는 것, 내금위 일부가 밤에 성 밖으로 나갔다는 것, 그것이 어느 명으로 된 것인지 승정원에 기록이 없다는 것.기록이 없다는 말에 편전이 조용해졌다.황제가 그 말을 앉아서 들었고, 안석에 기대지 않았다.두 번째 대신이 아뢰었다.군주가 밤에 궁 밖으로 나시는 것은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는 일이라 하고, 옛적에 그런 일로 나라가 어지러워진 예를 셋 들었다.세 번째가 아뢸 때는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폐하께서 그 밤에 어디 계셨는지, 신들은 모르옵니다."황제가 그제야 입을 열었는데, 열기까지가 길었다."짐이 어디 있었는지 알아야 하겠느냐.""…신들은 폐하의 옥체를 염려하는 것이옵니다.""염려."황제가 서안 위의 붓을 집어서, 쓰지 않고 도로 놓았다."…경들이 짐의 옥체를 염려한 지가 몇 해나 되었지."편전이 조용해졌다.아무도 이마를 들지 않았다.* * *"짐이 지난 네 해 동안 밤에 잠을 못 잤다."스무 개의 이마가 한꺼번에 바닥을 향했다."짐의 손이 떨린 것을 이 자리에서 못 본 자가 있느냐."여전히 대답이 없었고, 없는 채로 시간이 지나갔다."경들이 염려한 것은 옥체가 아니라 옥체가 언제까지 가느냐였다.짐이 그것을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첫 번째 대신이 이마를 조아렸고, 조아린 이마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폐하.""밤에 나간 것은 짐이다.명은 짐이 내렸고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도 짐이다.승정원에 물을 것이 아니라 짐에게 물어라.""…황공하옵니다.""물어라."대신이 고개를 들지 못했고, 어깨만 한 번 크게 움직였다."묻지 못하겠거든, 앞으로도 묻지 마라."편전 뒤쪽에 선 관원 하나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승정원에 주서로 든 지 두 달 된 자였고, 이름을 배원(裴瑗)이라 했다.강남 소읍에서 올라와 성 서쪽에 셋방을 얻어 사는 자라, 옥좌 쪽을 정면으로 볼 일이 평생 없을 줄 알
벽돌은 손으로 빠졌고, 그 뒤에 팔뚝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으며 안쪽에 기름종이로 싼 것이 있었다.꺼내 보니 비어 있었다.기름종이만 있고 그 안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종이가 오래되어 손을 대자 가장자리가 버석버석 부스러졌다.안쪽에 눌린 자국이 있었는데, 무언가가 오래 들어 있다가 나간 자국이었다.한경이 그것을 소매에 넣고 벽돌을 도로 끼웠다.돌아오는데 서하당 마루에 초하가 앉아 있었다.부인이 안 들어와서 기다린 것이었는데, 초하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졸고 있다가 발소리에 화들짝 깼다."부인. 어디 다녀오세요?""마당에.""이 시각에요?""응." 한경이 그 옆에 앉았다.* * *"초하야.""예.""너 여덟 살 때 어디 있었어?"초하가 자다 나온 얼굴로 눈을 비볐다."모르겠는데요.""열 살 때는.""…""열한 살에 이 집에 왔잖아. 그 전에."초하가 무릎을 끌어안았는데, 마루가 차가운 밤이었다."기억이 잘 안 나요.사람이 많은 데 있었고, 밥을 하루에 한 번 줬고.그러다 수레에 태워서 여기 왔어요.""수레에 너 혼자 탔어?""아니요. 애가 하나 더 있었어요."한경이 그 얼굴을 보는데 달빛이 옆에서 들어 반쪽만 밝았다."걔 기억나?""말을 안 했어요.오는 내내 한 마디도 안 하고, 저를 계속 봤어요.무서워서 제가 반대쪽을 봤고요."초하가 무릎에 턱을 얹고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근데 그 애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여기 와서 못 봤어요."한경이 그 등에 손을 얹자 등뼈가 손바닥에 그대로 잡혔다."초하야.""예.""너 원래 이름 뭐야?"초하가 고개를 들고서 한참 있다가 말했다."…저 이름 없었는데요.""…""거기서는 다 애야, 하고 불렀어요.여기 와서 석 달쯤 있다가 총관이 초하라고 부르라 해서, 그때부터 초하예요."초하가 소리 내어 웃는데 목소리가 밝았다."이름 생긴 게 좋았어요.저 초하 되게 좋아해요."* * *한경이 그 아이를 오래 봤다.마당에 달이 있었고, 초하의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