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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첩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3 17:05:45

마당에는 아직 양붕 자국이 남아 있었다.

기둥을 박았던 자리가 여태 젖은 채 검었다.

진 어멈이 향낭을 갈았는데, 명주의 소매 안에는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주머니가 들어 있어 아침마다 헌 것을 꺼내고 새것을 넣었다.

헌 것을 꺼내는 손끝의 손톱이 회색이었다.

십 년째 하는 일이라 손이 빨라서, 명주는 제 소매에 남의 손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을 잘 느끼지 못했다.

"오늘 것은 매화를 조금 더 넣었습니다. 소인이 어제…

아니, 그저께 것을 코에 대 보니 백단이 앞에 너무 서서요.

백단은 오래가고 매화는 먼저 가니, 매화를 조금 더 넣어야 저녁까지 앞뒤가 맞습니다.

부인께서는 향이 옅어지는 걸 싫어하시니 소인이 늘 그리 맞춥니다."

명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매화가 어떻고 백단이 어떻고 하는 그 향이 명주에게는 오지 않았다.

소매에 든 것에서만 그랬고,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몰라서, 향낭이란 남에게만 나는 것인 줄 알고 살았다.

진 어멈은 헌 것을 들고 나가지 않았다.

옷궤 아래 서랍을 열고 넣는 눈치였는데, 명주는 돌아보지 않아서 소리로만 알았다.

몸단장을 끝낸 춘월이 옷끈 매듭을 고쳐 매어 주고, 단아가 연둣빛 단삼의 깃을 반듯이 눕히는 동안, 세류는 남색 치맛단이 바닥에 닿는 자리를 손등으로 쓸어 폈다.

세 사람이 물러가고 나자 육정이 문가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명주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고는 눈꼬리를 살짝 접으며 웃는 낯으로 그에게 돌아섰다.

"상공…"

육정은 눈 밑이 검었고 옷깃이 한쪽만 접혀 있었다.

이틀쯤 자란 수염 아래로 죄책감 같은 것이 스쳤으나, 명주는 그 밤의 일도, 그 무엇도 마음에 길게 남지 못했다.

다만 그가 아침에 다시 제 처소에 들른 것이 기뻤다.

그의 품에 기대자 먹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그의 접힌 깃을 풀어 주려 손을 올리다가 멈추었다.

남편의 옷에 손을 대 본 적이 없었다.

멈춘 손을 가만히 감싸 쥐고 육정이 입을 떼었다.

"부인."

맑은 명주의 두 눈이 육정을 올려다보자 육정은 눈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숨이 모자라 말끝이 끊겼다.

그의 손이 소매 안쪽에서 한 번 오므라들었다가 펴졌다.

십 년을 보아 온 그의 습관으로, 명주에게 해야 할 말을 숨기려 할 때마다 그랬다.

다만 무슨 말을 숨기는지 단 한 번도 명주는 알지 못했다.

"후원 아이를 이 집에 둘 것이오."

서란이라 다정히 부르지 않고 후원 아이라고 설명하는 육정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명주가 아끼고 분명 그도 그 아이를…, 그 밤에….

명주는 그 기억이 조금 늦게 떠올랐다.

"…첩으로 들일 것이오."

"첩."

명주가 그 글자를 따라 하는 동안 숨이 짧아졌다.

"부인."

"그게 무엇입니까."

방이 조용해졌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하나 멎어 있었는데, 물러갔던 시녀 중 하나가 회랑 끝에 가만히 서 있는 모양이었다.

육정이 문지방에서 한 발을 들었다가 도로 내렸다.

"부인께 인사를 올리게 하겠소."

"예."

"그 아이가 부인을 언니라 부를 것이오."

"예."

"…부인."

"예."

육정이 뭔가를 더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육정이 문을 닫고 나간 후 한참 뒤에야 문밖에서 신발 끄는 소리가 났다.

"거기 서서 뭘 듣고 있습니까!"

진 어멈의 소리가 회랑 끝에서 났다.

춘월이 물러서다가 구리 대야를 떨어뜨렸고, 대야가 바닥을 굴러가 기둥에 부딪혀 멎었다.

"어. …소인은 부인 물을 가져다 놓으려고—"

"놓았으면 갔어야지요."

"진 어멈."

"들어가요. 들어가요."

춘월이 돌아섰다. 진 어멈은 굴러간 대야를 줍지 않고 그 자리에 두었다.

명주는 앉은 자리에서 회랑을 밟는 발소리와 후원 쪽으로 찬합이 건너가는 소리를 들었다.

딸그랑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나다가, 누가 낮게 말하자 뚝 그쳤다.

명주는 첩(妾)이라는 글자를 떠올렸다. 立 아래 女.

붓으로 써 내려가듯 머릿속으로 그린 그 글자는 어릴 때 천자문 다음 책에서 보았다.

글자는 아는데 후원에 찬합이 들어가는 소리보다도 늦게 뜻이 떠올랐다.

명주는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서란의 방이 어디로 옮겨지는 것인지, 아침 문안 자리가 어찌 되는지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얼른 떠올리지 못했다.

동경에 비친 얼굴이 아침 창호지를 통해 들어온 빛에 푸르다 느낄 정도로 하얗게 보였다.

명주는 제 얼굴을 오래 보았다.

서란이 처음 온 해에 그 아이 손에 합을 쥐여 준 일을 떠올렸다.

갈라진 손끝에 바르는 것.

제 방에서 밥을 맛있게 먹던 서란의 모습과 그 순박한 얼굴이 제게 언니라고 부를 것을 떠올리니 하얗고 푸른 얼굴에 얕게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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