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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어전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9 09:12:05

육정이 편전에 든 것은 사시였다.

부름의 명분은 어공이었다.

가을 물목에 빠진 것이 있어 낸 집에 묻는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것은 관가에서 서리를 보내 물으면 될 일이었다.

관복을 입고 궁문을 지나면서 육정은 그것을 알았다. 알면서 걸었다.

편전은 넓고 조용했다.

승지 둘이 벽 쪽에 서 있었고, 발은 드리워 있지 않았다.

황제가 서안 앞에 앉아 있었다.

등을 기대지 않았다.

검은 곤복이었고 금실이 깃과 소매 끝에만 들어가 있었다.

육정이 그것을 보고 값을 매기려다 매기지 못했다.

관가에서 물목을 스무 해 보아 온 눈이었다.

비단의 결은 짚였고 금실의 산지도 짚였는데, 깃의 시침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났는지가 보이지 않았다.

실밥이 한 올도 나와 있지 않았다.

이런 옷은 짓는 사람이 여럿이고 그 여럿이 서로 얼굴을 모른다.

값을 셈하려면 사람 수부터 세어야 했는데, 세다가 그만두었다.

옥대 하나였다. 그 밖에 몸에 걸친 것이 없었다.

없는데도 방 안의 균형이 그쪽으로 기울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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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85화 어전

    육정이 편전에 든 것은 사시였다.부름의 명분은 어공이었다.가을 물목에 빠진 것이 있어 낸 집에 묻는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것은 관가에서 서리를 보내 물으면 될 일이었다.관복을 입고 궁문을 지나면서 육정은 그것을 알았다. 알면서 걸었다.편전은 넓고 조용했다.승지 둘이 벽 쪽에 서 있었고, 발은 드리워 있지 않았다.황제가 서안 앞에 앉아 있었다.등을 기대지 않았다.검은 곤복이었고 금실이 깃과 소매 끝에만 들어가 있었다.육정이 그것을 보고 값을 매기려다 매기지 못했다.관가에서 물목을 스무 해 보아 온 눈이었다.비단의 결은 짚였고 금실의 산지도 짚였는데, 깃의 시침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났는지가 보이지 않았다.실밥이 한 올도 나와 있지 않았다.이런 옷은 짓는 사람이 여럿이고 그 여럿이 서로 얼굴을 모른다.값을 셈하려면 사람 수부터 세어야 했는데, 세다가 그만두었다.옥대 하나였다. 그 밖에 몸에 걸친 것이 없었다.없는데도 방 안의 균형이 그쪽으로 기울어 있어서, 육정은 절을 올리기 전에 제 관복 소매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붓을 놓은 자리에 종이가 한 장 있었다.글자가 다 쓰여 있었다.육정이 절을 올렸다.* * *어공 물목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빠진 것이 셋이라 했고, 남방 것으로 채우겠다는 대답에 그리하라는 말이 왔다.그것으로 부름의 명분은 끝났다.끝나고도 물러가라는 말이 오지 않았다."육 대인.""예, 폐하.""성 남쪽에 밭이 있다지."육정의 등이 굳었다.굳은 것이 어깨선에서 먼저 보였다."…있었사옵니다.""있었다.""…지난달에 넘겼사옵니다."무엇에 넘겼느냐는 물음이 오지 않았다.황제가 종이를 밀어 놓았다."남쪽 세 고을이 비어 있다.자사(刺史) 자리다."승지 둘이 고개를 들었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자 도로 내렸다."…폐하.""육가는 대대로 어공을 내온 집이고, 대인은 관가에서 물목을 보아 왔다.물건이 어디서 나고 어디로 가는지 아는 자가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이치에 맞는 말이었다.그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84화 소금 아닌 것

    아이는 서하당 곁방에 눕혔다.혀가 헐고 목이 부은 것은 오래 굶은 데다 상한 것을 먹은 탓이었다.죽을 묽게 쑤어 다섯 번에 나눠 먹이고, 소금물로 입을 헹기게 했다.사흘째 되는 날 아이가 앉았다.나머지 셋은 오어멈이 성 안 절에 데려다 두었다.절에서 아이를 받는 데는 값을 부르지 않았고, 대신 한경이 쌀 두 섬을 보냈다.아이 어미가 술청에서 왔다.와서 곁방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마당에 섰다."들어와요.""…부인. 소인이.""들어오라고요. 애가 엄마 찾았어요."여자가 문지방을 넘었다.아이가 어미를 보고 제일 먼저 한 말이 배가 고프다는 말이었다.사흘 만에 처음 낸 소리였다.여자가 울었다. 울면서, 애가 배고프다는데 왜 우느냐고 스스로에게 묻는 얼굴이었다."…부인. 얘가 원래 밥을 이렇게 밝히지는 않았습니다.""밝혀야 살아요.""…예.""대신 다 나으면 우리 집 쌀값은 물어내요."여자가 울다 웃음을 터뜨렸다.우는 것과 웃는 것이 한꺼번에 나와 어깨가 크게 흔들렸다.문 앞에 섰던 초하도 따라 웃었다.* * *강목이 온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성 밖 사삿집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얼굴이 굳어 있었다.마루에 앉지도 않고 서서 물었다."혼자 가셨습니까.""오어멈이랑 종 둘이랑요.""…부인.""애가 죽게 생겼는데 나리 퇴청하실 때까지 기다려요?"강목이 입을 다물고 마루에 앉았다.앉아서 한참 있다가 소매에서 종이를 꺼냈다.접힌 것이었고 여러 번 접혀 있었다."성 밖 그 집 문서를 알아보았습니다.""벌써요.""…부인이 궁에 드신 낮에요."펴 놓은 종이에 이름이 셋 적혀 있었다.집을 산 자, 세를 받는 자, 그리고 그 세가 어디로 가는지.세 번째 칸에 상호가 하나 있었다.「남포(南浦) 조운」한경이 그 글자를 봤다.획이 굵고 반듯한 글씨였다."…조운이면 배요?""예. 성 남쪽 나루에서 소금을 나르는 배입니다."한경이 마루 기둥에 손을 짚었다.나무가 낮볕을 먹어 미지근했다."…심가 아저씨가 배를 부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83화 사삿집

    성 밖 사삿집을 찾은 것은 오어멈이었다.개천 건너 셋째 마을, 담이 낮고 마당이 넓은 집이라 했다.약재 궤짝이 드나드는 것을 본 사람이 여럿인데 약방 간판은 없다고 했다.밤에 사람 우는 소리가 난다는 말도 있었으나 그것은 확인된 것이 아니라 했다.한경이 그날로 나섰다.강목이 궁에서 나오는 시각을 기다리지 않았다.오어멈과 종 둘을 데리고 걸어서 갔고, 가마를 부르지 않았다.가는 길에 상복 대신 걸치고 나온 무명 배자의 끈이 두 번 풀렸다.두 번 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걸으면서 맸다.* * *대문이 열려 있었다.마당에 멍석이 깔려 있고 그 위에 약재가 널려 있었다.널린 것이 좋은 물건일 리가 없었다.뿌리가 두 번 캔 것이었고, 마르다 만 것을 뒤집지도 않고 널어 놓아 아래쪽이 상해 있었다.방이 넷이었다. 셋은 문이 열려 있고 하나는 닫혀 있었다.주인이 나왔다. 사십 줄의 사내였는데 손이 깨끗했다.약을 만지는 자의 손이 그렇게 깨끗할 수 없다.무슨 일로 오셨느냐는 물음을 한경이 지나쳤다.대신 마당을 가로질러 닫힌 방 앞으로 갔다.주인이 앞을 막았다.막는 팔이 반쯤만 올라갔다."거기는 병자 방입니다.""비켜요.""부인. 여기가 어디라고—"한경이 그 사내의 소매를 잡아 옆으로 밀었다.밀리면서 사내가 두 걸음 물러났고, 물러나면서 제가 왜 물러났는지 몰라 하는 얼굴을 했다. 문을 열었다.* * *방 안에 아이가 넷 있었다.셋은 앉아 있었고 하나는 누워 있었다.누운 아이가 그 아이였다.앞니가 아직 안 갈린 아이였다.얼굴이 부어 눈이 반쯤 감겨 있었고, 입가에 마른 것이 붙어 있었다.이불이 없었고 짚만 깔려 있었다.한경이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의 눈꺼풀을 열었다."…며칠 됐어요."주인이 문 밖에서 발을 옮기지 못했다.문지방을 넘어오지도 않았다."며칠 됐냐고요.""…나흘입니다.""뭘 먹였어요.""…약을 먹였지요.그게 여기 하는 일이니."한경이 아이의 입을 벌려 잇몸을 봤다.검푸른 선은 없었다. 다른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82화 매일

    그날부터 가마가 매일 아침 마당에 놓였다.초하가 새벽에 일어나 옷을 챙겼다.흰빛에 가까운 잿빛 저고리와 남색 치마, 사흘에 한 번은 옥색.궁에 드는 옷은 색이 튀면 안 된다는 것을 초하가 어디서 들어 왔다.한경은 매일 같은 자리에 섰다.태의원 마당 시렁 사이, 세 번째 궤짝 앞.당귀와 백출과 황기를 꺾어 소리를 듣고, 단면을 보고, 도로 놓았다.궁 사람들이 그 여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상중이던 여자라 했고, 다음에는 어공 낸 집 안주인이라 했고, 그다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많은 말이었다.나가는 시각은 매일 달랐다.어떤 날은 사시에 나갔고, 어떤 날은 해가 다 지고 나서였다.내관부에서 문을 열어 주는 시각이 그날그날 달랐다.* * *강목은 그 여자가 마당에 있는 동안 붓을 오래 들고 있었다.물목을 짚는 손이 전보다 느려졌다.느려진 것을 서리들이 알아챘고, 알아챈 것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닷새째 되는 날 강목이 물목 종이에서 눈을 떼고 물었다."부인. 어제는 몇 시에 나가셨습니까.""…해 지고요.""그제는.""사시에요."강목이 붓을 놓고 궤짝 뚜껑을 덮었다."부인. 궁에 드는 시각과 나가는 시각을 정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을 궁 안에 두고 싶을 때 두겠다는 뜻입니다.""물목이 많다잖아요.""물목은 사흘 치를 하루에 다 봐도 반나절입니다."한경이 뿌리를 하나 집어 들었다.집은 것을 코에 대지는 않았다."그럼 왜요."강목이 대답하지 못했다.대답하지 못하는 얼굴을 한경이 봤다.보고, 뿌리를 도로 놓았다."강 나리.""…예.""나리 요즘 얼굴이 더 안 좋아요.잠을 안 주무시죠."강목이 웃었다. 눈부터 웃는 그 웃음이었는데, 오래가지 않았다."…부인은 사람 얼굴을 참 잘 보십니다.""약재 보는 눈으로 보는 거예요.""…그 눈으로 저를 보시는군요."한경이 무슨 말이냐는 얼굴을 했다.강목이 붓을 도로 들었다.* * *그 무렵 육가에서는 저녁상이 자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81화 사흘에 한 번

    문이 열린 것은 자정이 넘어서였다.내관이 등을 들고 서 있었다.벌을 내리러 온 자도 놓아 주러 온 자도 그런 얼굴을 하지는 않는다.아무 얼굴도 하지 않았다.물러가라는 분부라고 했다. 한경이 일어섰다.흙바닥에 앉아 있던 치맛단이 무릎에서 뻣뻣하게 접혔고, 쓸린 자리가 천에 붙어 떼는 데 시간이 걸렸다."폐하는요."내관이 등을 든 손을 조금 내렸다.등을 든 손만 조금 내려갔다."오늘 밤에 그거 드셨어요?"내관이 등을 든 손을 반 치 내렸다.등불이 내려가면서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소인이 아뢸 자리가 아닙니다.""드셨는지 안 드셨는지만요.""…""안 드셨네요."내관이 앞장섰다. 회랑을 나가는 동안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궁문 앞에서 가마를 부르는 것까지 하고 물러갔다.* * *같은 시각 침전에는 은쟁반이 그대로 있었다.어의가 세 번 아뢰었다.오늘은 도지신 것이니 반드시 진어하셔야 한다는 말, 거르셔서 이렇게 되신 것이라는 말, 열흘을 거르면 다음은 자리보전이라는 말.황제는 안석에 기대지 않고 앉아 있었다.무릎에 얹은 손을 소매 안으로 넣지 않았다.떨림이 그대로 보이는 자리에 두고 있었다."오늘 낮에 짐의 앞에 온 여인이 있었다."어의가 고개를 들었다.들었다가 곧 도로 내렸다."그 여인이 무어라 하더냐."아뢸 말이 없다는 대답이 왔다.무엄하여 끌어냈다는 말이 뒤에 붙었다."짐이 묻는 것은 무엄한지가 아니라 무어라 했느냐이다."어의가 대답하지 못했다.이마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들을 생각이 없었으니 못 들었겠지."황제가 손을 들어 은쟁반을 밀어 놓았다.미는 손이 떨려서 쟁반이 소반 위에서 한 번 긁혔다."물러가라."어의가 물러갔다. 물러가면서 문지방에서 한 번 돌아봤는데, 황제는 밀어 놓은 쟁반을 보고 있었다.* * *이튿날 아침 편전에 명이 내렸다.어공 물목 입회에 관한 종이였다.육가 안주인이 사흘에 한 번 드는 것을 매일로 고치라는 명이었고, 궁에 드는 시각과 나가는 시각

  • 연옥화(軟玉花) — 향이 없는 꽃   80화 얼굴

    그날 태의원 마당에 어공 궤짝이 여덟 짝 들어왔다.가을 것이었다. 뿌리가 굵고 흙이 덜 마른 것이 많아 감별에 시간이 걸렸고, 한경도 입회로 불려 나와 시렁 사이에 서 있었다.해가 기울 무렵 회랑 쪽이 소란했다.소란이라 할 것도 없었다.소리가 아니라 소리가 없어지는 방식이 달랐다.사람들이 물러나 벽에 붙는 것이 아니라, 뛰었다.내관 하나가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왔다.어의를 찾는 소리가 났다.강목이 붓을 놓고 일어섰다.궤짝 뚜껑을 덮지도 않았다.* * *편전 앞 계단 아래였다.황제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있었다.쓰러진 것이 아니라 무릎이 먼저 꺾인 자세였고, 한 손으로 계단 모서리를 짚고 있었다.짚은 손이 떨렸다.곤복 자락이 계단에 흘러내려 있었다.관이 반쯤 기울었는데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내관 넷이 둘러섰다.부축하려 손을 뻗었다가 다시 거뒀다.옥체에 손을 대는 것이 무서웠고, 대지 않는 것도 무서웠다.어의가 뛰어왔다. 뛰어와서 두 걸음 앞에 엎드렸다."폐하. 폐하."황제가 무어라 말하려 했다.소리가 나오지 않았다.한경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지나가는데 아무도 막지 못했다.막을 생각을 한 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자가 손을 들었을 때 한경은 이미 계단 아래에 있었다.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 *계단 위에 황제의 얼굴이 있었다. 젊었다.이목구비가 서늘하게 잘생겨서, 아픈 사람의 얼굴로 보이지 않았다.눈매가 길고 끝이 올라갔으며, 콧대가 높고 턱선이 날카로웠다.흰 낯빛이 병색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땀이 관자놀이에서 턱으로 흘러내리는데, 그 얼굴은 일그러지지 않았다.이를 악문 것도 아니었다.아픈 것을 견디는 얼굴이 아니라 아픈 것을 보이지 않기로 한 얼굴이었다.허리가 굽지 않았다.무릎이 꺾였는데 등이 서 있었다.눈이 아래로 왔다. 마주쳤다.한경이 본 것은 거기까지였다.손을 뻗어 그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맥이 먼저고 그다음이 눈, 그다음이 잇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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