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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초순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4 22:27:46

편원 문밖에서 웅성웅성 소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서재 앞에서 밤을 새워 육정을 만나고 온 지 사흘째 되던 아침.

명주가 동경 앞에서 스스로 머리를 빗었다.

사흘째라 손이 조금 익었다.

명주가 문을 열자 찬 아침 빛이 확 밀려들었다.

마당에 손님이 와 있었다.

심가에서 온 유모였다.

그녀가 어릴 적, 작고 여린 명주를 늘 업어 재워 주던 사람, 업히면 마른 쑥 냄새가 나던 사람이었다.

그 등이 이제 굽어 더는 아이를 업을 수 없겠다고 명주는 생각했다.

유모의 발이 온통 흙투성이에 한쪽 신끈이 끊어져 새끼줄로 묶여 있는 것은 명주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명주의 까맣고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보자 유모는 가슴이 저렸다.

"아가씨!"

유모는 그만 무릎이 꺾여 흙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숨이 턱에 닿아 있었다.

다음 말은 한참 뒤에 나왔다.

"대인께서…"

"아버지가?"

명주가 신도 꿰지 않은 버선발로 문지방을 넘어 유모 앞에 서자 섬돌의 찬 기운이 발바닥에 쨍하게 올라왔다.

"대인께서 어제 새벽에 가셨습니다…. 흑… 끄윽…"

명주가 그 말을 알아들었다.

알아듣고 나서 할 일이 없었다.

우는 사람 앞에 서 있는 것 말고는 배운 적이 없었다.

유모가 고개를 들었다가 아가씨가 울지 않는 것을 보고 도로 숙였다.

끅끅 삼키다 터진 울음이 이른 아침 편원을 지나 온 마당에 낮게 퍼져 나갔다.

하방 쪽에서 문이 하나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명주가 유모를 향해 고개를 숙이자 빗다 만 머리가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노야께서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셨다."

명주가 밝은 얼굴로 유모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아가씨. 대인께서 사흘을 굶으셨습니다.

옥에서 주는 것을 안 드시고, 소인이 넣은 것도 안 드시고요. 그러다 어제…

아니, 그저께 밤에 누가 약을 넣어 드렸다 하는데 그날부터 잡수셨다 합니다.

잡수시고 하루 만에요, 아가씨.

하루 만에 가셨습니다. 약을…

누가 옥에 약을 넣어 드렸다 하옵니다."

유모가 고개를 들어 명주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명주는 고개를 머리칼이 흘러내린 쪽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약을?"

아비가 죽었다는 말을 아직 못 알아듣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어디서 왔는지를 유모는 알았다.

업어 주던 때부터 알았다.

유모가 고개를 숙여 이마를 땅에 댔다.

그 뒤로 유모는 명주의 얼굴을 더는 보지 않았다.

일어나 절을 하고, 뒷걸음으로 물러가고, 중문을 나갈 때까지.

---

명주는 편원으로 돌아와 그대로 창을 바라보았다.

가셨다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가 그제야 왔다.

쪽창으로 보이는 담 끝에 까치 한 마리가 포르르 내려앉았다가 날아갔다.

명주는 까치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보다가 시녀가 들여놓고 간 찬합을 끌어다 열었고, 탕에서 올라온 김이 창 쪽으로 흐르다가 중간에서 스러졌다.

명주는 하얗고 긴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달그락, 그 소리가 빈방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가녀린 어깨가 떨려 오기 시작했다.

"어제…"

그녀는 탁자 앞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상공께서 사람을 넣으신다 하셨는데…"

탕은 이미 차게 식었고 들어온 그대로 다시 물렸다.

저녁은 들어오지 않았다.

명주는 그것을 밤이 깊고 나서야 알았다.

---

이튿날 점심이 다 되어서야 명주는 몸을 일으켰다.

서하당으로 가는 그녀의 걸음이 똑바르지 못했다.

약간 절름거리는 듯이 비틀비틀 걸어 나가는 그녀의 모습이 한층 더 처연하였으나 육가의 시종들은 마치 명주를 역병 환자라도 되는 양 벽 쪽으로 붙어 피했다.

아무도 명주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아무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어. 저 대야 누가 여기다 뒀어."

등 뒤에서 대야를 들어 옮기는 소리가 났다.

서하당 문 안에서 맑게 웃는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명주가 문을 열자 서란이 환한 방 한가운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명주가 십 년을 쓰다 비워 둔, 서하당의 그 방이었다.

남쪽 창을 활짝 열어 놓아 볕이 바닥 절반까지 그득 들어와 있었고 그 빛 속에서 서란의 곱디고운 머리 장식이 눈부시게 반짝이며 흔들렸다.

곱게 빗어 넘긴 머리, 분홍빛 손톱, 매끈한 입술과 사랑을 듬뿍 받는 듯한 응석이 섞인 웃음소리를 가진 서란이었다.

애초부터 그곳의 주인이었던 양 고개를 돌려 명주를 바라보았다.

연둣빛 단삼. 소매 끝에 은실로 넝쿨을 수놓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서란의 소매가 손등을 반쯤 덮고 있었다.

"언니."

명주는 수놓아진 소매 끝을 바라보았고, 서란이 명주의 시선을 따라 제 소매를 내려다보고는 눈꼬리를 슬며시 접으며 말했다.

"노야께서 주셨어요."

명주가 방 안을 둘러봤다. 동경이 있었다.

명주가 십 년 동안 아침마다 그 앞에 앉던 것.

그 위에 향낭이 놓여 있었다.

향낭은 새 실로 매듭이 지어져 있었다.

명주가 차던 것과 같은 비단인데 매듭만 달랐다.

명주가 가만히 그리로 가 향낭을 집어 코에 대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아무 냄새도 안 났다.

십 년 동안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었다.

"언니."

서란이 뒤에서 말했다.

"그건 이제 제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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