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편원 문밖에서 시녀가 누군가와 소곤거리고 있었다.
명주가 창에 귀를 대자 십일월 찬바람이 창지 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심 대인이 하옥되셨다는데."
"쉿."
"조량이라던가. 삼 년 치가 비었다고.
삼 년이면 배가 몇 척이야.
우리 노야께서 그 댁 뱃길에 이름을 얹어 두셨다는데, 이름 얹은 사람도 같이 부르지 않겠어?
아니, 부른다는 게 아니고…
아니,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아유, 나는 몰라.
나는 아무것도 못 들었어."
"심가가 저리 되면 이 댁 뱃길은 어찌 된대."
"그걸 우리가 왜."
"쉿, 안에서 듣는다."
명주가 문을 열자 시녀가 놀라 돌아섰다.
"우리 아버지가."
"부인."
"우리 아버지가 어찌 되었다고."
시녀는 대답하지 않고 물러갔고, 명주는 문 안에 가만히 서 있었다.
심가, 하옥, 조량.
들은 말들은 이어지지 않은 채 흩어지고 아버지가 옥에 있다는 것만 남았다.
옥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지만 아버지에게 나쁜 일이 생긴 것만은 틀림없었고, 마음이 까닭 없이 조급해졌다.
명주는 비뚤어진 옷끈 채로 내원으로 달려 나갔다.
편원에서 내원까지는 마당을 두 번 건너야 했고, 서리 앉은 흙이 내딛는 자리마다 신 밑에서 버석버석 부서졌다.
명주는 그 길을 허둥지둥 걸으며 아버지, 하옥, 두 단어를 되뇌었다.
지금 고해야만 아버지가 괜찮을 것 같았다.
내원에서 서재로 꺾어 드는 길목에서 종이 명주를 가로막고 섰다.
"어. 노야께서 안 계십니다."
명주가 문설주를 짚고 서재 쪽을 봤다.
"기다리겠다."
종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땀만 흘렸다.
명주가 다시 말했다.
"노야를 여기에서 기다리겠다."
명주는 서재 앞 섬돌 위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섬돌은 얼음장처럼 찼고, 그 기운이 치마를 지나 허리께까지 올라오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었다.
오가던 계집종들이 명주를 흘끔 돌아봤다가는 눈을 돌렸다.
둘이 저희끼리 무슨 말을 하다가 웃음이 터졌고, 명주 쪽을 보고 얼른 그쳤다가 중문을 나가면서 다시 웃었다.
추위에 핏기가 가신 낯이 저무는 빛 속에서 배꽃처럼 희게 피어났다.
부엌의 늙은 오 어멈이 두 번째 지나갈 때 들고 있던 나무 대야를 내려놓고 앞치마를 꾹 쥔 채 한참 서 있다가, 하방에서 누가 부르자 나무 대야를 도로 집어 들면서 허리를 두 번에 폈다.
명주가 앉아 있는 사이 하방에 둘, 서재에 하나, 등에 불이 들어왔다.
불빛에 사람 그림자가 왔다 갔다 했는데, 그 그림자는 밤이 깊도록 한자리에 앉지 못했다.
서재에서 사람이 두 번 나왔는데 한 번은 종이를 들었고 한 번은 빈손이었다.
어둔 밤이 찾아왔고, 시녀가 등을 들고 나와 무어라 했지만 명주는 듣지 못했다.
식은 무릎을 세워 그 위에 이마를 얹고 앉은 명주의 버선이 축축했다.
갈아 신을 것을 가져오겠다고 시녀가 말했을 때 명주는 가만 고개를 저었다.
젖은 버선이 밤바람에 얼어 발가락의 감각이 무뎌졌고, 치맛단은 뻣뻣하게 얼어 숨을 들이쉴 때마다 종아리를 서걱서걱 스쳤는데 나중에는 닿는 줄도 몰랐다.
컹, 컹. 담 밖에서 개가 짖다가 그 소리마저 뚝 그치자, 제 숨소리가 귀에 너무 크게 울려 명주는 숨을 얕게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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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삐걱, 서재 문이 열렸다.
명주가 고개를 들었는데 목이 뻣뻣하게 굳어 잘 돌아가지 않았다.
육정이 십 년은 늙어 버린 얼굴로 서 있었다.
밤새 갈아 낸 먹이 손끝마다 배어 있었고 어제 그대로인 옷깃이 꺾여 있었다.
눈 밑이 시커멓게 꺼졌는데, 그 퀭한 눈이 섬돌 위의 여인에게 닿는 순간 흠칫 흔들렸다가 이내 굳었다.
먹 냄새가 나는 손이 명주의 팔꿈치를 잡아 일으키려 했다.
막상 그의 얼굴을 보자 읊조리던 두 마디가 떠오르지 않았고, 명주는 비틀거리며 반쯤 일어나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돌아가시오."
늘 다정하게 이야기하던 육정의 목소리가 오늘은 거칠었다.
다만 그 거친 말끝이 실낱처럼 가늘게 갈라져 있었다.
명주가 가까스로 떠올린 말을 내뱉었다.
두 마디가 한 숨에 실리지 않아 사이가 벌어졌다.
"아버지가. 옥에."
"돌아가시오, 부인."
명주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육정을 올려다보았다.
밤새 언 몸이 떨렸고, 속눈썹에 앉은 서리가 눈물을 받아 반짝였다.
어린 시절 심가에 드나들던 때부터의 마음이었으므로 더는 그 눈을 보지 못했다.
장복에게 처소로 데려가라 이르고 발길을 돌렸을 때, 명주가 그 등 뒤에다 또 물었다.
"우리 아버지가."
육정이 발을 멈추었다.
명주가 그의 오른손 엄지가 왼쪽 광대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내가… 사람을 넣겠소. 넣겠소."
명주의 얼굴이 단번에 밝아졌다.
육정이 반 걸음 다가섰다가 그 자리에 섰다.
"장복아. 부인을 처소로 모셔라."
육정은 그대로 돌아서 서재 문을 닫았고, 문고리를 바로 놓지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명주는 부축을 받아 편원으로 돌아갔다.
편원에는 따뜻한 물도 시중드는 손도 없었다.
제 손으로 언 버선을 벗고 붉어진 발을 꼬물거려 보았으나 잘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지나 저려 오는 것이 가라앉기도 전에 앉은 채로 졸다가 잠이 들었다.
누워 잔 것도 아닌데, 십 년 중에 가장 단 잠이었다.
등록방에 불을 하나 켜 놓고 늙은 심약이 화로 앞에 앉아 있었다.화로 재가 식어서 손을 대도 안 뜨거웠다.한경이 들어와 문을 닫았다.닫고 나서 화로 건너편에 앉았다."영감님. 스무 해면 등록 첩이 두 권이잖아요.한 권에 열 해씩이니까.""두 권입니다.""한 권은 여기 있고요.""…한 권은 없습니다.없습니다, 여기에는.""태후 마마 처소 바깥방에 등초가 스무 권 넘게 있어요.옮겨 적은 것만 있고 원본은 하나도 없고요.여기서 없어진 한 권이 거기 옮겨 적혀 있으면 저는 그걸 바깥방에서 볼 수 있어요.""…등초에도 없을 겁니다.""보셨어요?""안 봤습니다. 그런데 없을 겁니다.있으면 이 방 사람이 벌써 찾아냈습니다."늙은 심약이 자리를 고쳐 앉았다.고쳐 앉으면서 무릎에 손을 얹었다가 도로 내렸다.* * *"소인이 이 담 안에 든 것이 스물두 해입니다.""…""든 해에 서쪽 방에 사람이 있었습니다.여자였고 의녀였습니다.소인보다 먼저 들었고 나이도 위였습니다.""…""말이 없었습니다.소인이 아침에 들어가면 늘 문을 등지고 앉아 있었어요.문이 열려도 안 돌아봤습니다."한경이 화로 재를 한 번 봤다."그 사람이 여기 등록방에도 왔어요?""왔습니다. 소인이 갓 들어서 첩 적는 걸 못 했는데 그 사람이 옆에서 봐 줬습니다.넉 줄을 어떻게 채우는지, 난 날을 언제 적는지를 그 사람한테 배웠습니다.""…""소인이 그때 왜 이런 걸 다 적느냐 하였더니, 등록은 세는 게 아니라 남기는 거라고 그 사람이 그랬습니다.""…""소인이 그때는 그 말을 못 알아들었습니다.스물두 해 걸렸습니다."늙은 심약이 화로 재를 뒤적였다.뒤적이다가 부젓가락을 놓쳤고, 놓친 것이 재 위로 떨어져 재가 조금 일었다."…손이 곱아서요.""아유. 괜찮아요, 그거 저도 오늘 두 번 놓쳤어요."늙은 심약이 픽 웃었다.웃으면서 어깨가 한 번 흔들렸다.* * *"어느 날 아침에 그 방이 비었습니다.""…""그 뒤로 그 방에 사람을 안
태후 처소 바깥방에 화로가 둘 있었다.하나는 문 옆에 있고 하나는 안쪽 방 문지방 앞에 있었는데, 문지방 앞의 것에는 숯이 안 들어 있었다.바깥마당을 건너오는 동안 눈이 신 안으로 들어왔다.섬돌 위에서 버선을 두 번 털었는데 젖은 데는 안 털렸다.류 상궁이 문 안쪽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의녀. 오래 서 계셨습니까.""아침부터 저 아래 섰다가요.""…소인이 나와 보았어야 했는데.""아니에요. 나오시면 상궁고고도 같이 서 계셔야 하잖아요.""등록이 났습니다.""…""바깥방까지입니다.""안쪽 방은요.""바깥방까지입니다."류 상궁이 같은 말을 두 번 했다.두 번째에는 눈을 피했다.한경이 무릎을 굽혔다가 펴고 문지방을 넘었다.넘는 데까지 아무도 안 막았다.* * *바깥방은 넓고 비어 있었다.시렁이 벽 하나를 다 차지했고 그 위에 첩이 여럿 얹혀 있었다.한경이 시렁 앞으로 갔다.첩 겉장마다 등초라고 적혀 있었다.등초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다.한경이 첩 하나를 내려 폈다.옮겨 적은 것이라 줄이 곧고 사이가 고르고 고친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이거 한 권 옮겨 적는 데 며칠 걸려요.""…한 권에 이레쯤 걸립니다.""어. 여기 스무 권이 넘는데요.그럼 넉 달이에요.넉 달 동안 사람 하나가 이것만 했다는 거고요.""…둘이 했습니다.""여기 있는 건 다 옮겨 적은 거네요.""예.""의녀.""예.""바깥방에서 보실 것은 저 시렁이 전부입니다.등초는 누가 보든 적지 않습니다.""…적는 건 사람만이네요.""…""원본은 안쪽 방에 있고요.""…소인이 답할 자리가 아닙니다.""상궁고고.""예.""제가 여쭌 게 아니라 셈을 한 거예요.옮겨 적은 게 밖에 있으면 옮겨 적힌 데가 안에 있는 거니까요."류 상궁이 발을 한쪽으로 옮겨 디뎠다가 도로 옮겼다.* * *안쪽 방 문이 닫혀 있었다.문지방 나무가 가운데만 닳아서 얕게 파였고, 파인 자리가 검게 윤이 났다.한경이 그 앞까지 갔다.갔다가 반
한경이 등을 들고 서쪽 방 문설주 안쪽에 댔다.자국이 스물셋이었다.스물둘까지는 깊이가 다 같고 마지막 하나만 나무 결이 갈라져 있었다.갈라진 안쪽이 아직 흰빛이었다.한경이 그 마지막 자리에 손끝을 댔다.손끝이 그 안에 걸렸다."스물셋."소하가 뒤에서 등을 받쳐 들고 있었다.받쳐 든 팔이 떨려서 그림자가 문설주 위에서 흔들렸다."의녀님. 그거 날짜예요?""몰라.""날짜면 스물세 밤이잖아요.스물세 밤이면 한 달이 안 되는데. 아, 아니다.하루에 두 번 그었으면 열이틀이고요.""…""근데 왜 마지막 것만 깊어요?""…""의녀님. 저 무서워요.""의녀님. 그럼 이거 그은 사람이 저 방에서 스물세 밤 잔 거예요?""…""아유. 아유, 저는 여기 온 지 스물세 밤 넘었는데.""등 낮춰. 그림자 흔들려."방 안쪽 벽에 시렁이 하나 있고 그 아래 마루가 자리 넓이만큼 닳아 있었다.닳은 데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하나는 창 쪽이고 하나는 문 쪽이었다.한경의 손끝이 식었다.* * *등록방에 등이 하나 켜져 있었다.젊은 서리가 화로 앞에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이 시각에는 안 됩니다.""서쪽 방 쓰던 사람만 보면 돼요.오래 안 걸려요.""…서쪽 방은 지난달까지 서리들이 썼습니다.""그 전에요."서리가 첩을 꺼내 넘겼다.넘기다가 한 군데서 멈추고 두 장을 도로 넘겼다.도로 넘긴 데를 손끝으로 두 번 짚었다."…없습니다.""이 첩에는 뭘 적어요.""방 이름하고 든 사람하고 든 날하고 난 날입니다. 넉 줄입니다.넉 줄이 다 차야 한 줄입니다.""넉 줄이 안 차면요.""안 찬 줄은 없습니다.있으면 소인이 맞습니다.""열 해 치를 다 보신 거예요?""열 해 치가 이 한 권입니다!방마다 든 사람 이름이 다 있는데 서쪽 방만 없어요.없는 걸 어떻게 있다고 합니까!"서리가 첩을 상에 내려놓았다.내려놓는 소리가 컸다.놓고 나서 화로 쪽으로 돌아섰다."…""…죄송합니다.""아니에요.""소인이 이 방
서쪽 방에 자리가 셋 비었다.저녁에 셋이 다 제 짐을 들고 나갔고 나가면서 아무도 인사를 안 했다.한경이 남은 자리에 앉았다.방에 불이 하나뿐이라 장을 넘길 때마다 종이를 등 쪽으로 기울여야 했다.문 밖에서 소하가 눈을 쓸다 말고 안을 들여다봤다."의녀님. 저 사람들 왜 갔어요?""돌아갈 데가 있어서 갔어.""…저는 돌아갈 데 없는데요.""응. 그러니까 여기서 자. 문 닫고. 눈 들어와.""예!""…""아 맞다. 저 사람들 자리 제가 치웠는데요, 하나가 이불을 두고 갔어요.이불은 어떡해요?""펴 놓고 네가 써.""…남의 건데요.""두고 간 건 남의 게 아니야."* * *늙은 심약이 첩 하나를 들고 왔다.겹옷 앞자락에 눈이 얹힌 채로 들어와서 방 안에서 그것이 녹기 시작했다."곳간에서 이걸 내주라 하였습니다.""약재는 이제 못 적어 내는데요.""적어 내는 것 말고 적어 낸 것입니다.""…""적어 낸 것을 도로 보는 건 칙첩하고 상관이 없습니다.태의원에 든 사람은 제 손으로 적은 것을 도로 봅니다.스무 해 넘게 그리 해 왔고, 그건 마마께서 주신 게 아니라서 마마께서 못 걷습니다.""어. 그게 여태 있었어요?""있었습니다. 아무도 안 찾아서 곳간 시렁 위에 있었습니다.먼지를 소인이 털었습니다."이게 남은 하나였네.한경이 마른침을 삼켰다.* * *한경이 첩을 폈다.열 달 치가 날짜대로 있었고 적어 낸 줄 옆에 나온 날이 적혀 있었다.나온 날이 없는 줄에는 아무것도 안 적혀 있었다.빈 자리가 셋이었다.세 가지가 열 달 내내 한 번도 안 나왔다."영감님. 열 달 치를 세면 적어 낸 게 백열네 줄이에요.나온 게 아흔한 줄이고요.안 나온 스물세 줄 가운데 스무 줄은 늦게라도 왔어요.""…""안 온 게 세 줄인데, 그 세 줄이 열 달 내내 같은 세 가지고요."늙은 심약이 한경 옆으로 와서 첩을 들여다봤다.등에 가까이 대느라 허리를 두 번에 굽혔다."영감님. 이 셋은 어디 있어요.""태의원 곳간
태후 새 처소는 창이 넷인데 오늘은 둘만 열려 있었다.열린 창 밖으로 눈 덮인 마당이 보였고, 마당 가운데를 아침에 쓸고 지나간 자리만 검었다.문 앞에서 한경이 버선에 묻은 눈을 두 번 털고 들어갔다.털어도 발자국이 나서 상궁이 뒤에서 그 자리를 닦았다.발 밖에 상이 놓이고 그 위에 첩이 하나 펴져 있었다.태후의 두 손이 금 호갑에 덮인 채 상 위에 있었다."앉거라.""예.""어공서에서 달마다 물목을 올린다.올려 온 것을 내가 본다.스무 해 하던 일이야. 스무 해.""…""이 줄을 네가 적었느냐.""예.""읽어 보아라.""…달걀 스물이요.""의녀가 달걀을 적어 냈다.""의서에 있어요.""의서에 있는 것을 적었으면 약이지.너는 밥을 적었다."* * *"달걀 스물이면 열흘 가요.열흘에 스물씩 열두 달이면 일곱 접이 조금 넘고, 쌀로 치면 두 섬이 안 돼요.어주에서 한 달에 깨져서 버리는 게 그보다 많고요.그런데 그 스물을 안 넣으면 열흘 뒤에 손이 더 떨려요."태후의 엄지가 호갑 안에서 한 번 멎었다."마마께서 그건 보셨을 텐데요.""보았다.""…""보는 데까지가 네 일이라 하였다.""…예.""열 달을 네가 적어 낸 대로 내주었어.뿌리도 내주고 껍질도 내주고 벌레 먹은 것까지 내주었다.아무도 안 물었지.어의도 안 물었고 곳간도 안 물었어.""…""이달에 네가 적은 줄이 태의원 문 밖으로 나갔다.어공서 종이에 붙었어.관청 종이에 오른 것은 지워도 자리가 남는다."* * *"네 이름이 그 종이에 오르는 것은 내가 못 막는다.그건 내 손 밖이야.""…""내가 준 것을 도로 걷는 것은 할 수 있고."바깥에서 눈 쓸리는 소리가 났다가 그쳤다.태후가 호갑 낀 손을 상 위에서 반 뼘 옮겨 놓았다."셋을 주었지. 둘을 걷는다.""…""약재를 걷는다. 오늘부터 네가 적어 내는 종이는 태의원 문 안에서 끝난다. 사람도 걷어.셋 다 오늘 저녁에 제 자리로 돌아간다.""아. 그럼 곳간에는 오늘까
태의원 진찰방에 등을 둘 켜 놓았다.창 하나가 덜 닫혀서 문틀 아래로 눈가루가 들어와 자리 끝에 얇게 앉았다.소하가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엎드려서도 말을 했다."의녀님. 저 내일은 일찍 일어날게요.눈 오면 뒤뜰부터 쓸어야 되잖아요.어제는 늦게 일어나서 늙은 심약 나리가 먼저 쓰셨거든요.나리 손 다 텄던데.""…""근데 의녀님. 아까 그 자루요.제가 눈에 떨어뜨렸는데 눈이 안 묻었어요.얼어서 그런가 봐요.눈이 얼면 안 묻어요?""묻지. 녹아야 묻는데 안 녹아서 그래.""아.""…""어유. 의녀님, 눈 오는 날은 왜 덜 추워요?""구름이 덮여서 그래.갠 날 새벽이 제일 춥고.내일 아침에 개면 뒤뜰 쓸기 전에 손부터 녹이고 나가.""…""아 맞다. 완의국 아이는 지난달에 맞았대요. 물을 엎질러서요.여기 애들은 다 한 번씩 맞는대요.저만 안 맞은 거였어요."한경이 대야에 물을 받아 왔다.뜨거운 물이 아니었다.손등으로 한 번 대 보고 나서 무명을 적셨다."으.""참아. 뜨거운 거 대면 지금만 시원하고 내일 더 부어.""…예."궁 애들 다 이러고 크는 건가.* * *한경이 젖은 무명을 짜서 종아리에 얹었다.얹고 나서 그 위를 손바닥으로 눌렀다.소하가 숨을 삼켰다."이거 이레 가. 사흘째가 제일 아프고 닷새째부터 색이 도는데, 노랗게 되면 낫는 거니까 놀라지 말고.걷는 건 오늘내일만 조심하면 돼.밤에 자다가 당기면 무릎을 세우고 자.펴고 자면 아침에 못 일어나.버선은 두 켤레 신고 자되 안쪽 거는 마른 걸로 갈아 신어.젖은 거 신고 자면 아침에 발부터 곱아.""…예.""그리고 뜨거운 데 앉지 마.화로 앞이 제일 안 좋아.지금 뜨거운 데 앉으면 밤에 당겨서 잠을 못 자.""화로 앞에 앉는 건 제 일인데요.숯 넣는 것도 제가 하고요.""…""의녀님 손도 차요.대야 물이 벌써 얼겠는데요.""데운 물은 지금 좋고 내일 나빠.이건 지금 나쁘고 내일 좋고.""그건 이레 뒤에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