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토요일 오후 두 시.서윤은 거실 바닥에 앉아 택배 상자를 뜯다가 손을 멈췄다.상자 안에는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가 들어 있었다.도현이 주문한 것이었다.“이건 뭐예요?”책장에서 책을 정리하던 도현이 돌아봤다.“《사이》에 둘 겁니다.”“스피커?”“음악 듣고 싶다고 했잖습니까.”서윤은 포장을 벗겨냈다.손바닥 두 개 정도 크기의 작은 스피커였다.“벌써 사요? 아직 방도 없는데.”“미리 써보고 별로면 바꾸려고 합니다.”“철저하네.”서윤은 전원을 켰다.휴대폰과 연결한 뒤 평소 듣던 재생목록을 틀었다.잔잔한 음악이 거실에 퍼졌다.생각보다 소리가 좋았다.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합격.”“빠릅니다.”“좋은데 뭘 더 봐요.”서윤은 그대로 러그에 누웠다.천장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었다.도현은 다시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몇 분쯤 지났을까.서윤이 손을 들었다.“도현 씨.”“네.”“여기 와요.”“왜요.”“그냥.”도현이 다가왔다.서윤은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누워봐요.”“여기에?”“응.”도현이 러그에 누웠다.둘이 나란히 천장을 바라봤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음악만 흘렀다.한 곡.두 곡.세 번째 곡이 시작될 때 서윤이 옆으로 손을 움직였다.손등끼리 닿았다.도현이 손을 뒤집었다.서윤의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그 사이로 들어갔다.“이것도 《사이》에서 하고 싶어요.”“바닥에 눕는 것?”“응.”서윤은 눈을 감았다.“아무것도 안 하고.”“정말 아무것도?”서윤이 눈을 떴다.“왜요. 못 믿겠어요?”“최근의 당신을 생각하면 조금.”서윤이 웃음을 터뜨렸다.“진짜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거든요?”“알겠습니다.”“책만 읽을 수도 있고.”“네.”“낮잠 잘 수도 있고.”“네.”서윤이 고개를 돌렸다.도현도 자신을 보고 있었다.“근데 이렇게 보고 있으면 좀 어렵긴 하겠다.”“뭐가.”“아무것도 안 하는 거.”도현이 웃었다.서윤도 따라 웃었다.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입을 맞추지 않았다
침실 조명이 꺼진 뒤에도 서윤은 바로 눈을 감지 않았다.커튼 틈으로 들어온 희미한 불빛 때문에 방 안의 윤곽 정도는 보였다.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차콜색 의자.화장대 거울.그리고 바로 옆의 도현.서윤은 그의 팔을 베고 누워 손가락으로 은색 팔찌를 만지작거렸다.“도현 씨.”“네.”“안 자죠?”“당신이 계속 제 팔찌를 만지고 있는데 어떻게 잡니까.”서윤이 작게 웃었다.“신경 쓰였어요?”“아닙니다.”“그럼 계속 만질래.”“그러십시오.”서윤의 손끝이 팔찌 안쪽의 글자를 따라 움직였다.그러다 갑자기 물었다.“《사이》 완성되면 첫날 밤새 있을래요?”도현이 고개를 돌렸다.“밤새?”“응.”“거기서 잠까지 자겠다는 겁니까.”“꼭 자겠다는 건 아니고.”서윤이 몸을 돌려 그와 마주 봤다.“처음 들어가는 날은 시간 안 보고 있어보고 싶어요.”책을 읽다가,음악도 듣고,바닥에 누워도 보고,새로 산 의자에도 같이 앉고.그러다 졸리면 잠들어도 괜찮았다.“아침까지?”“응.”도현이 잠시 생각했다.“좋습니다.”서윤은 만족스럽게 다시 누웠다.그런데 이번에는 도현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서윤이 그 손을 잡았다.“왜요.”“보고 싶어서.”“불도 꺼졌는데?”“보입니다.”도현의 손끝이 뺨을 천천히 쓸었다.서윤은 가만히 그 손길을 받았다.조금 전처럼 뜨겁고 급한 분위기는 아니었다.그래서 오히려 더 선명했다.손끝이 어디에 닿는지.도현의 숨이 얼마나 가까운지.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그의 쪽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지도.서윤이 낮게 말했다.“아까 거울 볼 때는 이상했어요.”“뭐가.”“다 보이니까.”도현이 기다렸다.“도현 씨가 나 보는 것도 보이고, 내가 도현 씨 잡는 것도 보이고.”서윤은 그의 손을 자신의 뺨에 다시 가져다 댔다.“근데 지금은 아무것도 잘 안 보이잖아요.”“네.”“이것도 좋네.”도현의 엄지가 뺨을 한번 쓸었다.“왜.”“안 봐도 아니까.”손이 닿으면 누구인지 알고
《사이》에 들어갈 의자를 주문한 건 결국 도현이었다.일요일 저녁.서윤은 소파에 엎드려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도현은 옆에서 태블릿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이건 어떻습니까.”서윤이 고개를 들었다.화면에는 폭이 넓은 낮은 의자가 떠 있었다.등받이는 깊었고 팔걸이는 없었다.두 사람이 붙어 앉아도 될 만큼 넉넉했다.서윤은 사진을 확대했다.“크기는?”“제가 앉아도 양쪽으로 공간이 남습니다.”“튼튼하고?”도현이 서윤을 바라봤다.서윤은 뒤늦게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아니, 그냥 가구니까.”“저도 가구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표정은 아닌데.”도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서윤은 태블릿을 빼앗았다.“이걸로 해요.”“색은?”선택지는 세 가지였다.밝은 베이지.짙은 회색.그리고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차콜.서윤의 손가락이 마지막 색에서 멈췄다.“이거.”“차콜?”“응. 거울이랑 조명까지 생각하면 이게 제일 예쁠 것 같아요.”도현이 그대로 주문했다.결제가 끝나는 걸 본 서윤이 물었다.“언제 와요?”“금요일.”“이번 주?”“네.”서윤의 눈빛이 순간 달라졌다.도현이 그걸 놓치지 않았다.“왜요.”“아무것도 아니에요.”“금요일이라는 말에 표정이 바뀌었습니다.”“안 바뀌었어요.”“바뀌었습니다.”서윤은 휴대폰을 집었다.“나 책 볼 거예요.”도현이 웃었다.“아직 방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서윤의 손이 멈췄다.“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저도 아무 말 안 했습니다.”서윤은 결국 쿠션을 집어 도현에게 던졌다.금요일 저녁.현관 옆에는 커다란 상자가 놓여 있었다.서윤은 퇴근하자마자 구두도 제대로 벗기 전에 상자를 봤다.“왔네.”거실에서 나오던 도현이 말했다.“네.”“열어봤어요?”“기다렸습니다.”“나를?”“같이 고른 거니까.”별것 아닌 말인데 서윤은 기분이 좋아졌다.둘은 저녁도 미룬 채 상자를 먼저 열었다.조립할 것도 거의 없었다.다리만 고정하면 되는 형태였다.도현이 의자를 세웠다.
도현의 등이 의자 등받이에 닿았다.서윤은 그의 무릎 위에 앉은 채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확인해볼래요?”자기가 먼저 해놓고도 꽤 노골적인 말이었다.도현의 시선이 서윤의 얼굴에 머물렀다.“뭘 확인합니까.”“큰 의자가 진짜 필요한지.”“지금도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나는 아직 모르겠는데.”서윤이 일부러 자세를 조금 바꿨다.좁은 의자 때문에 둘의 몸이 더 가까워졌다.도현의 손이 허리를 받쳤다.“이래도?”“더 큰 게 필요합니다.”“왜요?”“당신이 계속 움직이니까.”서윤이 웃었다.“불편해요?”“반대입니다.”대답이 너무 빨랐다.서윤은 잠깐 도현을 바라보다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요즘 진짜 솔직해졌네.”“당신이 좋아하니까.”“맞아요.”서윤의 손이 목 뒤로 올라갔다.“좋아해요.”입술이 겹쳤다.이번에는 장난처럼 시작하지 않았다.도현이 서윤을 끌어당기는 순간 그녀의 몸이 완전히 밀착됐다.서윤의 손가락이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갔다.키스가 깊어질수록 의자가 조금씩 흔들렸다.서윤이 입술을 떼며 웃었다.“이거 부서지는 거 아니에요?”“그러니까 큰 걸 사야 합니다.”“그 이유였어?”“이제는 그렇습니다.”서윤이 웃음을 터뜨렸다.그런데 도현이 목 가까이에 입을 맞추자 웃음이 금세 끊겼다.“아….”서윤의 손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입술이 조금씩 아래로 움직였다.잠옷 위로 닿는 손길도 전보다 거침이 없었다.서윤은 피하지 않았다.오히려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몸 가까이 끌어왔다.“도현 씨.”“네.”“오늘 나한테 맡겨봐요.”도현이 고개를 들었다.“지금도 당신이 제 위에 있습니다.”“그거 말고.”서윤은 그의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다.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도현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하나.둘.셋.도현은 손대지 않았다.말 그대로 맡겼다.셔츠가 벌어지자 서윤의 손바닥이 맨가슴에 닿았다.손끝으로 천천히 훑었다.도현의 호흡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서윤은 일부러 거기서 멈췄다.“왜
일요일 오후.서윤은 거실 러그 위에 엎드린 채 도현의 스케치북을 넘기고 있었다.처음 봤던 《사이》의 모습과는 꽤 달라져 있었다.처음에는 공간의 형태만 있었다.지금은 그 안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까지 보였다.벽면 책장.긴 소파.넓은 러그.간접 조명.그리고 어제 위치를 확정한 큰 거울.서윤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손을 멈췄다.“도현 씨.”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던 도현이 대답했다.“네.”“여기 빈 곳은 뭐예요?”“어디 말입니까.”도현이 머그 두 개를 들고 거실로 왔다.분홍 오리 머그 하나를 서윤 앞에 내려놓고 옆에 앉았다.서윤이 스케치 한쪽을 가리켰다.소파와 책장 사이.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작은 공간이었다.“여기.”“일부러 비워뒀습니다.”“왜?”“당신이 고르라고.”서윤이 그를 봤다.“내가?”“네.”“뭘 놓을지?”“꼭 물건일 필요는 없습니다.”서윤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다시 그림을 내려다봤다.“그럼 비워둘래요.”도현의 눈썹이 올라갔다.“아무것도 없이?”“응.”“이유는?”서윤은 빈 공간 위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처음부터 다 채우면 재미없잖아요.”둘이 살면서 필요한 게 생길 수도 있고.어느 날 갑자기 놓고 싶은 물건이 생길 수도 있었다.아니면 끝까지 아무것도 놓지 않아도 됐다.“나중에 같이 정해요.”“좋습니다.”도현이 연필을 들어 빈 곳 옆에 작게 표시했다.서윤이 바로 손목을 잡았다.“뭐라고 쓰려고요?”“미정.”“쓰지 마요.”“왜요.”“그것도 싫어.”서윤이 연필을 빼앗았다.“그냥 진짜 빈칸으로 둬요.”도현은 잠시 그녀를 보다가 웃었다.“알겠습니다.”서윤이 연필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그런데 도현이 스케치북을 덮지 않았다.오히려 다음 장을 펼쳤다.“그리고 하나 더.”“또 있어요?”이번에는 방 전체가 아니라 작은 가구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등받이가 낮고 폭이 넓은 의자였다.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이건 뭐예요.”“의자.”“그건 나도 보여요.”
토요일 오전.도현은 거실 바닥에 앉아 설계도를 수정하고 있었다.서윤은 소파에 누워 책을 읽는 척했다.읽는 척만 했다.시선은 자꾸 설계도로 향했다.“거울 위치 바꿨어요?”도현이 연필을 멈췄다.“보고 있었습니까.”“조금.”서윤이 소파에서 내려와 그의 옆에 앉았다.설계도 속 ‘사이’는 전보다 구체적이었다.낮은 소파.두 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넓은 러그.벽면 책장.조도를 낮출 수 있는 조명.그리고 한쪽 벽 대부분을 차지하는 큰 거울.서윤이 손가락으로 거울을 가리켰다.“여기.”“네.”“이쪽으로 조금 옮기면 안 돼요?”“어디까지.”서윤이 직접 연필을 가져갔다.소파 정면이 아니라 살짝 비껴난 위치에 선을 그었다.“이 정도.”도현이 그녀를 바라봤다.“이유가 있습니까.”“응.”“말해줄 생각은?”서윤은 연필을 내려놓았다.“오늘 알려줄게요.”“지금?”“아니.”서윤이 일어났다.“밤에.”도현의 시선이 따라왔다.“왜 꼭 밤입니까.”서윤이 뒤를 돌아봤다.“낮에는 재미없으니까.”밤 열한 시 십 분.침실에는 작은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었다.서윤은 화장대 앞에 서 있었다.도현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녀를 바라봤다.“이제 알려줍니까.”“응.”“거울이 왜 필요한지.”“그 전에.”서윤이 손을 내밀었다.“여기 와봐요.”도현이 일어났다.서윤은 그를 화장대 거울 앞으로 데려갔다.둘의 모습이 한 화면 안에 들어왔다.서윤은 앞.도현은 바로 뒤.서윤이 거울 속 도현을 바라봤다.“이렇게.”“뭐가 말입니까.”“내가 도현 씨를 직접 볼 때랑.”서윤이 몸을 돌리지 않은 채 그의 손을 잡았다.“거울로 같이 볼 때랑 느낌이 달라요.”도현의 손을 자신의 허리에 올려놓았다.“그래서 큰 거울을 원했습니까.”“응.”“단순히 인테리어 때문이 아니었군요.”“이제 알았어요?”도현의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서윤은 거울에서 그 모습을 그대로 봤다.손이 허리를 감싸는 순간도.자신이 자연스럽게 뒤로 기대는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