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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화. 흐트러진 셔츠

Author: 에이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9 07:55:17

“이제 마음대로 봐요.”

그 말이 떨어진 뒤에도 도현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서윤의 허리를 감싼 채 얼굴만 바라봤다.

서윤이 먼저 눈썹을 올렸다.

“왜요.”

“마음대로 보라고 해서.”

“그래서 보고만 있을 거예요?”

“그건 아닙니다.”

도현의 손이 흰 셔츠의 옷깃을 천천히 정리했다.

이미 단추 하나는 서윤이 직접 더 풀어둔 상태였다.

조금 전 그림 속에서는 단정하게 흘러내리던 셔츠가 지금은 완전히 달라 보였다.

도현이 손끝으로 옷깃을 살짝 밀었다.

한쪽 어깨가 드러났다.

그곳에 입술이 닿았다.

서윤이 숨을 들이켰다.

“아까도 이거 보고 있었어요?”

“네.”

“그림 그리면서?”

“계속.”

“그래서 참았다는 거예요?”

도현이 이번에는 목 가까이에 입을 맞췄다.

“그것만은 아닙니다.”

서윤의 손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또 뭐.”

“말하면 또 놀릴 것 같은데.”

“안 놀릴게요.”

“못 믿겠습니다.”

서윤이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 올렸다.

“말해봐요.”

도현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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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45화. 내가 남기고 싶은 모습

    다음 날 저녁.서윤은 퇴근하자마자 도현부터 찾았다.거실에도 없었다.주방에도 없었다.“도현 씨?”“여기 있습니다.”목소리는 침실에서 들렸다.서윤이 문을 열었다가 멈췄다.침대 위에는 옷이 세 벌 놓여 있었다.흰 셔츠.검은 셔츠.그리고 짙은 회색 니트.서윤이 팔짱을 꼈다.“뭐예요.”“고르는 중입니다.”“아직도?”“생각보다 어렵더군요.”서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어제는 자신 있게 전부 고른다면서.”“옷까지 직접 고르겠다고 한 게 실수였습니다.”“내가 골라줘요?”“아니요.”도현은 단호했다.“제가 고르겠습니다.”“그럼 기다릴게요.”서윤은 그대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도현은 세 벌을 번갈아 보다가 결국 회색 니트를 집었다.“이걸로.”“왜?”“편해서.”서윤이 고개를 갸웃했다.“그게 이유 끝?”“네.”“의외네.”“뭘 기대했습니까.”“좀 더 멋있는 이유.”도현이 니트를 들고 그녀를 바라봤다.“제가 남기고 싶은 모습이라면서요.”“응.”“그럼 제일 편한 모습이면 됩니다.”그 말에는 서윤도 장난치지 않았다.“좋아요.”도현이 갈아입으려 하자 서윤이 계속 앉아 있었다.“안 나갑니까.”“왜 나가요?”“갈아입어야 하는데.”“갈아입어요.”“보고 있게?”“어제 내 셔츠는 그렇게 오래 봤으면서.”도현이 헛웃음을 흘렸다.“그거랑 같습니까.”“비슷하지.”서윤은 턱을 괴었다.“나는 그림 그릴 사람 관찰하는 중이에요.”“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미리 봐야 잘 그리지.”결국 도현이 먼저 포기했다.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하자 서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따라갔다.도현이 바로 알아챘다.“서윤.”“응.”“얼굴을 그리는 거 아니었습니까.”“맞아요.”“그런데 왜 얼굴은 안 봅니까.”서윤이 태연하게 대답했다.“자료 조사.”“…….”“계속해요.”도현은 결국 등을 돌렸다.서윤이 웃음을 터뜨렸다.“왜 돌아서요.”“그림 시작하기도 전에 방해받기 싫어서.”“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시선으로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44화. 다 먹고 나서

    떡볶이는 결국 식었다.서윤이 먼저 입술을 떼고 숨을 골랐다.바로 앞에 있는 도현을 보다가 슬쩍 테이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우리 이거 어떡해요.”“뭘.”“떡볶이.”도현도 뒤늦게 남은 음식을 봤다.“다시 데울까요.”“키스하느라 떡볶이 다시 데우는 사람 처음 봐.”“누구 때문인데요.”서윤의 눈썹이 올라갔다.“도현 씨가 먼저 하고 싶다고 했거든요?”“하라고 한 건 당신이고.”“그럼 하지 말지 그랬어요.”“그건 싫습니다.”대답이 너무 빨랐다.서윤은 잠깐 그를 바라보다 웃었다.“이런 건 대답 엄청 빠르네.”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은 떡볶이를 챙겼다.“전자레인지 돌리고 오겠습니다.”“같이 가요.”“왜.”서윤도 일어섰다.“그냥.”도현의 뒤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용기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버튼을 누르자 웅 하는 소리가 났다.서윤은 조리대에 기대었다.도현은 바로 옆에 섰다.30초.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윤이 슬쩍 옆을 봤다.도현도 자신을 보고 있었다.“왜 봐요.”“당신도 보고 있잖습니까.”“나는 먼저 봤거든요.”“그럼 저는 보면 안 됩니까.”서윤이 웃었다.“봐요.”전자레인지 안에서 접시가 돌아갔다.서윤은 괜히 숫자를 확인했다.18초.17초.16초.도현이 한 걸음 가까이 왔다.“도현 씨.”“네.”“아직 십오 초 남았어요.”“알고 있습니다.”“그런데 왜 와요.”“기다리는 중입니다.”“뭘.”대답 대신 도현의 시선이 입술에 닿았다.서윤이 바로 알아차렸다.“또?”“네.”“아까 했잖아요.”“한 번만 하기로 한 적은 없습니다.”서윤이 피식 웃었다.전자레인지에는 이제 8초가 남아 있었다.“그럼 빨리.”도현의 눈썹이 올라갔다.“뭐를.”“모르는 척하지 말고.”서윤이 그의 셔츠를 잡아당겼다.입술이 맞닿았다.짧게 끝내려고 했다.정말 그럴 생각이었다.삐삐삐.전자레인지가 먼저 끝을 알렸다.그런데 둘 중 누구도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몇 초가 더 지나서야 서윤이 도현의 가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43화. 그림보다 가까운 거리

    “그럼 계속 보십시오.” 도현의 말에 서윤은 정말로 그를 빤히 바라봤다. 가까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입술이 닿을 거리. 도현이 먼저 웃었다. “왜요.” “계속 본다면서요.” “보고 있잖아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서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싫어요?” “아니요.” “그럼 참아요.” “뭘.” “부끄러운 거.” 도현이 이번에는 대놓고 웃었다. “제가 부끄러워 보입니까.” “조금?” “당신이 더 그런 것 같은데.” 서윤의 입이 다물렸다. 정곡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림을 핑계로 마음껏 볼 수 있었다. 눈매가 어떻고. 입술이 어떻고. 표정이 어떻고. 종이에 옮겨야 한다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그냥 좋아서 보고 있었다. 그 사실을 들킨 것 같아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서윤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도현이 바로 말했다. “피했습니다.” “안 피했어요.” “거울 봤는데.” “그게 피한 거지.” “그러니까.” 서윤은 결국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사람 민망하게 하지 마요.” 도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먼저 계속 보겠다고 한 사람은 당신입니다.” “취소.” “안 됩니다.” “왜.” “저는 마음에 들어서.” 도현의 손가락이 서윤의 손가락 사이로 들어왔다. “당신이 그렇게 보는 거.” 이번에는 정말 얼굴이 뜨거워졌다. 서윤은 손을 빼는 대신 도현에게 더 가까이 붙었다. “그럼 보지 뭐.” “보십시오.” 서윤은 다시 그를 봤다. 이번에는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먼저 웃어버렸다. “아, 못 하겠다.” “왜.” “그림 그릴 때가 더 쉬워.” 서윤이 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도현이 웃으며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그럼 그림을 가져올까요.” “싫어요.” “왜.” “오늘은 그만 그릴래.” 서윤은 고개를 들었다. “손 아파.” “많이?” “조금.” 도현이 그녀의 오른손을 가져갔다. 연필을 오래 잡았던 손가락을 천천히 펴봤다. “여기?”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42화. 이번에는 내가 볼 차례

    다음 날 오후.서윤은 《사이》의 창가 의자에 앉아 도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도현은 처음에는 책을 읽었다.십 분쯤 지나자 결국 책을 덮었다.“서윤.”“응.”“계속 그렇게 볼 겁니까.”“응.”“왜.”“연습.”“무슨 연습을 사람 얼굴만 보면서 합니까.”서윤은 무릎 위에 올려둔 스케치북을 펼쳤다.“어제 말했잖아요. 이번에는 내가 제대로 그려준다고.”“지금 그리면 되잖습니까.”“아직 뭘 그릴지 못 정했어요.”“어제는 전부 고르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그러니까 고르는 중.”서윤의 시선이 다시 도현에게 향했다.오늘 도현은 편한 검은 티셔츠에 회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집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었다.그런데 막상 그림으로 남긴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일어나봐요.”도현이 순순히 일어났다.“창가.”자리를 바꿨다.서윤은 의자에 도현을 앉혀놓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팔은 편하게.”“이렇게?”“응.”잠시 바라봤다.“아닌데.”“뭐가.”“너무 멀쩡해.”“그림을 그리는데 멀쩡하면 안 됩니까.”“내가 그리고 싶은 도현 씨는 이게 아닌 것 같아.”서윤은 다시 고민했다.소파에도 앉혀봤다.책도 들려봤다.커피잔까지 가져왔다.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결국 도현이 물었다.“대체 어떤 모습을 그리고 싶은 겁니까.”“그걸 찾고 있다니까.”“한 시간째?”서윤이 벽시계를 찾듯 주변을 봤다가 멈췄다.《사이》에는 일부러 시계를 두지 않았다.“한 시간이나 됐어요?”“체감상.”“거짓말.”도현이 웃었다.서윤은 그 얼굴을 바라봤지만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이것도 아니야.”“웃는 얼굴 그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그건 어제 아침에 그렸잖아요.”서윤은 스케치북을 덮었다.“다른 거.”“뭘.”“나만 아는 얼굴.”도현의 시선이 그녀에게 멈췄다.“그게 뭡니까.”“모르겠어.”서윤은 소파에 털썩 앉았다.“그러니까 찾는 중이지.”도현이 옆에 앉았다.“그냥 평소처럼 있다가 찾으면 그때 그리십시오.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41화. 흐트러진 셔츠

    “이제 마음대로 봐요.”그 말이 떨어진 뒤에도 도현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서윤의 허리를 감싼 채 얼굴만 바라봤다.서윤이 먼저 눈썹을 올렸다.“왜요.”“마음대로 보라고 해서.”“그래서 보고만 있을 거예요?”“그건 아닙니다.”도현의 손이 흰 셔츠의 옷깃을 천천히 정리했다.이미 단추 하나는 서윤이 직접 더 풀어둔 상태였다.조금 전 그림 속에서는 단정하게 흘러내리던 셔츠가 지금은 완전히 달라 보였다.도현이 손끝으로 옷깃을 살짝 밀었다.한쪽 어깨가 드러났다.그곳에 입술이 닿았다.서윤이 숨을 들이켰다.“아까도 이거 보고 있었어요?”“네.”“그림 그리면서?”“계속.”“그래서 참았다는 거예요?”도현이 이번에는 목 가까이에 입을 맞췄다.“그것만은 아닙니다.”서윤의 손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또 뭐.”“말하면 또 놀릴 것 같은데.”“안 놀릴게요.”“못 믿겠습니다.”서윤이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 올렸다.“말해봐요.”도현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길게 풀어진 머리.손등을 덮던 소매.그리고 자신의 셔츠를 입고 있던 서윤.“당신이 제 옷을 입고 있는 게 생각보다 좋았습니다.”서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왜?”“제 것인데 당신한테 더 잘 어울려서.”“그건 칭찬인가?”“칭찬입니다.”“그럼 이 셔츠 내가 가져도 돼요?”도현이 잠시 생각하는 척했다.“조건이 있습니다.”“뭔데.”“가끔 입어주십시오.”서윤이 웃었다.“그 정도면 쉽지.”도현이 다시 가까워졌다.이번 키스는 아까보다 느렸다.서윤은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등 뒤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고개만 조금 돌리면 두 사람이 전부 보일 터였다.그런데 이번에는 보지 않았다.그저 자신에게 닿는 입술과 가까운 체온에 집중했다.도현이 떨어지려 하자 서윤이 옷자락을 잡았다.“어디 가요.”“안 갑니다.”“그럼 왜 떨어져.”서윤이 다시 끌어당겼다.입술이 겹쳤다.몇 번이나 이어진 입맞춤 끝에 도현이 웃었다.“오늘 그림 그리느라 참은 건 저인데.”

  •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440화. 웃는 얼굴을 그리는 법

    “……아마도.”서윤의 대답에 도현이 또 웃었다.“지금 또 웃었어요.”“당신 때문에.”“그러니까 그대로 있어요.”“사람이 어떻게 계속 같은 표정으로 있습니까.”“내가 알아서 할게요.”서윤은 결국 《사이》에서 스케치북과 연필을 가져왔다.다시 식탁에 앉았을 때 도현은 이미 남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그 자세 좋아요.”“아침 먹다 말고 정말 그리게요?”“응.”서윤은 스케치북을 펼쳤다.“대신 나 못 그린다고 놀리기 없기.”“지난번 그림도 좋았습니다.”“그건 도현 씨가 나를 좋아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고.”“그럴 수도 있죠.”서윤의 연필이 멈췄다.“그렇게 바로 인정한다고?”“좋아하는 사람이 그린 제 얼굴인데 마음에 안 들 이유가 있습니까.”서윤은 괜히 입술을 한번 눌렀다.“그냥 커피나 마셔요.”“웃으면 안 됩니까.”“아니.”서윤이 다시 종이를 봤다.“웃어야 돼요.”“어렵군요.”“그러니까 나 봐요.”도현의 시선이 서윤에게 향했다.서윤은 연필을 움직이다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눈이 마주쳤다.도현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맞아. 그거.”몇 초 뒤 다시 확인했다.또 눈이 마주쳤다.또 웃었다.세 번째에도 마찬가지였다.서윤이 결국 연필을 내려놓았다.“알겠다.”“뭘.”“도현 씨 웃게 하는 법.”“뭡니까.”“나 보면 돼.”도현이 피식 웃었다.서윤은 바로 연필을 들었다.“또 했다.”“일부러 아닙니다.”“움직이지 마요.”선 하나.눈매.입술 끝.서윤은 몇 번이나 종이와 도현을 번갈아 봤다.잘 그리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결국 삼십 분쯤 지나서야 연필을 내려놨다.“됐다.”“보여주십시오.”“잠깐.”서윤은 그림 아래에 뭔가 적었다.그리고 스케치북을 돌렸다.도현이 그림을 봤다.정교하지는 않았다.선도 조금 어설펐다.하지만 커피잔을 든 채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얼굴만큼은 분명했다.그 아래에는 짧게 적혀 있었다.나를 보면 웃는 사람.도현이 한동안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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