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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눈빛

Author: STARGIL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0 23:05:02

그녀는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몇 걸음 뒤에서 따라 올라갔다.

끝까지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녀는 오른쪽 골목으로 사라졌고,

나는 우리 집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이상하게 심장이 가라앉지 않았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방금까지 그녀와 같은 계단을 걸었다는 사실 때문인지 모르겠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창가부터 봤다.

잠시 뒤.

맞은편 3층.

불이 켜졌다.

“왔다.”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었다.

나는 맥주 대신 물을 한 잔 마셨다.

그런데도 취기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괜히 조심했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대담했다.

창가 가까이 다가갔다.

평소보다 훨씬 가까이.

‘뭐 어때.’

술이 들어가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녀는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녀의 생활 패턴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다.

강아지들이 뛰어나온다.

가방을 내려놓는다.

창문을 연다.

방 안을 정리한다.

씻으러 들어간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운동을 한다.

처음에는 모든 행동이 새로웠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다.

“아마 이제 창문 열겠지.”

드르륵.

정말 열렸다.

나는 피식 웃었다.

“역시.”

잠시 후 그녀가 방 안을 오갔다.

나는 그녀의 다음 행동까지 예상하고 있었다.

‘이제 씻으러 가겠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방 안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빈 방만 바라봤다.

예전 같았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아쉬웠을 텐데,

이제는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샤워 중이겠지.’

잠시 뒤 다시 나타났다.

머리를 정리하고,

물을 마시고,

매트를 꺼냈다.

“그리고 운동.”

역시.

매트가 깔렸다.

나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너무 익숙했다.

그녀의 하루가.

그런데 웃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이걸 왜 다 알고 있지?’

몇 시쯤 집에 돌아오는지.

들어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서 운동하는지.

언제쯤 창문을 닫는지.

이제는 조금만 봐도 다음 행동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게 갑자기 소름 끼쳤다.

하지만 오늘은 술기운 때문인지 그 생각조차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창틀에 팔을 기대고 그녀를 바라봤다.

“이게 뭐냐.”

사랑일까.

아니다.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나는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

이름조차 모른다.

성격도 모른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무슨 음악을 듣는지도.

누구를 좋아하는지도.

그런데 하루 종일 생각난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부터 보고,

밖에 나가면 혹시 마주칠까 생각하고,

밤이 되면 언제 돌아오는지 신경 쓰인다.

이 정도면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했다.

집착.

그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몰라.”

입 밖으로 말했다.

“이제 모르겠다.”

사랑이든.

호기심이든.

외로움이든.

집착이든.

이제는 구분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계속 생각났다.

그녀가.

문득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그 순간 아주 현실적인 욕심 하나가 생겼다.

‘번호.’

전화번호.

그녀의 번호를 알고 싶었다.

정말 이상할 정도로 갑자기 강하게 들었다.

번호만 알면.

카카오톡 프로필이라도 볼 수 있을 텐데.

이름도 알 수 있고.

사진도 볼 수 있고.

하지만 곧바로 현실로 돌아왔다.

“내가 번호를 어떻게 물어봐.”

오늘 계단에서도 말 한마디 못 했다.

몇 걸음 앞에 있었는데도.

술까지 마신 상태였는데도.

그냥 따라 올라왔을 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아직 백수다.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지금 쉬고 있어요.”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뒀다고 하면?

왜 그만뒀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때는 뭐라고 해야 하나.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요.”

나는 헛웃음을 쳤다.

“퍽이나 좋아하겠다.”

예전 같았으면 자신 있게 말이라도 걸었을지 모른다.

대기업 다니고.

월급 받고.

회사 이야기하고.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었을 때.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괜히 내가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골목 아래에서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

여자였다.

그녀와 비슷한 또래.

처음 보는 사람.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맞은편 주택으로 들어간다.

잠시 뒤.

계단 불이 하나씩 켜졌다.

1층.

2층.

그리고 3층.

“누구지?”

그녀의 집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나타났다.

“친구인가?”

분위기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처음 방문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새로 온 여자가 뭔가 이야기를 하자 그녀가 웃었다.

둘은 꽤 가까운 사이 같았다.

나는 얼굴을 자세히 봤다.

‘어?’

묘하게 닮았다.

눈매.

얼굴형.

전체적인 분위기.

“자매인가?”

그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누가 언니인지 모르겠다.

새로 온 여자가 조금 더 차분해 보였다.

말투나 행동은 오히려 언니처럼 느껴졌다.

물론 여기서 말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행동만 보고 추측하는 것뿐이다.

둘은 한동안 거실 쪽에서 이야기를 했다.

강아지들도 새로 온 여자에게 상당히 익숙하게 다가갔다.

“가족 맞나 보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녀에 대해 또 하나의 조각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자매.

아마도.

새로 온 여자도 집에서 편하게 쉬려는 듯 방 안쪽으로 사라졌다.

얼마 뒤 다시 나타났고,

둘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일을 했다.

나는 자세한 것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흐름이 굉장히 익숙해 보였다.

그 집이 갑자기 더 실제 가족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내게 ‘그녀의 집’이었다.

그녀만 있는 공간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부모님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이제 자매로 보이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녀에게도 가족이 있다.

그녀에게도 내가 모르는 인간관계가 있다.

내가 창문 너머에서 보는 것이 그녀 삶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다가 잔이 비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그 순간이었다.

그녀가 갑자기 움직였다.

창문 쪽.

빠르게.

“어?”

나는 몸이 굳었다.

그녀가 바로 창가 앞으로 왔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봤다.

“……!”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아래로 숙였다.

심장이 세게 뛰었다.

쿵.

쿵.

쿵.

술이 완전히 깨는 느낌이었다.

‘봤나?’

나는 벽에 몸을 붙였다.

숨을 크게 쉬는 것조차 무서웠다.

‘왜 갑자기 밖을 봐?’

혹시 움직임을 봤나?

내 실루엣?

창문에 비친 그림자?

조금 전 내가 너무 가까이 있었나?

술기운 때문에 평소보다 대놓고 본 게 문제였나?

생각이 미친 듯이 돌아갔다.

나는 한참 동안 몸을 낮춘 채 있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

정말 조금만.

고개를 올렸다.

눈만 창틀 위로 내밀었다.

그녀는 여전히 창가에 있었다.

“…….”

그리고 내 쪽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 우리 집인지,

옥상 쪽인지,

골목을 보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방향이 너무 정확했다.

나는 바로 다시 몸을 숨겼다.

“아, 큰일났다.”

작게 중얼거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들킨 건가?’

‘진짜 본 건가?’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몇 초 뒤.

사락.

커튼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살짝 위를 봤다.

창문은 거의 가려져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이상했다.

지금까지는 그녀에게 들킬 것 같다는 상상조차 묘한 긴장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실제로 들켰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전혀 달랐다.

무서웠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갑자기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그냥 자기 집에서 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매일 시간을 기다렸고,

창문을 확인했고,

그녀의 패턴을 외웠다.

그리고 오늘은 술까지 마시고 평소보다 대담하게 바라봤다.

혹시 정말 눈이 마주친 거라면?

혹시 내 얼굴을 봤다면?

혹시—

오늘 계단에서 뒤에 있던 남자가 바로 나라는 걸 알아본다면?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계단.

버스.

병원.

그리고 맞은편 집.

머릿속에서 모든 장면이 연결됐다.

“설마…….”

나는 다시 창문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바닥에 주저앉았다.

술기운은 완전히 사라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녀의 번호를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다고.

그런데 지금은—

제발 나를 못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났다.

나는 조용히 방으로 돌아왔다.

커튼을 닫았다.

이번에는 내가.

침대에 앉았다.

방 안이 너무 조용했다.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내일은 어떻게 하지?’

창문을 볼까?

말까?

옥상에 올라갈까?

아니면 당분간 아예 가지 말까?

생각이 복잡했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그렇게 놀랐는데도—

내일이 되면 또 그녀가 궁금해질 것 같다는 사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진짜 미쳤네…….”

그리고 그날 밤 처음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이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면 상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나는—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가 궁금했고,

무엇을 입었는지가 궁금했고,

누구를 만나는지가 궁금했고,

언제 집에 들어오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나를 모른다는 사실이 오히려 편했던 것 같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자꾸 마지막 장면만 떠올랐다.

창가로 갑자기 다가오던 그녀.

그리고—

정확히 내 쪽을 바라보는 것 같았던 눈.

‘들켰나?’

그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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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상에는 바람이 불었다. 1월 1일을 앞둔 부산의 겨울바람. 바다 냄새가 섞여 있었다.나는 옥상 난간 뒤, 물탱크 그림자 속에 웅크렸다. 2화에서 처음 그녀를 기다리던 그 자리였다. 백수 생활의 무료함 속에서 치킨과 낮술을 곁에 두고, 사람 구경을 하던.그때는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았다. 지금은.맞은편 옥상. 그녀와 도윤이 캠핑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담요 한 장을 둘이 덮고.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제야의 종 중계가 흘러나왔다. 보신각. 사람들의 함성.두부가 도윤의 무릎 위에서 자고 있었다. 콩이는 그녀의 발치에.행복한 한 장면. 크리스마스 카드 같은.나는 그 카드 바깥, 물탱크 그림자 속에 있었다.*"오빠, 올해 소원 뭐야?"그녀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왔다. 2미터. 옥상과 옥상 사이도 그 거리였다."음… 너랑 결혼하는 거?""그건 이미 하잖아.""그럼 너랑 잘 사는 거.""뻔해.""너는?"그녀가 잠깐 말이 없었다. 담요 속에서 도윤의 손을 잡는 게 보였다."…나는 그냥, 무섭지 않은 거. 올해는 무섭지 않았으면 좋겠어."도윤이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녀의 머리가 도윤의 어깨에 기댔다."안 무섭게 해줄게. 약속.""…응."나는 그 대화를 들었다. 물탱크 그림자 속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그녀의 새해 소원은, 무섭지 않은 것이었다.그 소원의 반대편에 내가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가 무섭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바로 그 순간, 나는 2미터 옆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나는 그 아이러니를 알아봤다. 그리고 그 아이러니가 나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스피커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열. 아홉. 여덟.도윤이 일어섰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가느다란 막대기 두 개. 불꽃놀이용 스파클러.일곱. 여섯. 다섯.라이터 불이 켜졌다. 스파클러 끝에 불이 붙었다. 치지직. 하얀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넷. 셋.그녀가 웃으며 스파클러 하나를 받았다. 두 개의 불꽃이 어둠 속에서 흔들렸다.

  • 옆집의 그녀   67화 — 창문 아래

    두부가 짖었다. 내 발을 향해.나는 철문 손잡이를 쥔 채 굳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고개를 들면 그녀와 눈이 마주칠 것이다. 계단 두어 칸 위, 1미터 거리."두부야, 왜 그래. 가자."그녀의 목소리. 리드줄을 당기는 소리. 두부가 버텼다. 계속 짖었다.나는 모자를 더 깊이 눌러썼다. 먼지 묻은 작업 모자. 마스크는 턱에 걸쳐져 있었다. 나는 마스크를 올렸다. 코까지."죄송해요, 얘가 원래 이래요."그녀가 사과했다. 나에게. 모르는 인부에게 하듯이."……괜찮습니다."목소리를 낮췄다. 갈라지게. 먼지 때문에 쉰 목소리처럼.그녀가 리드줄을 짧게 감았다. 두부를 안아 올렸다. 두부는 그녀 품에서도 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녀는 콩이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가 골목 아래로 걸어갔다.한 번도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나는 그녀가 모퉁이를 돌 때까지 철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들어가 문을 잠그고, 현관에 주저앉았다.1미터. 그녀가 나를 보지 않았다. 먼지와 모자와 마스크가 나를 지웠다. 그녀의 눈에 나는 그냥, 반지하에 사는 일용직 인부였다.투명 인간.다시.*그날 밤 열한 시 반. 산책에서 돌아오는 발소리.나는 창문 아래 벽에 붙어 있었다. 늘 그렇듯이.발소리가 계단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두부가 다시 짖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내 창문을 향해."두부야, 또 왜 그래. 아까부터."두부가 리드줄을 끌었다. 반지하 창문 쪽으로. 창문 바로 앞 골목 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유리 너머 5센티미터. 두부의 까만 코가 유리에 닿았다. 김이 서렸다.나는 창문 바로 아래, 벽에 등을 붙인 채 숨을 멈췄다. 두부의 코는 내 머리 위 30센티미터에 있었다."여기 뭐 있어?"그녀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리고.그녀가 쪼그려 앉았다.창문 너머로 그녀의 무릎이 보였다. 그다음 그녀의 손. 유리창에 손바닥을 댔다. 햇빛을 가리듯이. 그리고 얼굴.그녀의 얼굴이 반지하 창문에 다가왔다. 유리에 이마를 댈 듯이. 어두운 방 안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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