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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화. 도윤·서아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7 08:00:05

오전 11시, 서울 성북동 서경그룹 본가 대저택 후원 별채.

10년간 피비린내 나는 암투와 감금의 공포가 서려 있던 성북동 저택. 그러나 오늘,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후원 별채는 아기들을 맞을 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은서는 창가에서 걸음을 멈추고, 침대를 두기로 했던 곳을 살폈다. 벽면은 은은한 아이보리빛 편백나무로 마감되었고, 앙증맞은 화이트 원목 아기 침대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임신 26주 차(임신 7개월)에 접어들어 단아한 살구색 니트 원피스를 입은 은서가 침대 곁에 서 있었다.

은서는 침대 사이에 놓인 의자를 조금 뒤로 밀었다. 두 아이를 따로 내려다보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다. 시후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의자 다리에 붙인 보호대를 다시 눌렀다.

“다른 사람 시켜도 된다니까요.”

“다 해놓았다더군. 그런데 이쪽이 조금 흔들려서.”

손끝으로 밀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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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1시, 서울 성북동 서경그룹 본가 대저택 후원 별채.10년간 피비린내 나는 암투와 감금의 공포가 서려 있던 성북동 저택. 그러나 오늘,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후원 별채는 아기들을 맞을 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은서는 창가에서 걸음을 멈추고, 침대를 두기로 했던 곳을 살폈다. 벽면은 은은한 아이보리빛 편백나무로 마감되었고, 앙증맞은 화이트 원목 아기 침대 두 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임신 26주 차(임신 7개월)에 접어들어 단아한 살구색 니트 원피스를 입은 은서가 침대 곁에 서 있었다.은서는 침대 사이에 놓인 의자를 조금 뒤로 밀었다. 두 아이를 따로 내려다보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다. 시후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의자 다리에 붙인 보호대를 다시 눌렀다.“다른 사람 시켜도 된다니까요.”“다 해놓았다더군. 그런데 이쪽이 조금 흔들려서.”손끝으로 밀어 보아야 겨우 알 수 있는 흔들림이었다. 은서는 웃다가 창가의 낮은 선반을 바라보았다. 시후의 어릴 적 사진과 자신의 사진을 나란히 놓아둔 곳이었다. 오래된 사진 속 두 아이는 지금의 부모만큼 닮지 않았다.“누구를 더 닮았으면 좋겠어요?”은서는 사진첩의 종이를 천천히 넘겼다. 제 어린 얼굴 옆에 놓인 시후의 사진은 지금보다 눈매가 덜 굳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아버지도 처음부터 무엇이든 할 줄 알던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녀가 사진을 가리키자 시후가 고개를 숙여 함께 들여다봤다.“너.”“한 명쯤은 본인을 닮아도 되잖아요.”“말 안 듣는 아이 둘을 상대할 자신은 없군.”은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시후가 보호대를 붙이다 말고 올려다봤다. 은서는 웃음이 잦아든 뒤에야 자신이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알았다. 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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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나스닥(NASDAQ) 마켓사이트 본부 브로드캐스트 스튜디오. 주요 글로벌 경제 방송의 생중계 카메라가 자리한 가운데, 메인 전광판에 ‘EUN’의 공식 티커 심볼이 찬란한 금빛으로 떠올랐다. 국내 하이주얼리 브랜드로서는 드문 해외 증시 상장이었다.방송이 시작되기 전 은서는 준비된 발언문을 다시 읽었다. 시가총액과 성장률이 먼저 나오는 문장들이었다. 그녀는 그 아래에 제작실 직원들과 고객에 관한 말을 덧붙였다.회사가 커졌다는 사실은 아직 낯설었다. 계약과 보고서에 서명할 때마다 자신의 한마디가 더 많은 사람의 일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꼈다. 원석 하나를 고를 때처럼 직접 만져 보고 정할 수 없는 일도 많아졌다.재무 담당자가 최종 수치를 설명하자 은서는 공개할 수 있는 정보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을 나누어 표시했다. 좋게 보이기 위해 앞당겨 말하지 않으려 했다. 오늘의 기대가 내일의 약속으로 남을 수 있었다.시후는 옆에서 그녀의 메모를 봤다. 예전에는 누군가 은서를 의심하는 질문만 해도 먼저 화가 났을 것이다. 지금은 그녀가 그 질문에 답할 준비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긴장되면 한 박자 쉬고 말해.”그가 낮게 말하자 은서는 웃었다.“당신도 결혼식 때 그랬죠?”“그때가 더 떨렸다.”뜻밖의 대답에 그녀의 어깨가 조금 풀렸다.오전 9시 30분, 카운트다운과 함께 장 개장을 알리는 벨 세레모니.임신 24주 차의 은서는 배를 편하게 감싼 네이비 실크 수트를 입고 있었다. 블랙 수트 차림의 시후와 나란히 서서,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투명 크리스탈 오프닝 벨 버튼을 힘차게 눌렀다.딩- 딩- 딩-!큰 박수와 함께 거래가 시작되자마자, 해외 기관투자자들의 폭발적인 매수 주

  • 오빠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제109화. 10주기

    추모식에 가져갈 꽃을 고를 때 은서는 직접 만든 백합을 꺼냈다. 어머니가 좋아하던 형태를 그대로 따라 그리지는 않았다. 끝의 작은 곡선을 조금 바꿨다. 자신이 기억하는 어머니와 지금의 자신이 함께 남기를 바랐다.공식 인사말은 길게 준비하지 않았다. 누명을 벗었다는 이야기만으로 어머니의 삶이 설명되는 것이 싫었다.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지, 딸에게 무엇을 알려 줬는지를 적었다.시후에게 읽어 줬을 때 그는 한 구절에서 눈을 들었다. 실패한 세공 조각을 버리지 않고 다음 작품의 모형으로 쓰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였다.“그런 분이셨군.”은서는 원고의 그 문장을 지우지 않았다. 어머니를 떠올리며 웃은 일이 사람들 앞에서도 남았으면 했다. 억울한 죽음에 대한 설명보다 먼저 읽기로 했다.은서는 수첩을 접지 않고 어머니 이야기를 조금 더 했다. 시후가 알던 비극의 앞뒤에, 딸만 기억하고 있던 어머니의 하루가 하나씩 붙었다.***알프스 마터호른 북벽이 한눈에 올려다보이는 체르마트 호반 추모 공원. 스위스 연방 대통령과 고위 외교사절, 로젠버그 카일 백작을 비롯한 유럽 명품 보석인 수백 명이 도열한 가운데, 故 서혜진 여사의 10주기 공식 국제 추모식이 장엄하게 거행되었다. 스위스 정부는 서혜진 여사의 천연 에메랄드 보존 공로를 기려, 마터호른 국립공원 입구에 여사의 백색 대리석 흉상을 공식 제막했다.제막된 얼굴은 기억보다 차분했다. 은서는 흉상을 한참 바라봤다. 돌에 새긴 표정이 어머니의 모든 표정일 수는 없었다. 화를 내고 웃고, 딸의 실수에 한숨을 쉬던 얼굴도 있었다.카일이 곁에 와 불편한 곳은 없는지 물었다. 은서는 괜찮다고 답한 뒤 의자를 부탁했다. 헌화까지 조금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은서는 코트 자락을 편하게 정리하고 앉았다. 서 있을 때보다 숨을 고르기가 나았다.시후는 그녀의 옆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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