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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의 멜로디
옥탑방의 멜로디
Author: 데이지

1. 라면 두 개의 밤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3-09 22:52:43

서울의 밤은 설탕을 살짝 탄 아이스커피 같았다.

달동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숨은 먼저 달리고, 

다리는 항상 한 박자 늦었다. 빨래 비누 냄새, 

고등어 굽는 냄새, 베란다에서 말리는 장갑들, 

그리고 드라마 웃음소리. 

들쑥날쑥한 소음들이 묘하게 어울려 리듬이 됐다.

문을 열면 손바닥만 한 방.

접이식 테이블 하나, 전기포트 하나, 

바닥에 폭신하지 않은 요 하나. 

창은 작지만 도시의 불빛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테이블에 수첩을 펴고 지출을 적었다.

보증금 200

월세 35

중개 30

수도·전기 가불 8

컵라면, 계란, 대파, 참기름 1.1

기타줄 교체(보류)

“후…”

한숨이 나가고, 검지가 톡톡 테이블을 두드렸다. 

버릇이었다. 리듬이 생기면 호흡이 가벼워지고,  그 사이로 멜로디가 보였다.

낡은 기타를 꺼내 A마이너, C, G… 손가락이 아는 길을 갔지만,  길 끝은 불 꺼진 골목 같았다.

“잠깐. 숨 고르고.”

창문을 열자 바람이 들어와 커튼을 찔렀다. 

커튼 끝이 기타 헤드에 스쳐 팅~작은 소리가 났다. 

이상하리만큼 정확한 음이었다.

며칠 동안 낮엔 카페, 밤엔 편의점. 손끝에 물기를 달고 살았다. 

돌아와서는 옥상 난간에 기대 도시를 한 숟갈씩 떠먹듯 바라보다 

방에 들어와 기타를 만졌다. 어떤 날은 멜로디가 네온사인처럼 번쩍였고,

 대부분은 스위치가 고장 난 듯 깜깜했다. 

그래도 계속 켰다. 언젠가 불이 들어올 거라 믿으면서.

그날은 수도에서 미지근한 물이 끝없이 쏟아졌다.

보일러실 문을 열자 먼지 냄새와 철 냄새가 쏟아졌다. 

구석에 검은 가방 하나. 손잡이가 해져 있었다.

“이건… 뭐지?”

집주인은 “전세입자 짐인가 본데 버려”라고 했지만, 

버리기엔 이상했다. 가방은 괜히 묵직했고, 

손가락으로 먼지를 쓸자 얇은 반짝임이 스쳤다.

착각이라 치부했다.

그날 밤, 끊긴 버스 대신 계단을 끝없이 올라왔다. 

문을 열고 그대로 바닥에 앉았다. 낡은 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결은 벗겨져 피곤해 보였다. 문득, 보일러실의 그 가방이 떠올랐다. 

혹시 거기에 더 나은 소리가 잠들어 있을까.

가방을 방 한가운데 끌어다 놓고 지퍼를 당겼다.

지~르르. 소리가 정적을 가르자 공기가 얇아졌다.

 마치 방 안에 비닐을 한 겹 씌운 듯.

뚜껑을 열자, 어둠보다 밝은 빛이 새어 나왔다.

눈꺼풀을 닫아도 들어오는 하얀 빛. 

영수증이 들썩이고 커튼이 바람도 없이 흔들렸다.

빛이 잦아들었을 때 내 방에는 내가 데려온 적 없는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놀라거나 무서울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누구세요…? 사람이에요…?”

오늘도 역시였다.

그는 똑바로 나를 보더니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옷차림은 시대를 놓친 듯했지만, 표정만큼은 기묘하게 또렷했다.

그는 말 대신 가방 안쪽을 가리켰다.

안에는 낡았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기타가 들어 있었다. 

내 것과는 달랐다. 표면은 오래된 도자기처럼 빛나고, 

프렛은 정갈해서 손톱만 대도 음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진짜 누구세요?”

그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나… 한.”

“한…?”

“성은, 김. 김… 한.”

발음은 고풍스럽고, 표정은 수줍었다.

그때 꼬르륵. 방 안에 울릴 만큼 크게 났다.

나는 웃음을 삼키며 전기포트에 물을 올렸다.

“라면 드실래요?”

“라… 면. 세상의 뜨겁고 짭짤한… 면발?”

“세상은 빼고, 면발 맞아요.”

물이 끓자 그는 포트를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불 없이 끓는 작은 항아리… 마법 같군.”

“전기요. 그냥 전기.”

“전… 기. 좋은 친구네.”

그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피식 웃었다.

젓가락을 쥔 그의 손이 잠깐 서툴다가 금세 능숙해졌다.

첫 면발을 입에 넣은 순간 그는 눈을 크게 떴다.

“뜨거워요!” 내가 외쳤다.

그는 황급히 후후 불었다가 다시 입에 넣고 눈을 감았다.

“…따뜻해. 세상보다.”

나는 웃음이 터졌다.

“말을 꼭 그렇게 해요?”

“아… 요즘은… 그냥, 따뜻하다. 맞나?”

“…맞아요.”

우리는 국물 소리와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로 대화했다.

그가 내는 엉뚱한 말과 어색한 웃음이,  낯선 밤을 묘하게 환하게 만들었다.

그릇을 치우고 담요를 두 장 꺼냈다.

“오늘 밤만, 여기 있어요.  구석에. 한 발자국 이상 가까이 오면… 소리 지를 거예요.”

그는 성실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 지르지 않게 하겠어.  아니, 하겠어 → 하지 않겠어. 약속.”

나는 작게 웃었다.

전등을 끄자 방은 도시 불빛의 그림자로 채워졌다.

나는 옆으로 누워 눈을 감았다. 낯섦이 수면 위를 얇게 흔들었다.

오늘 밤만. 그렇게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눈을 감는 순간, 기타줄이 팅 하고 울렸다.

바람이 스친 건지, 누군가 건드린 건지 알 수 없는 소리.

그 소리에 묻혀, 잠이 왔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은 오늘 밤만.

그런데 내 인생의 첫 소절은, 언제나 이렇게 평범한 밤에 시작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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