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흐으, 흐…… 흐아……!”
이재는 엎드린 채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도언을 받아내며 신음을 냈다.
벌써 몇 번째인지 세는 것은 무의미했다.
도언의 말대로 파리 여행은 아직 호텔에서 내다보는 전경이 전부였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도언은 에펠탑은 룸에서 보자는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이 이재를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호텔 스위트룸은 하나같이 어찌나 크고 넓은지.
도언이 이재를 가둔 곳은 침대만이 아니었다.
소파에서는 제 위에 앉혀놓고 내려오지 못하게 하더니, 둘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욕조에서는 뜨거운 물이 다 식도록 그녀 안에 머물렀다.
“하아…… 이재야……!”
“으응…… 흐으응&helli
두 팔을 벌리고 다가오는 안서희를 피할 새도 없었다.이재는 그대로 안서희에게 덥석 안겨버리고 말았다.저보다 작은 안서희에게 안긴 이재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이런 환영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어서 와요. 이게 얼마 만이야.”안서희가 이재를 끌어안았던 팔을 풀고는 이번엔 손을 잡았다.이재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셨어요? 어제 병원에서는 경황이 없어서 인사를 제대로 못 드렸어요.”“그럼, 알지. 알고말고. 나도 회장님 때문에 정신이 없었잖아.”이재의 손을 이끌고 거실로 향한 안서희는 이재를 자리에 앉게 하고서야 잡았던 손을 놓았다.건너편에 앉은 안서희가 그제야 이재의 눈에 제대로 들어왔다.진주빛 블라우스에 풍성한 블랙 스커트.마치 연주회라도 나가는 아티스트처럼 차려입은 게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화려했다.게다가 진한 메이크업와 볼륨을 최대한 살린 듯한 헤어스타일까지 뭐하나 과장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물끄러미 바라보며 짓고 있는 미소마저 어색해서 이재는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안서희의 본체는 배우인 게 맞는 모양이었다.당황스러움을 너머 안쓰러움이 치밀 지경이었다.이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서희의 말이 이어졌다.“어떻게, 잠은 잘 잤어요? 시차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고?”“네, 잘 잤습니다.”“역시 젊어서 좋아. 나는 이제 시차 때문에 어딜 못 다니겠더라고. 호호호…….”제풀에 웃음을 터트리고는 안서희는 금세 표정을 가다듬었다.“그나저나 내가 뭐라고 불러야 하나? 한 선생은 안 될 것 같고, 아직 뭐 식을 올린 것도 아닌데 며늘 아가…… 이럴 수는 없잖아요?”안서희는 며느리라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눈을 깜빡였다.“이름 불러주세요. 저도 그게 편할 것 같습니다.”“으응, 그럼 그럴까?”안서희가 세상 우아하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이재를 바라보았다.이전에 호명 가에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 며느리를 맞이하는 젊고 세련된 시어머니 역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
거울 앞에 선 안서희는 연신 제 모습을 비춰보며 얼굴을 찌푸렸다.오늘따라 뭘 입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차 회장 병치레에 신경 쓰느라 운동에 소홀했더니 금세 군살이 붙었는지 몸매 라인도 엉망이었다.게다가 얼굴에 주름은 왜 이렇게 늘었는지 아무리 메이크업으로 커버해도 감추어지지 않았다.“김 실장, 이건 안 되겠어.""왜요, 사모님. 너무 예쁘신데?"김 실장의 말에 안서희가 확인이라도 하듯 다시 거울을 보았지만 역시나였다."아니야. 아까 입었던 거 그걸로 줘. 차라리 가리는 게 낫겠어.”안서희가 등을 돌리자 김 실장이 그녀가 입고 있는 원피스 지퍼를 내려주었다.“사실, 우아한 건 그쪽이죠. 편하기도 하실거고요, 사모님.”“자기가 봐도 이 원피스 작아 보여?”안서희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김 실장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아뇨, 사모님. 그런 게 아니라요. 외부에 나가시는 게 아니니까요. 좀 더 편하고 우아한 스타일이 나으실 것 같아서 드린 말씀이에요.”원피스를 벗은 안서희가 김 실장이 건넨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입으며 입을 삐죽거렸다.하긴 집에서 저녁 먹는데 몸매가 드러나는 화려한 원피스는 오버스럽긴 했다.“큰 아드님 들어오셨다고 하던데 곧 좋은 소식 있는 거예요?”김 실장이 옷매무시를 만져주며 화제를 돌렸다.“좋은 소식?”“며느님 보신다고…… 소문이 아주 자자해요.”“소문이…… 났어? 뭐라고 났는데?”“여기 큰 며느님 자리 바라는 댁들 얼마나 많았어요.
이재에게 안서희를 마주하는 것은 언젠가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일이었다.도언의 여자가 된다는 것은 호명 가의 일부가 된다는 뜻이었다.그러니 안서희가 불편하다고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이재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정말 혼자서 괜찮겠어?”도언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마음 불편하게 피하는 것보다 나아요.”“그래, 네가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언이 마지못해 수긍했다.그러면서도 걱정이 가시지 않는지 이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씩씩하게 구는 이 여자가 자신이 없을 때 혹시나 상처받지는 않을까.혼자서 울게 되지는 않을까 마음이 아려왔다.이미 받은 상처로도 충분히 차고 넘칠 텐데 행여나 그 상처가 덧날까 걱정 되었다.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기에 걱정을 놓을 수 없었다.그러나 도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이재는 저를 내려다보는 그를 보며 헤실거릴 뿐이었다.“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아무 일도 안 생겨요! 걱정하지 말고 얼른 출근해요!”이재가 제 허리에 두른 그의 손을 풀어내고는 그를 떠밀었다.“나도 일찍 끝내고 올게.”“괜히 기대하게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첫날인데 바쁠 거 다 알아요.”도언은 웃어버리고 말았다.이재의 말이 맞을 것이다.일찍 오겠다는 말은 출근과 동시에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차 회장의 부재로 쌓인 것들을 처리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를 것이 뻔했다.괜한 말에 기대어 기다리고 있을지도
갑작스러운 안서희의 등장이었다.깜짝 놀란 이재가 계단을 내려가다가 말고 멈칫 서버렸다.도언이 그런 이재를 제 뒤로 숨기고 안서희 앞으로 나섰다.“여긴 무슨 일이세요?”반기지 않는 기색을 드러낸 도언이 목소리에 날이 섰다.억지로 웃고 있는 안서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꼭 무슨 일이 있어야 오니? 오랜만에 도언이 너도 왔고 그리고…….”안서희의 시선이 도언의 뒤에 있는 이재에게 닿았다.“한 선생도 왔는데 내가 챙겨야지. 어머 나 좀 봐. 이제 한 선생이라도 하면 안 되려나? 호호호……!”안서희가 카랑진 웃음소리가 느닷없이 별채에 울렸다.옆에 서 있던 김 여사도 뜨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안서희를 힐끗 바라보았다.“저녁 먹으려던 참이니?”안서희가 갑자기 화제를 돌리며 다이닝 룸을 새삼스레 훑어보았다.“좀 일찍 와볼걸 그랬네. 오늘은 내가 늦은 것 같으니 내일은 안채에서 같이 저녁 하자.”김 여사는 혹시나 도언이 안서희에게 별채에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청할까 싶어 주방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오랜 고용인 생활에서 나온 예측이었다.그러나.“아뇨.”도언이 안서희의 말을 단박에 잘랐다.“내일은 회사에 일이 있습니다.”“그, 그래?”단호한 도언 앞에서 안서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민망함을 감추려 애썼다.“도언이가 바쁘면 한 선생이라도…… 아니, 한 선생이 아니지.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니까.”
설핏 잠들었던 이재는 눈을 떴다.도언은 잠들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깊이 곯아떨어져 있었다.이재는 제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고른 숨소리를 내는 도언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그녀의 손길을 느낀 듯 도언이 습관적으로 이재의 품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가슴 사이에 코를 박은 도언은 부드럽게 뭉개지는 가슴에 완전히 안긴 채였다.“어머, 뭐야......?”이재는 헐렁하게 흘러내린 브래지어에 잠시 당황한 듯 웃고 말았다.브래지어까지 풀지는 않았는데 도언의 손이 어느샌가 등 뒤로 풀어버린 듯했다.“못 말린다니까.”덕분에 거의 드러난 가슴은 전부 도언의 차지였다.피곤하고 힘들 때면 도언은 이런 식이었다.이재 역시 기꺼이 그를 안아주었다.제게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안아줄 수 있었다.이재는 깊이 잠든 도언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런던에서 서울까지 오는 긴 시간 내내 한숨도 자지 않고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비행기에서도 종종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그를 방해할 수 없어 바라만 보았다.이재가 아직 전부 알지 못하는 차도언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오랜만에 만나는 아버지를 병원에서 봐야 하는 착잡함도 짐작만 할뿐이었다.차마 묻지 못한 수많은 번민을 안고 잠든 그가 안쓰러웠다.그의 번민에 자신 역시 한몫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차 회장의 수술이 잘 되어서 건강을 찾으면 도언의 마음이 편해질까.그러다 문득 병실에서 마주친 안서희를 떠올렸다.인사를 건넬 틈이 없어 눈인사만 했지만 눈이 마주쳤던 찰라의 순간에 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뚫어지게 쏘아보는 눈빛과는 달리 언뜻 미소를 짓고
이재는 호명 가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밀려오는 감정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5년 동안 매일 지나다니던 곳이었다.도경이를 만나러 안채에 가기 위해 걷던 길이었고, 도언을 마주칠까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구분도 못 하며 걷던 길이었다.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돌아왔다.그것도 도언과 함께.“기분이 이상해요.”이재가 도언을 올려다보았다.곁에 섰던 도언이 이재의 앞에 마주 섰다.“뭐가 이상한데?”“다시는 못 올 줄 알았거든요.”도언은 이재의 그렁그렁해진 눈을 들여다보았다.한이재 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도언은 단 한 번도 이재가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이재를 마주치기 위해 정원을 서성이던 날처럼 그녀가 떠난 이후로도 항상 기다렸다.불이 꺼진 그녀의 방을 올려다보며 매일 다짐했다.이재 너를 꼭 다시 이곳으로 데려오겠다고.“웰컴 백, 한이재.”도언은 길었던 기다림의 푸념은 넣어두고 그렇게 말했다.이제 여기서 너를 기다릴 일은 없겠지.네가 어디에 있든, 나도 네 곁에 있을 테니까.“조 여사님!”갑자기 이재가 도언을 뿌리치고 앞서가기 시작했다.별채 앞에 조 여사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어서 와요. 어서 와…….”조 여사가 뛰듯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이재의 손을 덥석 잡았다.“안녕하셨어요?”조 여사가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이재의 손을 연신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택시에서 내린 이재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여름의 끝자락, 후텁지근한 공기가 달라붙어 금세 이마에 끈적한 땀이 배었다.“뭔 술을 언제부터 처마셨길래.”이재는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확인했다.고작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그동안 새벽 시간에 무수히 불려 다녔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은 또 처음이었다.늦은 시간이 아니니 오늘 밤은 그래도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되었다.차라리 잘 된 건가 싶다가도 대기조처럼 불려다니는 제 처지에 화가 치밀었다. “어쩌겠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지.”그러다 이내 이렇게 체
여자는 남자의 손에 이끌려 별채 2층 계단을 오르며 후회했다."다음에, 다음에 해요......"자신이 한 말이 메아리가 되어 끝도 없이 귓가를 울렸다.‘다음이라는 말은 왜 했을까.’그건 무언가 기약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그를 피하고자 했던 의미 없는 말이었다.하지만 이제 와 설명한들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여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늘 그렇듯 후회는 이미 늦어버렸을 때 하는 것이니까.탁-.여자의 등 뒤로 문이 닫혔다.순식간에 닥쳐온 어둠에 두려움이 밀려왔다.제 손을 잡은 남자의 희미한 온기마저 빠져나갈까 두려워
이재는 그의 맨몸을 볼 수 없어 눈을 돌렸다.하지만 그의 몸이 이미 눈에 들어온 뒤였다.'이런 게 남자의 몸인가?'이재는 저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입술을 깨물었다.도언은 옷을 입고 있을 때도 울룩불룩 탄탄한 몸이라는 것을 짐작할 만 했다.그런데 벗은 몸은 짐작했던 것 이상이었다.단단하게 뻗은 직각 어깨.그 아래 떨어지는 기다란 팔과 알맞게 붙은 근육.적당하게 오른 가슴은 탄탄함을 넘어 매끈한 나머지 혹시 랩이라도 씌워놓은 건 아닌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그리고 음영을 그려 넣은 것처럼 여섯 개로 쫙 갈라진
셔츠에 번진 김치 국물을 보니 쌍방 과실 같은 말은 꺼낼 수도 없었다. 명백한 자신의 과실이 맞았다.이재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죄송합니다.”“따라와요.”“네……. 네?”이재가 고개를 번쩍 들자 이미 돌아선 도언이 2층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이재가 허둥대며 그의 뒤를 따라가자 도언이 걸음을 멈추고 휙 돌아보았다.“그건 두고.”도언이 이재가 들고 있던 김치 그릇을 턱짓으로 가리켰다.“아.”이재는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가 테이블 조리대 위에 접시를 올려두었다. 나가려고 보니 접시를 들고 있던 손이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