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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레비아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4-13 22:59:04

셔츠에 번진 김치 국물을 보니 쌍방 과실 같은 말은 꺼낼 수도 없었다. 

명백한 자신의 과실이 맞았다.

이재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따라와요.”

“네……. 네?”

이재가 고개를 번쩍 들자 이미 돌아선 도언이 2층 계단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재가 허둥대며 그의 뒤를 따라가자 도언이 걸음을 멈추고 휙 돌아보았다.

“그건 두고.”

도언이 이재가 들고 있던 김치 그릇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아.”

이재는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가 테이블 조리대 위에 접시를 올려두었다. 

나가려고 보니 접시를 들고 있던 손이 김치 국물로 엉망이었다.

물로 씻어내고 싶었지만 도언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옆에 있던 행주로 손에 묻은 김치 국물을 대충 닦아냈다.

“가져다 두고 왔…….”

서둘러 주방을 나왔지만 도언은 없었다.

기다리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가 버린 모양이었다.

기다릴 거라고 생각한 게 얼마나 얼토당토 않는 것인지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차도언이었다.

호명가의 장남이자 황태자인 그가 누굴 기다리겠는다.

이재는 길게 늘어선 계단을 올려다보며 잠시 망설였다.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몰랐다.

별채에서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어차피 차도언을 또 마주칠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재가 주로 만나는 사람은 도경이었고 가끔은 안서희였다.

차도언이 거주하고 있는 별채에는 올 일이 없었다. 

만약 오늘 같이 심부름할 일이 생겨도 피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고용인들이 하는 말에 의하면 차도언은 잠시 한국에 들른 것 같았다.

그가 떠날 때까지만 어떻게 잘 피하면 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망설이던 이재는 결국 2층 계단에 발을 올렸다.

'이 죽일 놈의 책임감.'

2층에 올라왔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이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렸다.

별채 2층에는 처음 와봤으니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이건 두 번째 기회인가.'

이번엔 올라갔는데 안 계시더라고요, 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복도 끝에 빼꼼 열린 문이 보였다.

'하여간 눈도 좋아.'

하필 문이 열린 방을 봐버린 자신을 원망해도 소용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다시 내려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재는 열린 문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섰다.

문 앞으로 다가가며 이재는 흠흠, 헛기침을 했다.

도언이 얼굴을 내밀고 자신이 온 것을 확인하기를 바랐다. 

"흠흠...... 흠!"

방 앞에까지 다다른 이재는 도언이 들을 수 있도록 조금 더 크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안에서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문에 귀를 대보아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문을 열려 있었지만 안이 보이도록 열린 건 아니어서 아무리 기웃거려도 소용없었다. 

이재는 열려있는 슬쩍 문을 밀어 보았다.

만약 여기에도 도언이 없다면 이번에는 정말 여기서 나가리라 다짐하면서.

제발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면서.

“허업!”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인영에 깜짝 놀란 이재가 입을 막았다.

통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서 있는 사람은 도언이었다.

그것도 상의를 벗은 차도언.

“어, 어……! 죄송합니다!”

황급히 문을 닫는데 안에서 도언이 들어오라고 했다.

잘못 들었나 싶어 문을 닫기 직전에 “네?” 다시 물으니 “들어오라고.” 조금 성이 난 듯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시, 실례하겠습니다.”

이재는 엉거주춤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상의를 벗고 있는 도언을 차마 마주 볼 수 없어 고개를 사선으로 돌렸다.

그렇게 처분만 기다리는 죄인처럼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들어오라고 해놓고 도언에게선 아무 기척도 없었다.

'뭐야, 사람 불러놓고 아무말도 없어.'

괜한 긴장감에 맞잡은 손안에 땀이 진득하게 배어났다.

이재는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러 땀을 닦았다.

대체 도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리깐 눈동자를 최대한 굴려 보았지만, 그가 있는 곳까지는 시선이 닿지 않았다.

호명 가에 5년간 있었지만 별채 2층엔 처음 와봤다.

별채는 손님들이 오면 묵는 곳이라는데 살림을 맡은 고용인도 아닌 이재는 당연히 올 일이 없었다.

오늘처럼 가끔 심부름을 와도 1층 주방에나 몇 번 가봤을 뿐이었다.

'2층은 이런 곳이었구나.'

호명 가 어딜 가도 럭셔리, 호화, 고급투성이라지만 별채는 유별난 느낌이었다.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 무늬도, 카펫도, 빼꼼 보이는 소파도 다 고급 그 자체였다.

얼마 전까지 리모델링한다고 야단이더니 다 새로 들인 모양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눈동자를 한껏 돌리며 별채 침실을 살피는 이재 눈에 실내용 슬리퍼가 눈에 들어왔다.

'어쩜, 슬리퍼까지 저렇게 럭셔리할까.'

감탄도 잠시, 번쩍 정신이 든 이재가 고개를 들었다.

도언이었다.

슬리퍼를 신은 도언이 소리도 없이 다가와 이재 앞에 서 있었다.

여전히 상의는 벗은 채로.

고개를 든 이재와 눈이 마주치자 도언이 다시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정신 못 차리네, 하는 얼굴로.

“죄송합니다. 제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그의 눈빛에 주눅이 들어 저절로 목소리가 졸아들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도언이 그런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이재는 갑자기 전의를 상실한 기분이 들고 말았다.

그의 눈빛만으로도 도저히 그를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이럴 때는 그냥 항복을 선언하고 빨리 끝내는 게 최선이었다.

“셔츠는, 변상해 드리겠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이재가 시선을 스르륵 내렸다.

도언의 맨몸을 도저히 볼 수 없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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