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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작가: 레비아
last update 게시일: 2026-04-08 23:43:50

대한민국에서 알 만한 사람은 모두가 다 아는 건설 그룹 호명,

호명의 가족이 거주하는 그들만의 성채 호명가에 도착한 이재는 뒷자석에 앉은 도경을 돌아봤다.

"술 다 깬 거지?"

"집에 가기 싫은데."

엉뚱한 대답을 하는 도경은 차에서 내릴 생각도 없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에 안 가면, 어딜 가려고?"

그제야 도경이 이재를 바라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누나, 우리 어디 가서 딱 한 잔만 더 마실래?"

"야! 차도경!"

이재가 인상을 팍 쓰자 움찔 놀란 도경이 싫으면 말고, 하는 말을 중얼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긴 다리를 휘적이며 걷는 도경의 따라가며 이재는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호명의 둘째이자 막내인 차도경.

재벌가 귀한 도련님이지만 동시에 골칫덩어리이기도 했다.

가뜩이나 재수까지 하는데 이런 식이면 올해도 대학 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이번에도 대학에 못 가는 건 과외 선생인 이재에겐 이보다 더 큰 재앙은 없었다.

제 목숨을 쥐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엇나가고 있으니 이재는 도경이 미워지려 했다.  

***

“엄마아…….”

멀쩡하게 걸어 들어온 도경이 현관에서 갑자기 비틀거리는 척하더니 제 엄마를 보고선 혀짧은소리를 내며 안겼다.

“아휴, 얼마나 마신 거야!”

헤헤거리며 안기는 아들을 안쓰럽게 토닥거렸다.

“쪼오금 마셨어. 주환이 유학 간다고 송별회 하는데 안 마실 수 없잖아요.”

이재에게 도경을 데리고 오라고 할 때는 노발대발이더니 정작 아들에게는 콧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도경을 토닥이던 안서희는 문득 현관에 우두커니 서 있던 이재를 발견했다.

“한 선생, 고생했어요.”

“아닙니다.”

“그만 가 봐요.”

“네.”

“누나, 잠깐만.”

돌아서는 이재를 불러세운 건 도경이었다.

이재가 돌아보자 도경이 기다리라는 듯 손을 들어 보이더니 안서희에게 말했다.

“엄마, 나 돈 좀 줘요.”

“돈? 돈은 왜?”

“빨리.”

안서희가 미심쩍은 얼굴로 지갑을 꺼내 열자, 도경이 성급하게 지갑 안에서 현금 뭉치를 덥석 집어 꺼냈다.

그러고는 얼마인지 세보지도 않고 이재에게 건넸다.

“누나, 이거.”

“아니야. 이걸 왜 날 줘.”

이재가 깜짝 놀라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을 쳤다.

“보너스.”

“어?”

“나 데리고 오느라 고생했잖아.”

“아니야, 됐다니까.”

도경이 건넨 돈을 한사코 밀어내는데 안서희가 못마땅한 얼굴로 말을 섞었다.

“그냥 받아요. 우리 도경이가 이렇게 한 선생을 생각한다니까.”

“그래도 너무 많…….”

도경이 이재의 손에 돈을 쥐여주며 말을 막았다.

“누나, 오늘 고마워.”

한쪽 눈을 찡끗하며 웃는 그 얼굴이 얄밉게도 멀쩡해 보였다.

손에 들린 돈을 내려다보던 이재는 왠지 모를 자괴감에 한숨을 쉬었다.

“어? 형! 언제 왔어?”

도경의 소리에 고개를 들자 처음 보는 사람이 서 있었다.

그러나 이재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도경이 입이 닳도록 말하던 「우리형」, 호명그룹 회장의 큰아들이자 도경의 배다른 형, 차도언이었다.

* * *

"누나, 우리 형 진짜 멋있어요."

"우리 형 키도 엄청 크고 공부도 되게 잘해요."

"우리 형이 방학 때 미국 가면 야구장 데려가 준대요."

도경이 입에 달고 살던 「우리 형」.

호명그룹의 차재성 회장의 늦둥이 아들인 도경은 천진하기만 했다.

이재를 처음 만났던 열다섯 살 때부터 제 집안 얘기를 이렇게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곤 했다.

형의 이름이 차도언이라는 것과 미국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다는 것.

이번에 만났을 때 보니 여자친구가 또 바뀌었다는 것까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조잘댔다.

도경은 형과 나이 차가 열두 살이라고 했다.

형제간의 나이 차가 큰 게 놀랍긴 했지만, 그 이유는 전 국민이 알고 있었다.

물론 도경이 제 입으로 다시 설명해 주기도 했다.

"우리 형 엄마가 돌아가시고 우리 엄마가 아빠랑 결혼한 거래요."

도경이 그러는 건 쓸데없는 얘기로 어떻게든 과외 시간 동안 공부를 덜 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건 마음 붙일 곳 없는 아이가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이기도 했다.

이 큰 집에 도경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이재뿐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재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도경의 형 이야기가 지겨웠다.

처음엔 잠자코 들어주었지만 나중엔 너도 형처럼 멋진 사람 되려면 지금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한다며 화제를 전환해 버리기도 했다.

그러면 도경은 입을 삐죽이며 금세 수업을 싫증 내기 일쑤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재는 호명 가에서 일하는 5년 동안 한 번도 도경의 형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미국에 있다는 그 형은 좀처럼 한국에 오는 일이 없었다.

방학이면 도경이 미국에 가서 더러 만나기도 하는 모양이었지만, 그마저도 도경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게 전부였다.

때때로 도경이 말하는 그 형이 실존 인물이기는 한 걸까 의심도 했다.

도경은 그런 거짓말을 하고도 남을 만큼 엉뚱한 녀석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도경이 말하던 그 「우리 형」이 눈앞에 있었다.

“형! 온다는 말 없었잖아.”

“내가 집에 오는데 너한테 보고해야 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놀라서 그렇지.”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도경의 머리를 쓰다듬는 도언의 손길은 사뭇 다정했다.

그는 180센티미터가 훌쩍 넘는 도경보다 키가 컸다.

깡말라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도경과 달랐다.

두툼하게 벌어진 어깨와 걷어 올린 셔츠 아래 드러난 팔 근육까지, 도경과 나이 차가 여실하게 드러나 보였다.

겉으로만 보아도 도언은 완벽한 어른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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