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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레비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08 22:31:15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올려다보는 도경을 모른 체하며 이재는 손을 내밀었다.

“차 키."

도경의 시선이 느리게 이재의 손으로 내려왔다. 

대답 없이 멍하니 바라보는 도경에게 이재가 재촉했다. 

"차 키 내놓으라고."

"......차 키?"

도경이 마치 처음 듣는 말처럼 중얼대며 물끄러미 이재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이재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삼키며 다시 말했다.

"차 키, 어디 있어?" 

“아아...... 차 키.”

뭐가 재밌는지 킥킥대던 도경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주차 해준다고, 가져갔지. 누구더라? 그 형이......"

발렛을 맡겼다는 뜻이었다. 

이재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도경의 말을 끊었다.

“알았으니까 이제 일어나.”

평소와 다르게 쌀쌀맞은 이재에게 기가 죽은 도경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얼른."

이재의 재촉에 도경이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 달라는 뜻이었다.

이재는 기막힌 듯이 도경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씨발, 차도경, 갈 거면 빨리 가라고! 분위기 깨지 말고!”

누군가 성마르게 짜증을 내자 민망해진 건 이재였다.

도경은 그것 보라는 듯 내민 손을 거두지 않고 어서 잡으라고 흔들었다.

할 수 없이 그 손을 잡아 일으켰다.

이재의 손을 잡고 일어난 도경은 비틀거리며 그녀에게 기댄 채 어깨를 감쌌다.

“가자, 누나.”

저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도경을 끌고 나오는데 홍주가 그런 이재에게 손을 흔들었다.

“누나아 안녕히 가세요. 됴경이는 조케따. 첫사랑 누나가 데리러도 오고.”

이재가 째려보자 홍주가 낄낄댔다.

한 손으로는 제 허벅지 위에 앉은 여자애의 가슴을 주물럭거리면서 나불대는 꼬락서니가 한심했다.

이재는 말을 섞기도 싫어 빠르게 VIP 룸을 나왔다.

***

주차장에 세워진 차 뒷자리에 도경을 겨우 밀어 넣은 이재는 준비해온 수표 몇 장을 웨이터에게 건넸다.

취한 도경을 차까지 같이 데려다준 값이라기엔 제법 많은 액수였지만 어차피 제 돈도 아니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도경님은 저희 VIP 손님이신데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그럼요, 그럼요. 도경님 취하신다 싶으면 바로 콜! 드리겠습니다.”

이재는 과하게 너스레를 떠는 웨이터에게 짧게 고개를 숙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출발하면서 보니 웨이터는 떠나는 차를 향해 여전히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먹고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네.”

새파랗게 어린 도경에게 VIP라며 조아리는 웨이터나 새파랗게 어린 녀석 뒷치다꺼리 하는 저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복잡한 클럽 앞을 빠져나와 큰 도로로 접어들자 그제야 속도가 났다.

도착하면 11시는 안 될 것이다.

그럼 오늘 밤은 편하게 잘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 이왕 퍼마실 거면 초저녁에 마셔라. 나도 새벽에 편하게 잠 좀 자게.

룸 미러로 슬쩍 뒷자리를 보니 어느새 깨어난 도경이 눈을 껌뻑거리고 있었다.

“어? 언제 일어났어?”

“지금.”

“괜찮아? 속 안 좋은 거 아니야?”

“괜찮아.”

언제 인사불성이었나 싶게 도경은 멀쩡하게 말을 했다.

“근데 누나, 나 샤워했어?”

“뭔 소리야?”

“나 왜 젖었지? 머리도 그렇고 옷도 축축한데?”

그럼 그렇지.

이재는 헛웃음이 나왔다.

저렇게 멀쩡한 얼굴로 헛소리를 해대니 아직도 이 모양 이 꼴로 저 녀석 옆에 있는 건가 싶었다.

저 해맑은 녀석을 어쩌면 좋을까.

“아 그거? 아까 클럽에서 어떤 못돼 처먹은 애가 너한테 물을 뿌리더라?”

잠든 도경을 깨우려 물을 뿌린 건 자신이었지만 이재는 시치미를 뗐다. 

“어? 누가?”

도경이 상체를 벌떡 세우며 운전석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축축한 머리카락이 이재에게 닿았다.

“누군지 나는 모르지. 어떤 애가 너한테 일어나라고 막 물을 뿌리길래 내가 말리느라 혼났다니까.”

“어떤 새끼야? 홍주 그 새끼가 그런 거 아니야?”

“거기 하도 어두워서 얼굴이 잘 안 보이더라고.”

이재도 도경을 대하는 데는 도가 텄다. 

뻔뻔하게 이어지는 이재의 말에 도경이 버럭 화를 냈다.

“이홍주 이 새끼, 가만 안 둬!”

당장이라도 클럽으로 돌아가 홍주를 어쩌기라도 할 듯 씩씩대는 도경을 보며 이재는 웃음을 참았다.

“그러니까 그런 애들이랑 놀지 마. 애들 질이 안 좋아 보이더라.”

“나는 뭐 질이 좋나?”

도경이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아차 싶어 이재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도경이 네가 어때서?”

“끼리끼리 노는 거지.”

알긴 아는구나, 싶다가도 어쩐지 풀이 죽은 도경이 짠해서 이재가 말을 덧붙였다.

“도경이 넌 다르지.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공부 좀 하고…….”

“아아, 그런 얘기 할 거면 그만해.”

도경이 귀를 막는 시늉을 하며 말을 안 듣자 이재도 참지 못하고 성질을 내고야 말았다.

“네가 어디라도 대학에 가야 나도 이 신세 면하지! 내가 언제까지 네 과외 선생이나 해야겠어?”

“왜? 월급이 적어? 내가 엄마한테 누나 월급 올려 주라고 말할까?”

금세 처진 눈으로 이재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도경이 기가 막혔다.

“말이 과외 선생이지. 이건 거의 보모 아니니? 네 뒤치다꺼리 하다가 내 인생 다 보내게 생겼다고.”

“그럼 나한테 시집오면 되지.”

“이 새ㄲ…….”

핸들을 잡은 이재의 손이 부들거렸다.

도경을 째려보아도 그는 헤헤 웃을 뿐이었다.

“어어, 누나 앞을 봐야지. 나 이제 겨우 스무 살 됐는데 죽기는 아깝잖아.”

“차도경, 경고하는데 까불지 마라.”

“까부는 거 아닌데. 결혼하자는 거 진짠데. ”

뒤에서 도경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재는 못 들은 척했다.

그건 저 녀석이 15살 때부터 하던 지겨운 레퍼토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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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는 홀린 듯 도언을 보았다.반듯한 이마와 짙은 눈썹 밑에 길게 난 눈은 도경을 향한 웃음으로 반쯤 감겨 있었다.오뚝하게 솟은 코 아래 선이 짙은 입술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그러니까 한마디로 그는 참 잘생긴 남자였다.도경이 제 형이 잘생겼다고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그러려니 했던 게 미안할 지경이었다.“차도경, 이제 컸다고 술을 마시고 다닌다, 이거지?”“왜 이래? 나 이제 스무 살이야.”“아, 그러세요? 스무 살?”형제의 웃음소리가 호명 가 안채를 울렸다.그 소리에 이재의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지금 여기는 이재가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오랜만에 이루어진 형제의 만남이었고, 어쩌면 호명 가의 단란하고도 비밀스러운 가족 모임일 수도 있었다.이재는 조심스레 뒷걸음을 치며 물러섰다.“그럼 전 이만…….”아직도 안 가고 있었냐는 얼굴로 돌아보는 안서희와 너는 누구냐는 듯이 쳐다보는 차도언의 시선에 이재는 얼굴이 홧홧해지는 것 같았다.그러나 이 순간 분위기 파악 못 하는 건 도경이었다.“누나.”“어, 어?”“여기 우리 형이야.”눈치 없이 이재를 불러세우고는 도경은 도언을 가리키며 해맑게 웃었다.이재는 저도 모르게 도경이 가리키는 손을 따라가다가 도언과 눈이 마주쳤다.순간 도언의 고개가 살짝 기울었다.굳이 인사를 나눠야 할 사람인가 의심하는 것처럼.너는 누구냐고 묻는 것처럼.“안녕……하세요.”이재가 어쩔 수 없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자 도언이 의례적으로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받았다.예의상. 건네는 인사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듯.“형, 내가 말한 적 있지? 과외 선생님. 이재 누나.”어느새 이재 곁에 다가온 도경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척 올리며 도언에게 소개했다.“우리 이재 누나 예쁘지?”이재가 당황하며 제 어깨에 올린 도경의 팔을 밀어내고 벗어났다.그 모습을 빤히 보던 도언의 머리가 바로 세워졌다.그리고 찬찬히 내려간 그의 시선이 이재의 손에 머물렀다.도경이 건네준 지폐를 꼭 쥔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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