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MELDEN“그 아이는…… 네가 아니라 내가 죽였으니까.”엄마의 말이 지하실 벽을 때렸다.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엄마가…… 누구를 죽였다고?”엄마는 입술을 떨었다.“세 번째 아이.”“내 아이?”“그래.”“왜?”엄마는 대답하지 못했다.나는 한 걸음 다가갔다.“왜 죽였어?”“죽이려고 한 게 아니었어.”“그럼?”“살릴 수가 없었어.”“거짓말.”내 목소리가 떨렸다.“엄마는 항상 똑같아. 뭔가 숨기고, 내가 물으면 나를 살리려고 그랬다고 하잖아.”엄마가 눈물을 흘렸다.“이번엔 진짜야.”“그럼 어디서 죽였어?”엄마는 지하실 구석을 바라봤다.“병원에서.”순간 도현이 끼어들었다.“그건 거짓말입니다.”엄마가 고개를 들었다.“뭐?”“아이를 죽인 게 아니라 버렸잖아요.”“도현아.”“저는 봤습니다.”나는 도현에게 다가갔다.“뭘 봤는데?”도현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그날 병원에서 아이가 세 명 태어났습니다.”“……”“첫째는 제가 데려갔고, 둘째는 권이록이 데려갔어요.”나는 내가 키운 사율을 바라봤다.그럼 이 아이가 둘째인가.“세 번째는?”도현이 엄마를 가리켰다.“정애 씨가 데려갔습니다.”엄마가 고개를 숙였다.“그래.”“그 뒤에 어떻게 됐어?”엄마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엄마의 어깨를 붙잡았다.“말해.”“연희야…….”“말하라고!”엄마가 울면서 입을 열었다.“아이를 데리고 병원에서 나왔어.”“어디로?”“집으로.”“그다음?”“그런데 아이가 숨을 쉬지 않았어.”나는 굳어버렸다.“……죽은 거야?”엄마가 고개를 저었다.“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처음에는?”“그런데 아이가 울었어.”순간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굳었다.“뭐?”“분명히 울었어.”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그런데 내가 다시 봤을 때는…….”엄마가 입을 다물었다.“뭘 봤는데?”“아이가 없어졌어.”나는 숨을 멈췄다.“없어졌다고?”“침대에 분명히 눕혀놨는데 사라졌어.”권이록이 낮게 웃었다.“이
친자확인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종이에 적힌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틀릴 리 없었다.십 년 전 내가 죽었다고 믿었던 남자.강도현.“……도현이?”내 입에서 이름이 새어 나왔다.권이록이 낮게 웃었다.“이제 기억나?”“닥쳐.”“그 남자가 네 첫 번째 아이의 아버지야.”“닥치라고!”나는 친자확인서를 움켜쥐었다.“도현이는 죽었어.”“누가 죽였는데?”나는 대답하지 못했다.내가 죽였다고 믿었다.그날 밤, 나는 분명 그의 피를 봤다.그리고 권이록이 말했다.‘이제 끝났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그 뒤로 도현이는 사라졌다.시체도 없었다.그런데 나는 그가 죽었다고 믿었다.“시체를 본 적 있어?”언니가 물었다.나는 고개를 들었다.“……없어.”“그럼 죽었다는 걸 어떻게 믿었어?”그 순간 머리가 쿵 울렸다.기억 속 권이록의 목소리가 겹쳐졌다.‘연희야, 네가 사람을 죽였어.’‘네가 직접 칼을 들었잖아.’‘그러니까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게 널 위한 거야.’나는 천천히 권이록을 바라봤다.“당신이 나한테 거짓말한 거야?”그는 웃지 않았다.“전부는 아니야.”“그럼 도현이는 살아 있어?”대답 대신 지하실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한 걸음.또 한 걸음.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어둠 속에서 남자가 걸어 나왔다.나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을 멈췄다.“……도현아.”죽었다고 믿었던 남자였다.얼굴 한쪽에는 흉터가 있었지만 분명 강도현이었다.그가 나를 바라봤다.눈빛에는 분노보다 슬픔이 먼저 담겨 있었다.“오랜만이다.”내 다리가 풀릴 것 같았다.“살아 있었어?”“그래.”“왜 나한테 안 왔어?”그가 씁쓸하게 웃었다.“네가 나를 죽이려고 했으니까.”“아니야.”“그날 네가 칼을 들었어.”“그건…….”“그리고 네가 내 앞에서 울면서 말했지.”도현의 목소리가 떨렸다.“미안하다고.”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또 기억이 떠올랐다.피투성이가 된 도현.내 손에 들린 칼.그리
엄마의 손에 들린 칼이 바닥의 불빛을 받아 번뜩였다.나는 본능적으로 아이 앞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칼 내려놔.”엄마는 움직이지 않았다.“누가 진짜 사율인지 알아야 해.”“그걸 왜 내가 결정해?”“네가 엄마니까.”나는 이를 악물었다.“둘 다 사율이야.”“아니.”엄마가 고개를 저었다.“한 명은 네가 낳았고, 한 명은 네가 키웠어.”“그게 무슨 차이야.”“엄청난 차이지.”뒤에서 권이록이 웃었다.“그래서 네가 선택해야 하는 거야.”나는 그를 노려봤다.“당신이 뭔데 내 아이를 시험해?”“네가 나한테 부탁했으니까.”“또 그 소리야?”“기억 안 나겠지.”권이록이 휴대전화를 꺼냈다.화면에 영상이 재생됐다.십 년 전의 나였다.나는 아기를 안고 울고 있었다.“이 아이를 살려주세요.”영상 속 내가 애원했다.“대신 제가 모든 걸 잊게 해주세요.”나는 숨을 멈췄다.영상 속 권이록이 물었다.“왜 기억을 버리려고 하는데?”내가 대답했다.“제가 기억하면…… 두 아이 모두 죽어요.”영상이 멈췄다.나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두 아이?”권이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내 옆에 있던 아이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엄마.”작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나는 아이를 끌어안았다.그때 지하실 반대편에서 문이 열렸다.경찰과 함께 또 다른 사율이 들어왔다.“엄마!”내가 키우던 아이였다.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달려왔다.나는 두 아이 사이에 서게 됐다.똑같은 얼굴.똑같은 목소리.그리고 똑같은 목에 걸린 목걸이.나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너희 둘 중 한 명은…….”말을 잇지 못했다.그 순간 엄마가 칼을 바닥에 내려놓았다.“연희야.”“왜?”“아이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뭘?”“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나는 두 아이를 바라봤다.“내가 너희를 처음 만난 날, 내가 뭐라고 했어?”먼저 내가 키운 사율이 대답했다.“엄마가 나한테 사랑한다고 했어.”내 앞에 있던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네가 낳은 첫 번째 아이.”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무슨 소리야?”언니는 내 손목을 놓지 않았다.“사율이 첫째가 아니야.”“그럼 내 첫 번째 아이가 따로 있다는 거야?”“그래.”“어디 있는데?”언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그 아이 때문에 네 기억을 지운 거야.”나는 숨을 삼켰다.“누가?”“권이록.”그 이름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권이록이 내 기억을 지웠다고?”“정확히는 네 기억을 지우도록 만든 사람이 따로 있어.”“누구?”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침대 옆 서랍에서 낡은 휴대전화를 꺼냈다.“이거 네 거야.”화면을 켜자 비밀번호를 누르지도 않았는데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사진 속에는 내가 있었다.십 년 전의 나.그리고 내 품에는 갓난아기가 있었다.나는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이 아이……”“네 첫째야.”“말도 안 돼.”사진 속 아이의 손목에는 작은 붉은 점이 있었다.그 순간 이상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작은 손.울음소리.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계속 반복해서 했던 말.‘절대 데려가지 마.’나는 머리를 움켜쥐었다.“으윽…….”“연희야!”눈앞이 흔들렸다.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병원 복도.내가 아기를 안고 뛰고 있었다.뒤에서는 권이록이 따라오고 있었다.“연희야! 멈춰!”“싫어!”내가 울면서 소리쳤다.“이번에는 절대 안 뺏겨!”그리고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섰다.엄마였다.“연희야, 아이를 나한테 줘.”“싫어!”“그래야 네가 살 수 있어.”“엄마가 또 거짓말하잖아!”나는 아기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내 머리를 가격했다.화면이 꺼지듯 기억이 끊겼다.나는 침대에 기대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기억났어.”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내가 널 찾았어.”“그 아이는?”언니가 입술을 깨물었다.“살아 있어.”“어디?”“권이록이 데리고 있어.”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 새끼가 어디로 갔어?”“네 집.
“네 쌍둥이 언니.”그 말을 듣는 순간, 손끝에서 힘이 빠졌다.사율이 내 품에서 꿈틀거렸다.나는 아이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내 언니는 죽었어.”“아니.”권이록이 고개를 저었다.“죽은 걸로 만들어졌어.”“그럼 내가 봤던 시체는?”“네가 본 건 시체가 아니야.”숨이 턱 막혔다.십 년 전.피로 얼룩진 욕실.깨진 거울.바닥에 쓰러져 있던 여자.그리고 내 손에 들려 있던 칼.나는 그날을 수없이 떠올렸다.그 여자의 얼굴을.나와 똑같았던 얼굴을.“그럼 내가 죽였다고 생각했던 여자는……?”권이록이 대답하려는 순간이었다.엄마가 벌떡 일어났다.“그만해!”“왜요?”“연희한테 더 이상 말하지 마.”“이미 늦었습니다.”권이록이 나를 바라봤다.“오늘은 끝까지 알아야 합니다.”엄마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나는 엄마에게 다가갔다.“엄마.”“……”“내 언니가 살아 있어?”엄마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나는 그 침묵으로 충분히 알아버렸다.“어디 있어?”“연희야.”“어디 있냐고!”내가 소리를 지르자 사율이 놀라 울기 시작했다.나는 아이를 달래면서도 엄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그때 현관문이 열렸다.경찰관이 급하게 들어왔다.“연희 씨.”“왜요?”“방금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무슨 일인데요?”경찰관은 잠시 망설였다.“신원 미상의 여성이 응급실에 들어왔습니다.”심장이 내려앉았다.“그 여자가……?”경찰관이 내 얼굴을 바라봤다.“연희 씨와 얼굴이 거의 똑같다고 합니다.”나는 사율을 엄마에게 넘겼다.그리고 그대로 뛰쳐나갔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응급실 앞에는 경찰이 서 있었다.“안에 있어요?”“네.”문손잡이를 잡은 손이 떨렸다.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침대 위에 여자가 누워 있었다.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얼굴 절반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하지만 눈매만큼은 선명했다.나와 같았다.내가 숨을 삼키는 순간, 여자가 눈을 떴다.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웃었다.“……드디어 왔네.”나는 얼어붙
“사율은 자기 아들이라고 합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엄마가…… 뭘 낳아?”나는 경찰차가 멈추기도 전에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집 현관은 활짝 열려 있었다.경찰 두 명이 거실에 서 있었고, 소파에는 엄마가 앉아 있었다.정애.그 품에 사율이 있었다.“사율아!”내가 달려가자 아이가 나를 보고 손을 뻗었다.“엄마!”그 한마디에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나는 아이를 끌어안았다.그런데 엄마가 이상하리만큼 담담했다.“데려가.”“뭐?”“네 아들 아니니까.”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엄마는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사율은 네가 낳은 아이가 아니야.”“그럼 누구 아들이야?”“내 아들.”순간 헛웃음이 나왔다.“엄마가 미쳤어?”“그래.”엄마는 너무 쉽게 인정했다.“미쳤어. 너 하나 살리겠다고 내가 미친년처럼 살았어.”“무슨 소리야.”“십 년 전으로 돌아가야 해.”그 말과 함께 엄마가 테이블 위에 낡은 봉투 하나를 올려놓았다.봉투에는 병원 도장이 찍혀 있었다.내 손이 떨렸다.“이게 뭐야?”“출생기록.”봉투를 열자 서류가 나왔다.나는 첫 줄부터 읽었다.산모.정애.나는 숨을 멈췄다.“……엄마.”“그래.”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사율을 낳은 사람은 나야.”“거짓말.”“네가 믿든 말든 상관없어.”“엄마가 사율을 낳았다고?”“응.”나는 서류를 다시 확인했다.산모 이름도 정애.출산일도 사율의 생년월일과 일치했다.그런데 이상했다.내가 사율을 처음 만났던 날.그 아이는 분명 나를 보자마자 엄마라고 불렀다.“그럼 왜 사율이 나를 엄마라고 불러?”엄마가 입술을 깨물었다.“네가 그렇게 가르쳤으니까.”“내가?”“아니.”엄마가 고개를 저었다.“네가 아니라…… 그 사람이.”“누구?”대답 대신 엄마가 현관 쪽을 바라봤다.나는 뒤를 돌아봤다.진짜 권이록이 서 있었다.그는 거실로 들어오자마자 사율을 바라봤다.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빛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