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월영은 당황했다.간담이 서늘하고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강현준은 더 이상의 얘기 없이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그러더니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고월영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그는 여왕일 리가 없다.눈물점은 그녀가 손수 그려준 것이고 문지르면 지워지는 것이었다!그러나 어제의 눈물점은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았다.도대체 왜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한 거지?고월영은 호흡을 가다듬고 가림천을 열었다.그녀는 강현준의 손을 피해 마차의 변두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마차에서 내렸다.강현준이 싸늘한 표정으로 손을 내렸다.멀지 않은 곳에서 부현공주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왔다.“현우 오라버니, 정말 오랜만입니다!”양왕 강남정도 웃으며 다가왔다.“폐하께 인사 드리러 온 거야? 신혼 축하해!”고월영은 긴장한 표정으로 강현준의 눈치를 살폈다.그는 여전히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강현우의 기품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부현공주와 양왕 전하는 정말 아무런 낌새도 눈치 못 챈 건가?두 사람은 강현준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함께 대전으로 먼저 들어가 버렸다.지언이 고월영에게 다가와서 공손히 말했다.“왕비마마,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대전으로 드시어 황제폐하와 황후마마께 인사를 올리지요.”“그… 그러자꾸나.”고월영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강현준을 따라갔다.궁중예절은 까다롭고 번잡했다.그런데 아무도 현왕의 위장을 알아채지 못했다.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고월영이 예를 올리는 과정을 다 지켜보고는 입을 열었다.“태후께서 요즘 건강이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궁에 왔던 김에 태후마마도 뵙고 가고 싶군요.”황제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황후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월영에게 말했다.“오황은 어렸을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았지요. 앞으로 왕비가 옆에서 많이 보필해 주세요.”고월영은 그 말이 당혹스러웠다.여왕의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다니? 그와 일년을 교제했지만 한 번도 어디 아픈 티를 낸 적은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놀란 고월영이 다급히 그를 밀쳤다.강현준은 싸늘한 얼굴을 하고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이 몸은 폐하와 황후마마께 거의 얼굴을 비출 일이 없어. 하지만 태후마마와는 아주 가까운 사이지.”그 말을 들은 고월영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그리고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며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안으로 들어가기 전,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여왕 전하는 어디 가셨나요?”“벌써 황가의 내부사정에 관여하고 싶은 것이냐?”강현준이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고월영은 다급히 고개를 흔들었다.“그런 거 아니옵니다!”그녀는 그저 언제 강현우를 만날 수 있을지 궁금했을 뿐이다.강현우가 돌아오면 이 난감한 상황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그녀는 더 이상 현왕과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항상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느낌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태후는 일찍부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고월영은 오래도록 태후와 담소를 나누었다.현왕은 대화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영안궁에 온 뒤로 평소보다는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가끔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미소라기에는 어딘가 싸늘한 미소였지만 냉기 풀풀 흘리던 모습과 비교하면 많이 부드러워진 모습이었다.매번 현왕이 웃을 때면 옆에서 시중을 들던 시녀들이 얼굴을 붉히며 이상 반응을 보였다. 보고 있는 고월영이 다 민망할 정도였다.차갑고 인간미 없는 남자이지만 매력은 충만했다.걸어 다니는 조각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그렇게 태후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녁 때가 되었다.식사를 마치고 태후는 쉬러 갈 시간이 되었다.고월영이 드디어 집에 갈 수 있겠구나 안심하던 순간, 태후가 말했다.“오늘은 이곳에 묵고 가려무나. 내일 아침에 왕비와 같이 태화전에 가서 조상님들께 문안을 드리고 돌아가는 게 좋겠어. 하루빨리 좋은 소식 있게 굽어살펴달라고 기도를 올려야지.”고월영은 크게 당황하며 말했다.“태후마마, 왕부는 궐과 그리 멀지도 않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고 내일 아침 일찍 입궐하는 게 좋
“저는 현왕 전하께 그 어떤 마음도 품은 적 없습니다!”고월영이 바둥거렸지만 몸은 어느새 강현준의 품에 갇혀 버렸다.그는 훤칠한 몸으로 점점 그녀를 압박했다.이는 명백히 선을 넘은 처사였다.고월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이거 놓으세요! 자중하시옵소서, 현왕 전하!”“자중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여왕비가 아닌가?”강현준이 싸늘하게 콧방귀를 뀌며 반박했다.“먼저 내 품에 달려든 사람도 여왕비였지 않나.”“여왕비의 신분으로 왕부에 시집온 사람이 어찌 한번도 아니고 매번 형인 나에게 몸을 던지는 거지? 여왕비야말로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왕부에 시집온 게 아닌가?”그의 시선이 그녀의 목덜미에 머물렀다.하얀 목덜미에는 남자가 남긴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흔적만 보아도 어젯밤 그들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 수 있었다.강현준의 눈빛이 점점 탁해졌다.고월영은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치려 했지만 그의 몸에서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강현우가 그녀를 안으려고 했을 때도 이 정도로 몸이 뜨거웠던 것 같다.강현준이 점점 몸을 압박해 오자 그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고월영은 눈물을 글썽이며 다급히 말했다.“현왕 전하, 왜 이러십니까? 이거 놓으세요!”“먼저 사내의 품에 몸을 던져 놓고 왜 이리 순진한 척을 하는 거지?”그의 목소리는 싸늘했지만 맞닿은 그의 피부는 데일 정도로 뜨거웠다.가까이 몸을 밀착했기에 고월영은 점점 딱딱해지는 그의 신체적 변화를 세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이건 너무해! 선을 넘었어!’“현왕 전하, 당신은 제 부군의 형님이십니다!”고월영이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소리쳤다.하지만 그럴수록 두 사람의 몸이 더 질척하게 엉킬뿐이었다.참을 수 없는 수치심이 올라왔다.“이거 놓으세요, 전하!”강현준은 고개를 숙이고 두려움에 떠는 그녀의 얼굴을 감상했다.“왕비는 이 몸이 현우의 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 품에 몸을 던졌잖느냐?”먼저 다가온 여자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정말 그런 거 아니옵니다.
강현준은 고월영을 풀어주고 궁녀에게 다가갔다.당황한 고월영이 뒤에서 그를 말렸다.“전하, 그러지 마세요!”전설 속 현왕은 잔인하고 무자비하기로 그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한낱 궁녀에게 제수와 뒤엉켜 있는 모습을 들켰으니 살인으로 입막음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했다.“현왕 전하,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옵소서….”현왕이 뚜버뚜벅 다가가자 궁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이 몸이 누구라고?”강현준은 궁녀의 앞에 다가가서 싸늘한 시선으로 궁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다시 말해 보거라. 이 몸이 누구라고?”“현… 악!”강현준의 발길이 궁녀의 손등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전하!”고월영은 다급히 다가가서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궁녀의 손가락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극심한 고통에 궁녀는 정신이 아늑해졌지만 살기 위해서 입술을 질끈 깨물고 대답했다.“여… 여왕 전하.”근처에 있던 호위대가 소리를 듣고 다가왔다.“네가 오늘밤 만난 이가 누군지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강현준은 바로 발을 들어 궁녀를 걷어찼다. 궁녀는 그대로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고월영은 다가가서 상태를 확인하려 했지만 강현준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왕비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까 이 몸과 무엇을 하고 있었지?”강현준의 시선이 고월영의 목덜미를 뚫어지게 응시했다.고월영은 숨이 턱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현왕 전하께서는… 궁에 익숙하지 않는 저를 배려하시어 같이 산책을 하고 계셨습니다.”강현준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산책? 그게 다인가?”그는 사악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여왕비가 이 나의 몸에 불을 지펴서 이 몸이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왕비를 겁탈하려 한 게 아니고?”고월영은 이 인간과 더 같이 있다가는 제 명에 못 죽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그녀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 대답했다.“현왕 전하는 농담도 잘하십니다. 그냥 산책 중이었습니다.”“공사가 다망한 분을 이리 잡아두는 것은 아닌
고월영은 박 상궁이 들어오기 전에 신속하게 강현준의 눈가에 눈물점을 완성했다.그녀가 눈썹붓을 바닥에 던진 순간, 박 상궁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그들의 모습을 본 박 상궁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감탄하듯 말했다.“두 분은 정말 금슬이 좋으십니다!”고월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박 상궁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문제점을 발견했다.조금 전에 너무 조급했던 탓에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이미 그의 무릎에 올라타고 있었다!그녀는 죄책감이 들었다.그녀가 당황하며 내리려는 순간, 뒤에서 단단한 손이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강현준은 그녀를 껴안으며 단단히 품속에 가두었다.“혀… 전하, 보는 눈이 많습니다!”고월영이 얼굴을 붉히며 다급히 말했다.강현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냉소를 지었다.“박 상궁은 언제까지 이 몸이 비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 생각인가?”고월영은 다급히 그의 손목을 잡고 힘껏 밀쳤다.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속이 탔다.강현준은 여전히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그녀의 얼굴에 고정했다.‘무례를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지!’그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고월영은 후회막급이었지만 무를 수도 없었다.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박 상궁이 어서 나가주기만을 기도했다.“태후께서 보내신 탕약인가?”고월영이 먼저 말을 걸었다.정력 보강에 좋은 약이라고 했으니 몸에 좋은 재료들로 끓인 탕약일 것이다.어차피 먹고 죽는 약도 아니고 태후께서 여왕을 무척 아끼시는 것 같았으니 그들을 해할 리도 만무했다.박 상궁인 곧바로 탕약을 들고 다가왔다.“소인이 눈치가 없었네요. 국사께서는 탕약을 식기 전에 드셔야 효과가 좋다고 하셨습니다.”상궁은 하나를 고월영에게 건네고 다른 한 그릇은 현왕에게 건넸다.“전하도 어서 드시지요. 태후마마의 마음이 담긴 탕약입니다.”강현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탕약을 노려보았다.“제가 전하 몫까지 마실게요.”고월영은 박 상궁을 빨리 내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래서 현왕 몫까지 대
가을밤에 땀이 날 정도로 더울 수가 있나? 이상했다.고월영은 바람이라도 쐴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런데 두 걸음도 채 가지 못해서 다리에 힘이 풀리며 몸이 뒤로 기울었다.하지만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며 쓰러지는 추태는 없었다. 현왕이 다가와서 그녀를 받아주었기 때문이었다.“전하, 조금 전까지… 침상에 있었던 것 아니었나요?”사람의 움직임이 이 정도로 빠를 수가 있나?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지금 문제는….“더워요….”점점 더 더워지고 있다는 점이었다.강현준의 두 눈이 혼탁해졌다.그녀만 더운 게 아니라 그도 점점 열기를 느끼고 있었다.뜨거운 기운이 아랫배로부터 퍼지며 올라오더니 머리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그는 그제야 탕약의 정체를 알아챘다.국사가 특별히 제작한 몸에 좋은 탕약은 사실 최음제였던 것이다!“전하, 너무 힘듭니다.”강현준보다 내력이 약한 고월영은 이내 약기운에 정신이 혼미해졌다.그가 그녀를 침대로 데려가서 눕히려던 순간, 그녀가 갑자기 손을 뻗어 그를 끌어안았다.“몸이 녹아내릴 것 같습니다….”여자의 부드러운 손이 그의 목을 휘감았다.분명히 힘은 전혀 들어가지 않은 것 같은데 강현준은 그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그의 몸도 손길을 따라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아무리 강대한 내력의 소유자라도 여자가 품에서 여기저기 불을 질러대는데 당해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강현준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현왕 전하….”“지금 네가 안고 있는 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냐?”강현준이 탁한 목소리로 따지듯 물었다.고월영도 그가 현왕이라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그럼에도 그를 안고 있어야 이 온몸을 태워버릴 것 같은 열기가 사그라들 것 같았다.“전하….”그녀가 팔을 흐느적대며 그의 허리를 껴안았다.여자의 나른한 몸이 그의 품을 파고들며 불안하게 뒤틀렸다.아무리 자제력이 강한 강현준이라지만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이성이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내 몸에서 떨어지지 못할까…
고월영의 호응에 강현준은 마침내 모든 이성을 잃어버리고 심연으로 떨어졌다.그는 거칠게 그녀의 옷을 벗겨냈다.하얗고 둥근 어깨가 그의 시야에 드러났다.장기간 전장에 몸담고 있어서 거칠어진 그의 손길이 옷섶을 가르고 그녀의 탐스러운 가슴을 움켜쥐었다.그 순간 고월영은 온몸에 힘이 빠져서 나른하게 그의 몸에 몸을 맡겼다.“현왕 전하….”그녀가 신음을 토하듯 그를 불렀다.강현준은 말랑한 촉감을 꽉 움켜쥐고 축 가라앉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괜찮다. 내가 여기 있지 않느냐.”정말 미치도록 매력적인 목소리에 그녀는 취해버렸다.“전하….”두 사람은 동시에 침대로 쓰러졌다.그의 거칠고 야성미 넘치는 숨결이 그녀를 집어삼켰다.그의 키스는 뜨겁고 거칠지만 동시에 달콤했다.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고월영은 상체를 들고 그의 손길에 호응했다.눈가에서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 베개로 떨어졌다.그녀는 자신이 뭘 하는지, 상대가 누구인지 사실 인지하고 있었다.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그녀의 몸은 게걸스럽게 그를 안고 키스하고 그의 열기에 열광했다!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그의 입술이 그녀에게서 떨어져 목선을 타고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고월영의 손이 그의 머리에 닿았다. 처음에는 밀어낼 생각이었으나 어느새 그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있었다.그녀는 제발 모든 것을 가지라는 듯이 그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왜 이렇게 된 거지?이분은 현우 오라버니의 형님이신데….“하아….”고월영은 무력감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성실한 몸은 그의 침입을 기다리고 있었다!눈깜빡할 사이에 옷이 바닥에 내던져졌다.강현준은 그녀의 품에서 고개를 들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녀를 바라보았다.뜨거운 손아귀가 그녀의 가녀린 발목을 잡고 힘껏 벌렸다.그가 위로 올라탔다.그냥 맞닿아 있을 뿐인데도 신음이 나올 것 같았다.고월영은 동시에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눈물이 주르륵 쉴 새 없이 흘렀다.그녀의 저주스러운 몸은 벌써
강현준이 힘들게 되찾아온 이성은 그녀의 부름으로 다시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었다.이불이 바닥으로 흘러내리자 물을 머금은 것 같이 하얀 피부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강현준은 눈을 감고 주먹을 꽉 쥐었다.그의 생각을 알 길 없는 고월영은 천천히 다가가서 그의 얼굴에 손을 뻗다가 그의 입가에서 새어 나온 핏방울을 발견했다.드디어 그녀도 이성이 잠깐 돌아왔다.현왕은 기를 운용하여 약효에 저항하고 있었다.그녀는 강력한 내력이 뒷받침하지 않았기에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녀는 그에게서 떨어질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의식이 다시 혼미해지고 작은 손이 현왕의 가슴을 여기저기 쓰다듬었다.그가 신경질적으로 그 손을 낚아챘다.중후한 진기가 손가락을 통해 고월영의 체내에 스며들었다.체내에서 솟구치던 열기가 점차 사그라들었다.조금은 편안해진 느낌이었다.그녀는 힘없이 그의 품에 축 늘어졌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고월영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두 눈에 총기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현왕 전하!”그는 피를 토하고 있었다.진한 피비린내가 그녀의 코끝을 강타했다. 그녀는 드디어 정신을 온전히 되찾았다.“아직도 힘드냐?”현왕이 물었다.고월영은 고개를 흔들고 그에게서 떨어지려고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어설프게 힘을 주다가 다시 그의 품에 안긴 꼴이 되어 버렸다.결국 현왕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부축해서 침대로 데려갔다.그는 이불을 그녀의 목까지 여며주었다.그제야 불쾌하게 치솟던 욕구가 조금 잦아들었다.고월영도 천천히 기력을 회복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둘은 동시에 조금 전 있었던 화면을 떠올렸다.조금만 더 늦었더라면!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강현준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경계심이 부족했던 탓이다. 여왕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말거라.”고월영은 당황했다. 항상 자신만 옳고 거만하게 굴던 현왕이 스스로 모든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