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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램프의 연기와 새벽의 숨결]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04 19:44:54

“음······.”

아스라한 새벽의 잔광이 철창 사이로 은은하게 스며들 무렵이었다.

지니는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밀어 올리며 가느다란 신음을 내뱉었다. 몽롱한 정신을 수습하며 주변을 살피는 그녀의 미려한 입술 사이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램프라는 좁디좁은 감옥에 갇혀 있다가 현신한 탓일까. 넘실거리는 마력을 자유자재로 갈무리하는 감각이 제법 무뎌져 있었다. 마력의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스르륵 정신을 잃었던 기억이 조각조각 떠올랐다.

시선을 슬그머니 옆으로 돌리자, 차갑고 딱딱한 목제 테이블에 불편하게 엎드려 잠든 스틸의 넓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공이라는 고귀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푹신한 침상을 온전히 제게 내어준 그의 고지식하고도 결벽적인 배려가 못내 안쓰럽고도 기특했다.

지니는 홀린 듯 손을 뻗어 그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손끝에 닿는 서늘하면서도 단단한 온기가 참으로 좋았다.

그녀는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머금은 채 전신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옅은 금빛 연기가 몽환적으로 일렁이더니, 테이블에 머물던 스틸의 큼직한 육신이 허공을 가로질러 침대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읏차······!”

고작 이 정도의 물리적 간섭에도 폐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지니는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철창 너머 복도를 살폈다. 꾸벅꾸벅 졸음에 취한 간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이 순간, 이 고요하고 어두운 감옥 안에서 그를 온전히 독점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었다.

그녀는 은밀한 사심을 품은 채 그의 곁으로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차가운 공기가 감돌던 침상 위로 지니의 농익은 마력과 금빛 연기가 화사하게 피어올랐다. 그녀는 스틸의 넓은 가슴팍에 작은 손을 얹고, 마치 하나가 되려는 듯 제 몸을 밀착시켰다.

그때였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스틸이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꼭 감싸 안았다. 커다란 손바닥이 지니의 잘록한 허리선을 타고 내려가 은밀한 둔덕 근처에서 멈춰 섰다.

“우리 주인님, 무의식 속에서는 이토록 철벽이라니.”

꿈결 속에서도 선을 지키려 애쓰는 그 고결한 저항이 지니의 웃음보를 자극했다.

“아음······ 신사답게······ 행동해야······.”

잠꼬대마저도 엄격하고 단정했다. 스틸 대공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사내였고, 고위 귀족 특유의 오만함보다는 절제된 품격을 갖춘 이였다. 여자가 제 몸을 유린하라고 넙죽 들이밀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면 중에도 철벽을 치는 그 고지식함이 되레 멋지게 보였다.

지니는 그의 얼굴 위로 손을 가져가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가만히 훑었다. 제 눈에는 충분히 매력적이건만, 인간들의 기준은 야박하기만 했다.

“일단 인간들의 평균적인 이목구비 위치와는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크기가 제멋대로인 감은 있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해?”

그녀는 장난스럽게 속삭이며 마력을 다시금 일깨웠다. 1mm의 미학.

지니의 손끝이 닿는 곳마다 스틸의 골격이 미세하게 재조정되었다. 투박했던 선은 날카로운 조각처럼 변모했고, 키 또한 3cm가량 늘려놓았다. 부족한 체력과 근력을 마력으로 덧칠하자 다시금 지독한 현기증이 일었다. 지니는 버거운 숨을 내뱉으며 스틸의 품을 파고들었다. 과도하게 소모된 마력을 채우기 위해선 그의 농밀한 양기가 절실했다.

“주인님······ 내일 만나······.”

지니는 내일 아침 그가 마주할 경이로운 변화를 상상하며, 그의 심장 박동 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은 잠 속으로 침잠했다.

***

“윽······!”

이튿날 아침, 침묵을 깨는 경악 섞인 외마디 비명이 지하 감옥 안을 울렸다.

스틸은 눈을 뜨자마자 제 곁에 오붓하게 누운 지니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분명 신사답게 제 팔을 베개 삼아 테이블에서 밤을 지새우려 했건만. 대체 어떤 음란마귀가 씌었기에 제 발로 침상에 올라가 그녀의 곁을 탐했단 말인가. 무의식중에 터져 나온 본능의 잔재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지니는 그런 소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뺨 위로 맺힌 식은땀이 못내 걸려, 스틸은 제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찬물을 적신 뒤 그녀의 이마에 조심스레 얹어주었다.

“아, 눈코입 위치 2mm 맞추려다 엘프 하나를 잡겠네. 이런 짓을 하고도 내가 사람인가······.”

밀려오는 자책감을 씻어내기 위해 그는 서둘러 간이 욕실로 향했다. 거울을 보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런데, 기분 탓일까.

허름한 욕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마구간 구유통에 비친 흉측한 몰골에 비하면 제법 사람답고 평범해진 느낌이었다. 아니, 평범을 넘어 어딘가 서늘하고 정갈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스틸은 비실비실한 제 몸을 가다듬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제복 상의를 벗어던졌다. 그리고는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윗몸일으키기를 시작했다. 간수들이 어수선한 기척에 눈을 비비며 철창 안을 살폈다. 스틸은 땀방울을 흩뿌리면서도 그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스쿼트, 팔굽혀펴기······ 평소의 루틴을 반복할수록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대신, 주체할 수 없는 힘이 혈관을 타고 솟구쳤다.

“왜 이러지? 몸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있나?”

터질 듯한 활력과 압도적인 힘에 스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

지하 감옥에서의 시간은 모호하게 흘렀다. 낮과 밤의 경계가 무너진 곳이었으나, 규칙적으로 배달되는 식사 덕에 나름 견딜 만한 나날이었다. 다만, 자꾸만 고양이처럼 파고드는 지니의 유혹에 철벽을 치느라 스틸의 정신력은 매일 한계치에 다다랐다.

그리고 마침내, 무거운 철문이 둔탁한 음향을 내며 열렸다.

“주인님! 이제 탈출이야?”

그를 호위하기 위해 나타난 기사들의 수는 입소 때보다 두 배는 늘어나 있었다. 검병에 손을 얹은 채 살기를 뿜어내는 그들의 기세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스틸은 태연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판결을 받으러 가는 것이겠지.”

어차피 죄가 없으니, 오히려 드디어 이 답답한 지하 감옥을 나갈 수 있다는 반가움이 먼저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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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틸은 군중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카데미 광장을 둘러싼 대리석 건물들은 마정석의 푸른 빛으로 반짝였고, 학생들은 걸어서 이동하는 반면 귀족들은 마차에 올라탄 채 지나갔다.이곳 건물은 현대 건축 양식처럼 꽤 잘 정비된 데다가 전기라는 개념은 없는 대신 마정석이라는 마력을 이용하여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확실히 자신이 기억하는 전생의 레투카 제국과는 차이가 있었다. 눈앞의 풍경에서 낯선 위화감을 느꼈다.현생의 이 몸이 지닌 기억 따윈 전혀 없었기에 스스로 이 상황을 살펴야 하니 그건 머리가 복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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