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진우는 두 손을 가볍게 들어 항복의 제스처를 보인 뒤,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야, 서운하네. 안 그래도 갈 참이었어.”그는 라운지를 떠나기 전 설화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나중에 밥 사기로 한 약속, 잊지 말아요.”그 순간 강현의 시선이 곧바로 설화에게 꽂혔다. 설화는 뺨을 스치는 따가운 눈기를 느끼면서도, 대답 대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이라 부를 만한 대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그의 눈치를 보며 그 알량한 호의마저 없던 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진우가 라운지를 빠져나간 뒤에도 강현은 한동안 출입구 쪽을 응시했다.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입술 사이로 짧은 마찰음이 새어 나왔다.“쯧.”별일 아니라는 듯 가벼운 소리였지만, 가라앉은 눈빛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설화가 먼저 시선을 피하지 않자, 강현은 맞은편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으며 재킷 단추를 하나 풀었다.“낮에 꽤 귀엽게 굴던데.” “……무슨 말씀이세요?” “기왕 긁을 거면 좀 더 세게 긁지 그랬어.”강현은 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말투가 오히려 사람의 속을 긁어놓기 충분했다.“제가 왜 그랬는지, 알고 계셨어요?”강현은 잔을 내려놓으며 테이블을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렸다.“내 신경 좀 건드려 보고 싶었던 거 아냐? 그 정도는 훤히 보였어.”설화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애써 흔들어 놓으려던 시도가 그에게는 투정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비참하고도 얄미웠다.“그래서요. 짜증은 나셨어요?”강현은 잠시 말없이 설화를 내려다보았다. 표정은 무심한 듯 서늘했지만, 그녀의 흔들림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시선은 집요했다.“전혀.”짧고 건조한 대답 뒤로 옅은 웃음이 스쳤다.“다음 알림이 언제 오나 기다리긴 했지. 마지막이 구천 원짜리 노트라서 좀 웃기긴 했고.”설화는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나름대로 던진 반항이 저 오만한 남자에게는 귀여운 장난쯤으로 소비되었다는 사실이 자존심을 긁었다.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설화는 양손에 든 쇼핑백을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가방 안에는 화장품과 단정한 옷, 책 몇 권이 들어 있었다. 서강현의 이름이 박힌 카드로 사들인 작고 사적인 전리품이었다. 소심한 복수인지, 상처받지 않은 척하기 위한 허세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현관문을 닫자, 집 안의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아침 내내 쓸고 닦은 덕분에 좁은 방은 평소보다 말끔했지만, 오히려 남의 집처럼 낯설었다.이런다고 그 사람이 눈 하나 깜빡일까.수십억 단위의 자금을 움직이는 서강현 대표에게 고작 몇십만 원의 결제가 타격이 될 리 없을 것이다. 그 사실에 헛웃음을 지으며 설화는 테이블 위에 짙은 회색 카드를 내려놓았다.그 카드가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서류로 묶인 채무자와 채권자. 필요할 때 불려 가고, 그의 변덕이 닿는 순간에만 잠시 곁을 허락받는 관계.설화는 벽시계를 확인했다. L호텔 더 라운지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새로 산 블라우스와 바지를 꺼낸 뒤 거울 앞에 서자, 흐트러진 마음부터 다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남자 앞에 설 때마다 같은 일을 반복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꺼내 쓰고, 흔들리는 속은 끝까지 감추는 일.***L호텔 정문 앞에서 설화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예전 같았으면 화려한 로비와 도어맨의 인사만으로도 어깨부터 굳었겠지만, 이제는 샹들리에의 빛도 서늘한 시트러스 향도 낯설지 않았다.자동문이 열리자, 설화는 차분하게 로비를 가로질렀다. 프런트 직원의 시선이 스쳤지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새로 산 검은 슬랙스와 흰 블라우스는 비싸지 않았지만 단정했고, 적어도 이곳에서 주눅 든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더 라운지 안쪽을 훑어봤지만, 강현은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오후 4시 45분이 떠 있었다. 설화는 창가 쪽, 시선이 덜 닿는 자리를 골라 앉았다.오후 5시 10분.약속 시각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서강현은 늦는 법이 없는 남자였다. 분 단위
그때였다. 책상 위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했다. 잠금 화면 위로 서강현의 이름과 문자가 떠올랐다.[지금쯤이면 일어났겠지.][오후에 시간 돼? 할 일이 있어.]똑같은 말투, 똑같은 거리감.언제나 ‘시간’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통보였다.방금 가족사진을 덮으며 애써 다잡았던 마음이, 그의 메시지 하나에 속절없이 현실로 곤두박질쳤다.늘 이런 식이었다. 자신이 필요할 때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손을 뻗어왔다. 하지만 그 손끝이 구원일지 벼랑 끝일지는 매번 부딪혀 보기 전엔 알 수 없었다.설화는 한참 동안 메시지를 내려다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자 봤어? 왜 답이 없어.재촉인지 다그침인지 모를 건조한 어조였다. 설화는 마른침을 삼켰다. 늘 그렇듯 알겠다고 대답하려다, 이번에는 입술을 다물고 손끝에 힘을 줬다.“대표님, 오늘은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요.”순간, 수화기 너머의 숨소리가 멎었다.— 급한 일?짧은 침묵 끝에 낮은 웃음이 짧게 섞여 있었다.— 내가 시키는 일보다 더 급해?질문처럼 들렸지만, 선택권을 묻는 말은 아니었다. 설화는 창가에 기대선 채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거절 한 번으로 채무와 생활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몇 시에 어디로 가면 되나요?”— 문자로 보낼게.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기고 곧이어 메시지가 도착했다.[오후 5시. L호텔 더 라운지.]설화는 화면을 끄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 쥐어짜 낸 용기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자신이 그의 세계에 들어간 게 아니라, 한쪽 발목만 붙잡힌 채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도 하루를 전부 내줄 수는 없었다.설화는 낡은 맨투맨 대신 대학 시절 입던 셔츠를 꺼내 다림질했다. 오후 약속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지원한 백화점 아르바이트가 확정되면 입고 갈 옷도 필요했다.***여름의 끈적한 열기는 한풀 꺾여 있었고 대학가 거리에는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다. 작은 샌드
화장대 거울 속 정유라는 티 하나 없이 완벽했다. 흐트러짐 없이 정돈된 머리와 붉은 입술, 태성건설그룹 막내딸이라는 이름까지. 태어나 단 한 번도 남의 자리를 부러워해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조금 전 L호텔 VIP 자선 파티에서 서강현 곁에 서 있던 여자를 보기 전까지는.‘유설화입니다.’거울을 바라보던 유라의 미간이 가늘게 일그러졌다. 검은 드레스도, 목에 걸린 푸른 보석도 그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강현은 그런 설화를 몇 번이나 돌아봤고, 정유라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던 방식으로 앞을 막아섰다.유라는 손에 쥔 머리빗을 화장대 위에 내려놓았다. 달칵, 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 울리자, 오래전 연회장의 풍경이 거울 위로 겹쳐 보였다.6년 전, 스무 살의 정유라는 아버지를 따라 정·재계 연말 모임에 참석했다. 아부와 웃음이 넘쳐나는 연회장 한가운데서 유독 혼자 다른 결을 가진 남자가 보였다. 네이비색 슈트, 샴페인 잔을 무심하게 쥔 손, 누구에게도 먼저 다가가지 않는 서늘한 눈.“안녕하세요. 서강현입니다.”의례적인 첫인사였지만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 순간, 유라는 잠깐 숨을 놓쳤다.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과 웃을 때만 얕게 패이는 보조개가 이상할 만큼 어울리지 않았다.서강현은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고, 사적인 감정은 더더욱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유라는 상관없었다. 처음에는 비즈니스를 핑계로 멀리서 맴돌았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파티와 골프 자리에 자연스럽게 그의 옆에 섰다. 그렇게 이어진 시간이 여섯 해였다.언젠가는 그 자리가 당연히 자신의 몫이 될 거라고 믿었다.“감히, 근본도 없는 게…….”유라의 붉은 입술 사이로 낮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고작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여자 하나 때문에 자신의 시간이 밀려나는 꼴은 볼 수 없었다.그녀는 협탁 위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미래드림 내부에 심어 둔 사람의 번호를 누르자 연결음이 두 번 울린 뒤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정유라 씨.“유설화.
강현이 L호텔 1층의 Noir Lounge에 들어선 것은 밤 11시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은은한 황색 조명이 흐르는 바 테이블 구석에 진우가 앉아 있었다.셔츠 단추를 두어 개 푼 진우는 잔을 느리게 돌리고 있었다. 입가에는 평소처럼 느슨한 기색이 걸려 있었다.“왔어?”강현은 대답 없이 맞은편 의자를 당겨 앉았다. 빗물이 몇 방울 튄 재킷을 가볍게 털어내는 몸짓은 흐트러짐 없이 정돈돼 있었다.“용건만.”진우는 소리 없이 입꼬리를 올리고 와인병을 기울였다. 붉은 액체가 잔을 채우는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의 정적을 깼다.“아까 설화 씨랑 잠깐 얘기해 봤는데.” “그래서.” “생각보다 단단하더라.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도 있고.”강현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다만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진우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신선했어.” “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강한 사람 아니야.”확실한 선긋기였다. 진우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예민하게 받을 말은 아니었는데.” “그만해.” “알았어. 일 얘기나 하자고.”강현은 시선을 노트북으로 돌렸다.“내가 넘긴 건부터.”진우는 더 묻지 않고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는 마약 유통 경로와 해외 거점들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었다.“네가 제보한 건 거의 세탁이 끝났어. 다음 주부터 돌리기에 들어가.” “경로.” “라오스 찍고, 중국 거쳐서 다시 국내로 들어와. 중간에 한 번 더 돌려서 흔적을 지우는 식이지.”강현은 트랙패드를 움직여 숫자와 날짜를 확인했다. 방금 전까지 날이 서 있던 눈빛은 순식간에 업무용으로 정리됐다.“입찰 전에 들어오겠네.” “그럴 가능성이 커.” “이 건은 크게 써.”진우가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짚었다. 강현은 와인잔을 매만지며 낮게 말했다.“한 번에 목을 잡아야 다시는 못 움직여.” “여전히 무섭다, 너.” “칭찬으로 들리네.”그 말에 진우는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말을 고르듯 짧게 침묵했다.“근데 강현아.”진우가 천천히 물었다.“설
김 기사가 VIP 발렛 대기 구역에서 뒷좌석 문을 열었다. 설화가 올라타자 검은 세단은 L호텔을 천천히 빠져나갔다.조금 전까지 맑았던 여름 밤하늘에는 어느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차창 위로 번진 불빛이 길게 흔들렸다.차 안에는 음악도 흐르지 않았다. 김 기사는 룸미러를 한 번 확인한 뒤 시선을 도로에 고정했다. 설화는 손끝으로 드레스 위의 작은 주름을 펴고 또 폈다. 조금 전 파티장에서 들었던 웃음과 낮은 속삭임이 빗소리 사이로 자꾸 되살아났다.강현은 그런 설화를 보지 않는 척했지만, 창문에 비친 시선은 몇 번이나 그녀 쪽으로 움직였다.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설화는 창밖만 보다가 무릎 위에 올린 손을 천천히 말아 쥐었다.“오늘 같은 자리에 저를 왜 데려간 거예요?”강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을 앞에 둔 채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눌렀다. 은색 슈트의 옷깃은 여전히 반듯했고, 표정에도 흔들림이 없었다.설화는 입술을 한 번 눌렀다가 말을 이었다.“대표님이 시킨 대로 웃고, 옆에 서 있었어요. 그런데 정유라 씨는 계속 저를 건드렸고요.”강현의 손끝이 아주 잠깐 멈췄다.“어디서 굴러온 건지 모르겠다고 했어요.”설화는 끝까지 창밖을 봤다. 울음도 분노도 섞지 않으려는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 또렷했다.“제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도 빚에 일부예요?”차 안이 조용해졌다. 와이퍼가 빗물을 밀어내는 소리만 일정하게 이어졌다.강현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도 시선은 차갑고 정확했다. 설화는 피하지 않았다. 눈가가 붉어져 있었지만, 턱은 들려 있었다.“그건 아니야.”짧은 대답이었다. 설화는 마른 웃음을 삼켰다.“그럼, 뭔데요?”강현은 입을 다물었다. 설명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다시 앞을 봤다. 설화는 그 침묵이 대답이라는 걸 알았다.“역시 말 안 해주시네요.”강현은 턱관절을 단단히 맞물린 채 목을 조이던 넥타이를 가볍게 당겨 느슨하게 풀었다. 그 순간에도 그의 시선은 창밖 빗줄기에 멎어 있었다.
뭐가 이렇게 불편한 건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여자 하나가 방 안에 잠들어 있을 뿐인데, 그런데도 손끝에 닿았던 설화의 부드러운 살결과 입술의 촉감이 기어이 잔상처럼 달라붙었다.아주 오래전 닫아 둔 문 안쪽에서, 누군가 조용히 손잡이를 건드리는 것처럼.비가 내렸다. 회색 하늘 아래, 굵은 빗방울이 낡은 식당 문을 쉼 없이 때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우산을 쓰고 바쁘게 스쳐 지나갔다. 누구도 그 작은 식당 앞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열 평 남짓한 식당은 젊은 여자와 어린 소년이 몸을 누일 수 있는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엄
설화가 차가운 기운을 느꼈는지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더 둥글게 웅크렸다. 강현의 커다란 재킷 아래로 가냘픈 어깨가 파묻히고, 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뺨 위로 흘러내렸다.강현은 그 위태로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강제로 시선을 뚝 끊어냈다. 그런데도 의지는 배신하듯 다시 고개가 돌아갔다.확인하듯, 아니면 상황을 부정하려는 사람처럼.……이건 아니야.그는 다시 손을 뻗어 그녀의 뺨에 눈물처럼 붙어 있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걷어냈다. 닿는 순간마다 감각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고, 단단히 손끝에 들어가 있던 통제력은 허무하
축 늘어진 설화를 품에 안은 채, 강현은 빗속을 가로질렀다. 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의식 없는 몸 하나쯤 옮기는 일에 버거움을 느낄 남자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품 안에 닿은 체온이 신경을 거슬렀다. 그런데도 그 작고 힘없는 무게가 불쾌할 만큼 선명하게 남았다.강현은 설화를 조수석에 눕힌 뒤 안전벨트를 매어 주었다. 벨트가 가느다란 몸 위로 걸리는 순간,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마치 그 멈칫거림조차 허락할 수 없다는 듯 그는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뒷좌석의 재킷을 집어 들었다.축축하게 젖은 상체 위로 재킷을 덮어 주는
설화는 다리 위에 멍하니 서 있었다. 빗방울이 머리카락을 타고 목덜미 아래로 축축하게 흘러내렸다. 손끝은 점점 차가워지고, 온몸이 젖어들수록 오한이 몸을 감싸 안았다. 가로등 불빛마저 거센 빗속에서 흐릿하게 번져 눈앞을 어지럽혔다.그 순간, 머리 위로 툭— 소리와 함께 암전처럼 검은 우산이 펼쳐졌다."그래서… 여기서 끝낼 생각이야?"낯설지만 낮고 묵직하게 깔리는 남자의 목소리. 설화는 무거워진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 올리며 천천히 남자를 응시했다.우산 아래 서 있는 남자는 빗물에 젖은 검은 셔츠 사이로 단단한 어깨를 드러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