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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작가: 잔물결
‘미라주’에서 반년이나 일했어도 이런 접촉은 익숙하지 않았다.

솔지는 손바닥을 데기라도 한 듯 화들짝 손을 떼었다.

예겸이 오히려 손을 누르면서 잡았다. 치켜 올라간 눈꼬리 아래로 차갑고도 뜨거운 시선이 솔지를 꿰뚫었다.

솔지의 얼굴에도 열이 올랐다. 손을 빼려고 했지만 예겸은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귓가에서 의미심장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예겸이 솔지의 손을 놓아주었다.

솔지는 서둘러 자세를 바로잡고 숨을 골랐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감정을 애써 다스렸다.

“오늘 전무님이 돌아오셨으니 제대로 한잔 올려야죠.”

원석이 잔을 들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예겸을 향해 일제히 술잔을 올렸다.

예겸은 긴 다리를 느슨하게 꼬았다. 왼팔을 솔지 뒤쪽 소파 등받이에 걸치고 다른 손은 허벅지 위에 둔 채, 쏟아지는 아부를 무심하게 받아들였다.

원석은 술자리 파트너까지 따로 준비해 두었다. 예겸이 잔만 들고 마시지 않자 여자에게 눈짓했다.

예겸 대신 술을 마시려고, 여자가 예겸의 술잔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손이 닿기 전에 예겸이 술잔을 솔지의 입가로 가져갔다.

“속이 안 좋아. 네가 마셔.”

솔지는 평소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고, 누군가의 술을 대신 받은 적도 없었다.

오늘이 처음이었다.

솔지는 짧은 사이에 많은 생각을 했다.

예겸이 거짓말을 밝히지 않는다면, 이 기회에 두 사람의 관계를 기정사실로 만들면 됐다.

이 바닥에서 계속 일하려면 예겸을 화나게 할 수 없었다. 비위까지 맞춰야 했다.

솔지는 술잔을 받아 들며 웃었다. 살짝 흐르는 눈매에는 말로 다 담기 힘든 매혹이 배어 있었다.

“그럴게요. 대신 내 주량이 약한 거 아시죠? 취하면 전무님이 돌봐 주셔야 해요.”

조금 전에는 현장에서 들켰다는 생각에 당황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예겸이 무슨 이유로 침묵하는지는 몰라도,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예겸의 여자이며 총애까지 받는다는 인상을 남겨야 했다.

“걱정 마. 버려두지는 않을 테니까.”

예겸이 흥미로운 눈으로 솔지를 봤다. 생각보다 배짱이 좋았다. 벌써 상황을 제 쪽으로 이용할 줄도 알았다.

사람들의 웃음이 한층 더 야릇해졌다.

예전에 한 번 잠자리를 가졌던 사이라 해도 반년 만에 다시 만났으니, 술을 마시며 분위기를 돋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도수가 높은 브랜디는 처음 몇 모금까지는 넘기기 힘들었다.

솔지가 마셔 본 적이 없는 독한 술이었다. 하지만 두어 잔이 더 들어가자, 목이 화끈한 감각에 익숙해지면서 처음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예겸은 옆에서 담배를 피우며 솔지를 지켜봤다. 잔을 받을 때마다 단숨에 비우는 모습이 시원스럽고 당당했다. 자신의 여자라면 저 정도 기개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솔지의 두 뺨은 붉게 달아오르고 눈가에는 물기도 맺혔지만, 권하는 술을 한 번도 마다하지 않았다.

술이 센 사람도 이렇게 마시면 취할 수밖에 없었다.

담배를 끄고 일어난 예겸은 솔지의 잔을 빼앗아 탁자에 내려놓았다. 곧장 솔지의 손목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솔지는 머리가 몽롱한 채 끌려갔다. 휘청이는 걸음 탓에 몇 번이나 예겸의 어깨에 부딪쳤다.

찬바람이 덮치자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팔에는 소름이 돋았다.

“어디 가는 거예요...”

예겸은 차 문을 열어 솔지를 밀어 넣은 뒤 자신도 따라 탔다.

문이 닫히자 싸늘한 바람도 차단됐다.

솔지는 취기로 흐릿해진 눈을 들어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호흡이 엉켰다.

“후회해?”

예겸은 얼굴을 가까이 대면서 솔지에게 배어 있는 은은한 체취를 들이마셨다. 이런 업소에서 일하는 여자에게 날 법한 향은 아니었다.

솔지는 숨을 삼켰다. 예겸이 너무 가까웠다.

남자의 검은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까지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술기운 속에서도 정신 한구석이 맑아졌다.

“뭘 후회해요?”

예겸의 시선이 뺨을 지나 쇄골로 내려갔다.

하얀 피부 위 문신은 유난히 선명했다. 거칠고 도발적인 분위기마저 풍겼다.

예겸의 손가락이 문신을 따라 미끄러졌다. 손끝이 지나는 자리마다 솔지의 몸은 잔뜩 굳어졌다.

뒤늦게 오른 술기운 탓에 솔지의 의식은 벌써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내 여자가 되고 싶어?”

손가락이 턱으로 옮겨왔다.

예겸은 턱을 가볍게 잡고서 솔지가 자신을 보게 했다.

솔지는 후회했다. 다만 전부 다 후회되는 건 아니었다.

예겸의 위세를 빌리지 않았다면, 지난 반년을 이렇게 무사히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

솔지는 남자의 눈에서 조롱과 멸시를 읽었다.

‘나처럼 뻔뻔한 여자는 처음이겠지.’

“전무님 곁에 있으면 좋잖아요.”

솔지는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을 먹었다.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니 되돌릴 수 없었다.

예겸이 눈을 가늘게 떴다.

“기어이 내 여자가 되겠다는 뜻이네.”

“그러니까...”

너무 가까웠다.

솔지는 숨을 쉬기 위해서라도 조금 떨어지고 싶었다.

예겸에게서 풍기는 서늘한 기운은 지나치게 강했고, 날카롭게 파고드는 눈빛도 버거웠다. 솔지는 가슴안에서 들끓는 감정을 간신히 억눌렀다.

물기 어린 눈을 들고서 겨우 붉은 입술을 열었다. 거의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네.”

예겸이 차갑게 내려다봤다. 입가에는 짙은 비웃음이 걸렸다.

“난 점잖은 사람이 아니야. 물러날 기회도 줬고.”

“내 여자가 된다는 건... 말 그대로 나와 자야 한다는 뜻이야. 알아들었어?”

예겸은 솔지의 배짱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했다.

혹은 지켜야 할 선이 얼마나 없는지도.

솔지는 비로소 깨달았다. 예겸을 건드린 이상 이제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끝까지 버티며 나아가야 했다.

“당연하죠.”

솔지가 먼저 손을 뻗어 예겸의 가슴에 얹었다.

속에서 치미는 구역질을 더는 참기 힘들었다.

급히 입을 막은 솔지는 얼굴이 빨개진 채 창밖을 가리켰다.

예겸이 미간을 찌푸리고 곧바로 놓아주었다.

급히 차 문을 연 솔지는 길가 화단으로 뛰어가서 쪼그린 채 토했다.

속은 타는 듯한데 토하기까지 하자 위가 비틀리듯 아팠다.

찬바람이 불자 또다시 속이 뒤집혔다. 쓸개즙이 올라올 때까지 전부 다 게워 냈다.

예겸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가로등 아래 솔지의 몸이 유난히 가냘파 보였다.

그런데도 불쌍하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예겸의 머릿속에는 그 말만 떠올랐다.

‘자업자득.’

솔지의 위장은 거듭 경련했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했다.

쓰러질까 봐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붙잡고서 간신히 버텼다.

발밑은 휘청거렸고 머리는 무거웠다. 넘어질까 두려워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래도 결국 버티지 못했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솔지의 몸은 힘없이 아래로 무너졌다.

...

예겸은 솔지를 안은 채 호텔 스위트룸으로 들어와서 침대에 내려놓았다.

막 허리를 펴려는데 솔지의 두 팔이 목을 휘감았다.

예겸은 다시 몸을 숙여야 했다.

솔지의 두 뺨은 발갛고 피부는 빛이 날 만큼 희었다.

쇄골에 자리한 문신이 유난히 요염하게 보였다.

예겸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솔지의 손목을 잡고서 떼어 내려고 했다.

솔지는 오히려 더 단단히 매달렸다.

자세히 보니 눈은 감겨 있고 속눈썹만 가늘게 떨렸다. 숨소리도 고른 걸 보니 연기 같지는 않았다.

‘술에 취하면 원래 이러나?’

예겸이 다시 힘을 주면서 팔을 떼어 내자, 솔지가 물기 어린 눈을 떴다.

“연기한 거야?”

예겸이 차갑게 물었다.

솔지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다 망설임 없이 얼굴에 손을 댔다.

“내가 전무님 여자가 되길 바란다고 했잖아요.”

다정하게 웃는 눈에는 애틋한 정이 가득했다.

“전무님도... 나를... 원하세요?”

솔지의 손이 예겸의 얼굴선을 따라 흘렀다. 손끝이 서늘한 입술을 누르더니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면서 섹시한 목젖을 어루만졌다.

예겸은 침을 꿀꺽 삼켰다.

솔지는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찾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곳을 자꾸만 쓸었다.

움직이는 목젖이 신기한 듯 정신없이 살피느라, 자신의 손 아래 있는 남자가 얼마나 죽을 맛인지는 전혀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

제멋대로 움직이는 손을 붙잡은 예겸이 실눈을 뜨고서 여자의 요염한 눈을 응시했다.

위험한 기운이 바짝 다가왔는데도 솔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얌전히 있어.”

솔지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지면서 고운 웃음이 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였다.

그 눈을 보고 있자니 예겸의 목 안이 간질거렸다.

예겸이 손을 세게 쥐자 아팠는지 솔지가 눈썹을 찌푸렸다.

애처로운 모습에 차마 모질게 대할 수가 없었다.

예겸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추면서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솔지가 목을 젖히면서 단번에 기회를 낚아챘다.

“필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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