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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작가: 잔물결
솔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뒤로 뺐던 발을 원래 자리로 옮기더니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두 사람의 거리가 바짝 좁아졌다.

가까이 서자 솔지에게서 은은한 향기가 났다. 향수 냄새가 아니라 옷과 머리카락에 밴 깨끗한 향기였다.

그날 밤에도 이 향기를 맡았다.

예겸은 홀린 듯 깊이 빠져서 헤어나지 못했다.

예겸은 늘 먼저 접근하는 여자를 질색했다.

그런 여자와 잠자리를 갖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 원칙이 솔지 앞에서 처음 깨졌다.

동정까지 솔지에게 줬다.

솔지가 다가오자, 예겸은 뒤쪽 소파에 앉으며 재빨리 솔지의 허리를 감쌌다.

솔지의 몸이 예겸의 품으로 쏠렸다.

예겸이 눈을 내리깔았다.

“정말 적극적이네.”

흑백을 뒤집는 데 타고난 남자였다.

솔지는 예겸의 가슴을 두 손으로 짚었다. 손바닥 아래로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허리 뒤로 무게가 실렸다. 다시 눌려 내려간 모습은 솔지가 일부러 예겸에게 달라붙은 것처럼 보였다.

솔지는 눈을 크게 뜨고 짓궂은 남자를 노려봤다.

“전무님이 계속 이러시면 정말 나를 좋아한다고 착각할 것 같아요.”

솔지는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이렇게 된 이상 더 버틸 이유도 없었다.

예겸의 눈이 솔지의 얼굴을 천천히 오갔다. 화장기 없는 피부는 매끄럽고 눈동자는 맑게 빛났다.

촉촉한 분홍빛 입술을 살짝 다문 모습은 막 피어나려는 꽃처럼 은밀한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내가 널 좋아하게 만들고 싶어?”

예겸의 숨결이 얼굴에 흩어졌다. 잔열이 촘촘하게 솔지의 피부를 달궜다.

솔지는 이 말에 불순한 뜻이 담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꼬집어 낼 만한 증거는 없었다.

겉보기에는 솔지가 주도권을 쥔 듯했지만 실제로는 줄곧 밀리고 있었다. 예겸의 손안에서 놀아나는 셈이었다.

솔지는 지고 싶지 않았다.

예겸이 허리를 누르자 솔지는 손을 예겸의 배에 밀착시켰다.

예겸의 눈동자가 곧바로 가늘어졌다.

그날 밤, 솔지의 손이 몸을 훑고 지나가자 이성을 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잘 알지도 못하고 속셈까지 많은 여자에게 자신이 무너질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솔지는 예겸을 어떻게 무너뜨려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여자였다.

“내가 바란다고 전무님 마음이 움직일까요?”

예겸은 침을 삼키면서 자신의 배에 닿은 손을 내려다봤다.

“날 완전히 파악했다고 생각하나 봐.”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길에는 서늘함이 묻어났다.

솔지는 분위기를 읽을 줄 알았다. 적당한 때 물러서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눈앞의 남자를 진짜로 화나게 해서는 안 됐다.

‘미라주’에서 계속 일하려면 예겸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솔지는 손을 치우고 허리를 곧게 폈다. 아름다운 눈으로 예겸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했다.

“전무님 같은 남자를 보면 대부분의 여자가 꿈을 꾸겠죠. 전무님 마음속에서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예겸은 소파 등받이에 기댄 채 한껏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솔지에게는 사람을 비웃는 표정으로만 보였다.

예겸을 대하는 솔지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두려워하고 당황했다.

이제 예겸이 손짓하면 솔지도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예겸을 이용하려는 속셈을 숨길 생각도 없었다.

영리한 예겸이 그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밀어내지 않는 데에는 분명 예겸만의 이유가 있을 터였다.

단, 좋아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위층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예겸아, 내가 잠깐 나갔다 올게.”

솔지가 바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아무리 대담해도 예겸의 무릎 위에 앉은 모습을 들킬 수는 없었다.

상체를 일으킨 예겸은 솔지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눈을 크게 뜬 솔지는 허리를 비틀면서 예겸의 손을 떼어 내려고 했다.

“수업 안 해?”

예겸은 송혜주에게 묻고 있었다.

예겸의 힘이 워낙 세서 솔지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

손등을 두드리며 재촉하다 보니 얼굴까지 빨개졌다.

솔지가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했다.

“놔주세요!”

“오늘은 그만하려고. 네가 관심 있으면 한 선생님한테 몸이나 풀어 달라고 해.”

예겸의 웃음이 짙어졌다. 허리를 누르던 힘도 조금 느슨해졌다.

“엄마, 그거 괜찮은 제안이네.”

놀란 솔지는 곧장 예겸의 무릎에서 내려와 멀찍이 떨어졌다.

‘송혜주 회원님이 어머니였어!’

두 사람이 닮은 이유가 있었다.

솔지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하는 모습을 보며 예겸은 재미있어했다.

계단에 모습을 드러낸 송혜주는 샴페인 빛 실크 원피스에 흰색 짧은 트위드 재킷을 걸쳤고, 손에는 작고 정교한 가방을 들었다.

화장은 섬세하면서 가벼웠다. 우아하지만 절대 과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따뜻한 분위기가 나는 사람이었다.

계단을 내려온 송혜주가 솔지에게 웃었다.

“선생님, 남은 시간에 예겸이 몸 좀 풀어 줘요. 뻣뻣한 몸을 못 풀어도 마음이라도 차분해지게요.”

솔지가 예겸을 봤다.

예겸은 벌써 장난기를 거두고 반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

솔지가 받아들였다.

예겸은 거절할 줄 알았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송혜주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부탁할게요. 예겸아, 한 선생님한테 제대로 배워. 다음부터 엄마랑 같이 운동하면 좋잖아.”

“그렇게 마음 놓고 나한테 맡겨도 돼? 한 선생님이 수업을 핑계로 나한테 딴짓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예겸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송혜주는 예겸을 흘겨본 뒤 얌전해 보이는 솔지를 바라봤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선생님 괴롭히지 말고.”

“괴롭힘을 당하는 쪽이 나일 수도 있잖아.”

송혜주는 예겸의 어깨를 한 번 때리면서 언제 철들 거냐고 나무랐다.

예겸은 거리낌 없이 웃으면서 일어나 송혜주를 배웅했다.

문을 닫고 돌아왔을 때 솔지는 머리를 다시 묶은 뒤였다. 표정도 이미 평소처럼 차분했다.

“전무님, 배우실 거예요?”

솔지가 물었다.

“당연하지.”

예겸이 다가왔다. 매혹적인 눈이 솔지에게 그대로 꽂혔다.

“네가 가르쳐.”

솔지는 예겸의 옷차림을 살폈다.

“옷을 갈아입으셔야 할 것 같아요. 너무 헐렁해서 자세를 확인하기 어려워요.”

예겸이 제 옷을 내려다봤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데?”

“몸에 좀 붙는 옷이요.”

“자세만 보려고?”

“네.”

“차라리 안 입는 편이 더 잘 보이지 않나?”

솔지가 웃었다.

“전무님만 괜찮으시면요.”

“내가 싫을 게 뭐가 있어. 너한테 벌써 옷도 다 벗기고 깨끗하게 먹힌 몸인데.”

예겸의 말에 솔지의 침착함이 또 깨졌다.

예겸이 체면을 버렸다면 솔지도 지킬 생각이 없었다.

“난 취했지만 전무님은 멀쩡했잖아요. 여자 하나 밀어내는 게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요?”

예겸이 원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문제는 예겸에게 있었다.

예겸이 알 듯 말 듯한 웃음을 지었다.

“네가 나를 얼마나 세게 휘감았는지 알아? 기억나게 해 줄까?”

솔지는 아무리 해도 예겸만큼 뻔뻔할 수 없었다. 잠자리에서의 일을 마주 보고 되짚을 배짱도 없었다.

“전무님은 다가오는 여자를 전부 받아 주세요?”

“내가 알기도 전에 넌 이미 내 여자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예겸 앞에서 솔지는 갓 훈련소에 들어온 신병과 다르지 않았다. 말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이 일만 꺼내면 늘 솔지가 밀렸다.

“그런데 왜 제 거짓말을 밝히지 않으셨어요?”

마침내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 입 밖으로 나왔다.

예겸이 가까이 다가왔다. 숨결마저 사람을 홀렸다.

“네가 말했잖아. 난 오는 여자 안 막는다고.”

솔지의 눈꼬리가 가늘게 떨렸다.

예겸은 솔지의 턱을 살짝 집어서 올렸다. 깊은 눈빛이 얼굴에 머무르면서 목젖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솔직히 말해 봐. 그날 정말 취했어, 아니면 취한 척했어?”

솔지는 놀랐다.

‘내가 연기했다고 의심한 거야?’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예겸은 시선을 내리며 솔지를 감상했다.

그녀는 몸에 밀착되는 고급 요가복이 아름다운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예겸 눈앞에 있는 여자의 몸은 유난히 매혹적이었다.

솔지가 눈을 들었다. 너무 가까운 거리 때문에 심장은 더 빨리 뛰었다.

예겸이 얼굴을 붙이며 말했다.

“어차피 그날... 우리는 잘 맞았으니까.”

전기가 귓가를 스치는 듯하자 솔지가 저도 모르게 몸을 피했다.

“전무님, 수업하실 거예요? 안 하실 거면 저 갈게요.”

대낮부터 남자와 잠자리 후기를 나누는 일은 부끄러웠다.

경험 많은 사람이니 남녀 사이의 일을 이렇게 태연하게 입에 올릴 수 있을 터였다.

솔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예겸을 올려다봤다.

“아무래도 전무님, 정말 나를 좋아하시나 봐요.”

예겸은 뜻밖의 반격에 잠시 말을 잃었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하지.”

예겸의 손이 솔지의 허리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솔지는 예겸 앞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다.

몸을 붙이며 속삭였다.

“지난번엔 취해서 별 느낌이 없었어요. 우리가 대체 얼마나 잘 맞는지도 모르겠네요.”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도발이 한 가닥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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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정한 선 밖에서   제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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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정한 선 밖에서   제26화

    솔지의 급여는 매일 정산됐다.퇴근하자 핸드폰에 입금 알림이 도착했다.금액을 확인한 솔지는 재무팀으로 찾아가 물었다. “계산이 잘못된 것 같은데요?”“맞게 계산했어요.” 담당자가 내역을 대조했다. “대표님이 성과급을 올리라고 하셨어요.”솔지는 뜻밖이었다. 원석은 계속 잘 챙겨 줬고 그 이유도 알고 있었다.그래도 먼저 성과급까지 올려 줄 줄은 몰랐다.재무팀을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원석과 마주쳤다.“원석 오빠.” 솔지가 불렀다.원석은 ‘오빠’ 아니면 ‘형’이라는 호칭을 좋아했다. 그렇게 불리면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원석이 웃었다. “퇴근해?”“네.” 솔지는 공손히 앞에 섰다. “고마워요.”원석은 모르는 척하지 않았다. 그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어. 솔지 씨 능력으로 받는 돈이니까.”솔지도 다른 곳의 급여를 알아봤다. ‘미라주’만큼 많이 주는 곳도 없었고 먼저 성과급을 올려 주는 곳은 더더욱 없었다.“그런데 오늘은 전무님이 안 오셨네?”“바쁘신가 봐요.” 예겸이 뭘 하는지는 솔지도 몰랐다. 바쁘다고 하면 충분했다.원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일찍 들어가서 쉬어.”“네.”원석이 떠난 뒤에야 솔지도 밖으로 향했다.지금 받는 모든 대우는 하예겸의 여자라는 데서 비롯됐다.예겸의 이름이 사라지면 어떤 처지가 될지 몰랐다.그러니 예겸을 잘 달래야 했다....솔지는 미라주 입구에 서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자 직원들은 서로 인사하며 흩어졌다.솔지가 가지 않고 서 있자, 사람들은 예겸이 데리러 오기를 기다린다고 여겼다. 솔지는 부업으로 나오는 데다 업소에서 받는 대우도 남달라서, 속으로 불만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돈 많은 남자에게 붙어 놓고도 밤업소에서 몸을 드러내며 춤추는 걸 보면, 재벌 2세에게도 별 가치가 없는 여자라는 뒷말이 돌았다.예전에는 원석을 유혹해 붙잡았다는 소문도 있었다.동료들에게 솔지는 몸으로 남자의 관심을 끄는 여자였다.솔지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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