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8화

Author: 김파초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06 13:06:55

진은 떨떠름하게 거울 속의 자신을 지켜보다 얼굴을 잔뜩 구겼다.

노란 리본을 짧은 머리에 달고, 단정한 하녀복을 입고있는 모습과 함께 저 껄렁한 자세라니.

영락없이 뒤 꿍꿍이를 가진 모양새인데.

“사장님, 혹시 삶이 지루하신가요”

진의 말에도 여전히 바닥을 구르며 웃는 헤이든에, 진은 혀를 끌끌 차며 깊이 숨을 내뱉었다.

용병단의 에이스인 내가 이리도 수모를 당하고 있는데, 단장이라는 놈은 배나 부여잡고 낄낄거리는 꼴이라니.

헤이든이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던 진은 멈출생각 없는 헤이든에 인상을 찡그리곤 그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그만 웃어! 이 악덕 사장아!”

“으허…. 와, 맞은 곳보다 배가 더 아파”

“명줄이 그냥 달까지 이어져 있지?”

헤이든은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배를 쓸어내렸다.

예상은 했다만, 이 정도 일줄은 몰랐는데.

“요근래 본 것 중에 제일 웃겼어.”

”그렇게 좋으면 너가 입어“

헤이든이 손을 저으며 비죽비죽 웃자, 진의 얼굴이 다시 와락 구겨졌다.

“어우, 난 그런 취미 아니야”

“그럼 난 취미냐?”

잔뜩 불만을 내뿜는 진에 헤이든은 손을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넌 직업이지.”

“너랑 같은 직업인 건 잊지 마라.”

이를 악문 채 말하는 진에 헤이든은 웃음을 참으며 진을 다시 천천히 훑었다.

“하녀복을 입은 소감은?”

“예. 우선 전투력은 확실히 올라갔습니다.”

어깨를 풀며 말하는 진에 헤이든은 입술을 꾹 누르며 근엄하게 입을 열었다.

“열정이 요즘 것들과는 다르구만. 역시 내 직원이야”

미간을 팍 좁힌 채 머리에 달려있던 리본을 풀어내는 진에, 헤이든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가발 쓰는 건 어떠냐?”

“답답해 죽을것 같아서.”

“그럼, 그렇게 동네 양아치 같이 돌아다니게?”

“취향이 특이한 아가씨일 수도 있잖아”

짜증을 내며 말하는 진에 헤이든은 낮게 한숨을 뱉었다.

“아서라. 치안부에 신고당할 거다.”

“세상이 너무 좁아. 취향도 존중해야지”

“모든 취향을 다 존중했으면 법은 왜 있냐? 기다려 봐. 가발 가져올게”

헤이든이 나가자 홀로 남은 진은 다시 거울을 바라보았다.

짧은 머리와, 치마.

알 수 없는 감정이 슬쩍 얼굴을 빼 들었다.

얼마 만에 입는 치마였더라.

15년 전의 그 일이 아니었다면, 아마 아직도 입고 있을 치마였다.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이것에 눈길도 주지 않았기에, 이제는 낯설기까지 했다.

언니는 나 때문에 다리를 잃었으니 이런 것쯤은 감당해야 할 일이지만.

“그런데 그 집에 다시 들어가라니.”

욕지기가 나올 것만 같은 허탈함이었다.

아무리 돈이라지만, 나와 언니를 죽이려고 한 곳인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야! 이거 한번 써봐”

갑자기 튀어나온 헤이든에 진은 질겁을 하며 그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다.

악! 하는 소릴 내며 바닥에 웅크리고 앉은 그에 진은 제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

“놀랐잖아!”

“아파! 너 거기 가서 성질 좀 죽여!”

진은 헤이든 손에 쥔 가발을 휙 하고 걷어 올렸다.

“흥이올시다. 나같이 친절한 용병이 어디 있다고.”

진은 단발머리의 가발을 머리에 얹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헤이든은 엉덩이를 쓸며 진의 표정을 한번 흘겨보았다.

“좀 낫다. 확실히 너는 선이 얇아서….”

“야… 있잖아”

진이 무게를 잡듯 목소리를 깔고 헤이든을 돌아보자, 말간 눈이 헤이든에게 다가왔다.

얘는 어릴 때부터 그랬지만, 조심성이라는 게 없다니까.

그런 눈으로 다가오면 다들 얘가 사내가 아니라 여자애인 걸 대번에 알 수 있는데!

“뭐..뭔데..!”

“릴리 에반스라고 해요”

진은 가발을 쑥 하고 벗으며 식 미소를 짓자, 헤이든은 어이가 없다는 듯 힘 빠지는 소릴 내었다.

“진 그릭이야”

“넌 제발 심각성이라는 걸 좀 느껴”

진은 키득거리며 다시 가발을 쓰고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일은 일이다.

설마 나를 알아볼 리는 없다.

8살의 이네스가 아니라, 23살의 용병 진 그릭이란 말이지.

성별도 다른데, 저들이 혹시나 알아본다 해도 박박 우기면 어쩌겠어.

여차하면 도망이라도 치면 되는걸.

“아무튼 거기 가면 조심해. 상황이 이상하더라”

헤이든의 말에 진은 킥킥 웃으며 어깨를 털었다.

“뭐, 흔하지 그런거는. 고귀하신 귀족나으리들 아니냐”

“그깟 후계가 뭐라고 라고 하기엔 너무 크긴 해.”

“그래봤자 일이야.”

“그래봤자라고 하기에는 작은 소국급의 공작가야. 거기다 스피나 가문까지 얽혔잖냐”

한숨을 쉬듯 말하는 그에, 진은 관심 없다는 듯 가발을 이리저리 매만졌다.

“귀족네들이 그렇지 뭐. 야, 이거 고정은 잘되는 거냐?”

“낸들 알겠니”

“어우, 재수 없어.”

“아무튼 가끔 나도 갈게”

“하녀로?”

헤이든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

가끔 얘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이 안 잡힌다니까.

“너는 진짜 상상력이 풍부한 거냐, 생각을 안 하는 거냐?”

“나만 당할 순 없어”

진의 말에 헤이든은 고개를 저으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멀리 안가서 다행이려나.

자주 볼수 있으면 좋을 텐데.

“조심해서 다녀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위험수당은 따블입니다!   136화

    벤이 아무말 없이 고개를 돌리자, 헤이든은 성큼 그에게 다가갔다.“어떻게 저에게 까지 깜쪽같이 속이신 거예요!”“그래서, 네가안다고 해서, 지금과 달라질 게 있냐?”“할아버지!”“목소리 낮춰라! 어디서 소리를 키워!”벤의 호통에 헤이든은 두 눈을 꾹 감고 숨을 참았다.손이 차갑게 식고 덜덜 떨리는 것만 같았다.정말 아니어야 했다.진이, 그 애가 지금껏 감춘 것이 그것이 아니어야 했다.아니, 맞다고 해도 할아버지가 이럴 순 없었다.“제발 아니라고 말씀해주세요”“헤이든, 달라질 게 없는 일이다.”“뭐가 달라지지 않는 일인데요. 대체, 뭐가 그대로인 건데요?”“헤이든”그의 말에 헤이든은 마른 세수를 하며 다시 벤을 바라보았다.“진이 이네스 파말라고, 엘리 누님이 아멜리아 라 파말라 인 게, 달라질 일이 아니에요?”한글자씩 꾹꾹 눌러 말하는 헤이든에, 벤은 길에 한숨을 뱉었다.그 애들은 정말, 너무나도 위험했다.당장이고 죽을 수도 있는 아이들.내가 그것을 무시할수 있었을까.“그래서, 누가 보아도 제 집에서 습격 받은 아이들을 제 집으로 돌려 보냈어야 했다는 말이냐?”“그게 아니잖아요.”“난 지금 당장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 위험수당은 따블입니다!   134화

    아이비는 낮게 한숨을 쉬자, 진은 가만히 아이비를 바라보았다.백작이랑 무슨말을 했길래 이러는건지.또 이상한 일이라도 생겼으려나.“무슨 일 있으세요?”“아, 누굴 만날 일이 있는데, 도저히 생각이 안나서.”“누군데요?”“네이슨 레 하버릭이라…. 들어본 적 있니?”“하버릭 백작 둘째 아들이잖아요”“뭐야, 이런 건 또 잘 아네?”아이비가 놀란 듯 진을 바라보자 진은 어깨를 으쓱였다.그 이름을 여기서 또 듣다니.하긴, 공작가의 가신이니 들을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다만.그 놈이랑 엮이면 또 귀찮아지는데.워낙에 원리원칙을 따지는 놈이었으니.“몇 년 전에 하버릭에서 일한 적 있거든요. 2년전이었나….”“어떤 사람이야? 일했으면 잘 알 것 같은데.”“알긴 알죠. 근데 뭐랄까…. 좀 꼴통 이랄까요?”“꼴통?”헛웃음을 보이는 아이비에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계약때문에 얼마나 싸웠던지.그렇게 원칙 따지면 일은 어떻게 하라는건지.생각 할 수록 짜증나네.“원리원칙 주의자에 사사건건이 시비 거는 인간이에요. 같이 일하다가 화나서 때려 치고 싶었거든요.”“색다르게 정신

  • 위험수당은 따블입니다!   133화

    “또 뵙습니다. 백작부인”“오는 길은 평안하셨을까요. 공작 영애.”카트린이 웃으며 아이비의 손을 잡자,아이비도 웃으며 그녀의 손을 다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백작부인의 덕분에 무척이나 평안했답니다.”“그랬다니 정말 다행입니다.”아이비는 카트린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발을 옮겼다.브렌트가가 사교계에 발도 못 붙이게 한 건 카트린의 덕이 컸다.율리아가 말을 잘한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나를 돕는 것인지.뭐, 좋은 게 좋은 것이겠지.“브렌트 가는 이번에 큰 고초를 겪는다 합니다. 아무래도 브리뉴 왕국과의 교역에 투자자를 찾지 못했으니.”“애석한 일이네요.”아이비의 웃음 섞인 말에 카트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어찌되었든, 간다고 하여도 교역이나 제대로 될지는 모를 일이지요. 워낙에 폐쇄적인 곳이니.”“그러니 왕실에서 백작님께 와인을 하사한 것 아니겠습니까.”주변을 둘러본 카트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자연스럽게 말하다니.영락없는 공작부인인것 같은데 말이지.“칭찬이 과하셔요.”“칭찬은요. 백작님의 노고를 왕실에서 치하 하신 것 아닙니까.”카트린은 미소 띈 얼굴로 아이비의 귓가에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ldqu

  • 위험수당은 따블입니다!   132화

    아이비는 아리엘과 눈을 마주치자 작게 웃었다.이 녀석들, 그사이에 무슨 재미있는 일을 한건지 모르겠는데.“공작저에도 급한일은 없어. 아리엘도 있으니 네가 걱정할 일은 없을텐데.”“아뇨. 원래 제가 근접 호위 아닙니까. 계약대로 해야지요.”“왜이러는지 모르겠네. 헤이든과 할이야기도 있지 않나?”멀뚱히 다른곳을 바라보는 진에 헤이든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잠깐잠깐 나오는건 공작성 내부의 저희 다른 인력이 있어 가능하긴 했습니다. 아리엘의 계약은 다른 것이니 진이 하는 말도 옳은것이지요.”“또 편들기는. 이리 말하는데 그럼 돌아가지.”아이비의 말에 아리엘은 작게 허리를 숙였다.“헤이든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가겠습니다, 먼저 마차에 계시지요.”“그래. 먼저 가 있겠네.”아이비를 따라 가는 진의 뒷모습에 헤이든은 입안을 다셨다.평소랑 비슷한데, 묘하게 거리를 둔 단 말이지.진짜 그날 일이라도 생각하는 건가.장난친 거 아니 었나?대체 무슨생각을 하는지 알수가 없단 말이야.“쟤 뭐 사고친거 아니지?”“딱히. 사고 라고 할만 한건 델란 백작영애를 울린 정도?”“근데 쟤 상태가 왜저런지 모르겠네.”아리엘은 가만히 진과 헤이든을 번갈아 보다 헤이든의 앞을 가렸다.그

  • 위험수당은 따블입니다!   131화

    헤이든의 말에 진은 고개를 내저었다.혹여나 누군가 알아볼 수도 있었다.언니도 오고 싶겠지만, 아이비의 호텔이라고 하면 거절하겠지.아직도 겁을 먹고 있을 테니.“아서라. 코앞인 것도 아니고, 마차로 와야 하잖아.”“그래도 올만하지. 정원만 한번 볼 건데 뭐 어때?”“하지만….”진은 쓰게 웃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졌다.혹여나 동선이 겹친다면 들킬 수도 있었다.초상화도 없는 나와는 달리, 공작부인의 처소에 있는 초상화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언니였으니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기도 했고.“아냐. 괜찮아.”“공녀님한테 안 들키게 오면 되지. 걸려서 혼날까 봐 그러냐?”“참나, 작당모의도 아니고 무슨”진의 웃음에 헤이든도 덩달아 웃으며 진의 어깨에 팔을 걸치자, 진은 슬적 그의 팔을 빼며 목을 돌렸다.“뭐야?”“아니 뭐….”헤이든은 가만히 진을 보다 다시 웃으며 진의 앞으로 가 뒤를 돌아 진과 눈을 마주쳤다.어색하게 시선을 돌리는 진에 헤이든은 입을 다시며 뒷목을 쓸었다.얘가 왜이러는 건지 감도 안잡히네.“어릴 때 이런 장난 많이 했잖아. 누님도 보면 좋아 할 테니까 하자”“그래도….”“안들켜. 걱정마.”“아,

  • 위험수당은 따블입니다!   130화

    “제법 볼만하군. 같은 호텔이라고 해도 아무도 안 믿겠어.”아이비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이전과는 다르게 깔끔하고 제법 괜찮단 말이지.높은 천장과 거대한 샹드리에. 그리고 이곳에 석상과 그림까지 올라간다면 제법 웅장할 것같고.“공녀님의 마음에 드시니 다행입니다.”“마음에 안들었으면 다 갈아 엎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말이야.”“저도 그걸 걱정 했었습니다.”헤이든의 대답에 아이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자리를 옮겼다.이정도까지 만드느라 헤이든이 고생을 했겠지.따로 수당을 더 챙겨 주어야 하려나.“자네가 꽤나 고생 했겠어”“아닙니다. 일전에도 말씀 드렸다 시피, 전부 돈이니까요”아이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진을 흘겨 보았다.딴청을 피우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진에, 아이비는 픽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이쯤이면 깐족 거리며 한마디를 얹었을 텐데.싸운 건가? 애들도 아니고.정말 둘이 무슨 일이 있었나?“따로 자네에게 설명을 들을건 없을것 같고.”“나머지 객실은 어떻게 안내를 해 드릴까요?”아이비는 고개를 저으며 아리엘과 눈을 마주쳤다.“아리엘과 함께 둘러 볼 터이니 자네들은 쉬고 있게.”“알겠습니다. 그럼 좋은시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rdqu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