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진은 눈을 굴리며 여기저기를 훑어보았다.
중후한 홀과 천장 위의 벽화와 홀에 걸린 몇 대 전 공작의 초상화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과 달라진 것이 없는것 같기도 하고.
딱히 기억도 잘 안나긴 하다만.
“공녀님은 어떤 분이세요?”
“넌 그런게 궁금하니?”
톡 쏘듯 답하는 하녀에 진은 애써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제가 모실 분이니까요”
안내하던 하녀는 고개를 저으며 진을 흘겨보았다.
하긴, 얘도 알긴 해야지.
얘는 며칠이나 가려나.
“까탈스러우시고 예민하신 분이야. 어지간하면 말 걸지 않는 게 좋아”
“까탈스러우시고 예민하시다….”
그녀의 말을 곱씹던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아이비가 그랬던 성격이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는데.
15년전이면 기억이 안 날만 하긴 한 것 같기도 하고.
진은 문득 보이는 창밖의 풍경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공작가라고 하지만, 수도의 외곽에 있는 타운하우스는 옛날의 낡고 허름했던 과거를 보여주듯 했다.
허울 좋은 명문가였던 파말라 공작가.
지금의 공작이 위세를 일으켰다고 했지.
가만히 생각하던 진은 고개를 저으며 계속 이야기를 하고있는 하녀를 따라 발을 옮겼다.
“지금 공녀님은 집무실에 계실 거야. 인사 올리고 업무 분장 할게”
“저는 뭘 하나요?”
“궁금해할 시간이 되긴 했지. 넌 공녀님의 전반적인 잡역 담당이야“
“잡역이요?”
“그래. 전부 다 해야 할 거야. 공녀님은 여러 명이 오는 걸 싫어하시거든.”
붉고 커다란 문 앞에 선 하녀는 목을 가다듬고 노크했다.
“공녀님, 오늘 오기로 한 신입 하녀, 인사드리겠습니다.”
문 안에서 대답이 들리자 하녀는 진을 흘겨보았다.
“너, 말 잘해야 해.”
“걱정하지 마세요.”
문이 열리자, 중후한 집무실이 진의 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과 그 반대편은 온갖 장식용 무기들이라.
아이비 취향이 특이한건가.
툭, 하고 자신을 건드리는 하녀에 진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인사 올립니다. 릴리 에반스입니다.”
아이비는 미간을 좁힌 채 진을 가만히 위아래로 훑었다.
여자치고 멀대같이 큰 키에, 그을린 피부. 거친 손. 미묘하게 각이 잡힌 자세….
이건 또 무슨 상황이려나.
“하녀라고 하기에는 웃기게 생겼네.”
“공녀님께서 뽑으신 하녀입니다.”
“그랬지. 이력서랑은 너무 달라서. 발샴의 남작가에서 일했다고?”
툭하고 다시 건드리는 하녀에 진은 잠시 아이비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남작가에서 하녀로 있었습니다.”
“수도의 하녀 생활은 지방과 다를 거야. 명심하도록 해”
아이비는 잠시 진을 바라보다 다시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키가 커서 눈에는 잘 띄겠네. 쓸데없는 거 시키지 말고 한동안은 내 뒤만 따라다니라 해.”
“네. 공녀님”
“말귀 못 알아들으면 바로 쫓아내 버릴 거니까 넌 정신 똑바로 차려.”
“네”
“릴리랑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나가봐”
하녀가 인사를 하고 나가자, 진은 흐음, 눈을 굴렸다.
정돈된 집무실, 오래된 가구와 책에서 나오는 종이 냄새가 이곳이 예사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아이비가 공작가의 내정을 대신 보고 있다고 했던가?
정실이 아무리 별장에 있다 하지만서도 두 부인이 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 하려나….
눈을 굴리던 진은 뚝 하고 눈이 마주치는 아이비에, 시선을 다시 아래로 떨구었다.
어릴 적 보았던 아이비와 사뭇 달라진 듯한 묘한 시기감이 느껴졌다.
하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데.
“아까 걔가 나에 대해 뭐라고 하더니?”
“예민하고 까탈스러우신 분이라고 하시던데요.”
“예민하고 까탈스럽다니. 정확히 봤다고 해야하려나.”
슬쩍 비웃는 아이비에 진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다시 내렸다.
성격 한번 세구만.
우선 나는 못 알아 본것 같고….
“남작가에서 왜 일을 그만두었니?”
“수도에 와서 일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요”
가만히 진을 바라보던 아이비는 입꼬리를 올렸다.
하녀 생활을 했다고 하기에는 이질적인, 날이 서 있는 말투.
미묘하게 건들거리는 행색이라니.
또 어떤 자식들이 이런 재미난 짓을 꾸몄을까.
“너, 하녀가 아니구나?”
“예?”
진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아이비는 하, 웃으며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각이 서 있는 행동과 말투. 손의 그 자국들… 너, 누가 보낸 거지? 암살자인가?”
“공녀님, 걱정되십니까?”아리엘의 물음에 창밖을 바라보던 아이비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입안이 마르는 것만 같았다.만일, 거절을 하러 온다면 그때는 무어라 말해야 할까.“진이 거절을 하면 어쩌지?”“그래도 진이 공녀님의 동생이심이 변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하지만….”“진은 공녀님을 언니로, 가족으로 이미 받아 들였습니다. 공녀님이 알지 못해도, 그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었습니다.”“그게 꼭 나를 언니로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닐지도 모르잖아.”웅얼거리는 아이비에 아리엘은 조심스레 아이비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진이 그럴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있었지만, 그대로 공녀님께서는 계속 걱정을 했으니.어떻게 말을 해야 그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까.“사실 이번 의뢰에서 진이 이상한 행동을 많이 보였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진이 공녀님께 정이 들어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진이?”“평소에도 장난치며 일하긴 하지만, 이번에는 공녀님을 유독 신경 쓰면서 움직였습니다.”“아리엘, 난….”“공녀님이 그 사실을 몰라도, 진은 최선을 다해 공녀님을 지켰습니다.”손을 다잡아 주는 아리엘에 아이비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내가 저에게 해준 것이 무어라고 그렇게 까지 했을까.자신을 알아봐 주지도 못한 언니에게.본인의 존재를 지워버린 이 공작가에 무슨 좋은 감정이 있다고.“진에게 너무 미안해.”“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의 성격이라면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떠나는 아이 아닙니까.”“…그렇지.”“늘 최선을 다하는 아이 이니까요.”창밖을 바라보는 아리엘에 아이비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진이라면, 확실히 그럴 아이였다.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이런 못난 나를 감싸 주었으니.“하지만 언니는….”“엘리라면 그리 걱정 마십시오.”“아리엘도 언니를 본적이 있나?”“아무래도 스승님과 엘리가 함께 살았으니, 자주 만났었습니다. 이제는 대공녀님이라고 불러야겠지만, 너그러이 이해해주십시오.”“그런 건
헤이든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방금 내가 한 생각을 이렇게나 빨리 번복할 줄이야.얘는 확실히 생각이 나보다 짧다.아까 생각이 깊다고 한 건 그냥 길가다 돌에 맞은 그런 확률일 게 분명하고.얘는 정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무슨 동대륙 같은 소리를 해?“안돼”“언제는 고민하라며! 다 해준다며!”“위험해. 거기가 어딘 줄 알고 가냐? 동대륙이 무슨 옆집인 줄 알아.”“아 왜! 말 바꾸는 게 어딨어!”고개를 젓는 헤이든에 진은 미간을 잔뜩 좁히고 그를 바라보았다.쫌생이 같기는.이랬다 저랬다.완전 지 맘대로잖아!“그럼 나 혼자 갈 거야. 나 정도면 동대륙 가는 거 얼마든지 구해.”“진, 거기는 왕복으로 1년이야.”“그래서 지금까지 안 갔잖아. 지금까지 길어 봤자 석달짜리 일만 계속한 것도 언니가 있으니까 그런 거고.”“네 몸으로 가는 건 무리야. 알잖아.”“아직 해류 타려면 한참 남았어. 그때까지 회복한 다니까?”“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방금전 만해도 너 떨어질 뻔 했잖아!”“안 떨어졌잖아! 너는 내가 어린애인줄 알아?”빽빽 소리를 지르는 둘에, 벤은 숨을 헐떡이며 문을 벌컥 열었다.이것들이 나이를 쳐먹어도 저러고 싸워?언제는 좋아 죽더니, 지금은 또 왜 이러고 싸우는 건지!“이 정신나간 것들아! 조용히 해!”“벤! 헤이든이 나 괴롭혀!”벤을 돌아보며 헤이든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진에 벤은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싸우는 꼴은 왜 하나도 안 바뀌는 건지도 모르겠네.저 나이를 먹고 편들어 달라고 일러다 바치다니.“내가 언제 널 괴롭혔다고 그래!”“시끄러 이것들아!!”얼굴을 붉힌 채 손을 꼭 잡고 있는 둘에, 벤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이놈들은 사랑놀이를 하는 건지, 싸우는 건지.좀 조용히 싸우면 뭐가 덧나는줄 아는 건가.“똑같은 놈들끼리 잘 만났다 그냥.”“벤! 내 편 들어줘!”진의 투정에 벤은 혀를 차며 진을 바라보았다.또 보나마나 진이 헛소리하는 걸로 헤이든이랑 싸웠겠지.별일
길게 하품을 한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폈다.시끌벅적한 것이, 역시 우리집이라니까.조용하지가 않으면 오히려 의심을 해야하니 원….어째 이 집으로 옮겨도 아침은 이렇게나 시끄럽냐.“아침부터 뭘 저렇게들 싸우는 거야”중얼거린 진은 창문에 걸터앉아 창밖을 내려다보았다.정원에서 소리를 지르며 헤이든을 쫓아가는 벤에, 진은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저 영감탱, 아프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라니까.저렇게 팔팔하면서 맨날 아프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건지.“야이 미친 것아!”“그걸로 때리지 마라고요!”“용병단을 그만둬? 이 정신 나간 놈!”흐릿하게 들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진은 귀를 기울이다 중심을 잃고 놀라 창틀을 잡았다.“으앗!”소리를 지른 진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네!“와, 진짜 죽을뻔했네.”“진! 너 위험해! 안으로 들어가!”진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주저 앉았다.어후, 이런 것도 조심해야 해?미친 독,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이걸 뭘 어째야하냐….”요란한 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오는 헤이든에 진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발한번 빠르네.그걸 듣고 여기까지 올라온거야?“벌써 왔어?”“안 다쳤어?”“다치진 않고, 그냥 깜짝 놀란정도.”“너는 진짜 조심 좀 해. 애가 왜이렇게 조심성이 없어.”헤이든은 진을 일으켜 세워주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아무리 2층이었어도 지금 진의 상태면 많이 다칠 뻔했다.얘는 진짜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은 건지.제발 좀 조심하라고 해도 내 말은 어디로 듣는 거야?“놀라기만 한거지? 거긴 왜 올라가 있었어?”“너랑 벤이랑 싸우는 거 구경하려고 그랬지. 왜 그렇게 벤이 화가 난 거야?”“별일 아냐”“별일 아닌데 벤이 널 죽이려고 하냐?”침대에 진을 앉힌 헤이든은 혀를 차며 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얘는 경각심 이라고는 죽었다 깨어나도 없는 건가.본인 다칠 뻔 한 것보다 그게 더 궁금하다
진이 휘청이자, 헤이든은 진의 팔을 단단히 잡아주었다.“괜찮아?”“아, 힘이 빠져서. 이거 언제까지 이러냐”“열심히 운동하고 약 먹어야지. 앉아서 좀 쉴까?”벤치에 앉은 진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풀벌레가 찌르르 우는 정원에는 이제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복잡했던 머리가 이제는 제법 많이 비워진 것 같기도 하고.언니도, 아이비도. 모두들 이제는 잘할 수 있겠지.“공기 좋다.”“안 쉬고 가도 되겠어?”“조금만 이러고 있을래.”가만히 몸을 흔들전 진은 눈을 감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나뭇잎이 시각이는 소리와 밤부엉이의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이렇게 마음 편하던 날이 또 있었나.앞으로의 일은 전혀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결과는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뭐, 라파도 부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헤이든”“응?”“언니의 선택이 옳겠지?”“글쎄. 누님의 생각이잖아.”“언니의 말 대로 한다면 그들이 언니와 나를 다시 공녀로 삼으려 할거야. 신분을 복위 시키겠지. 언니는 적통성 있는 적장녀니까.”“그렇겠지.”“물론 공작부인이 어떻게 받아 들일 지는 모르겠다만.”눈을 감은 채 이야기하는 진에 헤이든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살이 빠져 아직은 수척했지만, 제법 얼굴에는 혈기가 돌았다.바람에 머리칼이 날러 진의 얼굴을 간질이고 있었다.아름답고, 강인한 나의 연인.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을 지금까지 본적이 있었을까.“그래서 언니가 원한다면, 언니는 공작가의 일원으로 받아 질거야.”“너는?”“나?”진은 슬적 눈을 뜨고 헤이든과 눈을 마주쳤다.진짜 헤이든은 나만 보이는 걸까.항상 내가 모든 일의 중심인 것 마냥 나를 대했다.집착이나 이런 것보다는, 그냥 나만을 따라다니는 것처럼.“넌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내가 물어 본거나 대답하지?”픽 웃음을 터트린 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헤이든의 무릎위에 앉았다.“또 뭘 하려고 그러는 거야?”“앉아 있어보니까 자리가 차가워서.”“이
고개를 푹 숙이는 엘리에 진은 작게 한숨을 뱉으며 쇼파에 등을 기대었다.뭐,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있나.섭섭해도 언니가 싫으면 끝인데.“언니가 싫으면 거절할거야. 우선 공작저에 아는 건 아이비뿐 이니까.”“아이비만 알아?”“응. 내가 비밀 지켜 달라고 했어. 아무래도 아이비라면 언니의 선택을 존중할 거야. 아, 멜리나한테는 들켰지.”“멜리나?”“걱정말아. 멜리나는 말 안할거니까.”엘리를 바라보던 진은 쓰게 웃으며 레이먼드와 눈을 마주쳤다.이사람도 뭐라고 한마디 얹을 게 없는 건가.우선 아이비는 언니를 보고 싶어했다.그렇다고 싫다는 언니를 억지로 끌고가서 만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그냥, 언니의 마음이 중요하니까.“언니는 아이비 안 보고 싶어?”“…보고싶지.”“언니의 어머니 이신 공작부인께서도 언니를 그리워해.”“어머니께서는, 건강하셔?”“병약하시긴 하셔도 정정 하시더라. 레이먼드도 알잖아요?”“여전히 무서우신 분이시지.”레이먼드의 말에 엘리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이전부터 다들 어머니를 무서워했다.나에게는 다정하셨던 분이었지만, 다른 이들은 어머니를 어렵게 대했으니까.달라 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일까.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는데.“여전하시구나. 어머니는.”“언니, 어떻게 부탁을 하면 공작…그러니까, 아버지께는 귀에 안 들어갈 것 같아.”“진”“난 아버지는 용서할 생각이 없어. 그건 어떻게 안되겠네.”힘없이 웃는 진에 헤이든은 진의 손을 잡아주었다.지금까지 들은 말로도 진은 공작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었다.애써 티 내지 않는 것이겠지.“괜찮아?”“뭐, 한두 번 생각한 것도 아닌 걸.”진의 대답에 벤은 혀를 차며 팔짱을 꼈다.“아무리 생각해도 맹추 같은 놈이야. 가문 하나 살리겠다고 자식을 내다버리다니.”“별수 있나. 권력이라는 게 더럽고 그런 거잖아.”“그래서 너랑 네 언니가 이 개고생을 해?”“또, 화내신다. 화 좀 그만 내. 그러다 진짜 고혈압 온다니까.”진의 투덜거림에 벤은 쯧,
진이 헤이든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리자, 벤과 벨라는 다급하게 진에게 다가왔다.그런 그들에 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헤이든을 돌아보았다.벤한테 또 혼날 거 같은데.하루이틀 혼나는것도 아니다만, 아씨. 벌써 무섭잖아?“그…. 생각한것보다는 안다쳤어.”“안다치기는! 며칠째 거기 있었는데! 소식 듣고 얼마나 돌랐던지! 하여튼 너는 진짜….”“아, 아버지, 진정부터 하시고. 진, 몸은 이제 괜찮은 거야?”“많이 좋아졌어. 진짜 괜찮아.”진의 말에 벤은 미간을 좁힌채 진을 바라보다 한숨을 뱉었다.또 무모하게 몸으로 막았을 게 분명했다.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게 늘 문제라고 말했는데.“헤이든, 치료는 다 한 거 맞냐?”“약만 먹고, 운동만 잘하면 된데요. 후유증도 있을 수도 있고….”“후유증?”벨라의 물음에 진은 뒷머리를 긁적였다.다들 혼을 내는 건지 걱정을 하는 건지.헤이든도 말을 잘 해야지 걱정하게 굳이 저런 말까지 하고 그러냐.“없을 수도 있고. 진짜야. 의사가 그랬어. 근육 쪽 독이라서. 가끔 힘이 좀 안 들어 갈 수 있다 던데?”“진, 너는 그걸 그렇게 가볍게 말해?”“그야 다들 걱정하니까 그러지. 진짜 괜찮아. 나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니까?”벤은 진의 얼굴을 바라보다 작게
“공작가에 하녀가 암살시도 했다지?”“제일 끗발 없는 서출 공녀한테 무슨….”“그러니까 웃긴 일 아니냐.”사내들의 말에 헤이든은 테이블에 맥주를 거칠게 내려 두었다.“다 튀잖아!”“튀기는. 그리고 귀족네들 이야기 하지마. 그런 거 이야기해서 좋은 꼴 본 적이 없어.”“아니, 그렇잖아. 공작가에 아무리 적장녀가 실종되었다만, 서출 공녀까지 그러는게 이상하지 않냐?”“이상은 무슨? 주인도 없는 자리, 탐내는거겠지.”“그래서 암살자를 날려?”“왜, 가서 호위라도 해주게?”“아서라. 난 내 목숨이 더 소중하니까.”혀를
진은 아이비의 보랏빛 눈을 흘긋거리다 시선을 떨구었다.눈치가 빠르고 예민하다.아까 하녀가 한 까탈스럽고 예민하다는 이걸 말하고 싶었으려나.“죄송하지만, 하녀입니다”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의뢰주의 추가조항은 절대 정체를 말하지 말 것.무슨 이런 바보같은 조항이 있나 했지만, 뭐, 돈을 그만큼 주기로 했으니 따라야지.“그래? 그럼 네 손에 난 굳은살에 대한 변명은?”“손이 여려서 굳은살이 잘 베깁니다”“허술해”“이전에 정육점에서도 일했습니다”“말도 안 되는 소리.”“아버지가 군인이십니다”“
진은 떨떠름하게 거울 속의 자신을 지켜보다 얼굴을 잔뜩 구겼다.노란 리본을 짧은 머리에 달고, 단정한 하녀복을 입고있는 모습과 함께 저 껄렁한 자세라니.영락없이 뒤 꿍꿍이를 가진 모양새인데.“사장님, 혹시 삶이 지루하신가요”진의 말에도 여전히 바닥을 구르며 웃는 헤이든에, 진은 혀를 끌끌 차며 깊이 숨을 내뱉었다.용병단의 에이스인 내가 이리도 수모를 당하고 있는데, 단장이라는 놈은 배나 부여잡고 낄낄거리는 꼴이라니.헤이든이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던 진은 멈출생각 없는 헤이든에 인상을 찡그리곤 그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진은 계약서를 앞에 두고 머리를 파묻은 채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닦았다.내가 미쳤지 진짜.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 집에 내가 내 발로 들어가야한다니.심지어 뭐? 하녀?“나 진짜 그냥 때려 치고 싶어.”“늘 말했지만, 이래서 계약서를 꼼꼼하게 보라는 거야.”진은 계약서를 보다 다시 울상을 지었다.이씨, 레이먼드인지 그 미친 인간은 하녀 소리 하면 안할거 알고 이런거 같은데.중간에다가 그소리를 박아 넣는게 어딨어!“미친거 아냐 진짜.”“그러게나 말이자. 공녀님 옆으로 가는데 시종으로 갈 수도 없고.”“아니 경비도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