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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4 19:40:37

줄리아는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서 샘 윌리엄은 예전과 다름없는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변해 있었다.

대학교 시절 그녀가 알던 자유롭고 철없던 청년은 이제 자신감 넘치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완벽하게 맞춰 입은 정장, 우아한 분위기, 그리고 눈빛에 깃든 자신감만 보아도 그가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샘은 잠시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 그러니까... 나를 알아보지도 못한 거야?

줄리아는 살짝 고개를 저은 뒤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 그런 게 아니야... 그냥 거의 5년이나 지났잖아.

— 5년하고도 3개월 12일이야.

샘이 장난스럽게 정정했다.

줄리아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정말 기억하고 있었어?

그는 조금 난처한 듯 어깨를 으쓱했다.

— 뭐랄까... 세어봤어.

줄리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편안한 침묵이었다.

그러던 순간, 샘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발견하자 그의 미소가 사라졌다.

— 줄리아... 정말 괜찮아?

본능적으로 줄리아는 가방을 더욱 꽉 움켜쥐었다.

그 안에는 아기의 초음파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녀의 비밀이었다.

— 응... 괜찮아. 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래.

그녀가 조용히 대답했다.

샘은 그녀가 모든 진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 차 문을 열어주었다.

— 내가 데려다줄게.

줄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 그럴 필요 없어.

— 부탁할게.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조금의 강요도 없었다.

— 정말 안 좋아 보여.

줄리아는 몇 초 동안 망설였다.

결국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어... 고마워.

---

차는 활기찬 도시의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지만, 줄리아의 눈에는 그들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차 안을 가득 채운 침묵은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샘이었다.

— 아직도 디자인 일을 하고 있어?

그 질문에 줄리아의 가슴이 아려왔다.

그녀는 살짝 시선을 내렸다.

— 아니.

— 직업을 바꾼 거야?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 그만뒀어.

샘이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 왜?

줄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꿈꾸던 커리어를 포기했다는 것을.

자신의 야망을 뒤로한 채 오직 ‘NLE 사모님’이 되기 위해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긴 침묵 끝에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 모든 게 변하잖아...

샘은 그녀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 나는 이곳에 지사를 하나 세우려고 돌아왔어.

줄리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 축하해. 네가 정말 잘돼서 나도 기뻐.

— 고마워.

몇 초가 흘렀다.

샘은 조용히 숨을 들이마신 뒤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 있잖아... 나 사실 너를 자주 생각했어.

줄리아의 심장이 조여드는 듯했다.

대학교 시절의 기억들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그때 샘은 놀라울 정도로 진실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거절했다.

이미 그녀의 마음에는 로드리게스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선택이 정말 자신이 바라던 행복을 가져다주었을까?

---

같은 시각, NLE 그룹 본사...

로드리게스의 집무실 문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열렸다.

다이애나가 평소처럼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들어왔다.

— 잠깐 시간 있어?

로드리게스는 컴퓨터에서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 들어와.

그녀는 그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 휴대전화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 봐.

화면에는 한 장의 사진이 떠 있었다.

줄리아.

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옆에는 샘 윌리엄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줄리아 역시 부드러운 미소로 그에게 대답하고 있었다.

로드리게스의 시선이 굳어졌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 저 남자는 누구야?

그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차갑게 변해 있었다.

다이애나는 모르는 척 잠시 생각하는 시늉을 했다.

—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샘 윌리엄이라는 사람이야. 들은 바로는 이번에 아예 이곳에 정착하려고 돌아왔다던데.

로드리게스는 계속 사진만 바라보았다.

불쾌한 감정이 가슴을 짓눌렀다.

이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줄리아가 다른 남자를 향해 미소 짓는 모습이 싫었다.

자신조차 이런 반응에 놀랐다.

어차피...

그는 줄리아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이런 분노가 치미는 걸까?

다이애나는 몰래 그의 표정을 살폈다.

미간에 살짝 잡힌 주름.

어두워진 눈빛.

그녀의 입꼬리에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질투의 첫 씨앗이 뿌려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 씨앗이 반드시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

몇 분 후, 샘의 차가 NLE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줄리아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 데려다줘서 고마워.

— 별것도 아닌데.

두 사람은 함께 차에서 내렸다.

줄리아가 대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샘이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 줄리아.

그녀가 뒤돌아보았다.

샘은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 언젠가 도움이 필요하면... 무슨 이유든 상관없이... 나한테 전화해.

그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다.

줄리아는 감사한 미소를 지으며 명함을 받아 들었다.

— 고마워, 샘.

바로 그 순간, 뒤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저택 앞에 갑자기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렸다.

로드리게스가 차에서 내렸다.

그의 시선이 곧바로 눈앞의 장면을 훑었다.

줄리아.

샘.

그리고 아직 아내의 손가락 사이에 들려 있는 명함.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주변의 공기마저 무거워진 듯했다.

로드리게스는 몇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겉으로는 차분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 이 남자는 누구야?

세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줄리아는 심장이 가슴을 세차게 두드리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로드리게스가 진심으로 불쾌해 보였다.

그리고 그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그 분노는,

방금 막 태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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