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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화. 긴 밤

Author: 아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9 12:00:57

손등이 닿은 자리가 뜨거웠다.

예령은 그 손을 치우지도, 더 움직이지도 못했다.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알아챌 것이고, 빼면 그것도 알아챌 것이었다.

숨을 고르게 쉬려고 애썼다. 애쓰는 동안 숨이 더 얕아졌다.

잠이 오지 않아 수를 세기로 했다. 며칠 전 능선에서 그가 세라고 한 것처럼 하나부터 세었다. 그런데 스물을 넘기면서 세고 있는 것이 제 숨이 아니라 옆 사람의 숨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령은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옆에서도 소리가 없었다. 잠이 들면 숨이 깊고 느려진다. 무겸의 숨은 그렇지 않았다.

한 번은 무겸이 몸을 돌리려다 그만두는 것이 이불의 움직임으로 전해졌다. 예령도 마찬가지였다. 다리를 조금 펴려다가, 그 작은 움직임조차 옆으로 건너갈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둘 다 자는 척을 하고 있었고, 둘 다 상대가 자는 척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때쯤 화로에서 숯이 식는 소리가 났다. 방 안의 온기가 천천히 빠져나갔다. 예령은 발끝을 이불 안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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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25화. 두 번째 밤

    진서헌이 돌아간 날 오후, 무겸은 연무장에 병사들을 세웠다.겨울에는 하지 않는 창 훈련이었다. 해가 기울 때까지 줄을 세 번 바꿔 가며 굴렸고, 마지막에는 제가 창을 들고 앞줄에 섰다.곽진이 곁에서 조심스레 물었다.“오늘은 어인 일이십니까? 겨울에는 창 훈련을 하지 않는 것이 이 군영의 법도였습니다.”“겨울에 손을 놓으면 봄에 쓸 수가 없다. 눈이 녹으면 저쪽에서 먼저 움직일 것이고, 그때 창을 처음 잡는 자는 죽는다.”“……지당하신 말씀입니다.”곽진은 더 묻지 않았다.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 말이 옳다면 열흘 전에도, 보름 전에도 병사들을 연무장에 세웠어야 했다. 하필 오늘 세운 이유는 거기 없었다.장군은 창대를 쥔 손에 자꾸 힘을 주고 있었다.그날 저녁상은 조용했다.무겸이 국그릇을 내려놓으며 물었다.“낮에 온 자는 몇을 데리고 왔소?”“행수 하나와 짐꾼 둘입니다.”“그 먼 길을 넷이서 왔군.”“북방 상인은 겨울에 사람을 많이 데리고 다니지 않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먹일 것도 많아지니까요.”“그렇군.”무겸은 더 묻지 않았다. 다만 그 물음을 꺼내기까지 국이 다 식도록 기다렸다는 것을 예령은 알았다.상을 물린 뒤가 문제였다.어제는 할 일이 있었다. 장부를 선반에 올리고, 팔을 봐 주고, 그러다 보니 등잔을 낮출 때가 되었다. 오늘은 그런 것이 없었다.예령은 주판을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무겸은 지도를 폈다가 반쯤 접었다.화로에서 숯이 내려앉는 소리만 두어 번 났다.“오늘 백운상회 쪽에 사람을 보냈습니다.”예령이 먼저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만나 주겠답니까?”“내일 직접 가 보려 합니다.”“곽진의 사람을 붙이겠소.”“상회 마당에 군사가 서 있으면 문은 더 닫힙니다.”무겸이 잠시 그녀를 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장호만 데려가시오.”“그리하겠습니다.”할 말이 또 떨어졌다.“머리를 풀겠습니다.”예령이 먼저 말했다. 말해 놓고 보니 굳이 알릴 일이 아니었다. 어제는 아무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24화. 지나가는 길

    날이 밝고 얼마 되지 않아 마당에서 발소리가 났다. 연화가 문밖에서 조심스레 불렀다.“부인. 손님이 왔습니다.”예령이 눈을 떴다. 무겸의 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이 눈에 누가 와?”“북쪽에서 왔답니다.”막힌 것은 남쪽 고갯길이었다. 북쪽에서 오는 길까지 닫힌 것은 아니었다.예령은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어느 상단이야?”“진가상회라 하는데요. 그 댁 상단주가 직접 왔습니다.”예령의 손이 옷깃에서 멈췄다. 황도의 아가씨가 북방 바람을 견디실지는 제 눈으로 보고 판단하겠다던 그 글씨가 떠올랐다.진서헌이었다.예령은 일어나 앉았다. 옆자리는 이미 식어 있었고, 이불은 그녀 쪽으로만 덮여 있었다.밤새 쥐고 있던 손을 폈다 오므려 보았다. 손끝이 따뜻했다. 언제 놓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거울 앞에 앉으니 눈 밑이 조금 부어 있었다. 연화가 못 본 척하며 머리를 매만졌다.관사 마당에 선 사내는 생각보다 젊었다.스물예닐곱쯤 되었을까. 털을 댄 겉옷이 눈밭에서도 값나 보였고, 목에 두른 것은 북방에서 나지 않는 남쪽 비단이었다.키가 크고 어깨가 곧았다. 북방 사내치고는 살결이 희어 눈빛이 유난히 검게 보였고, 웃으면 눈꼬리가 먼저 휘어 사람을 편하게 만들었다. 마당 끝에서 그를 보던 하녀 둘이 물동이를 든 채 걸음을 늦췄다.무겸이 서 있는 자리의 공기를 사람들이 비켜 간다면, 이 사내는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다가서게 만드는 쪽이었다.“진가상회 진서헌입니다.”그가 예를 갖췄다. 깊지도 얕지도 않은 예였다.“서씨 상단의 서예령입니다.”진서헌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잠깐 말을 잊은 사람처럼 예령을 보았다.들은 것과 달랐다. 황도에서 밀려 온 계집이라고들 했다. 눈앞의 여인은 밤을 새운 얼굴인데도 눈매가 또렷했고, 찬 바람에 뺨이 붉었을 뿐 물러선 기색이 없었다.“서신을 보내고 답을 못 받았습니다.”“보름이라 하셨지요. 그 보름 동안 저는 소금 창고와 굴을 보고 있었습니다.”“소문은 들었습니다.”진서헌이 웃었다.“그래서 왔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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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등이 닿은 자리가 뜨거웠다.예령은 그 손을 치우지도, 더 움직이지도 못했다.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알아챌 것이고, 빼면 그것도 알아챌 것이었다.숨을 고르게 쉬려고 애썼다. 애쓰는 동안 숨이 더 얕아졌다.잠이 오지 않아 수를 세기로 했다. 며칠 전 능선에서 그가 세라고 한 것처럼 하나부터 세었다. 그런데 스물을 넘기면서 세고 있는 것이 제 숨이 아니라 옆 사람의 숨이라는 것을 알았다.예령은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옆에서도 소리가 없었다. 잠이 들면 숨이 깊고 느려진다. 무겸의 숨은 그렇지 않았다.한 번은 무겸이 몸을 돌리려다 그만두는 것이 이불의 움직임으로 전해졌다. 예령도 마찬가지였다. 다리를 조금 펴려다가, 그 작은 움직임조차 옆으로 건너갈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둘 다 자는 척을 하고 있었고, 둘 다 상대가 자는 척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때쯤 화로에서 숯이 식는 소리가 났다. 방 안의 온기가 천천히 빠져나갔다. 예령은 발끝을 이불 안쪽으로 당겼다.옆에서 이불이 움직였다.무겸이 일어나 화로 앞으로 갔다. 숯을 집어 넣고 부챗살로 바람을 넣었다. 붉은 빛이 한 번 일었다가 낮게 가라앉았다.예령은 눈을 조금 떴다.불빛을 등진 어깨가 넓었다. 속옷 한 겹 위로 등의 선이 드러났고, 팔을 움직일 때마다 어깨뼈가 따라 움직였다. 그 팔에 조금 전 그녀가 감아 준 천이 흰 띠처럼 남아 있었다.예령은 다시 눈을 감았다.무겸이 돌아와 누웠다. 이불이 들리는 잠깐 사이에 찬 공기가 들어왔다가 다시 닫혔다.“깨어 있었소?”예령은 거짓말할 자리를 찾지 못했다.“……예.”“잠이 안 오오?”“예.”“나도 그렇소.”천장은 여전히 어두웠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서까래 하나가 희미하게 보였다.“별당에서 삼 년을 지냈소.”무겸이 말했다.“그 방은 밤이 되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소. 사람 숨소리가 들리는 게 오랜만이오.”“저도 그런 방을 압니다.”예령은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밤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방이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22화. 예령

    예령의 손이 멎었다.혼례를 치른 뒤로 두 사람은 같은 방에서 잔 적이 없었다. 황도 집에서는 서실을 사이에 두고 방이 나뉘어 있었고, 북행 길에 역참 방이 하나뿐이었던 밤에도 무겸은 문 앞에 앉아 밤을 보냈다.여기에는 방이 둘이었으나, 하나는 군무를 보는 방이었다.“……한 채만 깔아.”연화의 눈이 커졌다.“한 채요?”“두 채를 깔면 장군이 군무 보는 방에서 자겠다 하실 거야. 이 추위에.”말해 놓고 예령은 제 귀가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문 쪽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무겸이 문턱 앞에 서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연화가 이부자리를 내려놓고 재빨리 물러났다.“……들으셨습니까?”“추위 이야기만 들었소.”거짓말이었다. 귀 끝이 붉었다.무겸이 방 안으로 들어와 화로에 손을 쬐었다. 그러고는 마당 쪽 창을 한 번 보았다. 눈이 담장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봄까지는 싸울 일이 없소.”“예.”“쫓을 사람도, 열 굴도 없소. 장계는 이미 떠났고, 답이 오려면 눈이 녹아야 하오.”무겸이 화로에서 손을 내렸다.“그러니 겨우내 내가 이 방에 있는 시간이 길 거요.”“……예.”“불편하면 말하시오. 군무 보는 방으로 자리를 옮기겠소.”“불편하지 않습니다.”대답이 너무 빨랐다. 예령은 괜히 등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화로에서 숯이 한 번 내려앉았다. 주판이 놓인 탁자, 두 칸 선반, 한 채만 깔린 이부자리.겨울은 길 것이었다.저녁상은 연화가 관사 부엌에서 차려 왔다. 군영 취사장에서 얻어 온 국과 밥, 상단 수레에서 꺼낸 마른 대추 한 접시였다.마주 앉아 먹는 것도 처음이었다. 황도 집에서는 무겸이 늘 늦게 돌아왔고, 북행 길에서는 각자 마차와 말 위에서 끼니를 넘겼다.무겸이 제 그릇의 고기를 덜어 예령의 밥 위에 올렸다.“저는 많습니다.”“너무 말랐소.”예령은 젓가락을 멈췄다.“나는 낮에 취사장에서 먹었소. 그러니 드시오.”병사들 줄 끝에 서 있던 모습이 떠올라 예령은 더 사양하지 못했다.상을 물린 뒤, 예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21화. 눈이 길을 닫다

    군영에 닿은 것은 해가 높아졌을 때였다.무겸은 연무장에 상자를 내려놓게 했다. 뚜껑을 열자 화살촉이 겨울 햇빛을 되쏘았다. 창날 묶음이 그 옆에 세워졌다.배승이 끌려 나왔다.무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상자 하나를 밑면이 보이게 돌려 세웠다.나무에 찍힌 관의 인이 배승의 눈높이에 왔다.배승의 무릎이 먼저 꺾였다.“……저는 소금만 알았습니다.”연무장을 메운 병사들이 그 말을 들었다.“소금은 창고에서 새는 것이라, 눈감아 주면 겨울 한철 넘어가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허나 병장기는 제 손을 거치지 않았습니다.”“그럼 누구를 거쳤느냐.”“모릅니다. 상자는 사람이 따로 왔습니다. 저는 길만 열어 주었습니다.”“그 사람이 무엇을 보이더냐.”배승이 입술을 물었다. 한참 뒤에 나온 말은 낮았다.“병부 문서였습니다.”무겸은 그 말을 되묻지 않았다. 삼 년을 기다려 온 말이었다.“네가 사흘을 달라 했을 때, 나는 네 장부를 기다렸다.”배승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장부보다 이것이 먼저 왔다. 네 손으로 내놓을 기회는 그것으로 끝났다.”곽진이 배승을 끌어냈다.“뇌옥[(牢獄)군영 안에 죄인을 가두어 두는 옥]에 넣겠습니다. 우영 장수였으니 칸은 따로 쓰게 하지요.”“따로가 아니라 멀리 떨어뜨려라. 굴에서 잡아 온 우두머리와 말을 섞게 하면 내일 두 사람의 말이 같아진다.”그날 무겸은 장계[(狀啓)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보고 문서]를 썼다. 굴에서 나온 상자가 몇인지, 낙인이 어떤 모양인지, 생포한 스물넷의 이름, 그리고 배승이 한 말을 그대로 적었다. 예령이 옆에서 소금 자루 수를 세어 주었다.해 질 녘에 위량이 말에 올랐다.“고갯길이 닫히기 전에 넘어야 합니다.”“상자 하나를 수레에 실어 같이 가져가라.”“문서만으로는 부족합니까?”“종이에 그린 낙인은 꾸며 낸 것이라 우길 수 있다. 상자를 눈앞에 놓아야 그 말을 못 한다.”위량이 떠난 뒤, 밤부터 눈이 쏟아졌다.이튿날 아침 초소에서 사람이 왔다. 남쪽 고갯길이 사람 키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20화. 소금이 아니었다

    위량이 눈길을 내려갔다.“장호. 너는 여기 남아 부인 곁을 지켜라.”“……예.”무겸이 담 쪽 어둠으로 돌기 전에 예령을 돌아보았다.“여기 계시오. 곽진이 오면 능선에서 손을 들어 알리시오.”무겸이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그리고 수를 세시오. 이백을 세기 전에 돌이 치워질 거요.”그가 인장을 예령의 손에 돌려주었다.“이것이 오늘 내 군사 오십보다 나았소.”무겸의 등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초소 앞에서 개가 짖었다. 누군가 횃불을 들고 나왔다.예령은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위량이 군령을 내밀었다.스물, 서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동안 수만 늘었다. 여든을 넘길 무렵 손이 떨려서, 예령은 눈 위에 손바닥을 붙였다.문서가 펴졌다. 횃불이 인영 위에 멈췄다.“우영에서 왔다면 아래 길로 왔을 텐데?”“아래 길은 막혔소. 정북장군의 군사가 올라오고 있소.”횃불이 흔들렸다.“장군께서 물건을 하나도 남기지 말라 하셨소. 자루 수를 적어 오라 하셨고. 모자라면 여기 남은 자들이 물어야 하오.”그 말이 가장 잘 들었다. 사내가 돌아서서 소리쳤다.“돌을 치워라!”돌무더기가 낮아졌다.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그 연기 속으로 위량이 횃불을 들이밀었다. 안을 들여다본 그가 그대로 굳었다.굴 안에 쌓여 있는 것은 소금 자루가 아니었다.나무 상자였다. 뚜껑이 열린 것 하나에서 쇠붙이가 횃불을 되쏘았다. 화살촉이 상자 안에 가득했다. 그 옆에는 창날 묶음이 세워져 있었다.소금을 말과 바꾼 것은 밀매였다. 병장기를 넘기는 것은 이름이 다른 일이었다.“이게 무슨…….”위량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군령을 든 사내의 눈이 그 순간 달라졌다.“우영 사람이 이걸 보고 놀랄 일이 없지.”사내의 손이 칼자루로 갔다.그 손이 칼을 반도 뽑지 못했다.담 안쪽 어둠에서 나온 칼이 사내의 손목을 쳤다. 칼이 눈 위에 떨어졌다. 무겸이 그 앞에 서 있었다.“정북장군 한무겸이다. 칼을 버려라.”굴 입구의 다섯이 돌을 놓고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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