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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오게 만들어

Author: 아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6 20:21:23

10화. 스스로 오게 만들어

예령이 저택에 돌아왔을 때는 밤이 깊어 있었다.

대문 앞에는 등불 여러 개가 밝혀져 있었고, 서문백이 직접 마당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가 멈추자마자 그가 계단을 내려왔다.

“어찌 이리 늦었느냐?”

“병영에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다친 곳은 없고?”

예령은 괜찮다고 대답하려 했지만, 마차에서 내리는 연화의 표정이 먼저 굳었다. 서문백의 시선이 예령의 손목으로 향했다.

소매 아래로 검붉은 멍이 드러나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예령이 손목을 감추기도 전에 서문백이 다가왔다.

“오는 길에 한무천 공자가 마차를 막았습니다.”

결국 연화가 먼저 털어놓았다.

“아가씨를 억지로 데려가려고 했어요.”

서문백의 얼굴이 굳었다.

예령은 그를 안으로 모신 뒤 길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무천이 자신을 밤새 붙잡아 두고 소문을 퍼뜨리려 했다는 말까지 듣자 서문백의 손이 떨렸다.

“그자가 감히…….”

“실패했습니다. 당분간은 다시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어찌 벗어났느냐?”

예령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누군가 도와주었습니다.”

“누구냐?”

“저도 모릅니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흔적 없이 사라진 사내였다. 무겸이 보낸 사람일 가능성이 가장 컸지만, 확인하지 않은 일을 사실처럼 말할 수는 없었다.

서문백은 곧바로 호위를 늘리라고 명했다.

“앞으로는 네가 어디를 가든 최소 열 명을 붙이겠다.”

“호위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눈에 띕니다.”

“오늘 같은 일을 겪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오늘은 제가 경솔했습니다.”

예령은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전생의 기억만 믿고 지금의 무천을 지나치게 얕본 것은 사실이었다.

자신이 파혼을 요구하면 무천은 서씨 상단의 재물을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무겸과 혼인하겠다는 말이 그의 자존심을 자극한 뒤부터는 행동이 달라졌다.

무천은 이제 손익을 따지지 않았다.

자신을 되찾는 일에 집착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혼자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예령의 대답을 들은 뒤에야 서문백은 조금 진정했다.

“파혼서는 제대로 전했느냐?”

“유 장군께서 사흘 안에 직접 전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진북후께서 서신을 읽으면 달라질까?”

“적어도 조씨 부인 뒤에 숨어 거절하지는 못하겠지요.”

예령은 멍든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무천이 저지른 일을 진북후가 알게 된다면 파혼을 거절할 명분은 더욱 약해진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조씨는 서씨 상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무천 역시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예령은 연화에게 붓과 종이를 가져오게 했다.

“무엇을 쓰시려고요?”

“앞으로 상단에 들어오는 거래를 전부 다시 확인할 거야.”

“거래까지요?”

“한무천은 내가 상단 일에는 반드시 나선다는 걸 알고 있어.”

전생에서 무천은 예령의 마음만 이용한 것이 아니었다. 상단의 거래 방식과 약점도 곁에서 지켜보며 익혔다.

강제로 끌고 가는 데 실패했다면 다음에는 예령이 스스로 나오게 만들 것이다.

예령은 황도 안팎의 지점에 보낼 지시를 적었다. 새 거래를 제안하는 상단은 규모와 관계없이 출처를 확인하고, 큰 금액이 오가는 약조는 자신에게 올리기 전에 상대의 인장부터 대조하라는 내용이었다.

“아가씨께서는 한무천 공자가 또 무슨 일을 벌일 거라고 생각하세요?”

“포기할 사람은 아니니까.”

예령은 마지막 지시문에 인장을 찍었다.

“다만 같은 방법을 두 번 쓰지는 않겠지.”

같은 시각, 무천의 처소에는 깨진 거울 조각이 그대로 흩어져 있었다.

하인들은 누구도 방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무천은 불도 밝히지 않은 채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예령이 자신을 찌르던 순간이 계속 떠올랐다.

두려움은 없었다.

그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자신을 바라보던 예령의 눈이었다. 한때는 작은 말 한마디에도 웃고 울던 여인이 이제는 자신을 혐오하고 있었다.

그 눈빛이 형을 향할 때는 달라질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 속이 뒤틀렸다.

예령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곁에만 묶어 둘 수 있다면 미움받는 것쯤은 견딜 수 있었다. 형의 아내가 되는 것만 막을 수 있다면, 예령의 마음 따위는 나중에 돌려놓으면 된다.

무천은 탁자 위에 놓인 방울을 울렸다.

한참 뒤, 그의 심부름을 맡아 온 하인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최만석을 찾아.”

황도 뒷골목의 거래를 중개하는 장사치였다. 돈만 충분히 주면 없는 상단도 만들고,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어음을 꾸밀 수 있는 자였다.

“무슨 일로 찾는다고 전할까요?”

무천은 잠시 생각했다.

예령에게 사람을 보내도 만나 주지 않을 것이다. 길을 막으면 이번처럼 누군가 끼어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예령이 제 발로 나올 이유가 필요했다.

그녀가 의심하면서도 외면하지 못할 만큼 큰 미끼.

“서씨 상단과 거래하고 싶다고 전해.”

“어떤 거래를 말씀하십니까?”

무천의 입가에 느린 웃음이 번졌다.

“그건 그자가 만들겠지.”

그는 피가 굳어 붙은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서예령이 직접 나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거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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