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최만석이 무천의 처소를 찾은 것은 다음 날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방 안에는 새 거울이 놓여 있었고, 향로에서는 평소보다 짙은 향이 피어올랐다. 최만석은 무천의 손등에 남은 상처를 발견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오랫동안 남의 비밀을 팔아 살아온 사람은 궁금한 것이 있어도 함부로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찾으셨습니까, 공자님.”
최만석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무천은 앉으라는 말도 없이 탁자 위에 은자 주머니를 던졌다.
“서씨 상단에 거래를 넣어라.”
“물건을 사시려는 겁니까, 파시려는 겁니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최만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다면 거래 자체가 목적은 아니시군요.”
무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최만석이 주머니를 들어 무게를 가늠했다. 상당한 은자가 들어 있었지만, 곧바로 소매에 넣지는 않았다. 돈이 많은 의뢰일수록 뒤에 감춰진 위험도 컸다.
“누구를 불러내면 됩니까?”
“서예령이다.”
“서씨 상단의 아가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그분을 만나려는 것이라면 직접 서신을 보내시는 편이 빠를 텐데요.”
무천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랬다면 너를 부르지 않았겠지.”
최만석은 더 묻지 않았다.
서예령과 무천의 파혼 이야기는 이미 황도에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무천이 서씨 상단에서 가져간 물건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소문도 들었다.
자신을 만나 주지 않는 여인을 거래로 끌어내려는 것이라면, 실패했을 때 모든 책임을 떠안을 사람까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작은 거래로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최만석이 말했다.
“서씨 상단은 황도에서도 손에 꼽히는 곳입니다. 비단 몇 필이나 약재 몇 상자로 아가씨가 직접 나오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큰 거래를 만들라고 한 거다.”
“큰 거래에는 큰돈이 필요합니다.”
“얼마면 되지?”
무천이 망설임 없이 묻자 최만석의 시선이 달라졌다.
“거래가 진짜처럼 보이려면 물건과 창고, 어음이 있어야 합니다. 상단의 인장도 필요하고, 과거에 다른 곳과 거래한 기록까지 있어야 하지요.”
“가짜 인장을 만들면 되지않나.”
“인장 하나만 확인한다면 그렇습니다.”
최만석은 은자 주머니를 탁자 위에 다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서씨 상단은 거래 상대의 뿌리까지 살핍니다. 언제 생긴 상단인지, 어느 나루를 이용하는지, 누구와 거래했는지까지 알아볼 겁니다. 이름만 꾸며 냈다가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들통납니다.”
무천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만들 수 없다는 말이냐?”
“없는 것을 새로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최만석의 입가에 느린 웃음이 걸렸다.
“하지만 사라진 것을 되살리는 일은 가능하지요.”
그가 꺼낸 이름은 금원상단이었다.
십 년 전까지 강남의 비단을 북방으로 올리던 중간 규모의 상단이었다. 상단주가 갑작스럽게 죽은 뒤 문을 닫았지만, 폐업했다는 사실은 황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은 상단주의 조카가 남은 장부와 인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자가 순순히 내놓겠느냐?”
“빚에 쫓기고 있으니 은자를 보여 주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죽은 상단을 다시 움직이겠다는 것이냐?”
“죽었다고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황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더욱 그렇고요.”
무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예령도 속일 수 있겠느냐?”
최만석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 아가씨가 상단 일에 밝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해.”
“의심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대신 의심하면서도 놓칠 수 없는 거래는 만들 수 있습니다.”
무천이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예령이 자신을 만나러 오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확인하러 오는 것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정해 둔 장소에 제 발로 나오기만 하면 됐다.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리지?”
“적어도 보름은 필요합니다.”
“사흘 안에 해.”
최만석이 무천을 빤히 바라보았다.
“상단의 옛 장부를 구하고 사람들의 입도 맞춰야 합니다. 서두르면 서씨 상단의 문턱도 넘기 전에 들통납니다.”
“닷새.”
“열흘은 주셔야 합니다.”
무천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하루가 지날수록 예령과 무겸의 혼인은 가까워질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이라도 예령을 데려오고 싶었다.
그러나 지난번처럼 힘으로 끌고 가려 했다가는 또다시 실패할 수 있었다.
“일곱 날을 주겠다.”
“그 안에는 거래를 넣지 못합니다. 준비가 끝났다는 보고까지만 드리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좋아.”
무천이 마침내 허락했다.
“대신 네가 일을 그르치면 받은 것의 두 배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최만석은 그제야 은자 주머니를 소매 안에 넣었다.
“아가씨께서 제 발로 나오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날부터 서씨 상단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예령은 아침마다 본점으로 나가 새로 들어온 거래 제안을 직접 살폈다. 거래처의 이름뿐 아니라 사용한 종이와 먹, 서신을 가져온 사람의 말투까지 기록하게 했다.
전생의 예령은 사람을 쉽게 믿었다.
오래 거래했다는 이유로 장부를 자세히 보지 않았고, 무천이 소개했다는 이유만으로 처음 보는 상인에게 물건을 내주기도 했다.
그 믿음이 어떤 대가로 돌아왔는지 이제는 알고 있었다.
“아가씨, 이것까지 확인하셔야 합니까?”
연화가 얇은 장부를 내밀었다.
“남쪽 지점에서 보내온 차 거래인데 금액도 크지 않아요.”
“처음부터 큰돈을 요구하는 사람은 드물어.”
예령은 거래 상대의 이름을 따로 적어 두었다.
“작은 거래로 믿음을 얻은 뒤 창고 열쇠를 요구하는 법이지.”
상단의 늙은 서기들은 갑자기 까다로워진 예령을 낯설게 보았다. 그러나 며칠 전 출처가 불분명한 어음 하나를 찾아내 손실을 막은 뒤부터는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예령이 마지막 장부를 덮었을 때 연화가 봉인된 서신을 가져왔다.
“아가씨 앞으로 온 것입니다.”
거래 제안서는 아니었다.
겉면에는 보낸 사람의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봉인에 찍힌 문양이 낯설지 않았다.
검은 매가 날개를 편 모습이었다.
폐사에서 무겸이 짚고 있던 지팡이에도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예령이 봉인을 뜯자 짧은 문장이 나타났다.
내일 정오, 확인할 것이 있으니 만나러 가겠소.
이름은 없었지만 누구의 글씨인지는 분명했다.
예령은 서신을 접으며 멍이 남은 손목을 소매 안으로 감췄다.
12화. 감춘 손목다음 날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무겸의 마차가 서씨 상단 앞에 멈췄다.그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예령은 본점 이층의 작은 응접실을 비워 두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저택보다 상단에서 만나는 편이 눈에 덜 띌 것이라 판단했다.그러나 검은 옷을 입은 무겸이 지팡이를 짚고 안으로 들어서자 상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진북후부의 장남이 서씨 상단에 찾아왔다는 사실보다, 예령과 혼인을 약조한 사내가 직접 찾아왔다는 사실에 더 관심이 많은 눈치였다.예령은 창밖을 내려다보다 휘장을 내렸다.“눈에 띄지 않으려 이곳에서 뵙자고 했는데 소용없게 됐군요.”“내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도 상단으로 나오지 않았소?”무겸이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그렇다면 그대도 숨길 생각은 없었던 것 같은데.”“피하지 않겠다는 것과 구경거리가 되고 싶다는 건 다른 일입니다.”“곧 익숙해져야 할 것이오.”예령이 차를 따르던 손을 멈췄다.“무엇에 말입니까?”“사람들이 그대와 나를 함께 묶어 이야기하는 것에.”무겸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예령은 곧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둘의 혼인은 서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약조였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당연하다는 듯 두 사람을 한데 묶는 말이 나오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예령은 찻잔을 그에게 밀어 주며 화제를 돌렸다.“확인할 것이 있다고 하셨지요.”무겸은 차를 마시지 않았다.그의 시선이 예령의 얼굴에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예령은 소매 속에 감춰 둔 손을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렸다.“손을 내놓으시오.”“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왼손.”예령의 눈빛이 가늘어졌다.멍은 소매 안쪽에 가려져 있었다. 연화와 아버지, 함께 갔던 호위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었다.“어떻게 아셨습니까?”“무엇을 말이오?”“제 손목이 다쳤다는 사실 말입니다.”무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다쳤다고 말한 적은 없소.”예령은 그가 자신을 떠본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무겸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스쳤다.“감
11화. 존재하지 않는 상단최만석이 무천의 처소를 찾은 것은 다음 날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방 안에는 새 거울이 놓여 있었고, 향로에서는 평소보다 짙은 향이 피어올랐다. 최만석은 무천의 손등에 남은 상처를 발견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오랫동안 남의 비밀을 팔아 살아온 사람은 궁금한 것이 있어도 함부로 입 밖에 내지 않았다.“찾으셨습니까, 공자님.”최만석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무천은 앉으라는 말도 없이 탁자 위에 은자 주머니를 던졌다.“서씨 상단에 거래를 넣어라.”“물건을 사시려는 겁니까, 파시려는 겁니까?”“어느 쪽이든 상관없다.”최만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렇다면 거래 자체가 목적은 아니시군요.”무천은 대답하지 않았다.최만석이 주머니를 들어 무게를 가늠했다. 상당한 은자가 들어 있었지만, 곧바로 소매에 넣지는 않았다. 돈이 많은 의뢰일수록 뒤에 감춰진 위험도 컸다.“누구를 불러내면 됩니까?”“서예령이다.”“서씨 상단의 아가씨 말씀이십니까?”“그렇다.”“그분을 만나려는 것이라면 직접 서신을 보내시는 편이 빠를 텐데요.”무천의 눈빛이 서늘해졌다.“그랬다면 너를 부르지 않았겠지.”최만석은 더 묻지 않았다.서예령과 무천의 파혼 이야기는 이미 황도에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무천이 서씨 상단에서 가져간 물건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소문도 들었다.자신을 만나 주지 않는 여인을 거래로 끌어내려는 것이라면, 실패했을 때 모든 책임을 떠안을 사람까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작은 거래로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최만석이 말했다.“서씨 상단은 황도에서도 손에 꼽히는 곳입니다. 비단 몇 필이나 약재 몇 상자로 아가씨가 직접 나오지는 않겠지요.”“그래서 큰 거래를 만들라고 한 거다.”“큰 거래에는 큰돈이 필요합니다.”“얼마면 되지?”무천이 망설임 없이 묻자 최만석의 시선이 달라졌다.“거래가 진짜처럼 보이려면 물건과 창고, 어음이 있어야 합니다. 상단의 인장도 필요하고, 과거에 다른 곳과 거래한 기록까지 있어야 하지요.
10화. 스스로 오게 만들어예령이 저택에 돌아왔을 때는 밤이 깊어 있었다.대문 앞에는 등불 여러 개가 밝혀져 있었고, 서문백이 직접 마당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마차가 멈추자마자 그가 계단을 내려왔다.“어찌 이리 늦었느냐?”“병영에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다친 곳은 없고?”예령은 괜찮다고 대답하려 했지만, 마차에서 내리는 연화의 표정이 먼저 굳었다. 서문백의 시선이 예령의 손목으로 향했다.소매 아래로 검붉은 멍이 드러나 있었다.“이게 어찌 된 일이냐?”예령이 손목을 감추기도 전에 서문백이 다가왔다.“오는 길에 한무천 공자가 마차를 막았습니다.”결국 연화가 먼저 털어놓았다.“아가씨를 억지로 데려가려고 했어요.”서문백의 얼굴이 굳었다.예령은 그를 안으로 모신 뒤 길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무천이 자신을 밤새 붙잡아 두고 소문을 퍼뜨리려 했다는 말까지 듣자 서문백의 손이 떨렸다.“그자가 감히…….”“실패했습니다. 당분간은 다시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어찌 벗어났느냐?”예령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누군가 도와주었습니다.”“누구냐?”“저도 모릅니다.”이름도 밝히지 않고 흔적 없이 사라진 사내였다. 무겸이 보낸 사람일 가능성이 가장 컸지만, 확인하지 않은 일을 사실처럼 말할 수는 없었다.서문백은 곧바로 호위를 늘리라고 명했다.“앞으로는 네가 어디를 가든 최소 열 명을 붙이겠다.”“호위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눈에 띕니다.”“오늘 같은 일을 겪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오늘은 제가 경솔했습니다.”예령은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전생의 기억만 믿고 지금의 무천을 지나치게 얕본 것은 사실이었다.자신이 파혼을 요구하면 무천은 서씨 상단의 재물을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무겸과 혼인하겠다는 말이 그의 자존심을 자극한 뒤부터는 행동이 달라졌다.무천은 이제 손익을 따지지 않았다.자신을 되찾는 일에 집착하고 있었다.“앞으로는 혼자 판단하지 않겠습니다.”예령의 대답을 들은 뒤에야 서문백은 조금
9화. 모르는 척검은 무복의 사내가 사라진 뒤에도 예령은 한동안 빈 길을 바라보았다.사람이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아가씨, 괜찮으세요?”연화가 달려와 예령의 손목을 살폈다. 무천에게 붙잡혔던 자리에 붉은 자국이 선명했다.“괜찮아.”“그냥 저택으로 돌아가요.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호위들도 같은 표정이었다. 무천의 수하들에게 제압당한 것이 수치스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그러나 예령은 돌아갈 수 없었다.무천이 자신을 데려가지 못했으니 조씨는 곧 다른 방법을 쓸 것이다. 진북후에게 파혼서를 전하는 일이 늦어질수록 불리해졌다.“병영으로 간다.”“하지만 아가씨…….”“저들이 다시 돌아오지는 못할 거야.”무천의 얼굴에 떠올랐던 공포는 거짓이 아니었다. 적어도 오늘은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예령은 바닥에 떨어진 비녀를 주워 들었다. 끝에 묻은 피를 닦아 소매 안에 넣은 뒤 마차에 올랐다.길을 다시 출발한 뒤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우연히 지나던 무인이었다면 무천을 쫓아낸 뒤 사례를 요구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자신을 지켜보던 사람이라면 누구의 명을 받았는지가 문제였다.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하지만 증거는 없었다.예령은 섣불리 결론짓지 않기로 했다.황도 외곽의 병영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뒤였다.병사들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귀족가의 여인을 경계했다. 예령이 서씨 상단의 인장을 내보이자 그제야 안으로 들어가 확인했다.잠시 후 체격이 다부진 중년의 사내가 막사에서 나왔다. 왼쪽 눈썹에서 뺨까지 길게 이어진 흉터가 있었다.북방에서 군량을 관리했던 유강이었다.“서 대인의 따님이시오?”“예. 갑작스럽게 찾아와 죄송합니다.”유강은 예령과 망가진 호위들의 옷차림을 훑어보았다.“오는 길이 편하지 않았던 모양이군.”“그래도 반드시 전해야 할 것이 있어 왔습니다.”예령은 봉인된 파혼서를 내밀었다.“진북후께 직접 전달해 주십시
8화. 흔적도 없이다음 날 아침, 진북후부에서 파혼서를 돌려보냈다.봉인조차 뜯지 않은 채였다.서문백은 되돌아온 서신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진북후께서 직접 거절하신 것은 아닌 듯하구나.”“조씨 부인이 중간에서 막았겠지요.”조씨에게 이번 파혼은 혼약 하나가 깨지는 일이 아니었다. 예령의 혼수와 서씨 상단의 자금을 모두 잃는 일이었다. 더구나 예령이 무겸과 혼인하면 그 재물이 장남의 힘이 된다.무천을 후계자로 세우려는 조씨가 받아들일 리 없었다.“내가 직접 찾아가 보마.”“지금은 만나 주지 않을 겁니다.”“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지 않으냐?”예령은 파혼서를 집어 들었다.“진북후께 이 서신부터 전해야 합니다.”전생에도 조씨는 진북후에게 들어가는 서신을 가려 받았다. 무천에게 불리한 소식은 대부분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북방에서 군량을 관리했던 장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황도 외곽의 병영에 머물고 있으니, 그분을 통하면 서신을 전할 수 있을 겁니다.”“사람을 보내면 되지 않겠느냐?”“제가 직접 만나 확답을 받겠습니다.”서문백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전날 무천이 보인 태도가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예령은 그의 손등 위에 손을 얹었다.“연화와 호위들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날이 저물기 전에 돌아올게요.”한참 망설이던 서문백이 마침내 허락했다.예령은 정오가 되기 전에 저택을 나섰다.마차에는 연화가 함께 탔고, 호위 두 명이 앞뒤를 지켰다. 예령은 파혼서와 무천이 사용한 재물의 내역을 품에 챙겼다.황도를 벗어나자 길은 빠르게 한산해졌다.간간이 짐수레가 지나갈 뿐, 수상한 기척은 없었다.마차가 야트막한 언덕 아래에 이르렀을 때 앞쪽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곧 마차가 크게 흔들리며 멈췄다.“밖에 무슨 일이냐?”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예령이 문을 열기도 전에 문짝이 거칠게 젖혀졌다. 낯선 사내들이 서씨 가문의 호위들을 제압하고 있었다.그 뒤로 무천이 다가왔다.“내려.”“길을 막고 무슨 짓입니까?”“너와 조용히 이야
7화. 빼앗길 수 없는 것무겸의 말이 사랑채 안에 무겁게 내려앉았다.무천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예령이 파혼하겠다고 했을 때도 남아 있던 비웃음이 얼굴에서 완전히 사라졌다.“형님이 예령과 혼인하겠다고요?”“그렇다.”“말도 안 됩니다.”무천은 탁자 위의 혼인 약조문을 집어 들려 했다. 그러나 무겸이 지팡이 끝으로 종이 위를 눌렀다.무천의 손이 멈췄다.“예령은 저와 혼인하기로 한 여자입니다.”“그녀가 그 혼인을 거절했지.”“잠시 화가 나 고집을 부리는 겁니다. 형님께서 끼어들 일이 아닙니다.”무천은 예령을 돌아보았다.“네가 형님께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혼인하겠다는 말을 거둬.”여전히 명령하는 말투였다.예령은 무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싫습니다.”“예령아.”“제가 먼저 혼인을 청했습니다.”무천의 눈이 가늘어졌다.“거짓말하지 마.”“폐사에서 한무겸 공자를 만나 혼인 약조문을 건넨 사람도 저입니다.”예령이 밤에 저택을 나갔던 이유를 깨달은 무천의 얼굴이 서서히 굳었다.“그날 만난 사람이 형님이었어?”“그렇습니다.”“나를 속이고 둘이 몰래 만났다는 말이냐?”“공자께 알릴 이유가 없었습니다.”무천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예령이 자신을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은 믿지 않으면서도, 그녀가 몰래 무겸을 만났다는 사실은 견디기 어려운 듯했다.“왜 형님이지?”“그 질문에 대답할 의무도 없습니다.”“내가 아니라 형님을 택한 이유를 묻는 거야.”무천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다리를 다쳐 후계 자리에서 밀려난 사람이다. 지금의 형님에게 무엇이 있다고 나를 버리고 그쪽을 택해?”예령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그런 식으로 형님을 깎아내리면 제가 공자께 돌아갈 것 같습니까?”“나는 진북후부의 후계자가 될 사람이다.”“그래서 저와 혼인하려는 것이겠지요. 서씨 상단의 재물이 있어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으니까.”“그만해.”“한무겸 공자께서는 제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물었습니다.”예령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