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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존재하지 않는 상단

Author: 아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7 09:18:18

최만석이 무천의 처소를 찾은 것은 다음 날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방 안에는 새 거울이 놓여 있었고, 향로에서는 평소보다 짙은 향이 피어올랐다. 최만석은 무천의 손등에 남은 상처를 발견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오랫동안 남의 비밀을 팔아 살아온 사람은 궁금한 것이 있어도 함부로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찾으셨습니까, 공자님.”

최만석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무천은 앉으라는 말도 없이 탁자 위에 은자 주머니를 던졌다.

“서씨 상단에 거래를 넣어라.”

“물건을 사시려는 겁니까, 파시려는 겁니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최만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다면 거래 자체가 목적은 아니시군요.”

무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최만석이 주머니를 들어 무게를 가늠했다. 상당한 은자가 들어 있었지만, 곧바로 소매에 넣지는 않았다. 돈이 많은 의뢰일수록 뒤에 감춰진 위험도 컸다.

“누구를 불러내면 됩니까?”

“서예령이다.”

“서씨 상단의 아가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그분을 만나려는 것이라면 직접 서신을 보내시는 편이 빠를 텐데요.”

무천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랬다면 너를 부르지 않았겠지.”

최만석은 더 묻지 않았다.

서예령과 무천의 파혼 이야기는 이미 황도에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무천이 서씨 상단에서 가져간 물건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소문도 들었다.

자신을 만나 주지 않는 여인을 거래로 끌어내려는 것이라면, 실패했을 때 모든 책임을 떠안을 사람까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작은 거래로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최만석이 말했다.

“서씨 상단은 황도에서도 손에 꼽히는 곳입니다. 비단 몇 필이나 약재 몇 상자로 아가씨가 직접 나오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큰 거래를 만들라고 한 거다.”

“큰 거래에는 큰돈이 필요합니다.”

“얼마면 되지?”

무천이 망설임 없이 묻자 최만석의 시선이 달라졌다.

“거래가 진짜처럼 보이려면 물건과 창고, 어음이 있어야 합니다. 상단의 인장도 필요하고, 과거에 다른 곳과 거래한 기록까지 있어야 하지요.”

“가짜 인장을 만들면 되지않나.”

“인장 하나만 확인한다면 그렇습니다.”

최만석은 은자 주머니를 탁자 위에 다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서씨 상단은 거래 상대의 뿌리까지 살핍니다. 언제 생긴 상단인지, 어느 나루를 이용하는지, 누구와 거래했는지까지 알아볼 겁니다. 이름만 꾸며 냈다가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들통납니다.”

무천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만들 수 없다는 말이냐?”

“없는 것을 새로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최만석의 입가에 느린 웃음이 걸렸다.

“하지만 사라진 것을 되살리는 일은 가능하지요.”

그가 꺼낸 이름은 금원상단이었다.

십 년 전까지 강남의 비단을 북방으로 올리던 중간 규모의 상단이었다. 상단주가 갑작스럽게 죽은 뒤 문을 닫았지만, 폐업했다는 사실은 황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은 상단주의 조카가 남은 장부와 인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자가 순순히 내놓겠느냐?”

“빚에 쫓기고 있으니 은자를 보여 주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죽은 상단을 다시 움직이겠다는 것이냐?”

“죽었다고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황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더욱 그렇고요.”

무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예령도 속일 수 있겠느냐?”

최만석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 아가씨가 상단 일에 밝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해.”

“의심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대신 의심하면서도 놓칠 수 없는 거래는 만들 수 있습니다.”

무천이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예령이 자신을 만나러 오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확인하러 오는 것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정해 둔 장소에 제 발로 나오기만 하면 됐다.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리지?”

“적어도 보름은 필요합니다.”

“사흘 안에 해.”

최만석이 무천을 빤히 바라보았다.

“상단의 옛 장부를 구하고 사람들의 입도 맞춰야 합니다. 서두르면 서씨 상단의 문턱도 넘기 전에 들통납니다.”

“닷새.”

“열흘은 주셔야 합니다.”

무천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하루가 지날수록 예령과 무겸의 혼인은 가까워질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이라도 예령을 데려오고 싶었다.

그러나 지난번처럼 힘으로 끌고 가려 했다가는 또다시 실패할 수 있었다.

“일곱 날을 주겠다.”

“그 안에는 거래를 넣지 못합니다. 준비가 끝났다는 보고까지만 드리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좋아.”

무천이 마침내 허락했다.

“대신 네가 일을 그르치면 받은 것의 두 배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최만석은 그제야 은자 주머니를 소매 안에 넣었다.

“아가씨께서 제 발로 나오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날부터 서씨 상단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예령은 아침마다 본점으로 나가 새로 들어온 거래 제안을 직접 살폈다. 거래처의 이름뿐 아니라 사용한 종이와 먹, 서신을 가져온 사람의 말투까지 기록하게 했다.

전생의 예령은 사람을 쉽게 믿었다.

오래 거래했다는 이유로 장부를 자세히 보지 않았고, 무천이 소개했다는 이유만으로 처음 보는 상인에게 물건을 내주기도 했다.

그 믿음이 어떤 대가로 돌아왔는지 이제는 알고 있었다.

“아가씨, 이것까지 확인하셔야 합니까?”

연화가 얇은 장부를 내밀었다.

“남쪽 지점에서 보내온 차 거래인데 금액도 크지 않아요.”

“처음부터 큰돈을 요구하는 사람은 드물어.”

예령은 거래 상대의 이름을 따로 적어 두었다.

“작은 거래로 믿음을 얻은 뒤 창고 열쇠를 요구하는 법이지.”

상단의 늙은 서기들은 갑자기 까다로워진 예령을 낯설게 보았다. 그러나 며칠 전 출처가 불분명한 어음 하나를 찾아내 손실을 막은 뒤부터는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예령이 마지막 장부를 덮었을 때 연화가 봉인된 서신을 가져왔다.

“아가씨 앞으로 온 것입니다.”

거래 제안서는 아니었다.

겉면에는 보낸 사람의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다만 봉인에 찍힌 문양이 낯설지 않았다.

검은 매가 날개를 편 모습이었다.

폐사에서 무겸이 짚고 있던 지팡이에도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예령이 봉인을 뜯자 짧은 문장이 나타났다.

내일 정오, 확인할 것이 있으니 만나러 가겠소.

이름은 없었지만 누구의 글씨인지는 분명했다.

예령은 서신을 접으며 멍이 남은 손목을 소매 안으로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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