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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مؤلف: 삼심귀일
호위무사들이 줄을 지어 연회장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이 들고 있는 상자 안에는 눈이 멀 것만 같은 귀한 보물들이 가득했다.

값비싼 서화, 진귀한 보석, 그리고 온천 장원의 토지 문서까지.

그때, 연회장이 발칵 뒤집혔다.

“이, 이게 전부 영왕 전하께서 보내신 선물이라고?”

“지난번 진보각을 통째로 빌려 윤채원 아가씨에게 선물했다더니, 정말이었나 보군. 이제 완전히 날개를 달았어.”

사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빗발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은근슬쩍 윤해인에게로 쏠렸다. 동정과 비웃음이 섞인 눈빛이었다.

외모도, 고귀한 적녀라는 신분도 분명 윤해인이 한참 앞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의 눈에 윤해인은 그저 비참한 패배자일 뿐이었다.

윤해인은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고 선상 밖으로 걸어 나갔다.

차가운 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깊이 숨을 들이쉬려는데, 등 뒤에서 윤채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왜 혼자 여기 있어?”

주변에 빈객도, 윤기태도 보이지 않자 윤채원은 가차 없이 가식을 벗어던졌다.

“그거 알아? 아버지가 그러는데, 언니가 그 단명할 녀석한테 시집가게 될 거래.”

윤채원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달콤하고 잔인하게 웃었다.

“가엾기도 해라. 언니 어머니가 우리 엄마한테 밀렸던 것처럼, 언니도 결국 나한테 다 뺏기네.”

윤해인이 차갑게 굳은 얼굴로 돌아섰다.

“다시 말해 봐.”

“그러니까 내 말은.”

윤채원이 한 걸음 다가와 차가운 숨결을 뱉어냈다.

“언니 엄마는 난산으로 죽어 마땅했다는 거야. 그 여자는...”

짝!

고요한 어둠을 가르고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손을 휘두른 것은 윤해인이 아니었다.

윤채원이 제 손으로 자신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친 것이었다.

찰나의 순간, 윤채원의 눈에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던 윤채원은 때마침 허겁지겁 달려온 송태경의 품으로 쓰러지듯 안겼다.

“언니가 그런 게 아니에요...”

윤채원은 벌겋게 부어오른 뺨을 감싸 쥐고 가련하게 흐느꼈다.

“제가 언니의 심기를 건드려서...”

곧이어 소란을 들은 윤기태와 빈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사람들의 비난이 가득한 시선이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윤해인에게 사정없이 꽂혔다.

“윤해인!”

윤기태가 노발대발하며 고함을 질렀다.

“대체 예의범절이라곤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구나!”

빈객들의 웅성거림이 가시 돋친 채 흘러나왔다.

“정말 독하네. 오늘 동생 생일이 아닌가?”

“제대로 가르쳐 줄 어머니가 일찍 죽었으니 배운 게 없겠지. 속이 저리 좁아서야 원...”

윤해인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어설픈 연극을 지켜보다가 돌연 실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윤채원의 얼굴을 향해 세차게 손바닥을 날렸다.

짝!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둔탁한 소리가 허공을 찢었다.

윤해인은 술잔을 바닥에 내던져 거칠게 깨뜨렸다. 산산조각 난 유리파편 위로 경악으로 물든 얼굴들이 어지럽게 비쳤다.

“똑똑히 봐.”

윤해인이 차갑게 내뱉었다.

“이게 진짜 내가 때린 거니까.”

뒤를 돌아서는 찰나, 윤채원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 쥔 송태경의 시선이 와닿았다.

얼음 송곳보다 더 시리도록 싸늘한 눈빛이었다.

정원의 후미진 오솔길.

모퉁이를 돌기도 전에 거친 아귀힘이 윤해인의 손목을 잡아챘다.

손목뼈가 으스러질 듯한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다.

“큰아가씨.”

억눌린 분노가 서린 송태경의 목소리가 낮게 내려앉았다.

“왜?”

윤해인은 비웃음을 담아 송태경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그 애 뺨을 한 대 때렸으니, 이번에도 나한테 아흔아홉 대의 매질이라도 돌려줄 셈이야?”

송태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 지난번 일을 알고 있는 건가?’

‘아니, 그럴 리 없다. 철저하게 숨겼으니 눈치챘을 리가 없지.’

송태경은 쥐고 있던 손길을 살며시 늦추며 미간을 찌푸렸다.

“큰아가씨. 아가씨는 모든 걸 다 가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대체 왜 그렇게까지 둘째 아가씨를 핍박하지 못해 안달이신 겁니까?”

“내가 다 가졌다고?”

윤해인의 목구멍에서 갈라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울음보다 더 처참한 소리였다.

“내가 대체 뭘 가졌는데? 그 애 모녀가 기어들어 오면서 내 어머니가 난산으로 돌아가셨어! 배 속의 아이까지 한 번에 목숨을 잃었다고! 내 침소, 내 장신구, 내 용돈, 내 아버지... 심지어 내가 가야 할 서원 입학 기회까지 다 그 기집애가 뺏어 갔어! 내 전부를!”

송태경이 윤해인에게서 이토록 날 것의 감정을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달빛 아래, 항상 가시 돋친 냉소만 짓고 있던 윤해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하지만 윤해인은 끝내 눈물을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듯 이를 악물고 버텼다.

“소인이 듣기로는.”

송태경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단호했다.

“둘째 아가씨야말로 그간 온갖 설움을 받으며 비참하게 살아온 분이라 알고 있습니다.”

윤해인은 그의 손을 세차게 뿌리쳤다.

“믿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마차에 올라타기 직전, 뒤따라온 송태경이 다시 무겁게 입을 열었다.

“큰아가씨, 며칠 쉬고 싶습니다.”

“네 마음대로 해.”

윤해인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차갑게 쏘아붙이고 마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깊은 밤, 뜰에서 들려오는 수상한 소리에 윤해인은 옷을 걸치고 일어났다.

창가로 다가가 틈새로 내다보니, 송태경이 의복을 느슨하게 풀어헤치고 있었다.

달빛 아래로 그의 다부진 가슴팍이 훤히 드러났다.

곁에 있던 부하가 무언가를 묻자, 송태경은 제 심장 부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였다.

딱 두 글자였다.

그의 입모양이 똑똑히 말하고 있었다.

‘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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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유 없이 봄바람에 속아   제22장

    나흘째 되던 날 아침.윤해인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송태경을 바라보았다.“이레가 다 되었으니, 난 떠나겠다.”차를 우리던 송태경의 손끝이 순간 멈춰 섰다.“보내주겠다고 말하긴 했었지.”천천히 몸을 돌리는 송태경의 눈동자가 심연처럼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하지만 그전에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조도진의 곁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내 곁에 남을 것인지.”윤해인은 차가운 비웃음을 흘렸다.“내 선택은 당연히 조도진의 곁으로...”말이 채 끝나기도 전, 송태경의 시선이 탁자 위에 놓인 네 개의 잔으로 내리꽂혔다.“선택지는 단 두 가지다.”그의 목소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고요했다.“네가 남을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송태경이 잔 하나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이 네 개의 잔 중에서 세 잔은 맹물이고, 단 한 잔에는 독약이 들어 있다.”그가 서늘하게 덧붙였다.“지금부터 네가 한 글자를 뱉을 때마다, 난 한 잔씩 마실 것이다.”즉, 그녀가 남겠다고 말해야만 송태경은 살 수 있었다.하지만 기어코 떠나겠다고 한마디라도 내뱉는 순간,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윤해인의 눈동자가 한순간 크게 번뜩였다.심장이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미쳤어? 네 목숨을 담보로 날 협박하겠다는 거야?”“아니.”송태경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난 그저 도박을 하려는 것뿐이다.”“내 목숨을 걸고 확인해보려는 거지. 네 마음에... 아주 조금이라도 내가 남아 있는지.”윤해인은 송태경을 사납게 쏘아보았다. 가슴이 분노로 격하게 들썩였다.“송태경.”윤해인은 이를 악물었다.“더 이상 널 증오하게 만들지 마.”“차라리 증오하거라.”송태경의 눈빛에 광기 어린 집착과 다정함이 동시에 서렸다.“적어도 나를 잊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무겁고 긴 침묵이 흘렀다.윤해인은 가슴속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난...”탁!첫 번째 잔이 비워졌다. 맹물이었다.송태경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떠...”탁!두 번째 잔 역시 맹물이었다.송태경

  • 이유 없이 봄바람에 속아   제21장

    이어진 사흘 동안, 송태경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그는 자신의 모든 영혼을 쥐어짜 냈다.첫째 날.송태경은 무릎을 꿇은 채 구백아흔아홉 개의 계단을 기어올랐다.삼신 할머니 사당에서 가장 영험하다는 인연의 부적을 얻기 위해서였다.“삼신 할머니 사당의 인연 부적이 가장 효험이 있대. 이걸 구한 사람은 평생 함께하게 된다고 하더라고.”그의 눈빛에는 조심스러운 기대와 절박함이 고스란히 서려 있었다.윤해인은 차갑게 웃으며 그 부적을 눈앞에서 갈가리 찢어발겼다.“그렇다면 이딴 부적은 흔적도 없이 없애는 게 좋겠어. 그래야 다음 생에서는 두 번 다시 마주치지 않을 테니까.”송태경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럼에도 그는 억지로 미소를 쥐어짜며 갈라진 목소리를 냈다.“해인아, 만약 처음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만약이란 없어.”윤해인은 그의 말을 단칼에 자르며 싸늘하게 고개를 돌렸다.둘째 날.송태경은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산해진미를 직접 차려냈다.“네가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고 기억하고 있다.”그는 매운탕 안의 살코기를 집어 윤해인의 밥공기에 정성스레 올려놓았다.그런 그의 눈빛은 한없이 다정했다.“한번 맛보겠느냐?”윤해인은 접시를 힐끗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흘렸다.“윤채원은 매운 음식을 안 먹으니, 예전에는 이런 요리를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겠네?”송태경의 손이 공중에서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윤해인은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음식들을 통째로 구정물 통에 가차 없이 쏟아부었다.셋째 날.송태경은 온 성안을 화려하게 수놓을 불꽃놀이를 선물했다.어둠이 내리자, 밤하늘 위로 불꽃이 터지며 글자 하나 하나가 찬란하게 피어올랐다.[해인아, 너를 연모한다]“마음에 드느냐?”송태경이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윤해인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다, 비웃음과 함께 읊조렸다.“송태경, 예전에도 윤채원한테 이런 식으로 구애했었어?”송태경은 주먹을 움켜쥐었다.숨이 턱 막혀 목구멍

  • 이유 없이 봄바람에 속아   제20장

    송태경은 꿈을 꾸었다.꿈속의 봄날, 어화원을 비추는 햇살은 더없이 따스했다.그는 다른 사람을 따라 자리를 뜨지 않았다.그저 나무 아래에 서서, 하얀 치마를 입은 소녀가 조심스럽게 새둥지를 나뭇가지 위에 올려놓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가볍게 바닥으로 뛰어내린 그녀가 치맛자락의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이윽고 고개를 든 그녀의 시선이 송태경의 눈동자와 똑바로 맞부딪쳤다.송태경은 성큼 앞으로 다가갔다.이윽고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안녕. 내 이름은 송태경이다. 너한테 관심이 생겼느니라.”소녀는 눈을 깜빡이더니, 새침하게 턱을 치켜올렸다.“어라? 왜?”“예쁘니까.”송태경이 나직하게 웃었다.소녀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귓가에는 이미 붉은 홍조가 번지고 있었다.“그렇게까지 내가 좋다면, 특별히 이 귀한 몸과 아는 사이가 될 기회를 주도록 하지.”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던 송태경은 그녀가 미치도록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꿈속의 이야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열렬한 구애 끝에 그녀가 마지못한 척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는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아끼며 품에 안았고, 그녀는 그의 품에 기대어 온갖 어리광을 피웠다.마침내 혼례식을 올렸다.수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서 식을 마친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붉어진 얼굴로 그녀가 나직하게 속삭였다.“태경아, 평생 나한테 잘해줘야 해.”“그럴게.”송태경이 미소를 지었다.“평생토록.”“영왕 전하! 영왕 전하!”호위무사의 다급한 부름이 송태경을 꿈속에서 강제로 끌어냈다.송태경은 번쩍 눈을 떴다.이윽고 텅 빈 처소가 눈에 들어왔다. 등 뒤와 가슴팍에서 밀려오는 극심한 통증이 잔인한 현실을 사정없이 일깨웠다.혼례도, 서로를 향한 사랑도 없었다.남은 것은 오직 피폐하게 찢겨 나간 상처뿐이었다.“해인이는... 윤해인은 어디 있느냐?”송태경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정원에 계십니다.”의원이 공손히 답했다.송태경은 만류하는 손길을 뿌리치고 억지로

  • 이유 없이 봄바람에 속아   제19장

    윤해인은 송태경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보상이라니.이미 뼈와 살에 깊숙이 박혀 버린 흉터들을 대체 어떻게 보상한단 말인가.윤해인은 차갑게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그리고 문을 거칠게 닫아걸었다.송태경이 문을 두드리며 저녁을 먹으라고 나직하게 부르기 전까지, 그녀는 단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문을 열고 나섰을 때, 윤해인은 순간 멈칫했다.송태경은 수수한 무명옷 차림을 하고 있었다.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소매 아래로 단단하고 선이 굵은 팔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식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요리들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전부 윤해인이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네가 한 거야?”윤해인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응.”송태경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다른 사람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윤해인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윤채원을 위해서 배운 요리 솜씨인가 보지?”송태경의 손가락이 굳어졌다.그의 짙은 눈동자 위로 처참한 고통이 스쳐 지나갔다.“해인아, 제발... 그 애 이야기는 꺼내지 말아줘.”하지만 윤해인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식탁에 마주 앉은 순간부터 윤해인은 가시 돋친 칼날을 거침없이 들이밀었다.“윤채원이 단 음식을 좋아하잖아. 예전엔 그 애한테 매일 이런 걸 만들어 줬어?”“그 애에게 줄 꽃을 꺾으려 벼랑을 타다 떨어질 뻔했을 땐, 정말 목숨 아까운 줄 몰랐나 봐?”“가슴 팍에 자기 이름을 새긴 걸 보고 윤채원이 감격해서 울기라도 하던가?”비수가 되어 날아간 말들이 송태경의 심장을 사정없이 헤집었다.그는 뼈를 깎는 듯한 아픔을 견디듯 묵묵히 입을 다물었다.나중에는 그저 마비된 사람처럼 멍하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변명할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윤해인은 그 처참한 꼴을 보며 지독한 쾌감을 느꼈다.이윽고 식사가 끝났다.윤해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송태경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해인아.”그는 윤해인의 앞으로 가죽 채찍을 내밀었다.순간, 윤해인의

  • 이유 없이 봄바람에 속아   제18장

    장내가 순식간에 술렁였다.영왕부의 재력은 가히 나라의 재정과 맞먹을 정도였다. 순간, 윤해인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그녀는 조도진이 오랜 세월 관직에 몸담았기에, 이 거래를 거절하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바로 그때, 조도진의 입술 틈새로 서늘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그럴 필요 없습니다.”이윽고 조씨 가문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유미령은 거침없이 걸어와 윤해인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해인이는 조씨 가문의 어엿한 세자빈이지 결코 거래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윤해인의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가슴 깊은 곳에서 왈칵 뜨거운 온기가 차올랐다.송태경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시선을 돌려 윤해인을 응시했다. “해인아... 제발, 나와 같이 가자. 응? 내 평생을 바쳐서라도 속죄하겠다.”비참할 정도로 처절한 애원이었다.윤해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다시 드러난 눈동자에는 오직 시린 결연함만이 고여 있었다.“싫다.”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려 집례관을 바라보았다.“혼례를 마저 진행해 주세요.”송태경의 눈에 서렸던 고통이 찰나의 순간, 번뜩이는 광기로 뒤바뀌었다.“누가 감히!”송태경의 포효가 식장을 찢어발겼다.그때, 호위무사 하나가 신속하게 다가와 송태경의 귀에 대고 나직이 아뢰었다.“영왕 전하, 바깥은 모두 준비되었습니다.”윤해인의 심장이 불길하게 요동쳤다. 그녀는 송태경을 매섭게 쏘아보았다.“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송태경의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는 서늘한 살기가 뚝뚝 떨어졌다.“밖에 암위들을 깔아 두었다. 네가 나와 함께 가겠다고 약조하지 않는다면... 이곳에 있는 자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순식간에 대전 안이 죽음과도 같은 침묵에 잠겼다.윤해인의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내렸다.“너 미쳤어?”“그래, 미쳤다.”송태경은 윤해인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한 글자씩 씹어 뱉었다.“네가 다른 사람

  • 이유 없이 봄바람에 속아   제17장

    장내가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다.“저분, 영왕 전하 아니야?”“방금 뭐라고 하신 거지? 결혼하지 말라고? 설마 신부를 가로채려는 건가?”“세상에. 세자 저하께서 이제 막 깨어나셨는데, 혼례식에 이게 무슨 난리람...”웅성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윤해인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송태경.그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천천히 다가오는 그의 모습이 시야에 맺혔다. 오랫동안 잠 한숨 자지 못한 듯, 송태경의 눈가에는 붉은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그에게 시집가지 마라.”송태경이 형편없이 갈라진 목소리로 다시 한번 읊조렸다.윤해인은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 끝을 감추며 억지로 이성을 붙잡았다.“송태경, 여긴 무슨 일로 온 거냐?”목소리에서 지독할 정도의 한기가 배어 나왔다.“네가 그토록 아끼는 윤채원이 질투할까 봐 두렵지도 않은가 보네.”송태경의 숨이 턱 막혔다.눈동자 너머로 짙은 회한과 고통이 사정없이 소용돌이쳤다.“내가... 사람을 착각했다.”그가 수많은 감정을 억누르며 낮게 속삭였다.“해인아, 삼 년 전 내가 첫눈에 반했던 사람은 윤채원이 아니라 너였다. 지난 세월 동안 내가 눈이 멀어 널 몰라보고 엉뚱한 사람을 사랑했던 것이다.”송태경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삼 년 전 봄날의 잔치에서, 네가 나무 위에 올라가 새둥지를 구했던 날을 기억하느냐? 그날 난 네게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네 뒷모습만 보고, 그게 윤채원인 줄로만 착각했었지.”윤해인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렸다.어떻게 그날을 잊을 수 있을까.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던 새둥지를 구하려 나무 위로 올라갔던 그 봄날을.나무에서 내려왔을 때, 저 멀리 나무 그늘 뒤에 우뚝 서 있던 사내를 어렴풋이 보았었다. 그저 지나가는 행인이라 생각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는데.'설마… 그때 그 사내가 송태경이었단 말이야?'침묵하는 윤해인을 보며 송태경은 조바심이 났는지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이미 다 조사해서 알아냈다. 윤채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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