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혜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김태훈은 그저 염성민을 약 올릴 셈이었다.실제로 이 정도 식사 비용은 셋 중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는 금액은 아니었다.식사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본격적으로 협력 관련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연미혜는 조용히 식사를 하며 꼭 필요한 순간에만 간단히 의견을 보탰다. 그 외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따금 그녀가 조심스럽게 끼어들 때마다 그 내용은 꽤 건설적이었다.그 점을 눈치챈 염성민은 잠시 놀란 듯한 표정으로 연미혜를 바라봤다.‘생각보다... 실력이 있었네.’그는 처
연미혜가 다시 룸으로 돌아온 후, 한참이 지나서야 염성민이 돌아왔다.식사가 마무리된 후, 그들은 식당을 나섰다.염성민은 회사로 돌아가 자료를 정리했고 연미혜와 김태훈은 넥스 그룹으로 복귀했다.오후 세 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하승태가 염성민과 거의 같은 시간에 넥스 그룹에 도착했다.세인티에서 자율주행 차량 테스트가 있었을 때, 함께 식사한 적이 있었던 두 사람은 마주치자마자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하 대표님도 넥스 그룹과의 협력을 확정하셨습니까?”“네. 염 대표님도 계약 준비 중이신가 보군요.”“맞습니다.”하승태는 조
얼마 지나지 않아 경민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고, 그는 휴대폰을 확인한 뒤,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받았다.“그래. 알겠어.”“저희가 계속 보관해 둘까요?”“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상대방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그와 함께 식사하던 임지유가 물었다.“민준 씨, 회사에 볼일 있어?”경민준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답했다.“아니야. 경매장에서 온 전화야.”임지유가 웃으며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경다솜이 끼어들었다.“경매장이 뭔데요?”경민준은 식기를 들고 고기를 잘라 한 조각 먹으며 대답
‘경민준이 지유 씨를 향한 마음은 의심할 필요도 없어. 그러니 그 장면은 단순한 오해였을 가능성이 커!’...금요일 아침, 연미혜가 막 일어나자마자 허미숙의 전화가 걸려 왔고, 일요일 아침에 함께 지관식의 그림 전시회를 보러 가자고 했다.허미숙은 동양화의 거장인 지 화백, 지관식의 열렬한 팬이었다.지관식이 마지막으로 개인 전시회를 연 건 십여 년 전이었기에, 좀처럼 보기 힘든 기회였다.연미혜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네. 일요일에 같이 가요.”전화를 막 끊자마자, 이번엔 경다솜에게서 전화가 왔다.월요일, 학교에서 열린
연미혜는 허미숙의 팔을 꼭 붙잡았고, 허미숙은 담담하게 그녀의 손등을 토닥이며 말했다.“괜찮아.”그들이 허미숙이 올 걸 알고 있었다면 허미숙도 그들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김태훈이 말했다.“할머니, 제가 먼저 들어가서 화백님을 찾아뵙겠습니다. 미혜야, 할머니를 모시고 같이 가자.”그의 의도는 분명했다. 허미숙을 지관식에게 소개해, 그녀가 우상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만들려는 것이었다.하지만 허미숙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야. 괜히 폐를 끼치고 싶진
염성민은 아까 임해철이 말한 대로, 오늘 임지유와 경민준도 올 거라는 사실을 떠올렸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그래. 할아버님 이야기 끝나시면 문자 하나 남겨줘.”“알겠어.”염성민과 윤신재는 먼저 전시장 밖으로 나왔다.마침 그들이 나오는 순간, 하승태와 정범규도 도착했고, 임씨 가문과 손씨 가문 사람들이 앞다투어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하승태는 임해철과 악수를 나누었다.정범규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민준이랑 지유는? 아직 도착 안...”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눈앞에
하승태가 연미혜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본 손아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녀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그녀는 정범규에게 물었다.“승태 오빠가 왜 저 여자랑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정범규가 답하기도 전에, 손아림은 이미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그러나 손수희가 팔을 가볍게 붙잡으며 나직이 말했다.“그냥 사업에 관한 이야기 중일 거야.”“사업에 관한 이야기요?”손아림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콧방귀를 뀌며 한껏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래도 억지로 감정을 눌렀지만, 시선만은 계속 연미혜와 하승태 쪽을 향해 있었다.
“승태 오빠!”하승태가 돌아오자, 손아림이 다소 애교 섞인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하지만 하승태는 무덤덤하게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한편, 경민준이 주위를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는 듯해지자, 손수희가 말했다.“지유는 잠깐 전화 받으러 밖에 다녀온다고...”“알겠습니다.”경민준이 대답하자마자, 전시장 안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바로 지관식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와 함께 지철호, 지현승 등 지씨 가문 사람들도 동행하고 있었다.많은 이들이 그의 등장을 주목했다.지관식이 앞으로 나서자, 주변이 조용해졌고, 이윽고 인사
캐벳 스미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내 박사 과정 학생, 임지유입니다.”그는 임지유 외에도 네댓 명의 학생들을 데려왔는데, 그중 임지유만이 유일한 동양인이었다.임지유가 캐벳 스미스의 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현장에선 감탄과 부러움이 쏟아졌다.“세상에, 스미스 교수님 박사 과정 학생이라니 완전 대단한데?”“그런데 저렇게 예쁘기까지 해? 신이 모든 걸 다 줬네. 너무 불공평해!”“더 기가 막힌 건... 저 여자가 경민준의 여자 친구라는 거잖아.”“헐... 진짜 비교할 게 못 되네. 나 같은 인생은 어떡하라고...”순식간
이틀 뒤, 김태훈은 서원시에서 열리는 국제 인공지능 대회에 참석했다.지난해의 기술 박람회와 마찬가지로 이번 행사 역시 업계 관계자들이 AI 관련 최신 동향을 파악하고 기술을 교류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이번에 그와 함께한 일행은 연미혜, 그리고 최근 넥스 그룹에 새로 합류한 구진원을 포함한 몇몇 엔지니어들이었다.구진원을 비롯한 신입 직원들을 함께 데려온 이유는 아직 이들이 회사의 핵심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술 유출에 대한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서원시에 도착한 뒤, 행사장에 들어서자 이미 내부
구진원은 결국 연미혜와 함께 래프팅을 타볼 기회를 잡지 못했다.하지만 저녁 무렵, 그는 또 한 번 ‘우연히’ 연미혜와 연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쳤다.그녀의 외삼촌 연창훈과 외숙모 하여진은 반갑게 인사하며, 그와 그의 친구에게 같이 식사하자고 흔쾌히 자리를 권했다.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구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연창훈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근데 어쩐 일이에요? 갑자기 도원시로 내려올 생각을 다 하고...”구진원은 젓가락을 잠시 멈췄다.도원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가 순간 머릿속을 스쳤던 그는 짧게 숨을 고르고
‘경민준 씨는 바쁘다며 다솜인 못 챙긴다더니, 정작 임지유랑은 같이 있고?’그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연미혜는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그보다 먼저, 경다솜이 해맑게 말했다.“엄마, 조금만 더 일찍 전화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헬기 타고 있을 때 영상 통화했으면 진짜 멋지게 보여드릴 수 있었을 거예요!”그 말에 연미혜는 조심스럽게 웃었지만, 경다솜이 이번 여행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져 더는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그럼에도 마음 한쪽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가슴안에 찜찜함이 또 하나 차곡히 쌓였다.경다솜은
연미혜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녀는 짧고 단호하게 메시지를 보냈다.[바빠. 그리고 약속 지켜. 다솜이 외할머니댁엔 절대 못 가게 해.]잠시 뒤, 경민준에게서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알겠어.]이후로 그는 더 이상 아무 연락도 해 오지 않았다.어린이날 연휴 다음 주말은 마침 주말이었다.그날 오후, 연미혜는 가족들과 함께 관광지에서 래프팅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때 차예련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는데, 사진 속 인물은 임지유였다.차예련은 지금 쿠바나에 머무르며 패션쇼 준비로 한창이었다.사진을 본 연미혜는 메시지를 보냈다.[
‘넥스 그룹이랑 세인티가 해지한 건 알고 계신가요? 교수님의 제자인 김태훈 대표가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재능을 믿고 우쭐대는 것도 모자라, 사사건건 여자한테 휘둘려서 점점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던데요. 혹시 그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염성민은 막 입을 열려다 말았다.곁눈질로 경민준이 있는 걸 본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사실 이 얘기는 전부 임지유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임지유의 옆에 경민준이 있었다.염성민의 입장에서 굳이 나서서 이런 말을 할 명분이 없었다.괜히 앞장서서 이런
임지유는 곧바로 해약서에 서명했다.배상금은 계약서에 명시된 기한 내에 전액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이 소식을 들은 김태훈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생각보다 행동이 빠릿빠릿해서 좋은걸?”해약 이후의 처리 절차는 변호사가 맡았고, 임지유가 서명한 뒤로는 김태훈과 연미혜 모두 더 이상 그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이삼일 뒤, 유명욱이 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두 사람을 불러 모았다. 한동안 얼굴을 못 본 터라, 사제지간에 오붓하게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연미혜와 김태훈은 회사를 나와 약속 장소인 식당에 도착했는데, 식당 입
임지유는 계약 해지를 결정한 뒤, 곧바로 경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경매 날에 김태훈 어머님이랑 얘기하다가, 내가 말을 좀 잘못했어. 그걸 사모님이 딱 집어냈고... 게다가 김태훈 쪽은 아예 세인티랑 엮일 생각이 없어 보여. 만약 소송으로 가서 이긴다고 해도 나중에 또 딴지를 걸어 협력 관계가 틀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담담히 결론을 내렸다.“그쪽이 처음부터 협력 의지가 없었다면, 괜히 시간 끌기보다 지금 깨고 다른 파트너 찾는 게 낫다고 봐.”경민준은 그녀가 무슨 말을 실수했는지 구체적으로 묻
‘김태훈 어머니가 연미혜를 좋아한다고? 그게 말이 돼? 진짜라면... 어제 김태훈 어머니한테 했던 말들은 대체...’임지유는 갑자기 이미연이 대화 도중 갑자기 통화하러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머릿속에 전화를 받는다며 자리를 비운 장면이 스치자, 묘한 불안감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다.그녀의 낯빛이 안 좋아진 것을 본 경민준이 곁에서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그 말에 임지유는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나 괜찮아.”그날 저녁, 임지유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이미연이 연미혜를 마음에 들어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