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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مؤلف: 백소연
“채원이는 형이 정식으로 맞이한 아내예요. 이 집에서 십 년 넘게 살아온, 엄연한 식구라고요. 형이 안 계신 지금, 우리한테는 채원이를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심강후는 말을 멈추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짚듯 바라본 뒤, 낮고 분명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채원이는 국내에 남을 겁니다. 본가에 머물든 밖에 나가서 살든 그건 본인의 뜻에 맡길 거예요. 한생 제약에서 직위도 그대로 유지될 거고요. 만약 할머니께서 여전히 반대하신다면 앞으로 그 사람에게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제 개인 자산으로 지출하겠습니다.”

온서린은 묵묵히 딸을 챙기며 티슈로 아이의 작은 입가를 닦아주었다. 하지만 남자의 단호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녀의 손길이 서서히 멎었다.

육채원을 곁에 두기 위해서라면 성미경의 권위에 공공연히 도전하는 것조차 불사하는 모습.

심지어 마지막 한마디는 육채원을 완전히 자신의 울타리 안에 넣고 보호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성미경은 화자 치밀어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손가락으로 심강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이 집안이 네 세상이라 이거냐? 정녕 할미를 화병 나 죽게 하려는 게야?”

심강후는 말투를 부드럽게 바꿨으나 입장만큼은 굽힐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할머니, 집안의 모든 일은 언제나 할머니 뜻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채원의 일은 회사와 연관된 문제이기도 해요. 이 일만큼은 할머니 뜻을 따를 수 없으니 이해해 주세요.”

식당 안에는 죽은 듯한 정적이 감돌았다.

성미경이 손자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자 오나영이 적절한 시기에 나서 달래듯 입을 열었다.

“어머님, 강혁이가 간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하늘에 있는 그 아이도 채원이가 이런 대접을 받는 걸 원치 않을 거예요.”

심강후는 잔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가 남은 와인을 단숨에 비웠다.

목울대가 크게 일렁였고 조명 아래 드러난 옆얼굴의 선은 그지없이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빠... 증조할머니랑 싸우지 마세요. 저 무서워요...”

줄곧 세심한 보살핌만 받으며 자란 심아린은 이 무겁고 딱딱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는 갑자기 의자에서 뛰어내리더니 심강후의 품으로 달려가 안겼다. 그러고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의 셔츠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나 밥 다 먹었어요. 아빠, 나랑 위층에 올라가서 놀아요.”

심강후는 말없이 아이를 안아 올리고는 식구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짧게 말을 마친 뒤 그는 그대로 심아린을 안은 채 계단을 올랐다.

식당 안의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나영은 시선을 옮겨 식탁 끝에 앉은 온서린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격렬한 설전이 오가는 동안, 그녀는 심강후의 아내로서 그저 입을 닫은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서린아, 강후가 내린 결정에 대해서 넌 동의해?”

젓가락을 쥔 온서린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힘을 주어 하얗게 도드라졌다.

그녀는 겉으로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으나 내면에서 몰아치는 분노와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까지는 다 감추지 못했다.

심강후가 오늘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성미경에게 대들며 육채원을 감싸는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편파적이고 극단적이었다.

“너는 강후의 아내이자 채원의 동서이기도 하잖아. 두 사람 평소에도 가깝게 지냈으니,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너도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지.”

오나영의 엄중한 목소리가 떨어지자 식탁에 둘러앉은 모든 이의 시선이 온서린에게로 쏠렸다.

온서린은 마른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따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온서린의 중립적인 태도에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타인의 눈에 비친 온서린은 본래 그런 사람이었다. 늘 조용하고 절제하며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누구와도 함부로 척을 지지 않는 성정.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온서린은 본가에 머물기로 했다. 심아린을 씻기고 침대 위에서 잠시 놀아주자 아이는 이내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방 밖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온서린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어서 발소리는 서재 방향으로 멀어졌다.

그날 밤, 온서린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 서 있는 기분이었고 분명히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둘씩 낯설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심강후가 육채원을 이렇게까지 감싸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늘 밤 일어난 일은, 몇 년간 한 침대를 쓰며 알고 지냈던 남편을 마치 난생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고 알 수 없는 존재로 느끼게 했다.

토요일 아침, 밤사이 내린 비가 그치고 하늘은 옅은 청 빛으로 맑아져 있었다. 공기에는 풀과 흙의 향이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온서린은 일찍 일어나 잠든 심아린에게 조심스럽게 옷을 입혔다.

화사한 연보라색 오리 캐릭터 후드티에 데님 멜빵바지를 입히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앙증맞은 포니테일로 묶어주니 그야말로 깜찍함 그 자체였다.

온서린 자신은 편안한 소재의 살굿빛 롱 원피스에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걸쳤다.

칠흑 같은 긴 머리는 목덜미 부근에서 낮게 하나로 묶어 차분하게 연출했다.

평소의 날 선 커리어우먼 같은 분위기 대신 한층 부드럽고 단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엄마, 나 외할아버지 선물도 준비했어요.”

차에 올라타자 심아린이 작은 가방을 꼭 끌어안고 말했다.

“그래? 할아버지 좋아하시겠다.”

“네!”

차는 고요한 별장 가를 벗어나 도시 반대편 온서린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대학교 관사 단지로 향했다.

창문을 반쯤 내리자 아침 공기가 스며들며 서늘한 기운에 정신이 또렷해졌다.

심아린은 차창에 매달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스쳐 지나가는 거리 풍경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한 시간쯤 지나 차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어느 회색 벽돌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심씨 가문 본가의 화려하고 엄격한 분위기와 비교하면 이곳은 훨씬 평온하고 차분한 공간이었다.

온서린의 아버지는 퇴임 후 학교의 요청으로 물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고 어머니는 약국 몇 군데를 운영하는 경영인이었다.

최하경은 딸의 차를 보자마자 반갑게 달려와 손녀를 안아주기 위해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심아린이 예의 바르고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우리 공주님 왔어.”

최하경은 손녀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아이를 차에서 안아 내렸다.

“심 서방은? 같이 안 왔니?”

최하경은 차 안에 모녀 단둘뿐인 것을 보고 의아한 듯 물었다.

“그게... 오늘 급한 일이 생겨서 못 왔어요.”

온서린은 차마 사실대로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제 심강후가 어디로 갔는지, 왜 외박 했는지 알 수 없었다.

“회사가 그렇게나 바쁘다니?”

최하경은 한숨을 내쉬며 날카로운 눈썰미로 딸의 담담한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다. 온서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속으로만 삭이고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을 아이였다.

“네, 조금 바쁜가 봐요.”

온서린은 애써 미소 지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새장을 들고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온승호는 딸과 손녀를 발견하고는 서둘러 다가왔다.

“서린아, 우리 아린이도 왔구나.”

“아빠.”

“할아버지! 알록이 데리고 산책 다녀오신 거예요? 저도 갈래요!”

심아린은 기쁘게 달려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새장 속 앵무새 한 쌍을 바라보았다.

“할망구, 할망구.”

앵무새가 사람 말을 따라 하자 다들 웃음이 터졌다. 최하경은 온승호를 흘려보며 입을 열었다.

“어서 그놈의 새들 입 좀 다물게 해요. 애가 보고 비웃겠네.”

온승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말을 안 가르쳐서 그런 거 아냐. 얘들이 얼마나 영특한데. 내가 몇 번만 가르쳐주면 금세 따라 한다니까.”

“나잇값 못 하시긴.”

최하경이 어이없다는 듯 픽 웃음을 터뜨렸다.

다정한 부모님의 모습에 온서린의 무거웠던 마음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심아린은 온승호를 졸라 새를 데리고 공원에 산책을 같이 가자고 떼를 썼고 손녀와 노는 게 마냥 즐거운 온승호는 기꺼이 아이를 데리고 다시 집을 나섰다.

온서린은 어머니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도우미가 점심을 준비 중이었고 최하경이 옆에서 거들자 온서린도 자연스럽게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손을 도왔다.

“오빠랑 새언니는 아직이에요?”

“늘 그렇지 뭐. 밥때 맞춰 오겠지.”

온서린이 가볍게 웃었다.

부엌 안에는 기름 튀는 소리와 식재료 다루는 소리가 어우러져 따뜻한 온기가 돌고 있었다.

열 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마당 넘어 대문 밖에서 자동차 엔진이 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하경이 곧바로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이 시간에 또 누가 온 거지?”

어머니를 따라 밖을 살피러 나간 온서린의 눈에는 대문 앞에 서 있는 심강후의 모습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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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후, 빛나는 삶   제30화

    “그러니까 심씨 가문의 자원을 총동원해 육채원 씨의 앞길을 닦아 주고 명분까지 세워주는 걸로도 모자라, 경영상 리스크까지 감수하면서 심씨 가문에 남을 이유를 만들어주겠다는 뜻인가요?”온서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이전보다 한층 더 서늘해져 있었다.“그래.”심강후의 대답에는 티끌만큼 망설임도 없었다.“좋아요.”온서린은 형수님을 향한 그의 유별난 배려까지도 기꺼이 수용하기로 했다.심강후는 그녀가 자신의 결정에 동의하자 비로소 한숨을 내쉬었다.“지분 보상 외에 추가로 두 가지 조건이 더 있어요.”온서린은 운전대를 단단히 쥐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좋아, 말해봐.”심강후는 의외라는 듯 잠시 그녀를 응시했다. 온서린은 언제나 다투거나 욕심을 부리는 법이 없었다.물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그 성정이야말로 그가 그녀를 가장 높이 사는 부분이었다.그러니 그녀가 내놓는 요구 또한 자신을 크게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으리라 믿고 있었다.심강후는 술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는 온서린이 조건을 내놓기만을 기다렸지만 그녀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별장에 도착했을 때, 심아린은 홀로 계단에 앉아 있었다.얇은 외투를 걸친 채 손에 쥔 마술봉의 불빛을 연신 켰다 껐다 하며 시간을 보내던 아이의 얼굴이 차 소리를 듣는 순간 환하게 피어났다.차를 세우고 온서린이 막 문을 열고 내리려는 순간 심강후가 그녀보다 한발 앞서 차에서 내렸다.심아린이 환한 얼굴로 심강후의 품으로 뛰어들었다.“아빠! 왜 엄마 차 타고 왔어요?”“아빠가 술을 좀 마셨거든.”아이를 품에 안은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했다.“아빠, 이제 술 마시면 안 돼요.”고사리 같은 손이 그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의 얼굴이 사뭇 엄숙했다.“제 말 잘 들어야 해요, 알겠죠?”심강후는 낮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다음부턴 조금만 마시마.”그 광경을 바라보는 온서린의 가슴 한복판이 뜨겁게 타

  • 이혼 후, 빛나는 삶   제29화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온서린의 마음에는 그 순간 비웃음 섞인 자조만이 남았다.그녀는 줄곧 한생이 자신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믿어왔다.하지만 이제 보니 심강후가 손쉽게 영입한 인재 하나만으로도 자신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존재였다.이것은 단순한 직업적 위협을 넘어 자신을 향한 모욕이자 숨 막히는 포위망이었다.육채원은 심씨 가문의 딸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녀의 영향력은 심강후의 인사권에까지 미치고 있었다.온서린은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죄송합니다.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가방과 외투를 챙겨 서둘러 식당을 나섰다. 문밖으로 나섰을 때, 뒤에서 심강후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같이 가.”온서린이 뒤를 돌아보자 어둠 속에서 심강후가 걸어오고 있었다.막 재킷을 걸치며 단추를 잠그는 그의 모습은 희미한 불빛 속에서도 눈이 시리도록 선명하고 잘생겼다.온서린은 한때 이 얼굴을 수없이 갈망하며 바라보았다. 베일 아래에서 그의 신부가 되던 그 찰나, 바보처럼 설레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온서린은 짧게 쏘아붙였다.“당신 차 타고 가세요.”“왜?”심강후는 그녀의 날 선 감정을 알아챈 듯 물었다.“권지한 때문에 화라도 난 건가?”온서린은 대꾸 대신 자신의 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길가에 세워둔 벤츠에 다가가 문을 여는 찰나, 긴 다리로 따라붙은 그가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올라탔다.“지금 한생은 새로운 관리 체계가 필요해.”시동을 걸자마자 옆자리에서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강녕미래는 독립된 체계야. 우혁이가 추진력은 좋지만 경험은 부족해. 당신이 가서 중심을 잡고 자원을 조정해 봐. 투자 방향이 그룹 전략과 일치하도록 관리하고.”운전대를 쥔 온서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심강후를 바라보았다.그는 미간을 손으로 꾹 누르며 여전히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채원이가 또 할머니한테 지적받았어.”온서린

  • 이혼 후, 빛나는 삶   제28화

    심우혁 일행이 실험실을 떠난 뒤에도 온서린의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차를 마신다는 핑계로 자리를 벗어나 사무실로 돌아온 그녀는 문가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고르듯 멈춰 서 있었다.권지한의 성정을 그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그는 고작 높은 연봉에 혹해 연구소를 등지고 수익 중심의 의료 기관으로 옮길 위인이 아니었다.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심강후가 그조차 거절할 수 없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을 거라는 것.창밖의 햇살은 눈부시게 쏟아졌지만 온서린의 내면은 오히려 서늘하게 얼어붙고 있었다.저녁 시간, 회사 인근의 식당에서 권지한의 환영 만찬이 열렸다. 이번 자리는 심강후가 직접 주최한 것이었다.상석에는 당연하다는 듯 심강후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의 왼쪽으로 심우혁과 육채원 그리고 한생의 주요 임원들이 있었다.온서린이 들어서자 심우혁이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형수님, 이쪽으로 앉으세요.”온서린은 심강후가 이 자리에 있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한생은 그룹 내에서도 순위권에 드는 회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룹의 총수인 그가 일개 기술 담당 임원의 환영회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다니 조금은 의외였다.“서린 씨, 여기 앉을래요? 내가 자리 옮겨줄게요.”육채원은 당당하고 거리낌없는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온서린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육채원은 특별히 작업복을 벗고 석양빛을 닮은 은은한 분홍빛 벨벳 롱드레스를 걸치고 있었다.긴 머리카락은 부드러운 웨이브가 더해져 어깨 위로 흩어져 내렸고 정교하게 완성된 얼굴에는 힘을 뺀 여유가 서려 있었다.그 모습은 마치 오늘 이 자리가 그녀를 위해 마련된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괜찮아요. 전 여기 앉을게요.”온서린은 연구개발부 부부장 옆자리에 조용히 앉으며 이 자리에 온 것을 후회했다.심우혁이 그녀에게 알려줄 때는 그저 가벼운 식사 자리라고만 했다.게다가 그녀와 권지한은 같은 업계인 데다 같은 스승을 둔 인연도 있으니 전문적인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덧붙였을

  • 이혼 후, 빛나는 삶   제27화

    온서린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얼굴은 여전히 평온하고 담담했다.“대표님의 제안은 고려해 볼 가치가 있겠네요. 하지만 현재 한생 프로젝트의 절반 이상이 제 손을 거치고 있어요. 만약 제가 자리를 옮긴다면 강후 씨가 순순히 동의하지 않을 텐데요.”“형수님...”심우혁이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제 생각엔 형도 동의하실 거예요.”온서린은 잠시 침묵을 선택했다. 그가 내민 손을 섣불리 잡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쳐내지도 않은 채 묘한 여지를 남겼다.그녀는 자신이 한생에서 차지하는 기술적 입지를 고려할 때 심강후가 쉽게 놓아줄 리 없다고 확신했다.심우혁은 온서린의 태도에 당황하지 않고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유지했다.“형수님께서 왜 망설이는지 저도 이해해요. 급할 건 없어요. 앞으로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오늘 만남은 제 성의를 먼저 보여드리기 위한 자리였다고 생각해 주세요.”온서린은 조용히 미소를 짓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숍을 나선 심우혁은 다시금 싹싹하고 밝은 태도로 그녀의 곁을 걸으며 말했다.“아, 형수님. 이번 주 금요일에 내부 세미나가 하나 있어요. 업계 전문가들을 모시고 고서에 기록된 한약 처방을 현대 약리학 기술로 재탄생시킨다는 주제로 담론을 나누는 자리인데 분명 흥미로우실 거예요. 초대장은 이미 메일로 보내두었어요.”온서린은 잠시 멈칫하다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시간 되면 참석 할게요.”사무실로 돌아온 온서린은 미간을 찡그린 채 생각에 잠겼다.심우혁은 젊고 날카로웠으며 그 야심 또한 절대 작지 않았다. 그는 심씨 가문 내부의 권력 구도와 복잡한 관계를 어느 정도 꿰뚫고 있는 듯 보였다.그리고 어쩌면 그녀를 이용해 심강후가 그룹 내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에 도전장을 내밀려는 것인지도 몰랐다.혹은 전혀 다른 속내가 숨어 있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어떤 의도이든 새롭게 설립된 ‘강녕미래'라는 독립 플랫폼은 온서린에게 분명 매력적인 기회였다.그곳은 그녀가 자신의 힘을 비축하고 머지

  • 이혼 후, 빛나는 삶   제26화

    소문에 의하면 심우혁은 해외 정상급 경영대학원 출신에 국제 투자 은행에서 수년간 실무를 쌓은 인재라고 했다.일 처리는 날카롭고 매서우며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스타일로, 심씨 가문 젊은 세대 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진 인재로 꼽혔다.온서린에게도 그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심씨 가문의 일원이 된 후 집안 연회 자리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스물일곱. 젊고 거침없는 기세가 넘쳤으며 눈매에는 가문 특유의 분위기가 깃들어 있었다.하지만 심강후에게서 풍기는 차분하고 무게감 있는 위엄과는 다르게 그는 마치 통제 불가능한 야생마와도 같았다.온서린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유하림이 조심스럽게 노크하며 들어왔다.“온 박사님, 부대표님이 오후 세 시 반에 아래 카페에서 뵙자고 하십니다.”온서린은 미세하게 눈썹을 치켜올렸다.심우혁은 부임 첫날 그룹의 어른들과 핵심 인사들을 찾아가지도 않았고 앞으로 책임져야 할 업무를 살피지도 않았다.무엇보다 복잡한 직급 체계를 단숨에 무시한 채 고작 연구부 팀장일 뿐인 그녀와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알겠어요. 시간 맞춰 갈게요.”온서린은 미간을 찡그렸다.‘도대체 무슨 속셈인 거지?’오후 3시 30분, 온서린이 약속 시간에 맞춰 카페에 도착하자 심우혁은 이미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오늘 그는 정장 차림이 아니었다. 질감 좋은 짙은 색 티셔츠와 베이지색 팬츠 차림으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던 그는 발소리를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형수님...”심우혁은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며 인사를 건넸다. 온서린은 심강후와 어딘가 닮은 듯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준수하고도 젊은 얼굴이었다.심강후가 태산처럼 묵직하고 냉랭한 위엄을 지녔다면 심우혁은 칼집에서 채 빠져나오지 않은 날 선 검과 같았다.눈빛은 맑고 또렷했으며 그 속에는 세상을 얕잡아 보는 듯한 비릿한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으며 눈이 부시도록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형수님, 앉으세요.”손을 들어 정중히 자

  • 이혼 후, 빛나는 삶   제25화

    강도윤은 전송된 파일 몇 장을 천천히 넘겨본 뒤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칭찬과 호감이 묻어났다.“서린아, 네가 수정한 부분 아주 좋아. 회의에서 논의해 보고 결과 정리해서 다시 알려줄게.”“오빠는 이번 협력 가능성을 어떻게 보세요?”온서린의 목소리에는 이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사하고 싶어 하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강도윤은 금테 안경을 가볍게 고쳐 썼다. 단정한 얼굴 위로 이성적인 판단이 깊게 내려앉았다.“초안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실행할 수 있는 안이야. 다만 예산이 예상보다 커질 거야. 특히 네가 제안한 정밀 바이오마커 분석이랑 장기 추적과 조사 부분은 한주 쪽에서도 자원이 많이 들어가거든. 선택지는 두 가지야. 일부 항목의 우선순위를 조정해서 단계적으로 진행하거나 아니면 외부 자금을 추가로 확보하는 방법.”온서린은 그 말의 핵심을 즉각 이해했다.“알겠어요. 회사 쪽에 정식으로 신청하고 예산 문제는 제가 해결해 볼게요.”강도윤은 그녀의 확신에 찬 눈빛을 잠시 바라보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너는 정말 한생 그룹의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온서린은 잠깐 멈칫하다가 이내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제 몫의 배당금은 챙겨야 하니까요. 돈 문제에 있어서는 꽤 확실하게 챙기는 편이거든요.”강도윤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알기로 너를 데려가려는 곳은 사방에 널렸어. 네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돈일까, 아니면 사람일까?”그의 말에 온서린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으며 굳게 닫혔던 기억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이익 때문에 심강후와 결혼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의 마음 어딘가에는 심강후라는 이름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몇 년 전, 바이오 업계 정상회의에서 지도교수의 갑작스러운 병가로 대신 무대에 올랐던 온서린은 한약재 단일 성분 분리 연구 자료를 발표하고 있었다.손에 쥔 마이크는 미세하게 떨렸고 그녀는 그저 이 자리를 빨리 끝내고 내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런데 앞줄에 앉아 있던, 짙은 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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