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며칠 뒤 궁지에 몰린 황실의 교활한 기만은 본격적으로 그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다음 날 대한제국 전역의 뉴스 채널과 주요 일간지 1면은 일제히 황실 언론 통제관들이 뿌린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도배되었다.[특보: 민석그룹 황실 문화재 사업 독점 실패하자 국고 지원 전면 중단 선언!][재벌의 끝없는 갑질 대한제국 황실의 존엄성 훼손 논란!][황후 민시은 친정의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고 내명부 권력 사유화 의혹]긴급 기자회견장에 선 황제 유종석은 완벽한 피해자의 얼굴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는 수십 대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서 짐짓 비통하고 고뇌에 찬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 백성들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친애하는 대한제국 국민 여러분 작금의 사태에 황제로서 참담한 심정과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대한제국 경제의 기둥이라 믿었던 민석그룹은 제국의 상징인 황실의 고유 권한마저 거대한 자본으로 쥐고 흔들려 하였습니다. 그들이 내명부의 수장인 황후의 친정이라는 이유만으로 묵인하고 넘어가기에는 그들의 오만한 탐욕이 이미 도를 넘었습니다."종석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치밀하게 계산된 가증스러운 연기였다."짐은 비록 황실의 곳간이 비어 이슬을 마시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 한 줌의 권력을 쥔 재벌의 횡포에 무릎 꿇고 굴복하여 황실의 숭고한 명예를 팔아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백성 여러분 황실을 지켜주십시오!"그의 거짓 눈물 연기는 완벽하게 대중의 감정을 파고들었다. 진실을 알 리 없는 백성들은 분노했고 여론은 순식간에 황실을 핍박하는 악랄한 거대 재벌 민석그룹과 아비의 막강한 자본 뒤에 숨어 황제를 능멸하는 오만한 황후를 질타하는 방향으로 들끓기 시작했다.같은 시각 신아리의 처소인 화려한 별궁에서는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TV 중계를 지켜보던 신아리는 최고급 붉은 와인을 단숨에 들이켜며 통쾌하다는 듯 광기 어린 폭소를 터뜨렸다."하하하! 멍청한 백성들 같으니! 저렇게 단상에 서서 적당히 불쌍한 척 눈물 몇 방울 흘려
"기대하십시오 폐하 어젯밤의 지옥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니까요."서늘하고도 잔혹한 귓속말을 끝으로 시은은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 황금빛 적의(翟衣)가 대리석 바닥을 스치며 내는 사각이는 파찰음만이 죽은 듯 고요해진 편전 안을 날카롭게 가르며 울려 퍼졌다."이...이 독부 같은 년! 감히 폐하 앞에서 피를 보이고 협박을 해? 황후! 네가 정녕 미친 것이로구나! 멈춰라! 거기 서지 못할까!" 민시은!!!!사색이 된 황제 유종석이 등 뒤에서 악을 쓰며 소리쳤지만 시은의 고고한 발걸음은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한비서가 얼음장 같은 얼굴로 무미건조한 목례를 남긴 뒤 시은의 뒤를 따랐고 마지막으로 편전 문을 나서던 호위무사 김민혁은 고개를 돌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종석과 아리를 서늘하게 내려다보았다.오직 살육과 주군의 안위만을 위해 훈련된 들개처럼 무감각하면서도 잔혹한 눈빛 그 칠흑 같은 시선과 마주친 순간 종석은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섬뜩한 한기에 자신도 모르게 숨을 헉, 하고 삼켰다.쾅-!거대한 편전의 문이 무거운 굉음을 내며 닫히는 소리와 함께 14년간 오만하게 군림했던 황제의 권위도 산산조각이 났다."꺄아아아악! 치워! 당장 치워! 저 끔찍한 것을 내 눈앞에서 당장 치우란 말이야!"그제야 정신을 차린 신아리가 자개 상자 안에 담긴 흑영 조장의 잘린 손목을 보며 발작하듯 비명을 질렀다. 황제의 수석 비서관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황급히 다가와 상자를 덮고는 밖으로 쫓기듯 뛰쳐나갔다. 넓고 화려한 편전 안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종석과 공포에 질려 바닥을 기어가는 아리만이 남았다."폐...폐하 ! 저. .저민시은 저년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폐하의 수족을 저리 잔인하게 베어내고 우리를 죽이려 들고 있습니다! 저 무서운 년을 당장 폐위시켜야 하옵니다!"폐하!시끄럽다! 민시은 이.. 이독한년!아리가 종석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그 가증스러운 눈물과 비명에, 종석은 이를 뿌득 갈았다.
"마마..."목구멍까지 차오른 벅찬 감정을 억누르듯 민혁의 거친 숨소리가 내실의 무거운 공기를 흔들었다. 황후의 고귀한 손길이 자신의 상처를 감싸 안을 때마다 그는 이 목숨을 몇 번이고 바쳐서라도 저 가녀린 여인을 짓밟으려는 자들을 지옥 끝까지 쫓아내리라 맹세하고 또맹세했다.시은은 눈앞에 무릎 꿇린 짐승 같은 충신을 바라보며 14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심장에 뜨거운 피가 다시 도는 것을 느꼈다.더 이상 슬픔에 겨워 눈물 흘리는 허울뿐인대한제국에 국모가 아니었다."일어나거라 민혁아."시은이 차갑고도 단단한 음성으로 명하자 민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빛은 방금 전까지 본가 앞마당의 살귀처럼 잔혹했던 빛을 거두고 오직 주군의 명령만을 기다리는 절대적인 경외로 가득 차 있었다."오늘 밤이 지나면 저 오만한 황충들은 우리가 파놓은 무덤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오게 될 것이다."시은의 붉은 입술이 서늘한 미소를 그려냈다.다음 날 아침세상을 집어삼킬 듯 몰아치던 간밤의 폭우가 모든 오물을 씻어내린 듯 황궁의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청명했다. 그러나 따스하고 평화로운 아침의 햇살이 무색하게도 황제의 편전은 폭풍전야의 기괴한 고요함에 휩싸여 있었다.황제 유종석은 최고급 백자 찻잔에 담긴 향긋한 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넓은 용상 위 그의 무릎에는 속이 훤히 비치는 천박한 붉은 실크 슬립 차림의 신아리가 나른한 고양이처럼 기대앉아 있었다."폐하 간밤에 좋은 꿈은 꾸셨사옵니까?"아리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종석의 귓가에 속삭였다."하하하 물론이지 오늘 아침이면 내 눈엣가시 같던 민현석 늙은이가 제 명을 다했다는 반가운 부고가 들려올 테니깐 말이야 내가 친히 기른 흑영의 실력은 대한 제국 제일이니깐 아마 지금쯤 흔적도 없이 그 늙은이의 숨통을 끊어놓고 지옥으로 보냈을것이다."종석은 마치 이미 승리라도 거머쥔 듯 오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호호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평생 고개
같은 시각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폭우가 쏟아지는 서울 외곽의 고급 주택강민회장댁이다.대한제국 재계 서열 1위, 민석그룹 민현석 회장의 본가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진입로에는 평소 환하게 불을 밝히던 가로등마저 모두 꺼져있다.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그 먹먹한 어둠 속을 소리 없이 기어가는 다섯 개의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황제 유종석이 제국의 법망을 피해 자신에게 거슬리는 자들을 조용히 제거하기 위해 은밀하게 키워낸 황실 직속의 어둠, '흑영(黑影)' 소속의 최정예 암살자들이었다.그들의 오늘 밤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건방지게 황제에게 밉보인 민석그룹의 심장 민현석 회장의 목을 쥐도 새도 모르게 따오는 것이다.최신형 소음기 장착이 완료된 특수 총기를 차갑게 쓰다듬으며 암살조장이 손가락 세 개를 펼쳐 수신호를 보냈다. 그들이 훈련받은 대로 높은 담장을 민첩하게 넘으려던 찰나였다.서걱-!거센 빗소리에 완전히 묻혀버린 그러나 뼈와 살을 가르는 기괴하고도 섬뜩한 파공음이 어둠을 찢었다.동시에 가장 뒤에 서 있던 암살자의 목통에서 시뻘건 핏물 분수가 뿜어져 나오며, 짐승이 앓는 듯한 억눌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크윽……! 커헉!"놀란 조장이 황급히 총구를 겨누며 뒤를 돌아본 순간, 밤하늘을 찢어발기는 새하얀 번개가 내리쳤다. 찰나의 환해진 시야 속에,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서 갓 기어 올라온 듯한 야차(夜叉)의 얼굴이 드러났다.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제복이 빗물과 피로 흠뻑 젖은 거대한 사내 황후의 직속 수석 호위무사, 김민혁이었다.그의 오른손에 들린 특수 제작된 티타늄 검의 칼날 끝에서는 빗물에 채 씻기지 못한 끈적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까 초저녁 신아리의 은밀한 별채를 습격하여 정보를 캐내는 과정에서 입은 팔뚝의 깊은 자상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민혁은 고통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괴물처럼 기괴하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고 있었다."너... 넌
창밖으로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 소리조차 시은의 서늘하고도 잔혹한 음성을 덮지 못했다. 그것은 제국의 국모가 14년의 끔찍한 침묵을 깨고 내린 성은(恩)이자 어둠 속에서 평생을 숨죽여 온 사냥개에게 처음으로 허락된 핏빛 세례였다.시은의 명령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빗소리를 가르고 귓가에 꽂히는 순간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있던 수석 호위무사 김민혁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언제나 감정을 철저히 통제하던 그의 칠흑 같은 눈동자 깊은 곳에서 숨길 수 없는 기괴한 희열과 짐승 같은 맹목적인 충성심이 번뜩이고 있었다.시은은 천천히 손을 뻗어 민혁의 거친 뺨을 감싸 쥐었다.15년 전 고아원의 흙구덩이 속에서 얼어붙어 가던 소년에게 내밀었던 그 작고 여린 손은 이제 제국의 옥좌를 피로 물들일 준비를 마친 여제의 단호한 손이 되어 있었다.민혁의 불덩이 같은 뺨을 감싼 황후의 가녀린 두 손그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과 얼음장처럼 차가운 체온은 오히려 민혁의 핏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흉포한 야성을 완전히 깨워버리는 기폭제가 되었다."마마의 뜻대로하시십시요"민혁은 낮게 마치 주인의 손길에 길들여진 맹수처럼 짐승의 으르렁거림을 흘리며 시은의 손등에 자신의 이마를 깊숙이 맞대었다. 눈을 감은 그의 속눈썹 위로 빗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방울이 맺혔다. 그것은 단순한 대답이 아니었다. 주군을 위해 기꺼이 지옥불에 뛰어들어 모든 죄업을 대신 짊어지겠다는 절대적인 복종의 서약이자 자신의 목숨을 건 핏빛 맹세였다.짧고도 묵직한 인사를 끝으로 몸을 일으킨 민혁의 거대한 신형이 벼락이 치는 어둠 속으로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튕겨 나가듯 사라졌다.열린 창문 틈으로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빗물인지 아니면 앞으로 다가올 피바람의 예언인지 모를 차가운 액체가 대리석 바닥에 흩뿌려졌다. 시은은 허공에 남겨진 제 두 손을 말없이 응시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심장이 터질 듯이 거세게 뛰고 있었다.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난 14년 동안 자신의 목을 조
2026년, 대한제국 황궁세상의 모든 빛과 부귀를 긁어모은 듯 찬란하게 빛나는 제국의 심장부였지만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황궁의 밤은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서늘하고 기괴했다. 화려한 금박으로 장식된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잿빛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고 빗방울은 마치 누군가의 한 맺힌 눈물처럼 창문을 쉴 새 없이 두드려댔다.황후전의 내실 대한제국 재계 서열 1위 민석그룹의 고명딸이자 제국의 유일무이한 국모인 민시은은 거울 앞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가느다란 목을 짓누르는 화려한 가채와 겹겹이 두른 붉은 적의는 그녀의 숨통을 조이는 화려한 구속구와 다름없었다. 거울 속에 비친 27세의 황후는 얼음조각처럼 차갑고 완벽하게 아름다웠지만 텅 빈 눈동자 속에는 깊은 절망의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시은마마옥체가 상하실까 염려되옵니다. 차라도 한잔 드시지요 "어린 시절부터 시은의 곁을 지켜온 유모가 떨리는 손으로 따뜻한 국화차를 내려놓았다. 주름진 유모의 눈가에는 언제나 시은을 향한 깊은 안타까움이 고여 있었다. 시은은 대답 대신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시선은 찻잔에 떠 있는 가엾은 국화잎에 머물러있었다.뜨거운 물에 속절없이 휩쓸려 향기를 빼앗기는 저 꽃잎이 꼭 자신의 처지 같았다. " 유모 ""예~ 시은 마마 ""비가 오니 그날이 생각나네 내가 처음 이 숨 막히는 붉은 옷을 입었던 날 말이야."시은의 읊조림에 유모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13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희망차게만 보이던 나이였던시은은 민석그룹 민현석 회장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이였다.시은은 어린 시절 황실 연회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다정한 소년 황태자 유종석을 깊이 연모했다. 그 순수했던 짝사랑은 어른들의 철저한 정치적 계산과 결합하여 '정략결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황실은 민석그룹의 막대한 자본이 필요했고민석그룹은 제국의 권력이 필요했다.자신을 향해 미소 지어주던 다정한 오라버니가 남편이 된다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