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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역전된 올가미와 잔혹한 심판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6 10:28:12

​며칠 뒤 궁지에 몰린 황실의 교활한 기만은 본격적으로 그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음 날 대한제국 전역의 뉴스 채널과 주요 일간지 1면은 일제히 황실 언론 통제관들이 뿌린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도배되었다.

​[특보: 민석그룹 황실 문화재 사업 독점 실패하자 국고 지원 전면 중단 선언!]

[재벌의 끝없는 갑질 대한제국 황실의 존엄성 훼손 논란!]

[황후 민시은 친정의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고 내명부 권력 사유화 의혹]

​긴급 기자회견장에 선 황제 유종석은 완벽한 피해자의 얼굴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는 수십 대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서 짐짓 비통하고 고뇌에 찬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 백성들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친애하는 대한제국 국민 여러분 작금의 사태에 황제로서 참담한 심정과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대한제국 경제의 기둥이라 믿었던 민석그룹은 제국의 상징인 황실의 고유 권한마저 거대한 자본으로 쥐고 흔들려 하였습니다. 그들이 내명부의 수장인 황후의 친정이라는 이유만으로 묵인하고 넘어가기에는 그들의 오만한 탐욕이 이미 도를 넘었습니다."

 

​종석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치밀하게 계산된 가증스러운 연기였다.

​"짐은 비록 황실의 곳간이 비어 이슬을 마시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 한 줌의 권력을 쥔 재벌의 횡포에 무릎 꿇고 굴복하여 황실의 숭고한 명예를 팔아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백성 여러분 황실을 지켜주십시오!"

 

​그의 거짓 눈물 연기는 완벽하게 대중의 감정을 파고들었다. 

 

진실을 알 리 없는 백성들은 분노했고 여론은 순식간에 황실을 핍박하는 악랄한 거대 재벌 민석그룹과 아비의 막강한 자본 뒤에 숨어 황제를 능멸하는 오만한 황후를 질타하는 방향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신아리의 처소인 화려한 별궁에서는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TV 중계를 지켜보던 신아리는 최고급 붉은 와인을 단숨에 들이켜며 통쾌하다는 듯 광기 어린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멍청한 백성들 같으니! 저렇게 단상에 서서 적당히 불쌍한 척 눈물 몇 방울 흘려주고 애국심을 자극해주면 진실이 무엇이든 목줄 매인 개돼지처럼 알아서 짖어대는 꼴이라니 정말 우스워서 견딜 수가 없네"

​아리의 곁에 선 하급 궁녀들이 납작 엎드려 아부하며 비위를 맞추었다.

​"역시 폐하의 지략이 하늘을 찌르시옵니다 마마 이제 저 건방진 황후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제풀에 지쳐 스스로 황후의 관을 벗어 던지고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내 성에 차지 않아"

​아리가 서늘하게 웃으며 빈 와인잔을 대리석 탁자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녀의 뱀 같은 눈동자가 잔혹하게 번뜩였다.

​"민시은 그 독한 년은 고작 여론 따위에 무너질 년이 아니야14년을 내 발밑에서 버틴 년이니까 그러니 그 독부의 날개를 내가 친히 하나씩 아주 고통스럽게 꺾어주어야 해 그년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것들부터 산산조각 내서 스스로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어주마"

​아리의 악의에 찬 시선이 멈춘 곳은 머릿속에 떠오른 단 한 사람 시은의 곁을 평생 그림자처럼 지켜온 늙은 '유모'였다.

"만약황후전의 모든 식솔을 관리하고 특히 황후의 탕약을 도맡아 달이는 유모만약 황후의 탕약에 치명적인 약재가 섞여 들어간다면? 그리고 그 배후에 황후를 미쳐버리게 만들려는 민석그룹의 더러운 음모가 있다는 '조작된 증거'가 유모의 방에서 발견된다면?아리는 잔머리를 굴리는중이였다.

​"어제 내가 은밀히 지시한 그 약은 구했느냐?"

​"예~ 아리 마마명하신 대로 서역 상단에서 암암리에 들여온 무색무취의 독초입니다. 극소량만 복용해도 서서히 사람의 피를 마르게 하고 끔찍한 환각을 일으켜 끝내 미쳐 죽게 만든다고 하옵니다."

​"아주 좋아 오늘 밤 황후의 탕약을 끓일 때 유모의 눈을 피해 반드시 이것을 섞어 넣어라 그리고 유모의 낡은 처소 장판 밑바닥에 이 독초의 찌꺼기를 숨겨두는 것도 잊지 말고 오만한 황후가 자신의 친정에서 몸을 보하라며 보낸 약재를 먹고 거품을 물며 쓰러지고 그 끔찍한 범인이 자신이 평생 어미처럼 믿고 따르던 유모라는 것을 알게 되면 하하하 정말이지 꽤나 재밌는 구경거리가 될 테니까."

​아리는 잔혹하게 미소 지으며 제 붉은 입술을 핥았다. 

 

황제는 밖에서 시은의 가문을 치고 자신은 안에서 시은의 수족을 도려낼 작정이었다. 완벽한 양동 작전이었다.

 

​그러나 탐욕에 눈이 먼 아리가 간과한 치명적인 사실이 하나 있었다. 

 

민시은의 등 뒤에는 그저 아비의 돈줄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황실 내명부의 진정한 주인이자 그 누구보다 노련하고 잔혹한 늙은 사자 '대비마마'가 든든한 방패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못했다.

 

​그날 늦은 밤 적막이 내려앉은 황후전의 서재에서는 무거운 어둠 속 시은의 맞은편에는 안경을 추켜올리는 민석그룹의 두뇌 한비서와 검은 정장 차림에 날카로운 인상을 한 여인 하나가 정좌하고 있었다. 

 

 

대비마마의 최측근이자 내명부 최고의 정보망을 쥐고 있는 김비서였다.

 

​"황후 마마 내명부의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김비서가 차분하지만 날이 바짝 선 목소리로 은밀한 보고를 시작했다.

 

​"신아리 측에서 마마의 탕약에 장난을 칠 작정인 듯합니다. 그녀의 수족인 하급 궁녀 하나가 서역의 맹독성 독초를 밀반입한 정황을 우리 측 밀정이 정확히 포착했습니다. 타깃은 아마도 유모님이실 겁니다. 약에 독을 타고 유모님께 누명을 씌워 마마의 수족을 자르고 내명부를 장악하려는 얕은 수작입니다."

​시은의 눈빛이 북해의 빙하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유모는 그녀에게 단순한 하인이 아니었다. 

 

피바람 부는 삭막한 궁궐이라는 얼음성에서 유일하게 어린 시절부터 시은에게 체온을 나누어준, 친어머니와도 같은 고결한 존재였다.

​"하! 신아리 네가 감히 내 사람을 건드려? 어설픈 독으로 내 목숨을 앗아가려 들 줄은 알았지만 유모를 방패막이로 쓸 끔찍한 계획까지 세웠을 줄은 몰랐군 천박한 뿌리는 어딜 가도 그 악취를 숨기지 못하는 모양이야."

​"어찌할까요 마마 그 앙큼한 궁녀를 당장 내수사로 잡아들여 모진 고문으로 추포할까요?"

​"아니"

​시은이 서늘하고도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제지했다.

​"저쪽에서 정성껏 덫을 놓았다면 기꺼이 밟아주는 척을 해야지 그래야 멍청한 사냥감이 안심하고 제 발로 더 깊고 어두운 구덩이에 뛰어들 것 아니겠어? 탕약은 평소처럼 그대로 내게 들여오게 하라 그리고 유모에게는 미리 언질을 주어 놀라지 않게 하고 독초 찌꺼기는 그대로 유모의 처소에 두어라"

 

​시은의 대담한 지시에 김비서와 한비서는 짧게 숨을 삼켰지만 이내 그 뜻을 알아차리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비서가 서류 가방에서 두툼한 파일 하나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마마 폐하께서 언론에 흘리신 가짜 비자금 조작 사건 말입니다. 5천억이라는 막대한 국고 횡령을 저희 민석그룹에 완벽하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폐하께서 '핵심 증인' 하나를 보호 명목으로 내수사 지하 안가에 은신시켜 두었다고 합니다. 내일 아침 열릴 황실 특별 감사에서 그 증인을 내세워 완벽하게 조작된 거짓 장부를 세상에 증언하게 할 계획입니다."

​"그 간 큰 증인이 대체 누구지?"

​"황실 재무부의 일개 하급 회계관인 '박동식'이라는 자입니다."

 

"박동식? 

​그 평범한 이름을 듣자마자 옆에 꼿꼿이 서 있던 김비서의 입가에 묘하고도 비릿한 웃음이 번졌다. 

 

시은 역시 파일을 열어 박동식의 얼굴 사진을 확인하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유종석 그 인간의 얕은 지능은 도대체 어디까지 어리석은짓을할지.. 참.."

 

​김비서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통쾌하다는 듯 덧붙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마마 폐하께서는 자신이 누구도 뒤집을 수 없는 완벽한 패를 쥐고 있다고 착각하시겠지만 저 박동식이라는 자 실은 5년 전 제가 대비마마의 엄명을 받아 황실 재무부의 부패를 캐기 위해 심어놓은 '우리 측 끄나풀'입니다. 도박 빚에 쪼들려 강물에 투신하려던 것을 대비마마께서 친히 빚을 탕감해주시고 새 삶을 주셨으니 그 충성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폐하께서는 결국 호랑이 아가리에 제 발로 고기를 집어넣으신 꼴이 되었습니다."

​한비서의 차가운 분석에 시은은 턱을 괸 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좋아 내일 열릴 웅장한 특별 감사에서 아주 화려하고 통쾌한 반전을 세상에 보여주지 신아리가 놓은 얄팍한 독약의 덫과 황제가 조작한 비자금의 덫그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엮어서 그들의 숨통을 끊는 완벽한 사냥을 시작할 것이다."

​시은의 깊은 눈동 속에 피를 갈망하는 서늘한 사냥꾼의 빛이 번뜩였다. 

 

뒤에 어둠처럼 묵묵히 서 있던 민혁은 그 아름답고도 잔혹한 주군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자신의 티타늄 검 자루를 꽉 쥐었다.

 

시은은 눈을 치켜뜨고거울을보며  혼잣말을한다.

​" 내일 황궁에는 또 한 번 피바람이 몰아칠 것이다."

​다음 날 오전 황실 내수사 특별 청문회 감사장

​거대한 국왕의 옥좌 아래 수십 명의 깐깐한 감사관들과 특종을 노리는 언론사 기자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장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황제 유종석은 완벽한 승리자의 여유를 숨긴 채 짐짓 근엄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상석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 화려하게 늘어진 진주 주렴 뒤에는 내명부의 수장 자격으로 참석한 황후 민시은이 미동도 없이 고요히 앉아 있었다. 

 

주렴에 가려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종석은 콧방귀를 뀌었다. 

 

보나 마나 공포에 질려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 황실 특별 감사를 시작하겠다."

​종석의 엄숙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감사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오늘 이 자리는 백성들의 피땀 어린 세금인 황실의 신성한 국고 5천억 원이 어찌하여 민석그룹의 불법 비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는지 그 추악한 진실을 명백히 밝히는 자리다. 

 

핵심 증인인 재무부 박동식 회계관을 당장 안으로 들라 하라!"

​육중한 문이 열리고, 겁에 질려 파랗게 질린 표정의 사내 하나가 내수사 호위병들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중앙으로 걸어 들어왔다.

​종석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저 어리숙한 박동식의 입에서 '황후의 사주를 받았다'는 말 한마디만 떨어지면 시은과 민석그룹은 그 즉시 제국의 역적으로 몰려 완벽하게 끝장나는 것이었다.

​"박동식 너는 황실 재무부에 근무하며 국고가 민석그룹의 차명 계좌로 불법적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그 더러운 장부를 관리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것이 사실이냐!"

​종석의 협박에 가까운 매서운 호통에 박동식은 흠칫 몸을 떨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지며 장내를 번쩍였다. 그러나 주렴 뒤에 앉은 시은은 그 소란 속에서도 그저 따뜻한 찻잔을 들고 여유롭게 작설차의 향을 음미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답해라! 누구의 사주를 받은 것이냐! 황후냐 아니면 민현석 회장이냐!"

​박동식이 부들부들 떨며 마른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잠깐"

​감사장의 육중한 문이 거칠게 열리며 단호하고도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지닌 늙은 여인의 목소리가 장내의 모든 소음을 단숨에 압도했다. 

 

모두의 시선이 경악과 함께 문 쪽으로 쏠렸다.

​검은 자색의 최고급 당의를 입고, 백발을 비녀로 곱게 틀어 올린 채 김비서의 부축을 받으며 등장한 여인 대한제국 황실의 가장 큰 어른이자 전대 황후인 '대비마마'였다.

​"어.... 어마마마? 어마마마께서 어찌 이곳에 몸도 편치 않으신 분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당황한 종석이 옥좌에서 벌떡 일어나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비는 서늘하고 매서운 눈으로 못난 아들을 한 번 쏘아본 뒤 천천히 감사장 중앙으로 걸어 들어왔다. 

 

기자들은 살아있는 권력의 상징인 대비마마의 등장에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댔다.

 

​"내가 평생을 바쳐 피눈물로 지켜온 이 숭고한 황실이 비리와 얄팍한 모략으로 썩어 문드러지는 꼴을 차마 가만히 볼 수 없어 이 노구를 이끌고 나왔습니다 폐하"

​대비마마의 묵직한 위엄 앞에 감사관들과 기자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대비는 바닥에 엎드려 있는 박동식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명했다.

​"박동식 네 입으로 진실을 고하거라 네가 관리했다는 그 더러운 비자금 장부 그것을 지시하고 빼돌린 돈을 차명 계좌로 세탁하여 가로챈 '진짜 주인'이 누구냐 한 치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내명부의 법도로 네 삼족을 멸할 것이다!"

​종석은 등줄기를 타고 차가운 식은땀이 쏟아져 내리면서 마음이 불안해하고있었다.

 

"어째서 어머니가 저렇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묻는단 말인가? 

 

종석이는 무언가 단단히아주 치명적으로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말해라! 황후의 친정인 민석그룹이 아니더냐! 똑바로 말해라!"

​초조해진 종석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지만 박동식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종석이 아닌 대비마마와 주렴 뒤의 시은을 향해 깊이 조아렸다. 

 

그리고 장내를 완전히 뒤집어놓을 거대한 폭탄 발언을 던졌다.

​"소... 소인은 억울하옵니다! 소인은 그저 신아리 마마의 수하가 건네준 완벽하게 조작된 장부를 민석그룹의 것인 양 둔갑시켜 증언하라는 끔찍한 협박을 받았을 뿐이옵니다! 실제 5천억의 국고가 흘러 들어간 차명 계좌의 실소유주는신아리 마마의 친인척들 명의로 위장된 해외 페이퍼 컴퍼니들이었습니다!"

​"뭐....뭐라?!"

​감사장이 폭탄을 맞은 듯 발칵 뒤집혔다. 

 

기자들은 미친 듯이 수첩에 펜을 휘갈겼고종석은 거대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네.... 네 이놈! 네놈이 감히 황제인 나를 기만하고 거짓말을 해?! 저 미친놈을 당장 끌어내라!"

​"가만히 두지 못할까!"

​대비의 호통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그녀의 곁에 서 있던 김비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두툼한 서류 뭉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박동식 회계관의 증언을 완벽하게 뒷받침할 명백한 증거 자료입니다! 신아리 마마의 지시로 설립된 유령 회사들의 자금 흐름도와 그곳으로 흘러간 황실 수표의 일련번호가 정확히 100% 일치하는 내역서입니다! 이 증거들은 모두 민석그룹의 한비서님과 황후 마마의 공조로 적법하게 입수된 것들입니다!"

​시은에 완벽한 역공이었다. 

 

황제가 시은의 가문을 치기 위해 치밀하게 팠던 덫이오히려 황제와 아리의 목을 옥죄는 거대한 올가미로 변해 그들의 숨통을 끊어버린 순간이었다. 

 

종석의 얼굴은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가 이내 하얗게 질려갔다.

​그러나, 진짜 반전과 지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쾅-!

​감사장의 뒷문이 거칠게 열리며 이번에는 황후의 수석 호위무사 김민혁이 신아리의 수족이었던 하급 궁녀 한 명을 마치 짐짝처럼 질질 끌고 들어와 감사장 한가운데 내동댕이쳤다. 

 

"털썩,

 

궁녀의 품에서는 서역에서 들여왔다는 치명적인 맹독초 뭉치가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차르륵-

​마침내 진주 주렴이 걷히고 민시은이 고고하고 찬란한 자태를 드러내며 단상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그녀의 서늘한 시선이 바닥에서 사시나무 떨듯 떠는 궁녀와 넋이 완전히 나가버린 종석을 번갈아 향했다.

​"폐하"

​시은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우아했지만그 안에는 벼려진 칼날보다 더 섬뜩한 살의가 숨겨져 있었다.

​"신아리가 제 유모에게 누명을 씌워 황후인 저의 탕약에 맹독을 타려다 발각되었습니다. 5천억이라는 막대한 국고 횡령과 국모 독살 시도 일개 천박한 궁녀 출신이 겁도 없이 내명부를 농락하고 제국을 탈취하려 했습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여전히 이 모든 것을 저를 향한 민석그룹의 갑질이라 매도하시겠습니까?"

​시은은 쓰러져 있는 궁녀의 턱을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차갑게 쥐어 올리며 장내의 모든 기자와 백성들이 들을 수 있도록 단호하게 선언했다.

​"이 시각 부로 내명부 수장의 권한으로 황제 직속 궁녀 신아리를 국고 횡령 및 황후 암살 미수 혐의로 즉각 하옥할 것을 명한다. 황후의 권한을 방해하거나 죄인을 비호하는 자는 그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역모의 죄로 다스릴 것이다!"

​자신의 오만함과 피어나는 불신 속에서 기만을 꾀했던 황제는 결국 제 꾀에 빠져 스스로 파놓은 무덤 속에 완벽하게 갇히고 말았다.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폭우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단상에 선 시은과 그녀의 등 뒤를 지키는 흑표범 같은 민혁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잔혹한 승리의 서막 제국을 무너뜨릴 복수의 두 번째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황궁의 잿빛 하늘 위로 묵직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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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뒤 궁지에 몰린 황실의 교활한 기만은 본격적으로 그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다음 날 대한제국 전역의 뉴스 채널과 주요 일간지 1면은 일제히 황실 언론 통제관들이 뿌린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도배되었다.​[특보: 민석그룹 황실 문화재 사업 독점 실패하자 국고 지원 전면 중단 선언!][재벌의 끝없는 갑질 대한제국 황실의 존엄성 훼손 논란!][황후 민시은 친정의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고 내명부 권력 사유화 의혹]​긴급 기자회견장에 선 황제 유종석은 완벽한 피해자의 얼굴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는 수십 대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서 짐짓 비통하고 고뇌에 찬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 백성들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친애하는 대한제국 국민 여러분 작금의 사태에 황제로서 참담한 심정과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대한제국 경제의 기둥이라 믿었던 민석그룹은 제국의 상징인 황실의 고유 권한마저 거대한 자본으로 쥐고 흔들려 하였습니다. 그들이 내명부의 수장인 황후의 친정이라는 이유만으로 묵인하고 넘어가기에는 그들의 오만한 탐욕이 이미 도를 넘었습니다."​종석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치밀하게 계산된 가증스러운 연기였다.​"짐은 비록 황실의 곳간이 비어 이슬을 마시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 한 줌의 권력을 쥔 재벌의 횡포에 무릎 꿇고 굴복하여 황실의 숭고한 명예를 팔아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백성 여러분 황실을 지켜주십시오!"​그의 거짓 눈물 연기는 완벽하게 대중의 감정을 파고들었다. 진실을 알 리 없는 백성들은 분노했고 여론은 순식간에 황실을 핍박하는 악랄한 거대 재벌 민석그룹과 아비의 막강한 자본 뒤에 숨어 황제를 능멸하는 오만한 황후를 질타하는 방향으로 들끓기 시작했다.​같은 시각 신아리의 처소인 화려한 별궁에서는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TV 중계를 지켜보던 신아리는 최고급 붉은 와인을 단숨에 들이켜며 통쾌하다는 듯 광기 어린 폭소를 터뜨렸다.​"하하하! 멍청한 백성들 같으니! 저렇게 단상에 서서 적당히 불쌍한 척 눈물 몇 방울 흘려

  • 잔혹한황실    [제5화] 황제의 기만 피어나는 불신

    ​"기대하십시오 폐하 어젯밤의 지옥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니까요."​서늘하고도 잔혹한 귓속말을 끝으로 시은은 미련 없이 뒤를 돌았다. 황금빛 적의(翟衣)가 대리석 바닥을 스치며 내는 사각이는 파찰음만이 죽은 듯 고요해진 편전 안을 날카롭게 가르며 울려 퍼졌다.​"이...이 독부 같은 년! 감히 폐하 앞에서 피를 보이고 협박을 해? 황후! 네가 정녕 미친 것이로구나! 멈춰라! 거기 서지 못할까!" 민시은!!!!​사색이 된 황제 유종석이 등 뒤에서 악을 쓰며 소리쳤지만 시은의 고고한 발걸음은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한비서가 얼음장 같은 얼굴로 무미건조한 목례를 남긴 뒤 시은의 뒤를 따랐고 마지막으로 편전 문을 나서던 호위무사 김민혁은 고개를 돌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종석과 아리를 서늘하게 내려다보았다.​오직 살육과 주군의 안위만을 위해 훈련된 들개처럼 무감각하면서도 잔혹한 눈빛 그 칠흑 같은 시선과 마주친 순간 종석은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섬뜩한 한기에 자신도 모르게 숨을 헉, 하고 삼켰다.​쾅-!​거대한 편전의 문이 무거운 굉음을 내며 닫히는 소리와 함께 14년간 오만하게 군림했던 황제의 권위도 산산조각이 났다.​"꺄아아아악! 치워! 당장 치워! 저 끔찍한 것을 내 눈앞에서 당장 치우란 말이야!"​그제야 정신을 차린 신아리가 자개 상자 안에 담긴 흑영 조장의 잘린 손목을 보며 발작하듯 비명을 질렀다. 황제의 수석 비서관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황급히 다가와 상자를 덮고는 밖으로 쫓기듯 뛰쳐나갔다. 넓고 화려한 편전 안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종석과 공포에 질려 바닥을 기어가는 아리만이 남았다.​"폐...폐하 ! 저. .저민시은 저년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폐하의 수족을 저리 잔인하게 베어내고 우리를 죽이려 들고 있습니다! 저 무서운 년을 당장 폐위시켜야 하옵니다!"폐하!시끄럽다! 민시은 이.. 이독한년!​아리가 종석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그 가증스러운 눈물과 비명에, 종석은 이를 뿌득 갈았다.

  • 잔혹한황실    [제4화] 핏빛 눈물과 반격의 서막

    ​"마마..."​목구멍까지 차오른 벅찬 감정을 억누르듯 민혁의 거친 숨소리가 내실의 무거운 공기를 흔들었다. 황후의 고귀한 손길이 자신의 상처를 감싸 안을 때마다 그는 이 목숨을 몇 번이고 바쳐서라도 저 가녀린 여인을 짓밟으려는 자들을 지옥 끝까지 쫓아내리라 맹세하고 또맹세했다.​시은은 눈앞에 무릎 꿇린 짐승 같은 충신을 바라보며 14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심장에 뜨거운 피가 다시 도는 것을 느꼈다.​더 이상 슬픔에 겨워 눈물 흘리는 허울뿐인대한제국에 국모가 아니었다.​"일어나거라 민혁아."​시은이 차갑고도 단단한 음성으로 명하자 민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빛은 방금 전까지 본가 앞마당의 살귀처럼 잔혹했던 빛을 거두고 오직 주군의 명령만을 기다리는 절대적인 경외로 가득 차 있었다.​"오늘 밤이 지나면 저 오만한 황충들은 우리가 파놓은 무덤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오게 될 것이다."​시은의 붉은 입술이 서늘한 미소를 그려냈다.​다음 날 아침​세상을 집어삼킬 듯 몰아치던 간밤의 폭우가 모든 오물을 씻어내린 듯 황궁의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청명했다. 그러나 따스하고 평화로운 아침의 햇살이 무색하게도 황제의 편전은 폭풍전야의 기괴한 고요함에 휩싸여 있었다.​황제 유종석은 최고급 백자 찻잔에 담긴 향긋한 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넓은 용상 위 그의 무릎에는 속이 훤히 비치는 천박한 붉은 실크 슬립 차림의 신아리가 나른한 고양이처럼 기대앉아 있었다.​"폐하 간밤에 좋은 꿈은 꾸셨사옵니까?"​아리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종석의 귓가에 속삭였다.​"하하하 물론이지 오늘 아침이면 내 눈엣가시 같던 민현석 늙은이가 제 명을 다했다는 반가운 부고가 들려올 테니깐 말이야 내가 친히 기른 흑영의 실력은 대한 제국 제일이니깐 아마 지금쯤 흔적도 없이 그 늙은이의 숨통을 끊어놓고 지옥으로 보냈을것이다."​종석은 마치 이미 승리라도 거머쥔 듯 오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호호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평생 고개

  • 잔혹한황실    [제3화] 지옥문의 개방과 핏빛 연대

    ​같은 시각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폭우가 쏟아지는 서울 외곽의 고급 주택강민회장댁이다.대한제국 재계 서열 1위, 민석그룹 민현석 회장의 본가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진입로에는 평소 환하게 불을 밝히던 가로등마저 모두 꺼져있다.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그 먹먹한 어둠 속을 소리 없이 기어가는 다섯 개의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황제 유종석이 제국의 법망을 피해 자신에게 거슬리는 자들을 조용히 제거하기 위해 은밀하게 키워낸 황실 직속의 어둠, '흑영(黑影)' 소속의 최정예 암살자들이었다.​그들의 오늘 밤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건방지게 황제에게 밉보인 민석그룹의 심장 민현석 회장의 목을 쥐도 새도 모르게 따오는 것이다.​최신형 소음기 장착이 완료된 특수 총기를 차갑게 쓰다듬으며 암살조장이 손가락 세 개를 펼쳐 수신호를 보냈다. 그들이 훈련받은 대로 높은 담장을 민첩하게 넘으려던 찰나였다.​서걱-!​거센 빗소리에 완전히 묻혀버린 그러나 뼈와 살을 가르는 기괴하고도 섬뜩한 파공음이 어둠을 찢었다.​동시에 가장 뒤에 서 있던 암살자의 목통에서 시뻘건 핏물 분수가 뿜어져 나오며, 짐승이 앓는 듯한 억눌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크윽……! 커헉!"​놀란 조장이 황급히 총구를 겨누며 뒤를 돌아본 순간, 밤하늘을 찢어발기는 새하얀 번개가 내리쳤다. 찰나의 환해진 시야 속에,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서 갓 기어 올라온 듯한 야차(夜叉)의 얼굴이 드러났다.​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제복이 빗물과 피로 흠뻑 젖은 거대한 사내 황후의 직속 수석 호위무사, 김민혁이었다.​그의 오른손에 들린 특수 제작된 티타늄 검의 칼날 끝에서는 빗물에 채 씻기지 못한 끈적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까 초저녁 신아리의 은밀한 별채를 습격하여 정보를 캐내는 과정에서 입은 팔뚝의 깊은 자상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민혁은 고통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괴물처럼 기괴하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고 있었다.​"너... 넌

  • 잔혹한황실    [제2화] 가시관을 벗어던진 여제

    창밖으로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우 소리조차 시은의 서늘하고도 잔혹한 음성을 덮지 못했다. 그것은 제국의 국모가 14년의 끔찍한 침묵을 깨고 내린 성은(恩)이자 어둠 속에서 평생을 숨죽여 온 사냥개에게 처음으로 허락된 핏빛 세례였다.​시은의 명령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빗소리를 가르고 귓가에 꽂히는 순간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있던 수석 호위무사 김민혁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언제나 감정을 철저히 통제하던 그의 칠흑 같은 눈동자 깊은 곳에서 숨길 수 없는 기괴한 희열과 짐승 같은 맹목적인 충성심이 번뜩이고 있었다.​시은은 천천히 손을 뻗어 민혁의 거친 뺨을 감싸 쥐었다.15년 전 고아원의 흙구덩이 속에서 얼어붙어 가던 소년에게 내밀었던 그 작고 여린 손은 이제 제국의 옥좌를 피로 물들일 준비를 마친 여제의 단호한 손이 되어 있었다.민혁의 불덩이 같은 뺨을 감싼 황후의 가녀린 두 손그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과 얼음장처럼 차가운 체온은 오히려 민혁의 핏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흉포한 야성을 완전히 깨워버리는 기폭제가 되었다.​"마마의 뜻대로하시십시요"​민혁은 낮게 마치 주인의 손길에 길들여진 맹수처럼 짐승의 으르렁거림을 흘리며 시은의 손등에 자신의 이마를 깊숙이 맞대었다. 눈을 감은 그의 속눈썹 위로 빗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방울이 맺혔다. 그것은 단순한 대답이 아니었다. 주군을 위해 기꺼이 지옥불에 뛰어들어 모든 죄업을 대신 짊어지겠다는 절대적인 복종의 서약이자 자신의 목숨을 건 핏빛 맹세였다.​짧고도 묵직한 인사를 끝으로 몸을 일으킨 민혁의 거대한 신형이 벼락이 치는 어둠 속으로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튕겨 나가듯 사라졌다.​열린 창문 틈으로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빗물인지 아니면 앞으로 다가올 피바람의 예언인지 모를 차가운 액체가 대리석 바닥에 흩뿌려졌다. 시은은 허공에 남겨진 제 두 손을 말없이 응시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심장이 터질 듯이 거세게 뛰고 있었다.​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난 14년 동안 자신의 목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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