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제2장
아네타의 울음소리가 집 안 가득 울려 퍼지는 가운데, 두 명의 거구의 남자가 오로라에게 다가왔다. 아네타는 곧바로 딸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고, 오로라는 중심을 잃을 뻔했다. “가지 마... 로리, 엄마가 부탁할게.” 아네타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어. 엄마가 무슨 일이든 할게.” 오로라는 엄마의 떨리는 몸을 품에 안은 채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온기를 느낄수록 가슴은 더욱 답답해졌다. “이제 다른 방법은 없어요, 엄마.” 그녀는 작게 속삭였다. “아니, 분명 있을 거야!” 아네타는 오로라의 얼굴을 감싸 쥔 채 더욱 서럽게 울었다.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 엄마는 네가 그 사람을 따라가는 걸 원하지 않아.” 오로라도 알고 있었다. 조금 전 리처드가 자신을 바라본 첫 순간부터 그녀는 이미 그가 위험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화를 낼 때 고함을 치거나 탁자를 내리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리처드는 너무나 차분했기에 오히려 더 두려운 사람이었고, 바로 그 점이 오로라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리처드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모든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네타의 울음이 점점 격해져도 그의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뒤에 서 있던 경호원 한 명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단순한 손동작 하나.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두 남자가 오로라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네타는 곧바로 소리쳤다. “내 딸에게 손대지 마세요!” “엄마...” 오로라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목소리로 엄마를 달랬다. “전 괜찮을 거예요.” “거짓말이야!” 아네타는 울부짖었다. “리처드 씨를 따라가면 절대 괜찮을 리 없어!” 오로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너무나 두려웠다. 반면 베르탄은 거칠게 얼굴을 문지르며 일어섰다. “그만 좀 울어.” 아네타는 남편을 노려봤다. “저 애는 우리 딸이야!” “그리고 이건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야!” 베르탄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오로라가 가지 않으면 우리 모두 끝이야!” “그럼 차라리 날 데려가!” 아네타가 절규했다. “왜 하필 로리여야 해?” “리처드 씨가 원하는 사람이 오로라니까.” 그 말이 떨어지자 집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오로라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만큼 주먹을 꽉 쥐었다. “로리한테 너무 불공평해...” 아네타는 절망에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 리처드가 마침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몇 초 동안 오로라를 바라보다 차분하게 말했다. “이제 출발해야겠군.” 오로라는 천천히 엄마의 품에서 몸을 떼어냈다. 그러자 조나스가 울면서 그녀의 다리를 꼭 끌어안았다. “로리 누나, 가지 마...” 오로라의 몸이 굳어졌다. 그녀는 몸을 낮춰 어린 동생을 꼭 끌어안았다. 참고 있던 눈물이 결국 흘러내렸다. “누나는 정말 괜찮을 거야.” 그녀는 자신조차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조용히 속삭였다. 리처드의 경호원들이 현관문을 열었다. 힘없이 밖으로 걸어 나온 오로라의 얼굴을 차가운 밤공기가 스쳤다. 집 앞에는 마치 그녀의 인생을 집어삼킬 준비를 마친 듯한 긴 검은 리무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로라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현관 앞에서는 엄마가 여전히 울고 있었다. 아버지는 끝내 그녀를 바라보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로라는... 누군가 이 모든 걸 멈춰 주길 아직도 바라고 있는 자신이 미웠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차 문이 열렸다. 오로라는 스웨터 끝자락을 꼭 움켜쥔 채 천천히 차에 올라탔다. 몇 초 뒤 리처드도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내 문이 닫혔다. 그제야 오로라는 자신이 정말 집을 떠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차는 보스턴의 작은 주택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어두운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갔고, 차 안의 공기는 숨 막힐 만큼 답답했다. 오로라는 무의식적으로 옷자락만 계속 만지작거렸다. 리처드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많이 긴장한 모양이군. 내가 그렇게 무서운가?” 오로라는 앞만 바라본 채 대답했다. “그건 당신이 더 잘 아시겠죠.” 그녀의 말투에 앞좌석의 경호원이 백미러로 그녀를 흘끗 바라봤다. 하지만 리처드는 옅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받아칠 줄 아는 여자는 마음에 드는군.” 오로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몇 분 동안 침묵이 이어진 뒤, 리처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아직도 처녀인가?” 오로라는 즉시 그의 쪽을 돌아봤다. “왜 그런 걸 물으시는 거죠?” 리처드는 마치 날씨를 묻기라도 한 것처럼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 질문에 오로라의 얼굴은 분노와 수치심으로 붉어졌다. “전 그런 나쁜 여자가 아니에요, 아저씨.” 리처드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아저씨라고 부르지 마.” 오로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난 그렇게 늙지 않았어.” 그는 셔츠 소매를 정리하며 차분하게 말했다. “리처드라고 불러.” 오로라는 재빨리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이지 불편한 남자였다. “오늘 밤은 널 건드리지 않을 거다.”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러니 죄수 같은 표정은 그만 짓도록.” 오로라는 조용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리처드는 몇 초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물부터 닦아.” 오로라는 말없이 있었다. “넌 내가 선택한 사람으로 내 집에 들어가는 거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억지로 끌려온 것 같은 여자는 마음에 들지 않아.” 오로라는 황급히 눈가를 닦았다. “좋아.” 리처드가 나직이 말했다. 맨해튼까지 가는 길은 오로라에게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차가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속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오늘 밤부터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침내 차가 맨해튼의 최고급 주택가에 들어섰다. 오로라는 지금껏 TV에서만 보던 호화로운 저택들과 높이 솟은 빌딩들을 바라봤다. 차는 중앙에 캘러웨이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거대한 검은 대문 앞에 멈췄다.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오로라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눈앞의 저택은 개인 저택이라기보다 최고급 호텔에 가까웠다. 높은 흰색 외벽과 황금빛 조명이 새어 나오는 긴 창문. 저택을 둘러싼 넓은 정원은 너무 완벽해서 손대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내려.” 리처드의 목소리가 그녀를 현실로 끌어냈다. 경호원이 곧바로 차 문을 열었다. 오로라는 다시 한번 저택을 바라본 뒤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맨해튼의 밤공기가 차갑게 피부를 스쳤다. 리처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리석 계단을 먼저 올라갔다. 오로라는 긴장을 억누르며 그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현관문이 열리자 따뜻한 불빛이 그들을 맞이했다. 저택 내부는 밖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높은 천장에는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고, 바닥은 유리처럼 반짝였다. 오로라는 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곧 하녀 한 명이 다가와 리처드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좋은 저녁입니다, 사장님.” 리처드는 검은 코트를 벗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건넸다. “탄탄은 어디 있지?” 그 별명을 들은 오로라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도련님은 방에 계십니다. 약 10분 전에 귀가하셨습니다, 리처드 사장님.” “아래로 불러.” 리처드가 지시했다. 하녀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오로라는 커다란 홀 한가운데 어색하게 서서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이유도 없이 심장이 이상하게 뛰기 시작했다. 잠시 후,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게도... 그 발소리는 낯설지 않았다. 오로라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계단 끝에 검은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키 큰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샤워를 마친 듯 검은 머리는 조금 헝클어져 있었지만, 잘생긴 얼굴은 여전히 선명했다. 처음에는 귀찮다는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오로라와 마주친 순간. 걸음이 그대로 멈췄다. 오로라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가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안 돼... 설마...!’ 오로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오로라를 바라보고 있었다.제129장 (최종장)일 파라디소 로비에 감돌던 위스키 잔향과 팽팽한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를 어색한 정적이 채웠다. 루나—아니, 오로라는 베네치아 가면 뒤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붉은 벨벳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애수 어린 그녀의 두 눈은 리처드의 팔에 여전히 올려져 있는 바네사의 손을 직시했다.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통증과 함께 고집스러운 질투심이 불길처럼 치밀어 올랐다.앞에 선 여자의 몸이 경련하듯 굳어지는 것을 감지한 리처드는 차가우면서도 단호한 동작으로 자신의 팔을 쥐고 있던 바네사의 손을 느슨하게 풀어냈다. 그는 아까부터 자신의 직감을 집요하게 자극하던 확신을 확인하려는 듯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하지만 리처드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주변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패닉에 빠진 루비가 루나의 손목을 불쑥 낚아챘다."루나, 당장 뒷문으로 나가자! 니콜라스 오빠가 우리를 데리러 보디가드 팀을 보냈을 거야!" 루비는 거의 친구를 소파에서 일으켜 세우다시피 하며 외쳤다.자신의 비밀이 폭로될까 봐 극도의 두려움에 휩싸인 오로라는 즉시 몸을 돌려 루비의 이끌림을 따라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끌리는 적포도주색 드레스 자락과 서두르는 발걸음이 얽히면서, 그녀는 미끄러운 로비 복도의 시야를 놓치고 말았다.쿵!뒷골목으로 이어지는 모퉁이를 돌려던 바로 그 순간, 루나의 날씬한 몸이 관리사무실 방향에서 막 걸어 나오던 한 남자의 넓은 가슴에 세게 부딪혔다. 제법 강했던 충격 탓에 오로라는 균형을 잃고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남자의 단단한 두 손이 잽싸게 앞으로 뻗어 나와, 딱딱한 대리석 바닥에 쓰러지지 않도록 루나의 가는 허리를 잡아채어 받쳐주었다. 그러나 그 찰나의 반사 신경 탓에, 루나의 머리 뒤에 매여 있던 가면 끈이 남자의 양복 소매 버튼에 걸려버리고 말았다.툭.은색 자수가 놓인 상아빛 베네치아 가면이 그녀의 얼굴에서 떨어져 나가, 챙그랑거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 위로 나뒹굴었다.어스름한 로비
제128장새틴 셔츠를 입은 남자가 배경 기둥 근처로 구석에 몰린 루나에게 다시 다가왔다. 루나의 매끄럽고 땀에 젖은 목덜미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광기 어리게 번뜩였다. "이 바보 같은 가면 뒤에 숨겨진 얼굴 좀 볼까, 예쁜이?" 남자가 으르렁거리며 더러운 손가락을 뻗어 루나의 목 피부 표면에 닿으려 했다.루나는 극심한 두려움의 눈물을 참아내며 두 눈을 감았고, 그녀의 몸은 격렬하게 떨렸다. '하느님...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퍽!묵직하고 거친 주먹 하나가 갑자기 새틴 셔츠를 입은 남자의 턱에 정확히 꽂히며 끔찍한 뼈 소리를 냈다. 취한 남자의 몸은 붕 떠올라 무대 바닥 위로 나뒹굴었고, 몇 개의 술병을 끌고 가 산산조각 내며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루나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다. 그녀의 앞에는 억센 체구의 남자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는 분노를 억누르며 가슴을 위아래로 크게 헐떡이고 서 있었다. 리처드 캘러웨이는 여전히 단단히 쥔 주먹을 든 채, 굶주린 짐승처럼 덤벼들던 주변의 남자들을 향해 서슬 푸른 눈빛을 쏘아보고 있었다."누구든 저 아이에게 다시 손을 대는 놈은, 평생 그 손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 주겠다!" 리처드가 고함을 질렀다. 그의 바리톤 목소리가 치명적인 지배자의 아우라를 내뿜으며 번개처럼 울려 퍼지자, 다른 취객들은 겁에 질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무대 구석에서 그 모습을 본 루비는 즉시 환호성을 질렀다. "좋아요! 잘하셨어요, 기사님!" 루비가 커다란 안도감을 느끼며 외쳤다.한편, 루나라는 신분 뒤에 숨어 있던 오로라는 그 자리에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 불과 몇 인치 앞에 있는 리처드의 단단한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는 순간, 그녀의 심장은 마치 멈춰 버린 것만 같았다. 가슴속을 채웠던 패닉은 이제 다른 종류의 두려움으로 바뀌어 요동쳤다. 한때 자신의 몸을 차지했던 이 중년의 남자에게 자신의 위장이 파헤쳐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리처드는 단 한마디 말도 없이 몸을 돌려 루나에게 다가섰다. 여자가 피할 겨를도
제127장단 하나의 사파이어빛 조명이 천장에서 내리꽂히며 메인 홀의 어둠을 가르고, 무대 중앙에 서 있는 루나의 날씬한 실루엣에 꽂혔다. 바이올린 연주곡의 선율이 하프 튕기는 소리와 섞여 천천히 흘러나오며, 신비로우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루나는 베네치아 가면 뒤에서 깊은숨을 내쉬었다. 바로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체형을 감싼 적포도주색 실크 드레스가 유연하게 나부꼈고, 허리는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곡선을 그려냈다. 밤바람에 놀아나는 한 송이 깃털처럼, 회전하고 튀어 오르는 그녀의 발놀림은 지극히 가벼웠다. 허공을 그리는 길쭉한 손가락의 움직임은 신비로운 무용수의 매혹에 완전히 매료된 수백 쌍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관객들의 시끄러운 수군거림은 어느새 잦아들었고, 숨이 막힐 듯한 열정과 감탄이 섞인 시선만이 그 자리를 채웠다.하지만 그 마법은 VIP석 맨 앞줄에는 통하지 않았다. 이선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눈은 무대를 향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완전히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무용수의 날렵한 움직임은 서서히 아득해졌고, 그 자리를 뉴욕의 가랑비 속에서 애교 있게 웃던 오로라의 잔상이 채웠다. 빌어먹을, 가슴을 짓누르는 이 답답함은 오히려 가슴을 더욱 강하게 죄어왔다.바로 옆에 앉은 리처드 역시 같은 표정의 일렁임을 내비치고 있었다. 중년의 남자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위스키 잔을 세게 쥐고 있었다. 가면을 쓴 무용수의 아름다운 몸매를 감상하기는커녕, 리처드의 눈에는 저택에서 오로라와 보냈던 마지막 밤의 잔상이 투영되고 있었다. 떠나기 전 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며 저택의 온기를 모조리 빼앗아가 버린 그날 밤이. 오로라라는 이름은 두 캘러웨이 남자의 머릿속에서 저주처럼 울려 퍼졌다.관객석 뒷줄에서는 니콜라스의 양복 주머니 속에 든 전화기가 강렬하게 진동했다. 27세의 남자는 기기를 꺼내 들었고, 화면에 떠오른 수석 비서의 이름을 확인하
제126장오로라는 떨리는 손가락 끝으로 가면 뒤로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냈다. 그녀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가슴을 막아서는 고통을 내뱉은 뒤, 몸을 돌려 탈의실을 향해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양심을 계속해서 갉아먹는 과거의 죄악에 짓눌려, 걸음을 옮기는 매 인치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한때 이선과 나누었던 금지된 관계, 그리고 리처드의 오만함 앞에 자신의 몸을 내어주어야 했던 기억은 그녀가 돌아갈 자격을 박탈하는 두꺼운 벽이 되어버렸다. 소란스러운 머릿속에서 그 현실이 계속해서 맴돌며, 멀리 떠나 있는 것만이 모두를 위한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되새겨주었다.한편, 여전히 긴장의 잔재가 감도는 로비 구석에서 오드리는 손가락에 쥐어진 손수건을 부드럽게 쥐었다. 그녀는 깊은 슬픔이 서려 있는 이선의 얼굴을 바라보며, 남자의 시선을 파괴적인 과거의 소용돌이로부터 돌리려 애썼다."이선 씨, 이제 그만 놓아주세요. 이렇게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시고요." 오드리가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여전히 뻣뻣하게 굳어 있는 상사의 단단한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오늘 밤 메인 홀에서 특별 무용 공연이 있어요. 자, 안으로 들어가서 관람해요. 머릿속의 무거운 짐을 잠시나마 잊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이선은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두 눈을 감은 채, 꽉 다물어진 입술 틈새로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모르겠어, 오드리. 오늘 밤은 머릿속이 너무 가득 차서 그 어떤 것도 즐길 수가 없을 것 같아." 이선이 쉴 대로 쉰 헛헛한 목소리로 신음하듯 말했다."머릿속이 가득 차 있으니까 더더욱 비워내셔야죠." 오드리가 정성스러운 손길로 이선의 눈가에 남아 있던 축축함을 다시 한번 닦아주며 채근했다. "어서요, 적어도 이선 씨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해요."이선이 오드리의 청을 따라 막 발걸음을 옮기려던 바로 그 순간, 클럽 일 파라디소(Il Paradiso) 로비의 유리문이 다시 한번 요란하게 딸랑거렸다. 정장 차림의 검은색 맞춤 양복을 입은 억센 실루엣이 압도적인 지배의 아우
제125장루나의 급한 발걸음이 적포도주색 실크 드레스와 부딪히며 미세한 마찰음을 냈고, 일 파라디소(Il Paradiso) 로비의 어스름한 정적을 갈랐다. 그녀는 고개를 최대한 깊이 숙이고 두 팔을 몸 옆에 바짝 붙인 채, 소파 구석에 앉은 매의 눈을 가진 사내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기만을 가슴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운명은 인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이선이 앉아 있는 벨벳 소파의 그림자 경계선을 루나의 구두 뒤꿈치가 막 지나는 순간, 캘러웨이 가문의 청년이 갑자기 허리를 바짝 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어쩌면 지극히 짙게 얽힌 기억의 실타래거나, 공기 중에 남아 있던 익숙하고 달콤한 바닐라 향기—가 이선의 중추신경을 강렬하게 자극했다."잠깐만!" 이선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쉴 대로 쉬었지만, 안쪽 방에서 울려 나오는 음악의 쿵쾅거리는 비트를 뚫고 나갈 만큼 강렬했다.쿵.루나에게는 세상이 회전을 멈춘 것만 같았다. 두 다리의 모든 관절이 마치 로비의 대리석 바닥에 시멘트로 고정된 것처럼 순간 얼어붙었다. 심장이 너무나 미친 듯이 뛰어서, 극심한 패닉의 충격으로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이선은 탁자 위에서 달그락거리는 음료 잔을 무시한 채 신속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폭이 넓고 가파른 그의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며, 둘 사이의 거리를 1미터도 채 남지 않을 때까지 좁혀왔다. 남자는 호흡을 불규칙하게 몰아쉬며 제 앞에 서 있는 자그마한 뒷모습의 실루엣을 똑바로 응시했다."오로라...?" 이선이 소름 끼칠 정도로 격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음성에는 솟구치는 불신과 함께 짙은 그리움이 넘쳐흘렀다.루나는 상아색 베네치아 가면 뒤에서 두 눈을 감겼다. 패닉에 빠진 신음이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도록 그녀의 턱이 꽉 다물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얼굴 상반신이 은색 브로케이드 조각 가면으로 촘촘히 가려져 있는데도, 어떻게 이 남자는 단 한 번 지나치는 것만으로 자신을 알아볼
제125장루나의 급한 발걸음이 적포도주색 실크 드레스와 부딪히며 미세한 마찰음을 냈고, 일 파라디소(Il Paradiso) 로비의 어스름한 정적을 갈랐다. 그녀는 고개를 최대한 깊이 숙이고 두 팔을 몸 옆에 바짝 붙인 채, 소파 구석에 앉은 매의 눈을 가진 사내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기만을 가슴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운명은 인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이선이 앉아 있는 벨벳 소파의 그림자 경계선을 루나의 구두 뒤꿈치가 막 지나는 순간, 캘러웨이 가문의 청년이 갑자기 허리를 바짝 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어쩌면 지극히 짙게 얽힌 기억의 실타래거나, 공기 중에 남아 있던 익숙하고 달콤한 바닐라 향기—가 이선의 중추신경을 강렬하게 자극했다."잠깐만!" 이선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쉴 대로 쉬었지만, 안쪽 방에서 울려 나오는 음악의 쿵쾅거리는 비트를 뚫고 나갈 만큼 강렬했다.쿵.루나에게는 세상이 회전을 멈춘 것만 같았다. 두 다리의 모든 관절이 마치 로비의 대리석 바닥에 시멘트로 고정된 것처럼 순간 얼어붙었다. 심장이 너무나 미친 듯이 뛰어서, 극심한 패닉의 충격으로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이선은 탁자 위에서 달그락거리는 음료 잔을 무시한 채 신속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폭이 넓고 가파른 그의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며, 둘 사이의 거리를 1미터도 채 남지 않을 때까지 좁혀왔다. 남자는 호흡을 불규칙하게 몰아쉬며 제 앞에 서 있는 자그마한 뒷모습의 실루엣을 똑바로 응시했다."오로라...?" 이선이 소름 끼칠 정도로 격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음성에는 솟구치는 불신과 함께 짙은 그리움이 넘쳐흘렀다.루나는 상아색 베네치아 가면 뒤에서 두 눈을 감겼다. 패닉에 빠진 신음이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도록 그녀의 턱이 꽉 다물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얼굴 상반신이 은색 브로케이드 조각 가면으로 촘촘히 가려져 있는데도, 어떻게 이 남자는 단 한 번 지나치는 것만으로 자신을 알아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