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7화

Author: 마루콩
안방으로 막 들어온 강이주의 핸드폰에 곧바로 장 여사의 메시지 폭탄이 날아들었다.

[끝까지 이렇게 고집부릴 거야? 정말 강중그룹은 네가 책임 안 질 거니? 네 아버지랑 조상 대대로 이어 온 피땀 어린 회사야. 강씨 집안 100년 기반이 이렇게 무너지는 걸 정말 보고만 있을 거야?]

[네가 이렇게 하면, 나랑 네 아버지가 나중에 강씨 집안 조상들 앞에서 뭐라고 얼굴을 들겠니?]

[엄마도 알아. 이 일로 네가 얼마나 억울한지. 백초아는 원후의 마음속에 박힌 사람이야. 조금만 참고 넘기면 안 되니?]

[남자들 밖에서 바람피우는 거 흔하잖아. 그깟 사랑 못 받으면 어때, 돈만 손에 쥐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니?]

[이주야, 엄마가 부탁할게. 네 아버지 아직 병원에 계셔. 강중그룹이 정말 무너지면, 나는 네 아버지랑 강씨 집안 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보겠니.]

장 여사가 보낸 빽빽한 메시지를 보고도 강이주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강이주는 어머니의 말속에 담긴 무력감과 절박함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한 줄 한 줄 이어지는 호소는 마치 날이 선 칼처럼 강이주의 가슴 깊숙한 곳을 찔러댔다.

잠시 핸드폰을 바라보던 강이주는 그대로 화면을 껐다.

지금은 장 여사와 이 문제를 두고 더 이야기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사실 강중그룹은 심명그룹과 얽힌 사업이 너무 많았다.

단기간에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 강이주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강중그룹과 심명그룹의 사업 관계를 분리해 내는 것.

그렇게 생각하며 비서의 연락처를 찾으려던 순간,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뜬 번호는 낯설지 않았다.

구기빈이었다.

번호를 저장해 둔 적은 없었지만, 이전에도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탓에 강이주는 이미 그 숫자를 자연스럽게 기억했다.

전화받자 수화기 너머로 구기빈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주 씨.]

이상하게도 그가 ‘이주 씨’라고 부를 때마다 강이주는 이유 없는 여운 같은 것을 느꼈다.

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담담하게 답했다.

“네, 저예요.”

구기빈이 지금 이 시간에 전화를 건 이유가 단순한 안부일 리는 없었다.

강이주는 그가 먼저 본론을 꺼내길 기다렸다.

그리고 구기빈은 망설이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하면, 저한테 말씀하셔도 됩니다.]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가 바로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곧 강이주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당신...”

구기빈이 해외 출장을 나가 있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빠르게 소식을 알았다는 사실에 강이주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미 구기빈은 강씨 집안과 심씨 집안이 완전히 틀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구기빈의 말은 명확했다. 강이주가 지금 한마디만 하면, 강씨 집안의 일에 직접 나서서 도와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강씨 집안에게는 말 그대로 가뭄 속 단비 같은 제안이었다.

하지만... 강이주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예전에 큰 위기를 맞았던 강중그룹이 떠올랐다.

그때 심명그룹의 지원은, 바다 한가운데서 붙잡은 부표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침몰하던 강중그룹은 겨우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강중그룹은 줄곧 심명그룹의 눈치를 보며 움직여야 했다.

‘또다시 같은 선택을 해도 되는 걸까.’

강이주는 그 생각 앞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강이주에게는 나름의 걱정이 있었다.

구기빈이 나선다면, 강중그룹이 심씨 집안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분명한 버팀목이 생긴다.

하지만 그건 강이주가 바라는 방향은 아니었다.

심씨 집안을 벗어나 또 다른 거대한 구씨 집안에 기대는 것이라면, 결국 강중그룹은 여전히 남의 손에 좌우되는 처지가 된다.

본질적으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고, 여전히 누군가에게 의존해 강씨 집안을 지탱하는 구조였다.

강이주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방식에서는 강씨 집안에 의사 결정권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걸.

힘들게 심씨 집안에서 독립하려는 이 시점에 강이주는 강씨 집안이 또다시 다른 집안에 기대어 연명하는 꼴을 원하지 않았다.

이제는 자신이 직접 강중그룹을 떠받쳐야 했다.

물론, 그 무게를 과연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는 강이주 자신도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심원후와의 일은 강이주에게 분명한 경고가 되었다.

‘산을 믿으면 산이 무너지고, 사람을 믿으면 사람은 떠날 거야.’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야.’

그 생각에 이르자 강이주는 조심스럽게 거절의 뜻을 전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어요. 구기빈 씨 마음만으로도 충분해요.”

말이 끝나자, 전화기 너머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항상 여기 있습니다. 언제든지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

강이주가 거절했음에도, 구기빈은 여지를 남겼다.

강이주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화는 거기서 끊긴 듯했고, 잠시 두 사람 사이에는 말 없는 공백이 흘렀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구기빈이었다.

그는 가볍게 목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결혼식에 대해서는 특별히 원하는 게 있습니까?]

구기빈은 강이주에게 일주일의 시간을 주긴 했지만, 그저 형식적인 혼인신고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이미 혼인신고를 전제로 한 이상 결혼식 역시 당연히 논의해야 할 문제였다.

강이주는 잠시 말을 잃었다.

‘구기빈이랑... 결혼식을...?’

그건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심원후와 결혼을 이야기할 때조차 심씨 집안 쪽에서는 처음부터 결혼식을 할 생각이 없었다.

심원후는 결혼식이 번거롭다며 차라리 신혼여행이나 가는 편이 더 낫다고 말했었다.

그때의 강이주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히 심원후가 번잡한 걸 싫어한다고만 여겼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심원후는 애초에 결혼 사실을 백초아가 알게 되는 걸 원치 않았던 게 아닐까?

아니면 자신과의 결혼 자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강이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을 정리하고는 담담하게 답했다.

“저는 딱히 바라는 건 없어요. 사실... 안 해도 괜찮아요.”

심원후와의 결혼이 몇 번이나 미뤄지는 동안, 강이주는 이미 ‘결혼’이라는 말에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대답에 구기빈의 반응은 달랐다.

[그건 안 됩니다. 적어도 제 아내가 되는데, 최소한의 격은 갖춰야죠.]

강이주는 순간 멈칫했다.

‘아직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우리가 정말 결혼하게 될지조차 확정된 건 아닌데.’

그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강이주는 결국 삼켰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지금 이 시점에서 구기빈의 기분을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강이주가 대답하지 않자 구기빈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제 방식대로 준비하겠습니다. 제가 돌아가면 직접 만나서 세부 사항을 상의하죠.]

[그동안 이주 씨도 차분히 생각해 보세요. 원하는 게 있으면 말씀하시고요. 저는 숨겨서 결혼할 생각도 없고, 제 아내 될 사람을 그렇게 대충 대우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 말이 끝났을 때, 강이주의 반응이 아무리 늦어도 알 수 있었다.

구기빈은 지금 분명히 기분이 상해 있었다.

그 원인이 자신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강이주는 본능적으로 답했다.

“네, 다 구기빈 씨 뜻대로 할게요.”

그제야 구기빈의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는 강이주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강이주는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방금 나눈 대화를 곱씹었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구기빈이 보낸 항공편 정보였다.

[5일 뒤, J시에 돌아갈 겁니다.]

누가 봐도 ‘마중 나오라’라는 의미였다.

강이주는 잠시 화면을 보다가 짧게 답장을 보냈다.

[네, 알겠습니다.]

그제야 강이주는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121화

    알고 보니, 당시 심씨 집안이 아무 대가 없이 선의로 강씨 집안을 도와준 게 아니었다.그때 강중그룹에는 적지 않은 자금이 급하게 필요했다. 심씨 집안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강중그룹의 지분 5%.거기에 앞으로 5년 동안 강중그룹의 수익을 심명그룹과 6대4로 나눠야 했다.강중그룹이 6, 심명그룹이 4.어느 쪽으로 계산해 봐도 심명그룹이 지나치게 큰 이득을 챙기는 거래였다.그 무렵 강서규는 응급실로 실려 가 수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겨우 스무 살인 강이주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상태였고, 집안에는 장숙연 혼자만 남아 있었다.강중그룹을 지키기 위해서 장숙연은 결국 심씨 집안이 내건 조건을 받아들였다.강서규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중풍으로 쓰러진 뒤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장숙연은 자신이 심씨 집안의 조건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강서규가 알게 되면, 강서규가 다시 큰 충격을 받을까 두려웠다.고민 끝에 장숙연은 몇 가지 일을 숨기기로 했다. 지분 5%는 1%라고 줄여서 말했다.장숙연은 5년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그게 바로 장숙연이 강이주가 심씨 집안과 결혼하는 걸 끝까지 고집했던 이유이기도 했다.가족이 되면 남처럼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으니까.장숙연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도 그때의 결정이 강씨 집안에 불공평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숙연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돈을 빌릴 수 있는 곳은 다 찾아다녔고, 대출을 알아볼 수 있는 곳도 전부 알아보았다. 장숙연은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누구도 그런 큰돈을 선뜻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강이주는 조용히 장숙연의 말을 들었다.강이주는 심씨 집안이 어떤 식으로 이득을 챙겼는지 굳이 길게 평가하지 않았다.하지만 심씨 집안이 강씨 집안의 위기를 틈타 그렇게까지 몰아붙인 일은... 역겨울 정도로 불쾌했다.결국 강이주는 장숙연이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를 악물고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이해했다.강이주가 회사에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120화

    장숙연은 강이주의 말을 끝까지 듣고도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오랫동안 침묵하던 장숙연이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사람 마음이 어떻게 안 사랑한다고 해서 바로 안 사랑하게 되니?” “이주야, 원후가 예전에는 너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고작 백초아 하나 때문에 네가 백초아보다 못하다는 거야?”장숙연은 차라리 강이주가 이 관계에 모든 진심을 다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다. 강이주와 심원후가 이렇게 파혼하는 결말만큼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심원후가 아무리 부족해도 여전히 강이주를 좋아하고 있다고 장숙연은 믿었다.장숙연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강이주는 지친 듯 장숙연을 바라보았다.“엄마, 저는 진심을 의심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진심은 시시각각 변해요. 심원후가 저를 사랑한다는 말은... 결국 엄마가 스스로를 속이려고 만든 생각일 뿐이에요.”‘엄마는 원하는 게 있으니까 계속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심원후가 나를 사랑한다고, 내가 참고 품어야 한다고.’‘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하다 보니, 엄마마저 그게 진짜라고 믿어 버린 거야.’장숙연이 부드럽게 타이르듯 말했지만, 강이주는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장숙연이 애써 유지하던 온화한 표정이 금세 싸늘하게 굳어졌다.강이주는 장숙연의 변화를 알아차렸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제 손에 있던 일은 거의 정리했어요. 내일은 회사에 가볼 생각이에요.”“네가 회사에는 왜 가?”강이주가 회사에 가겠다고 하자, 장숙연은 곧바로 되물었다.강이주는 차분히 대답했다.“엄마, 저 아빠랑 이미 이야기했어요. 앞으로는 제가 회사를 맡기로 했어요. 우선 회사 내부 상황부터 제대로 알아보고 싶어요.”회사는 지금까지 전문경영인이 맡아 관리하고 있었다.강이주는 김태용이 어떤 식으로 장숙연을 설득해서 심씨 집안과 불공정한 약속들을 맺게 만들었는지 아직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김태용에게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생각해 보면 강이주 자신의 잘못도 있었다.예전에 강이주가 회사 일을 물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119화

    구기빈이 그렇게 말했는데도, 강이주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구기빈은 먼저 화제를 돌렸다.“그럼 집에 갈 때, 나도 같이 가 줄까요?”구기빈은 강이주가 가족 문제를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면, 자신이 함께 가서 장숙연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려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구기빈의 말을 들은 강이주는 급히 거절했다.“아니요.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어요.”강이주는 지금 구기빈을 자신의 어머니 앞에 세울 수 없었다.장숙연의 성격대로라면, 구기빈까지 예전의 심원후처럼 대할 것이 뻔했다.강이주는 구기빈이 두 번째 ‘심원후’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강이주에게는 지금 강이주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방금 자신의 반응이 너무 급했다는 생각이 들자, 강이주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기빈 씨를 숨기고 싶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냥 적당한 때에 집에 말하고 싶어서요.”끝으로 갈수록 강이주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졌다.구기빈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주 씨가 보고 정하면 돼요. 나도 별다른 이견은 없어요.”어쨌든 구기빈은 강이주의 어떤 결정도 존중할 생각이었다. 구기빈은 강이주가 자신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우지 않기를 바랐다.구기빈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강이주의 긴장도 조금 풀렸다.강이주는 구기빈에게 가능한 한 빨리 시간을 내서 가족들에게 두 사람의 일을 솔직히 말하겠다고 했다.구기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답했다.강이주는 집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구기빈과는 구청 앞에서 헤어졌다.본가로 돌아가기 전에, 강이주는 먼저 요양병원에 들렀다.강이주는 먼저 강서규부터 만난 뒤에야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집 안에서 장숙연은 평소와 달랐다. 강이주의 모습이 보였지만, 장숙연은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강이주를 한 번 훑어본 뒤 무심하게 시선을 돌렸다.“엄마.”강이주는 장숙연 앞으로 걸어갔다.장숙연은 차가운 목소리로 비꼬았다.“그래도 내가 네 엄마인 줄은 아는구나. 네가 이제 고집도 세고 네 뜻대로만 하려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118화

    구청을 나서는 강이주와 구기빈의 손에는 각각 혼인신고 접수증과 발급받은 혼인관계증명서 한 부가 들려 있었다.구기빈은 고개를 돌려 강이주를 바라보았다.“결혼한 일은 나도 당분간 숨겨 둘게요. 이주 씨가 준비되면 그때 공개해요.”구기빈은 강이주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강이주가 처리해야 할 일이 아직 많기에, 마음 놓고 일을 먼저 정리하도록 한 것이다.그 말을 들은 강이주는 구기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괜찮아요.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죠.”정말 알려진다고 해도 강이주는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숨기면서 결혼 생활을 이어 갈 수는 없으니까.그건 구기빈에게도 공평하지 않았다.더구나 구기빈이 강이주와 결혼한 이유도 부모님을 상대하기 위한 방패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던가.강이주는 자신도 구기빈과 합의한 내용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내가 필요해서 선택한 일이기도 해. 한 사람만 감당하게 둘 수는 없어.’구기빈은 주머니에서 반지 하나를 꺼냈다.“연기도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이주 씨 일이 정리되면 나랑 본가에도 같이 가요.”반지에는 작은 핑크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 그 옆에는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작은 나비 두 마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나비 날개에는 작고 맑은 화이트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강이주는 구기빈이 더 그럴듯한 모습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반지를 받아 손가락에 끼려고 했다.“내가 끼워 줄게요.”구기빈이 얼른 나섰다.그 말을 들은 강이주가 오른손을 내밀자, 구기빈이 반지를 끼워 주었다.“됐어요.”구기빈의 말에 강이주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상할 정도로 반지는 강이주의 손가락에 꼭 맞았다.‘내 손가락 치수를 알고 있었나?’강이주가 의아해하던 때, 구기빈이 웃으며 말했다.“내 눈대중이 꽤 정확했나 보네요.”그 한마디에 강이주의 의심은 자연스럽게 풀렸다.강이주는 뭔가 떠올린 듯 미안한 표정으로 구기빈을 바라보았다.“미안해요. 기빈 씨 반지는 아직 준비를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117화

    강이주는 모든 내용을 다 공개했다.뒤늦게 참다못해 심원후와 다투며 욕설을 주고받았던 기록까지 함께 올렸다. 오히려 그런 대목들이 전체 기록의 신빙성을 더해 주었다.구기빈도 그때 강이주의 입장문을 확인하고 있었다.전화기 너머로 화력을 붙여 달라는 구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기빈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내 돈은 땅 파면 나와? 왜 무슨 일만 생기면 나부터 떠올려?]물론 구기빈도 이번 일에 힘을 보태는 것 자체는 기꺼이 응할 생각이었다.구희라는 당당하게 대답했다.“나는 오빠 동생이고, 이주는 내 오랜 절친이잖아. 그러니 따지고 보면 이주도 오빠 동생이나 마찬가지지. 오빠가 동생 좀 도와주는 게 뭐가 문제야? 뭐가 문제냐고!!”구기빈은 말문이 막혔다.‘이주는 희라가 자기를 내 동생으로 여기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을까?’구희라의 독특한 사고방식이 언제쯤 평범해질지, 구기빈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게다가 내가 오빠한테 기회를 주는 거야. 오빠, 우리 이주 어때?”구희라는 슬쩍 떠보듯 물었다.그녀는 진심으로 오빠가 강이주와 함께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좋아하는 친구가 자신의 새언니가 된다면, 구희라에게 그것만큼 흐뭇한 일도 없을 테니까.‘이주가 우리 올케가 되면 진짜 최고인데.’‘내가 다리만 잘 놓으면 되는 거 아니야?’구희라의 마음속에서는 두 사람을 이어주고 싶은 생각이 벌써 꿈틀거리고 있었다.구희라의 말을 들은 구기빈은 그저 조용히 웃었다.구기빈이 강이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제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강이주는 이미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대답했다는 사실이었다.물론 아직은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구기빈이 살짝 웃자, 구희라는 자기 오빠가 정말 눈치도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강이주처럼 좋은 사람을 두고, 구기빈이 왜 소중히 여길 생각을 먼저 하지 않는지 구희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구희라는 마음속으로 앞으로 강이주와 구기빈이 더 자주 만나고 함께

  • 전 남친 숙적과 혼인신고, 뭐 어때?   제116화

    낮 12시, 강이주는 입장문을 올렸다.[강이주입니다. 제가 진심으로 대했던 시간은 있었습니다. 다만 떠나고 머무르는 일은 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심원후 씨와는 이미 헤어졌습니다.][저는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맺는 관계는 결국 두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해 왔고,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된다고 믿었습니다.][마지막 예의만큼은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지 않은 일로 욕을 먹을 수는 없어, 이렇게 직접 나서서 제 입장을 밝힙니다.][저와 심원후 씨의 관계가 제삼자로 인해 깨진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배신한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아래에 정리 자료를 첨부합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렸는지는, 보시는 분들께서 판단해 주시리라 믿습니다.]강이주는 입장문 안에 심원후가 백초아 때문에 몇 번이나 자신을 내버려 두고 떠났던 대화 기록을 전부 공개했다. 백초아의 SNS 캡처, 백초아가 강이주 핸드폰으로 보냈던 각종 다정한 사진, 강이주를 자극하려고 보낸 대화 내용까지 빠짐없이 올렸다.강이주는 백초아가 보냈던 사진마다 어느 날짜, 어느 상황에 해당하는지까지 하나하나 맞춰 정리해 두었다.입장문 마지막에 강이주는 이렇게 적었다.[이 관계에 대해서 저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도 부끄러운 일이 없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이제 저와 심 대표님은 각자의 길에서 각자의 삶을 살겠습니다. 앞으로 누구와 만나고 결혼하든, 서로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겠습니다. 제 이름을 억지로 엮지 말아 주세요. 감사합니다.]강이주가 마지막에 남긴 ‘모르는 사람’과 ‘억지로 엮지 말아 달라’는 표현은... 구경하던 사람들에게 분명한 뜻을 전하고 있었다.강이주는 심원후의 배신을 용서하지 않았다.이번 보도 역시 누군가가 일부러 꾸민 일이라는 뜻이었다.입장문의 끝, 정말 마지막 부분에는 사진까지 함께 올렸다. 그녀는 처음으로 보도를 내보낸 몇몇 매체를 상대로 정식 고소 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강이주가 공개한 PPT 자료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