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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Author: 이야기보따리
“할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오래오래 사셔야죠.”

“그럼 너, 소예지 생일 꼭 챙겨주겠다고 할머니랑 약속해.”

말을 이어가던 최현숙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며 기침을 해댔다.

“아이고, 이 가슴이 왜 이리 답답한지...”

고이한은 급히 할머니를 부축하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연기 그만하세요. 갈게요, 가면 되잖아요.”

삼 층 방 안, 고수경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 심유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유빈 언니, 언니한테 말해야 할 게 있어. 12월 1일이 소예지 생일인데 우리 할머니가 우리 오빠한테 꽃이랑 선물 챙겨서 보내라고 강요하셔. 아마 직접 생일까지 챙기라고 할지도 몰라. 우리 할머니, 재결합하길 바라는 것 같아.”

“그래?”

심유빈의 목소리에도 다소 긴장감이 섞였다.

“언니, 그날 언니가 꼭 우리 오빠 못 가게 막아야 돼. 절대, 절대로 소예지 생일 챙기러 못 가게 해줘.”

“알았어. 최대한 못 가게 해볼게.”

“정말 속 터져 죽겠어. 우리 할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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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44화

    그 뒤로 고이한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소예지도 괜히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의 집에는 가지 않았다.밤 열 시쯤 고이한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오늘은 별장에 안 들어가. 본가에 있을게.]소예지는 한동안 그 메시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마음이 복잡했다.고하슬은 이미 잠들었지만 소예지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내일은 최현숙의 장례식이었다.눈을 감으면 생전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최현숙은 늘 인자하고 너그러웠다. 소예지에게 단 한 번도 모질게 굴거나 불만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그래도 한편으로는 큰 고통 없이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그것 역시 고이한이 내린 결정이었다.억지로 생명을 연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마지막을 맞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최현숙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품위를 지킨 채 떠날 수 있었다.그러다 문득 최현숙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다시 떠올랐다.어둠 속에서 소예지의 눈빛이 흔들렸다.마음속에는 어느새 또렷한 생각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이한 같은 사람이라면 아들을 낳아 줄 여자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의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여자도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그러니 최현숙의 마지막 바람을 이루어 주는 편이 맞았다.다음 날 아침.소예지는 고하슬에게 검은색 원피스를 입혀 주었다.처음으로 온몸을 검게 차려입은 고하슬이 조금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엄마. 우리 오늘 어디 가요?”소예지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딸의 옷깃을 정리해 주었다.“하슬아. 오늘은 엄마랑 왕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갈 거야. 잘 보내 드리고 오자. 괜찮지?”고하슬이 잠시 소예지를 바라보다 물었다.“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처럼 돌아가신 거예요? 이제 앞으로는 영원히 못 만나요?”소예지는 순간 멈칫하며 딸을 바라봤다.고하슬의 눈에도 슬픔이 어려 있었다.“저 왕할머니 영원히 기억할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생각할 거예요.”옆에서 듣고 있던 양희순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43화

    고이한은 몸을 낮춰 딸과 눈을 맞췄다.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고 딸을 향한 깊은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났다.“학교 공부는 어때? 숙제는 있어?”“네! 저 다 할 수 있어요.”고하슬이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한층 더 의젓해진 모습이었다.그때 양희순이 다가와 물었다.“대표님. 제가 국수 한 그릇 끓여 드릴까요?”고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부탁드릴게요.”소예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고이한이 딸과 조금 더 함께 있기를 바랐고 고하슬도 지금은 아빠 곁에 있어 주었으면 했다.지금 고이한에게는 마음을 붙들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딸은 앞으로 고이한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터였다.양희순이 국수를 끓여 가져오자 고이한은 딸과 함께 조금씩 먹었다.밤 열 시가 되자 고이한은 딸의 손을 잡고 위층으로 올라가 침대에 눕혀 주었다.“아빠. 저한테 이야기 하나 해 주시면 안 돼요?”고하슬이 부탁하자 고이한이 소예지를 바라봤다.소예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하슬이랑 조금 더 있어 줘.”소예지는 고이한이 안방에서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두고 서재로 나와 잠시 앉아 있었다.어느덧 열 시 이십 분이었다. 내일도 학교에 가야 하니 이제는 고하슬을 재울 시간이었다.고이한은 집을 나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한 찻집 2층 VIP실에는 하종호와 윤하준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세 사람이 이곳에 모인 건 차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종호와 윤하준은 그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의 곁을 지켜 주러 온 것이었다.이럴 때는 어떤 위로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오랜 친구 사이에 굳이 많은 말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고이한이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룸 안에는 은은한 조명만 켜져 있었다.고이한은 창가 소파에 앉아 있었고 윤하준은 말없이 차를 우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고요한 침묵만 이어졌다.하종호와 윤하준의 시선이 이따금 마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42화

    집에 도착했지만 아직 고하슬을 데리러 갈 시간은 아니었다.소예지는 서재로 들어가 소파에 앉은 채 한동안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예전 일들이 자꾸 떠올랐고 고씨 집안 사람들도 계속 마음에 걸렸다.오후가 되어 딸을 데려온 뒤에는 최대한 감정을 추슬렀다.아직 고하슬은 너무 어렸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아빠가 돌아오면 직접 이야기해 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다음 날 아침, 소예지는 고하슬을 학교에 데려다준 뒤 연구소에도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소예지는 고이한에게 전화를 걸까 잠시 고민했다. 혹시 자신이 도울 일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그래도 고이한이 있으니 자신이 따로 나서지 않아도 잘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오후 두 시 반쯤, 소예지는 양희순과 고씨 집안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양희순도 갑작스러운 소식에 적잖이 놀란 듯했다.그때 밖에서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양희순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차고 쪽을 바라봤다.“사모님. 대표님이 오신 것 같아요.”소예지도 몸을 일으켜 현관 밖으로 나갔다.이지가 운전해 온 차가 앞에 멈춰 있었고 뒷좌석 문이 열리며 고이한이 내렸다. 젤리는 그를 보자마자 먼저 달려가 반갑게 맞았다.양희순이 소예지를 향해 말했다.“사모님도 가서 좀 부축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소예지는 고이한이 몹시 지쳐 있다는 걸 한눈에 알아보고 망설임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이문혁이 소예지에게 말했다.“소 박사님. 고 대표님 좀 부탁드립니다. 밤새 한숨도 못 주무셨어요.”마침 고이한의 몸이 살짝 휘청이자 소예지는 한 걸음 더 다가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생각해 보면 어제 아침 휴게실에서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인 게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제대로 잠들지 못한 셈이었다.고이한이 고개를 돌려 소예지를 바라봤다.핏발이 잔뜩 선 눈에는 피로와 고통이 짙게 배어 있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소예지를 안심시키려는 듯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나 괜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41화

    소예지는 순간 온몸이 굳었다.평소에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든든하고 강해 보이던 고이한이 지금은 기댈 곳 하나 없는 아이처럼 느껴졌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예지의 마음도 저릿하게 아파 왔다.자신 역시 슬펐지만 삶과 죽음만큼은 누구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고이한이 필요로 할 때 잠시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어 주는 것뿐이었다.소예지는 어깨 부분의 옷이 고이한의 뜨거운 눈물에 조금씩 젖어 드는 걸 느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손을 들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며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할머니가... 가시려나 봐.”고이한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그 안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가득했다.그 한마디에 애써 억누르고 있던 소예지의 슬픔도 함께 터져 나와 눈물이 소리 없이 뺨을 타고 흘렀다.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눈가가 붉게 젖은 진가영이 나왔다.“다들 들어와.”두 사람은 함께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안에서는 고수경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침대 위의 최현숙은 마치 잠든 것처럼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하지만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마치 깊이 잠든 것처럼 고요하기만 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소예지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 버렸고 눈물이 저절로 뺨을 타고 흘렀다.진가영을 따라 고이한과 고수경이 침대 곁에 무릎을 꿇었다. 뒤에서는 급히 들어온 의사들이 최현숙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소예지도 천천히 고이한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눈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사이 문득 오래전 기억들이 떠올랐다.장거리 비행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산후조리를 도와주던 최현숙의 모습과 늘 따뜻하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봐 주던 눈빛, 다정한 목소리가 하나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목이 꽉 막혀 왔다.소예지에게 최현숙은 친할머니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소예지는 무릎을 꿇은 채 곁에 있는 고이한을 바라봤다.고이한은 최현숙의 이마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정리해 준 뒤 이마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40화

    진가영은 한숨을 내쉬며 최현숙을 달랬다.“어머니. 그렇게 먼 미래까지 걱정하지 마세요. 하슬이 하나만 있어도 충분해요. 이한이랑 예지가 잘 키울 거예요.”최현숙의 흐릿하던 눈에 잠시 또렷한 빛이 돌아왔지만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됐다. 그럼 아이 얘기는 더 하지 말자. 그저 저 두 아이가 다시 함께하기만 하면 좋겠구나.”진가영은 마지막 순간에라도 시어머니가 걱정을 내려놓길 바라며 나직하게 말했다.“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한이가 있으니 우리 집은 괜찮을 거예요.”최현숙은 훌륭하게 자란 손자를 떠올렸다.고이한은 분명 집안의 자랑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홀로 집안의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했던 손자가 그동안 마음 편히 살아 본 날이 과연 며칠이나 있었을까 싶었다.병실 밖 복도는 고요했다.소예지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조금 전 최현숙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아들이면 더 좋겠구나.’그 말 한마디가 마음에 작은 돌멩이처럼 떨어져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소예지는 최현숙의 마음을 이해했다.고씨 집안의 사업 규모는 막대했다. 훗날 고하슬이 그 모든 것을 혼자 짊어져야 한다면 얼마나 큰 부담이 될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최현숙은 집안과 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집안이 번성하고 대가 이어지기를 바랐으며 가능하다면 남자 후계자가 있기를 원했다. 그런 바람 역시 집안에 대한 책임감과 후손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하지만 소예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계획해 두었다. 고하슬이 자신의 유일한 아이였고 앞으로는 자신의 일과 연구에 집중하며 살아갈 생각이었다.그러니 고씨 집안 어른들의 기대에 맞춰 줄 수는 없었다.어쩌면 그것은 최현숙만의 바람이 아닐지도 몰랐다. 진가영 역시 같은 생각일 가능성이 컸다.예전에도 아이를 더 낳으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다만 그때는 고하슬도 어렸기에 소예지는 적당히 대답하며 넘어갔을 뿐이었다.조금 전까지 눈물로 젖어 있던 소예지의 눈

  •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제1639화

    밤이 되어 고하슬이 잠든 뒤에도 소예지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최현숙의 상태를 딸에게 말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아직 어린 고하슬에게는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이른 일이었다.다음 날 아침 소예지는 고하슬을 학교에 데려다준 뒤 병원에 가려고 했지만 고이한은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 오후였다.연구소에 있던 소예지에게 고수경의 전화가 걸려 왔다.“예지 언니. 병원에 와줄 수 있어요? 할머니가 언니한테 하실 말씀이 있대요.”고수경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할머니가... 할머니가 이제 얼마 못 버티실 것 같아요.”그 말을 듣는 순간 소예지는 숨이 턱 막혔다.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마침 그때 이지원에게도 전화가 걸려 왔다.고이한이었다.고이한은 소예지가 직접 운전하는 게 걱정된다며 이지원에게 그녀를 병원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네. 고 대표님. 제가 소 박사 모시고 병원으로 가겠습니다.”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소예지는 병실에 도착했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불과 며칠 사이 눈에 띄게 쇠약해진 최현숙의 모습이 보였다. 숨도 전보다 가빠 보였다.“예지야. 이리... 와.”최현숙이 힘겹게 손을 내밀었다.소예지는 밀려드는 슬픔을 애써 억누르며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할머니. 저 여기 있어요.”최현숙의 앙상한 손이 소예지의 손을 꼭 붙잡았다.손에 들어간 힘은 너무나 약했지만 그 안에 담긴 간절함만큼은 분명하게 느껴졌다.초점이 흐려진 눈으로도 최현숙은 애써 소예지의 얼굴을 바라봤다.“예지야. 할머니가... 이제 며칠 못 갈 것 같구나. 그래도 할머니는 네가 이한이와 다시... 함께했으면 좋겠어. 네 곁에 널 돌봐 줄 사람이 있으면 할머니도 마음 놓고 갈 수 있을 것 같아...”말을 마친 최현숙은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그 눈에는 간절한 바람이 어려 있었다.병실 안이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진가영은 손으로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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