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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보약을 달이던 손

Penulis: 6jay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1-01 22:13:53

편전에서 물러 나온 그 아침, 수의녀는 약속대로 복례의 시신을 서의에게 넘겼다.

"씻기겠다고 했으니 씻겨라. 입관은 오후다."

서의는 소매 속 은비녀를 품으로 옮겨 넣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편전에서 흘린 식은땀이 아직 등에 축축했지만, 시신 앞에 서면 머릿속이 맑아지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

볕이 들지 않아 한기가 도는 방 문간에서, 연이가 코를 싸쥔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스승님, 저 정말 들어가야 해요?"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 대신 내가 부르는 걸 받아 적거라."

"그건 할 수 있어요!"

미지근한 물에 무명천을 적셔 시신 곁에 무릎을 꿇자, 입술만 겨우 달싹일 만큼 작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복례. 하던 말을 마저 해 보거라. 내가 대신 적을 테니."

검시 앞에서 늘 하는 버릇이었다.

어제 본 굳은 입가와 부르튼 혀끝을 다시 짚고 손톱 밑 혈흔을 살피며 내려가던 손이, 오른 손바닥에서 멈췄다.

엄지 아래에 두툼한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세답방 궁녀라면 방망이질로 생긴 굳은살이 손바닥 한가운데에 넓게 퍼져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 굳은살은 한 점에 옹이처럼 단단히 뭉쳐 있었다.

긴 주걱을 쥐고 한 방향으로 수천 번, 수만 번 무언가를 저어 온 손.

약탕관 앞에 쪼그려 앉아 밤새 불을 지키며, 약이 눋지 않도록 젓고 또 저은 손이었다.

"연이야."

"네!"

"세답방에 가서, 복례가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알아 오너라."

쏜살같이 뛰어나가는 연이를 뒤로하고 그 손바닥을 내려다보는 사이, 머리보다 손끝이 먼저 기억해 냈다.

매일 아침 김이 오르는 약사발을 받쳐 들고 중궁전 문턱을 넘던, 작고 붉게 튼 손.

마마, 오늘은 조금 덜 쓰게 달였사옵니다.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던 어린 궁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물가에서 거적을 걷었을 때 알아보지 못한 것은, 독에 부어오른 얼굴이 검푸르게 죽어 있었던 탓이었다.

검안서에 적은 나이는 21세였다.

2년 전이면 19살, 그 아이의 나이와 꼭 맞았다.

복례.

어디서 들은 이름인지 이제야 알았다.

그녀가 중궁전의 주인이던 시절, 약방에서 그녀의 보약을 달이던 아이였다.

"스승님! 알아 왔어요!"

연이가 숨을 헐떡이며 문간을 붙잡았다.

"복례 언니요, 세답방에 온 지 2년밖에 안 됐대요! 그 전엔 어디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고요. 물으면 입을 꾹 다물었대요."

"2년."

"네! 그리고 이건 세답방 분이 언니가 몰래 줬어요. 복례 언니 짐이래요."

낡은 보따리 하나를 내미는 연이 뒤로, 겁에 질린 얼굴 하나가 문간에 쭈뼛쭈뼛 섰다.

어제 우물가에서 치맛자락 빛깔을 대지 못하던 바로 그 궁녀였다.

"어제 저녁에 중궁전 김 상궁마마님이 오셔서 복례 짐을 내놓으라 하셨어요."

분이가 연신 문밖을 돌아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태워 버리겠다고요. 그래서 제가…… 다른 보따리를 드렸어요."

"왜 그랬습니까."

"복례가요, 요 며칠 이상했어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다음은 나야, 다음은 나야' 그랬어요."

분이의 턱이 파르르 떨렸다.

"소주방 순덕이한테도 조심하라고, 그날 거기 있던 사람들은 다 조심하라고……."

"그날이 언제입니까."

치맛자락만 움켜쥔 채 뒷걸음질 치던 분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달아나 버렸다.

분이가 사라진 문간을 바라보는 동안에도, '그날'이라는 말이 귓속에서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연이야. 소주방에 순덕이라는 궁녀를 아느냐."

"순덕 언니요? 알죠! 떡을 참말로 잘 쪄요. 저 배고플 때 몰래 하나씩 쥐여 주고요."

"오늘 저녁에 그 사람을 찾아가 전하거라. 당분간 남이 주는 것은, 탕약이든 떡이든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라고."

"네? 왜요?"

"전하기만 하거라. 꼭."

연이가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입술을 야무지게 앙다물었다.

***

같은 시각, 중궁전.

매화 향이 진하게 고인 방 안, 경대 앞에 앉은 정화는 김 상궁이 빗겨 내리는 제 머리채를 거울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복례 짐은?"

"어젯밤 소인이 직접 태웠사옵니다, 마마."

"잘했구나."

거울 속을 보던 정화가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그 의녀 말이다. 서의라던가."

"예, 마마."

"눈빛이 싫어. 꼭 우리 언니처럼 사람을 내려다보잖니. 무릎을 꿇고 있으면서."

빗질하던 김 상궁의 손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전하께서 어전 전속으로 두셨으니, 당분간은 함부로……."

"알아. 그러니 더 눈에 거슬리는 게지."

정화가 경대 위의 분첩을 집어 드는 사이, 김 상궁이 빗을 내려놓고 허리를 한층 낮게 굽혔다.

"마마, 소주방 순덕이도 요즘 입이 가볍다 하옵니다."

"어머, 그러니?"

거울 속의 정화가 생긋 웃었다.

"그건 아버님 쪽에서 알아서 하시겠지. 나는 손에 피 묻히는 거 싫어."

분첩이 볼 위를 톡, 톡 두드렸다.

거울 속 중전의 얼굴은 한 점 흠 없이 고왔다.

***

서의가 풀어 헤친 보따리 안은 낡은 저고리 몇 벌과 동전 몇 닢, 이 빠진 참빗이 전부였다.

한 사람이 궐에서 살아 낸 흔적치고는 너무 가벼웠다.

저고리를 개어 넣으려던 순간, 손끝에 무언가 걸렸다.

안섶 안쪽에 실밥이 유난히 촘촘한 자리가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꿰매어 막은 자리였다.

"연이야, 바늘."

연이가 건넨 바늘 끝으로 실밥을 하나씩 뜯어내자,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종이가 접힌 채 나왔다.

얼마나 펼쳤다 접었는지 접힌 자리가 해져 있었고, 탕약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삐뚤빼뚤한 언문이었다.

글을 겨우 깨친 사람이 잊지 않으려고 꾹꾹 눌러쓴 글씨.

연이가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더니, 한 자씩 더듬더듬 소리 내어 읽었다.

"그날…… 교지는…… 하루 먼저 왔다."

얼음물에 담근 듯 차가워진 손끝 아래, 종이 맨 끝에 한 줄이 더 있었다.

"나는 보았다."

저도 모르게 잦아든 연이의 목소리를 끝으로, 방 안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스승님, 무슨 교지요?"

서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밤, 원자가 쓰러지고 은비녀가 검게 변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폐위 교지가 내려왔다.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녀 자신조차.

그렇다면 이 '하루 먼저'는, 원자가 쓰러지기도 전에 그녀를 폐하는 교지가 이미 쓰여 있었다는 뜻이었다.

김 상궁이 태워 버리려 했던 것은, 바로 이 한 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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