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61화
백작이 준비한 만찬은 생각보다 훨씬 성대했다. 지방 귀족으로서 낼 수 있는 최고의 예우였다.
식사 도중, 백작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서부 재난 소식은 저희도 전해 들었습니다. 가까운 지역이기도 해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려 했습니다. 무엇보다 인명 피해가 적은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복구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고는 하나…….”
잔을 들던 손들이 자연스레 멈췄다. 백작은 잠시 입술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서부 경계를 노리는 자들이 아직도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무너졌던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심산이지요. 대공 각하께서 다시 돌아오신다 하니, 이곳 사람들은 안심하고 있습니다.”
<70화의회실에서 공식적인 전달을 마친 후, 그들은 서부 귀족들과 함께 만찬장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여유를 누리는 자리였기에 모두가 황녀와 대공의 방문을 기쁘게 환영하는 분위기였다.클로리스는 오늘도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황녀의 모습을 보고는 눈이 반짝거렸다.“오늘도 너무 아름다우세요. 눈이 부셔서 바라볼 수가 없을 정도예요.”“고맙구나. 클로리스. 하지만 내 눈에는 네가 훨씬 귀엽고 예쁘단다.”“감사해요…….”그때, 서부 귀족들 가운데 노령의 후작이 지빌라에게 다가와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대공 각하와 대공비 전하를 뵙고 나니, 서부 변경백의 혼사 역시 하루라도 빨리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너그러이 배려해 주시길 바라옵니다.”그의 말에 귀족들 사이로 소란스러운 웅성거림이 일었다.두 사람의 모습은 한 쌍의 부부 그 자체였고, 그들이 함께 선 모습만으로도 찬탄을 자아냈다.그 탓일까,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조프루아의 옆자리는 오늘따라 유난히 공허해 보였다.“몸므경께서는… 혹시 서부 내에서 좋은 영애를 추천받아보시는 건 어떨까요?”지빌라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러나 귀족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서부에서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자리가 변경백 부인의 자리가 아님을, 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69화북부의 대공비로서 후계자를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프레데리크와의 초야는 원래 없던 일이었다.두 번째 그와 몸을 섞었을 때,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여운 속에서 지빌라는 제 마음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 앞에 절박하게 놓인 운명을 어떻게 수놓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레오노라…….’그녀는 그 이름을 마음속에서 무겁게 되뇌었다.회귀 후 최대의 악수였다. 두 사람을 다시 이어주려던 선택은 철저히 어긋났다.“…내 오해라고 해야겠지.”회귀한 지금이라면, 그 죽음조차 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 전쟁의 불씨를 잠재웠고, 그에게 운명이 될 검을 전달했다.하지만 제 역할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면?그녀가 북부의 후계자를 가짐으로써 일어날 만약의 일들이 두려웠다.만에 하나, 프레데리크는 예정대로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이용당할까 봐 겁이 났다.회귀했으니 이런 두려움 따위 없을 줄 알았다. 그저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라고 믿었는데.***지빌라는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희미한 기척에 눈을 뜨려 했지만, 이미 그 그림자는 사라지고 없었다.‘프레데리크……?’그 침입
68화클로리스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전하, 요제파가 누구예요?”지빌라는 제가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는 걸 깨달았다.“……아, 아직 이름을 안 지었지.”“…네?”“아니야. 혼잣말이었어.”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물었다.“저 백마는 누구의 말이니?”클로리스도 창밖을 보며 답했다.“오라버니의 말이에요. 가문의 씨말에서 태어난 말인데, 두 살이에요.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서…….”지빌라는 눈을 떼지 못한 채, 기억이 살아 돌아왔다. 그녀를 회귀 전으로 끌어당기듯.조프루아는 결혼 선물로 순백의 말을 안겨주었다. 그녀는 그 말을 ‘요제파’라 이름 지어 온갖 사랑을 쏟았다.하지만 전장에서 조프루아가 죽은 뒤, 그녀가 어쩔 수 없이 서부를 떠나야만 할 때, 요제파를 데려갈 수 없었다. 그녀를 따라 쫓아오던 요제파는 레나토의 기사들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그 순간의 고통은 여전히 그녀를 괴롭혔다. 회귀 후 떠올리고 싶은 않은 기억 중 하나라 깊이 파묻었었다.지금 창밖에서 날뛰는 저 말― 요제파.분명, 너겠지.
67화프레데리크는 지빌라가 아무 말이 없자 끝내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일정에 차질이 생겼다고 말한 이라도 있나?”그가 오해한 듯해, 곧바로 말했다.“그런 일은 없었어요. 다만…….”잠시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그를 올려다봤다.“…단지, 저를 배려해서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된다는 뜻이었어요.”고요가 잠시 흘렀다.프레데리크의 눈빛에 미세한 변화가 스쳤지만, 감정은 여전히 단단히 가려져 있었다.“일정에 관한 건 내 소관이야.”“알고 있어요. 처음 일정대로 따르겠단 뜻이었어요.”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황녀의 본모습은 어떤 것이지?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기라도 하면 누가 헤치기라도 하나?”지빌라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저는 이제 대공비로서 드리는 말이에요. 철없던 황녀 시절은, 잊어주세요.”프레데리크는 미묘한 감정을 삼키며 그녀를 바라보았다.겉모습은 여전히 사치스러운 황녀였다. 눈부신 장식, 정교한 자수, 티 하나 없이 정제된 표정.하지만 그 껍데기 너머의 말투는 지나치게 담담했다. ‘
66화재난으로 무너진 서부는 이미 전선이라 부르기도 어려웠다. 보급은 늦어졌고, 황실 지원군은 약속만 남긴 채 오지 않았다. 병사들은 잦은 전쟁을 치르느라 지쳐 있었다.그 와중에, 용병국이 틈을 타 들이닥쳤다. 산맥을 따라 몰래 침투한 그들은 짐승처럼 빠르고 잔혹했다. 그때, 그의 손에 남은 건 검 하나뿐이었다.검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했다. 그 검은 마치 스스로 적을 베는 듯, 그의 팔을 이끌었다. 그제야 알았다. 이 검이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예언의 물건임을.지빌라가 그것을 그에게 건넸다는 것은 단순한 배려나 정략 이상의 의미였다.‘신의 검으로 인해, 죽음 속에서 베라트가 다시 일어날 것이다.’그것은 오직 후계자에게만 전해지던 오래된 신탁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베라트의 피는 스물다섯을 넘기지 못한다는 예언.세대를 거듭하며 수많은 후계자들이 그 말을 증명하듯, 스물다섯의 나이를 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그 또한 예외일 수 없다고 믿어왔다.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온 세월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알 수 있었다.지빌라와의 혼인은 단순한 정략이 아니게 되었다. 그녀가 그의 운명을 비틀어, 전혀 다른 길로 이끌고 있었다.체념 같던 불안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녀의 체온처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지빌라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렴풋한 어둠 속, 익숙한 숨소리가 멀어지자 곁에 다가온 이가 있었다.에르나였다. 그녀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지빌라를 부
65화지빌라는 감각을 버티지 못하고 등받이를 움켜쥐고 손톱으로 긁어댔다. 자신도 모르게 허리가 들썩이며 발작처럼 흔들렸다. 퍼져나간 불씨는 점점 속도를 높이면서 그녀의 몸을 집어삼켰다.“아! 아흣!”허벅지가 저릿하게 당기며 힘이 빠졌다. 기둥이 박힐 때마다 자궁벽이 덜컥거리며 울렸고,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전해졌다.숨이 가빠지며 목울대가 들썩였다. 뜨거운 감각이 서서히 아래에서부터 차올라 배 안쪽을 꽉 채우는 듯했다.“하아, 하… 앗!”등을 젖히자 허리까지 저린 쾌감이 밀려 올라왔다. 눈앞이 하얗게 번쩍이며, 다리에 힘이 풀려 제멋대로 떨렸다.그때 프레데리크의 치골이 그녀의 아랫배에 깊숙이 맞닿았다.쿵.그 묵직한 압박이 자궁 깊숙이까지 번져 전해졌다.“흐읏…!”지빌라는 숨이 막히며 몸을 활처럼 휘었다. 감각은 끝까지 쥐어짜듯 치솟아, 시야가 아득해질 만큼 끌어올려졌다.프레데리크의 손은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힘을 주어 간신히 제동을 걸었다. 움직임과 허리 속도를 조절하며, 감각을 내려놓게 했다.눈을 내리깐 채, 그는 손바닥으로 그녀의 배에서 가슴까지 느릿하게 쓸어 올렸다. 손끝은 살갗의 결 하나하나를 확인하듯, 한 곳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쪽.턱에 닿았던 입술이 점점 올라가 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