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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파란별1001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0 01:57:04

속으로는 영 찜찜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건넸다.

​

“안녕하세요, 기사님들.”

“안녕하세요. 엘리 양이시죠?”

“네.”

“들어가시면 됩니다.”

​

기사가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가볍게 목례한 뒤 별관 안으로 들어섰다.

쿵.

​

등 뒤에서 묵직하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이상할 만큼 섬뜩한 소리에 고개를 기울이다, 닫힌 문을 한 번 돌아보고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

‘별거 아니야.’

​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1층 내부를 훑었다.

창문을 통해 아침 햇빛이 길게 스며들었고, 정갈하게 꾸며진 중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

정면에는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 벽을 길게 덮은 고풍스러운 태피스트리.

​

나는 모르게 걸음을 늦췄다.

‘저거…….’

이상하게 익숙했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

저벅.

위층에서 묵직한 구두 소리가 울렸다.

저벅.

​

규칙적인 소리가 가까워지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계단 위, 거대한 태피스트리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

검은 정장 바지와 긴 재킷.

금빛과 붉은빛의 자수가 선명하게 박힌 옷자락.

​

그리고 그 위로 보이는 익숙한 금발과 붉은 석류석 같은 눈동자.

그가 아래에 선 나를 내려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얼굴을 알아본 순간, 머리끝부터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이 굳었다.

환상인가?

내가 미쳤나?

저 새끼를 왜 여기서 보지?

​

즐거움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위에서 떨어졌다.

​

“어서 와. 나의 엘리.”

분명 감미로운 목소리였는데, 세이렌의 노랫소리처럼 서늘하게 들렸다.

“…….”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를 올려다봤다. 그 순간, 잊고 있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

[다시 만났네. 내 진짜 이름은 로이드 리하르텐. ]

……리하르텐.

미친.

리하르텐이었어?!!

​

나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미친!”

곧장 몸을 돌려 현관으로 달렸다.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한 번.

다시 한번.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이봐요! 문 좀 열어 봐요!”

쾅쾅 문을 두드렸다.

“하하하.”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지나치게 즐거워 보여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

​

“정말 넌 내 예상을 벗어나.”

​

구두 소리가 한 계단씩 아래로 내려왔다.

“하지만 내 계산 범위 안이어서 다행이야. 엘리.”

나는 홱 돌아 그를 노려봤다.

“미친 새끼! 아직도 기억하고 있냐!”

“그걸 어떻게 잊어.”

​

내가 현관문을 잡아당기는 모습을 즐겁다는 듯 붉은 눈이 나를 향한 채 가늘게 휘었다.

“첫 순정을 가져간 여자를 잊을 수 있어?”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미친놈…….’

내가 가져갔니? 니가 가져갔잖아!

“난 못 잊거든.”

​

한 걸음.

그가 계단을 내려왔다.

​

“토벌 중에도 계속 생각나서, 차라리 강제로 데려올 걸 싶었지.”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휘었다.

“그 쫀득한 감촉이랑 네 신음이 아직도 날 미치게 하는데.”

​

또 한 걸음.

“내가 누구를 찾겠어?”

​

나는 더 듣지 않고 1층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창.’

분명 밖에서 봤다. 어딘가에는 나갈 수 있는 창이 있을 거다.

로이드가 1층까지 내려오기 전에 가장 멀리 보이는 문을 열어젖혔다.

​

작은 응접실이었다.

큰 창 너머로 바깥 정원이 선명하게 보였다.

“됐다.”

​

나는 곧장 창가로 달려가 창문을 열었다.

몸을 내밀려던 순간.

턱.

어깨 앞이 무언가에 막혔다.

“뭐야?”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인데, 손끝이 투명한 벽이 세워진 것처럼 나아가지 않았다.

“……결계?”

​

미친.

진짜 미친 거 아냐!

왜 이런 쓸데없는 데서 재능을 발휘하는 건데!

​

나는 옆 창문까지 달려가 열어 봤다. 똑같았다. 그다음 창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시선이 탁자 위 화병에 멎었다.

나는 곧장 화병을 집어 창밖으로 내던졌다.

​

화병은 아무런 저항 없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와장창!

화단 위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럼…… 사람만 못 나가는 거야?”

진짜 미친 새끼 맞잖아!

​

“하하하하.”

등 뒤.

문밖에서 웃음소리가 아주 가까웠다.

“엘리.”

​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런 식으로 나를 흥분시켜 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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