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줄 알았던 군신이 돌아왔다

죽은 줄 알았던 군신이 돌아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By:  해월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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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죽였다고 발표한 남자, 강도윤. 극비 특수작전 부대를 지휘했던 그는 부관의 배신으로 부하들을 잃고 적의 포로가 되었다. 삼 년 뒤, 망가진 몸으로 귀국한 그에게 남은 것은 조작된 전사 기록과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약혼녀뿐. 그러나 죽은 사령관의 귀환을 알아챈 순간, 흩어진 부하들이 다시 움직인다. 총을 들 힘은 부족해도 전쟁을 끝내는 머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 자신을 버린 국가와 배신자들을 향해, 군신이 명령을 내린다. 그를 배신한 자들은 영웅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장군의 별을 달았고, 누군가는 군수기업을 손에 넣었다. 도윤은 서두르지 않는다. 빼앗긴 이름을 되찾기 전에, 그들이 쌓아 올린 제국부터 무너뜨릴 생각이다. 첫 번째 표적을 추적하던 밤, 죽은 줄 알았던 부하의 구조 신호가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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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폭우가 쏟아지는 부두에서는 사람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강도윤은 컨테이너 사이에 멈춰 서서 머리 위의 크레인을 올려다보았다. 바닷바람에 실린 빗물이 얼굴을 때렸고, 높은 조명탑에서 흘러내린 빛은 물안개에 가려 희미하게 번졌다. 야간 하역을 마치려던 작업자들은 서둘러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머리 위에서는 이미 위험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삼십 미터 높이에 매달린 컨테이너가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진동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른쪽 와이어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면서 크레인 붐이 조금씩 비틀렸고, 그 아래로 연결된 철제 구조물에서는 간헐적으로 거친 마찰음이 새어 나왔다.

도윤은 무심코 오른손을 들어 눈앞의 빗물을 닦으려다가 손목을 내렸다.

손가락 세 개가 뜻대로 펴지지 않았다.

차가운 빗물이 옷 속까지 스며들자 오래된 신경통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손바닥에서 팔꿈치까지 저릿한 통증이 번졌고, 왼쪽 무릎 아래에서도 익숙한 감각 저하가 느껴졌다. 그는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감싸 쥐었다가, 다시 크레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몸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크레인 아래쪽에서는 작업자들이 동쪽 통로로 모여들고 있었다. 작업이 중단되자 현장 책임자가 대피를 지시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향하는 곳은 크레인 붐이 무너질 경우 가장 먼저 충격을 받게 될 위치였다.

도윤은 주변을 살피다가 무전기를 들고 있는 작업자에게 다가갔다.

“하역반장과 바로 연결됩니까?”

노란 안전모를 쓴 사내가 그를 돌아보았다. 젖은 우의 아래로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고, 피로에 찌든 얼굴에는 낯선 사람을 향한 경계심이 먼저 떠올랐다.

“누구십니까? 외부인이면 빨리 나가세요. 지금 장비 상태가 안 좋습니다.”

“동쪽 통로를 막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도윤은 크레인 상부를 가리켰다.

“오른쪽 와이어 장력이 무너졌습니다. 저 상태에서 붐이 기울면 동쪽 통로가 붕괴 범위에 들어갑니다.”

사내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크레인에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터졌다. 팽팽하게 당겨진 와이어가 구조물을 긁으며 흔들렸고, 아래쪽에 있던 작업자 한 명이 놀라 뒤로 물러났다.

사내는 황급히 무전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반장님! 3번 크레인 오른쪽 와이어가 이상합니다. 지금 소리까지 나고 있어요!”

무전기 너머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알고 있어! 장비 정지시켰으니까 사람들부터 빼!”

도윤은 대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확인하며 물었다.

“어느 쪽으로 보내고 있습니까?”

“동쪽 출입구랍니다.”

“그쪽은 안 됩니다. 서쪽 계류장으로 돌려야 합니다.”

사내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현장에 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말을 믿고 대피 방향을 바꿔도 되는지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도윤은 그를 재촉하는 대신, 동쪽 통로 위로 뻗어 있는 크레인 붐과 아래쪽 컨테이너의 위치를 차례로 짚었다.

“와이어가 끊어지면 붐이 먼저 기울고, 매달린 컨테이너가 옆에 쌓인 화물을 밀어 버릴 겁니다. 저 통로는 출구가 아니라 막다른 길이 됩니다.”

사내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는 곧바로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반장님! 동쪽 통로가 위험하답니다. 서쪽으로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누가 그래?”

“여기 어떤 사람이 크레인 붐이 동쪽으로 넘어진다고…….”

“지금 그걸 어떻게 믿어!”

도윤은 무전기를 빼앗지 않았다.

대신 사내가 전달해야 할 내용을 정확하게 정리했다. 서쪽 통로에 장애물이 없는지 먼저 확인하고, 현장 책임자의 지휘 아래 대피 방향을 변경해야 한다는 점, 이미 위험 구역으로 들어간 사람을 확인하되 무리하게 구조 인력을 투입해서는 안 된다는 점까지 차례로 설명했다.

그때 크레인 상부에서 첫 번째 와이어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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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폭우가 쏟아지는 부두에서는 사람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강도윤은 컨테이너 사이에 멈춰 서서 머리 위의 크레인을 올려다보았다. 바닷바람에 실린 빗물이 얼굴을 때렸고, 높은 조명탑에서 흘러내린 빛은 물안개에 가려 희미하게 번졌다. 야간 하역을 마치려던 작업자들은 서둘러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머리 위에서는 이미 위험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삼십 미터 높이에 매달린 컨테이너가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흔들리고 있었다.처음에는 작은 진동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른쪽 와이어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면서 크레인 붐이 조금씩 비틀렸고, 그 아래로 연결된 철제 구조물에서는 간헐적으로 거친 마찰음이 새어 나왔다.도윤은 무심코 오른손을 들어 눈앞의 빗물을 닦으려다가 손목을 내렸다.손가락 세 개가 뜻대로 펴지지 않았다.차가운 빗물이 옷 속까지 스며들자 오래된 신경통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손바닥에서 팔꿈치까지 저릿한 통증이 번졌고, 왼쪽 무릎 아래에서도 익숙한 감각 저하가 느껴졌다. 그는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감싸 쥐었다가, 다시 크레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자신의 몸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크레인 아래쪽에서는 작업자들이 동쪽 통로로 모여들고 있었다. 작업이 중단되자 현장 책임자가 대피를 지시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향하는 곳은 크레인 붐이 무너질 경우 가장 먼저 충격을 받게 될 위치였다.도윤은 주변을 살피다가 무전기를 들고 있는 작업자에게 다가갔다.“하역반장과 바로 연결됩니까?”노란 안전모를 쓴 사내가 그를 돌아보았다. 젖은 우의 아래로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고, 피로에 찌든 얼굴에는 낯선 사람을 향한 경계심이 먼저 떠올랐다.“누구십니까? 외부인이면 빨리 나가세요. 지금 장비 상태가 안 좋습니다.”“동쪽 통로를 막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그걸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도윤은 크레인 상부를 가리켰다.“오른쪽 와이어 장력이 무너졌습니다. 저 상태에서 붐이 기울면 동쪽 통로가 붕괴 범위에 들어갑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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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굵은 철선이 허공을 가르며 구조물을 강타했다. 귀를 찢는 금속음과 함께 매달린 컨테이너가 크게 기울었고, 부두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무전기 너머에서도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전원 대피! 서쪽 통로로 이동해!”도윤은 난간을 붙잡은 채 사람들의 움직임을 살폈다.현장 책임자가 서쪽 통로에 인원을 배치하면서 혼잡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대피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모든 위험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크레인 아래쪽에는 여전히 작업자들이 남아 있었고, 일부는 무너질 수 있는 구조물 가까이에서 길을 찾고 있었다.그는 사람들의 위치를 하나씩 기억했다.계단 아래에 세 명.컨테이너 뒤편에 네 명.선박과 연결된 작업 구역에 다섯 명.그리고 높은 작업 발판에 한 명.열세 명이었다.도윤은 무전기 앞의 사내를 불렀다.“안쪽에 열세 명이 남아 있습니다. 현장 책임자에게 숫자를 전달하세요.”“열세 명이요?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대피가 시작되기 전부터 보고 있었습니다.”사내는 더 묻지 않고 무전기를 들었다.도윤은 선박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파도에 밀린 화물선이 계류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크레인이 쓰러지면서 선체를 강타하면 충격이 더 커질 수 있었다.그는 하역반장에게 선장과의 연락을 요청했다.“선박의 계류 상태와 추진기 사용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무리하게 움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선장이 주변 인원과 장비 상태를 확인한 뒤 충돌 위험을 줄일 방법을 판단해야 합니다.”하역반장은 처음에는 낯선 남자의 개입을 못마땅해했지만, 크레인이 흔들릴 때마다 도윤의 예측과 실제 움직임이 일치하자 더 이상 그의 말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무전기에서는 짧고 다급한 보고가 오갔다.작업자들의 대피가 이어지는 동안 도윤은 오른손의 통증을 참으며 난간에 몸을 기댔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거의 사라졌고, 왼쪽 다리도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었다.그는 발을 옮겨 보았다.무릎 아래가 즉시 반응하지 않았다.삼 년 전 입은 신경 손상은 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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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거대한 철골이 부두를 강타하면서 충격파가 주변으로 퍼졌다. 컨테이너가 옆에 쌓인 화물을 밀어 버렸고,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바닷물이 높이 솟구쳤다. 작업자들은 귀를 막고 바닥에 엎드렸으며, 항만 전체에 비상 경보가 울려 퍼졌다.도윤은 무너진 크레인보다 서쪽 통로에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하역반장이 마지막 인원을 확인하고 있었다.“열세 명! 전원 확인했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도윤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난간을 놓자 왼쪽 무릎이 꺾였다. 그는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으려 했지만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고, 결국 어깨부터 젖은 콘크리트에 부딪혔다.차가운 빗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오래된 신경통이 허리에서 다리까지 번지면서 숨을 들이마시기조차 힘들어졌다.누군가 달려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아저씨! 정신 차리세요!”도윤은 왼손으로 상대의 소매를 붙잡았다.“열세 명…… 전부 나왔습니까?”“네! 다 나왔어요! 전부 살았습니다!”그제야 손가락의 힘이 풀렸다.희미해지는 시야 너머로 작업자들이 서로를 부축하는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고, 누군가는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도윤은 그 광경을 끝까지 바라보려 했다.하지만 의식이 멀어지는 동안, 오래전 무전기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귓속을 파고들었다.*지휘관님, 아직 사람이 남아 있습니다.*삼 년 전에도 그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고 있었다.마흔일곱 명의 전사자.그리고 끝내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열두 명.그날의 마지막 보고는 아직도 선명했다. 그러나 기록은 사라졌고, 자신은 죽은 사람으로 처리되었다.도윤은 젖은 바닥에 뺨을 기댄 채 숨을 내쉬었다.오늘은 달랐다.열세 명이 살아 나왔다.그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눈을 감았다.***강도윤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응급실 천장이 보였다.형광등 불빛이 눈을 찔렀고, 오른쪽 팔에서는 익숙한 통증이 이어지고 있었다. 젖은 작업복 대신 병원에서 건네준 옷을 입고 있었지만, 몸속 깊숙이 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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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직원은 상급자에게 상황을 전달한 뒤, 신원 확인과 별개로 필요한 응급 진료를 진행하도록 의료진에게 연락했다.도윤은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굳어 있는 손가락이 중간에서 멈췄다.“손과 다리 감각이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사고 이후 더 심해졌습니다.”간호사는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 검사실로 안내했다.휠체어가 움직이는 동안 도윤은 접수창구를 돌아보았다.방금 전까지 직원이 바라보던 화면에는 자신의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강도윤.그 이름 옆에 사망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그는 왼손으로 휠체어 팔걸이를 붙잡았다.삼 년 동안 살아남으려고 버텼다.그런데 돌아와 보니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부터 증명해야 했다.***검사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 부두에서 구조된 작업자 한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남자는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다친 다리를 의자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도윤을 발견하자 급히 일어나려 했지만, 그는 손짓으로 만류했다.“다치셨으면 앉아 계세요.”남자는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도 연신 고개를 숙였다.“정말 감사합니다. 아저씨 아니었으면 저희 다 죽었을 겁니다.”도윤은 남자의 붕대를 살폈다.“다른 분들은 괜찮습니까?”“발목 다친 사람 말고는 크게 다친 사람이 없답니다. 그 사람도 수술까지는 안 해도 된대요.”도윤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남자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꺼냈다.“그런데 이거 보셨어요?”화면에는 부두 사고 관련 기사가 떠 있었다.현장 책임자의 신속한 판단으로 열세 명의 인명 피해를 막았다는 내용이었다. 사진 속 하역반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었고, 뒤편에는 무너진 크레인의 잔해가 보였다.남자는 답답한 듯 화면을 가리켰다.“아저씨 얘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저희가 다 봤는데요.”도윤은 기사를 끝까지 읽었다.열세 명이 무사히 대피했다는 사실은 적혀 있었다. 현장 책임자와 선박 관계자의 협조에 관한 설명도 있었다.그러나 대피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처음 판단한 사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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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그는 도윤의 낡은 옷차림과 휠체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을 차례로 살폈다. 이어 이미 병원에서 신분 확인이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는 듯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강도윤 씨라고 하셨죠? 실례지만 현재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없다고 들었습니다.”도윤은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게 사고 당시 상황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공식 문서에 이름을 올리려면 확인이 필요합니다. 저희도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어서요.”도윤은 서류를 다시 펼쳤다.남자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확인이 아니었다.자신이 이 문서에 서명하면 사고 보고서에는 현장 책임자의 판단만 남게 된다. 크레인 붕괴 방향을 누가 먼저 예측했는지, 왜 대피 통로가 바뀌었는지, 열세 명이라는 숫자를 누가 확인했는지는 더 이상 기록할 필요가 없는 일이 될 것이다.도윤은 서류를 돌려주었다.“서명하지 않겠습니다.”남자의 얼굴이 굳었다.“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가 공로를 빼앗으려는 건 아닙니다.”“그렇다면 사실대로 기록하면 됩니다.”도윤은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저는 그날 현장에 있었습니다. 열세 명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동쪽 통로가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판단을 전달받은 사람들이 실제 구조를 수행했습니다. 그중 어느 부분이 틀렸는지 확인해 보세요.”남자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잠시 뒤 그는 서류를 가방에 넣었다.“확인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남자가 병실을 나가자 도윤은 휠체어 팔걸이에 오른손을 올렸다.손가락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그는 왼손으로 오른손의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마디가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팔을 타고 올라왔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삼 년 전에는 수십 명의 생사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명령을 내렸다.지금은 자신이 직접 겪은 일조차 서명 한 장으로 지워질 수 있었다.더구나 그 서류에 반박하려면 먼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부터 증명해야 했다.도윤은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창밖에서는 빗물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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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삼 년 동안 이 반지를 버리지 않았다.몸에 지닌 물건을 모두 빼앗겼을 때도, 자신의 이름을 말할 수 없었던 시간에도 어떻게든 지켜 냈다. 한때는 손가락에 끼고 있었지만 손이 망가진 뒤에는 목에 걸었고, 줄마저 끊어진 뒤부터는 주머니 안에 넣어 다녔다.도윤은 반지를 오른손 약지에 끼워 보려 했다.하지만 굽은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마디가 부어 있었고, 손가락을 펼 때마다 통증이 올라왔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반지는 첫 번째 마디조차 제대로 지나가지 못했다.그는 결국 반지를 왼손으로 받아 들었다.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간호사가 검사 결과와 다음 진료 절차를 안내하러 들어왔다. 그녀는 도윤의 손에 놓인 반지를 보고 잠시 말을 멈췄지만, 곧 의료 기록을 확인하며 설명을 이어 갔다.“신경 손상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사고로 증상이 악화됐을 가능성이 있으니 추가 평가가 필요합니다.”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완전히 돌아오기는 어렵겠죠?”간호사는 담당 의사가 자세히 설명할 것이라고 답했다.도윤은 더 묻지 않았다.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삼 년 동안 자신의 몸이 어떻게 망가져 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다른 사람의 입으로 다시 확인하는 순간에는, 아무리 준비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간호사가 나간 뒤 도윤은 반지를 주머니에 넣었다.그리고 침대 옆에 놓인 종이와 펜을 집었다.오른손으로 펜을 잡으려 하자 손가락이 떨렸다. 몇 번이나 고쳐 쥐었지만 글씨를 쓸 수 없었다. 결국 펜을 왼손으로 옮긴 뒤 종이 위에 천천히 이름을 적었다.강도윤.글씨가 삐뚤어졌다.그는 그 아래에 다시 한번 이름을 적었다.이번에는 조금 더 또렷했다.강도윤.세 번째 이름을 적을 때는 손이 덜 떨렸다.도윤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병원 전산에는 사망자로 기록되어 있었다.항만 사고 보고서에는 이름이 빠져 있었다.삼 년 전의 작전 기록에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적어도 이 종이 위에는 자신의 이름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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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먼저 영상의 촬영 시각과 원본 출처를 확인했다. 이어 병원으로 이송된 인원 명단에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남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그 남자가 접수 과정에서 사용한 이름 역시 강도윤이었다.비서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사망자로 기록된 사람이 실제로 살아 돌아왔다면, 단순한 신원 착오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그는 영상 파일을 별도로 보관한 뒤 차민석에게 보낼 보고서를 작성했다.보고서에는 확인된 사실만 적었다.부두 사고 현장에 강도윤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남성이 있었다는 점.그가 작업자들의 대피 과정에 관여했다는 점.공식 전사 기록의 사진과 외형상 유사성이 있다는 점.아직 동일인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비서는 마지막 문장을 적고 잠시 망설였다.그는 정하린의 이름을 떠올렸다.차민석의 곁에 있는 여자.그리고 삼 년 전 사망자로 발표된 강도윤과 혼인 관계였던 여자.비서는 보고서를 전송했다.잠시 뒤 차민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무슨 영상이지?”“어제 부두 사고 현장에서 확보한 영상입니다.”“왜 나한테 보냈어?”비서는 책상 위의 오래된 사진을 다시 바라보았다.“대표님께서 직접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비서는 말을 이었다.“삼 년 전 전사자로 발표된 강도윤과 닮은 남자가 찍혔습니다.”차민석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잠시 뒤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원본이야?”“네. 촬영 시각과 출처는 확인했습니다.”“그 사람 신원은?”“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병원에서도 강도윤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민석은 잠시 침묵했다.“자료는 그대로 보관해.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는 밖에 하지 말고.”“알겠습니다.”통화가 끝났다.비서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폭우 속에서 한 남자가 난간을 붙잡고 있었다.그의 오른손은 제대로 펴지지 않았고, 왼쪽 다리도 불편해 보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흔들리지 않았다.비서는 영상 속 남자의 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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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강도윤이 병원 정문을 나섰을 때,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쳐 있었지만 도로 가장자리에는 여전히 빗물이 고여 있었다. 출근 차량들이 물웅덩이를 가르며 지나가는 동안 그는 출입구 옆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주머니에서 진료 안내문을 꺼냈다.오른손의 신경 손상은 이전보다 악화되었고, 왼쪽 다리에도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도윤의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진료 내용이 아니라 환자 정보란이었다.*신원 확인 필요.*전날 밤 자신의 이름을 직접 말했는데도 병원 전산에는 여전히 사망자로 남아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별도의 절차가 필요했고, 그 절차를 시작하려면 신분을 확인할 자료부터 찾아야 했다.도윤은 안내문을 접어 지갑에 넣었다. 그 안에는 왼손으로 세 번이나 적었던 자신의 이름과 정하린의 사진도 함께 들어 있었다. 사진을 꺼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하린에게 연락하기 전에 확인해야 할 사람이 있었다.박기석은 삼 년 전 마지막 작전에서 살아 돌아온 것으로 알려진 부하였다. 도윤이 지휘하던 부대에서 가장 오래 함께한 사람이었고, 다른 대원들이 흔들릴 때도 끝까지 명령을 전달하던 남자였다. 그가 살아 있다면 마지막 작전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기록을 정리했는지 확인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도윤은 기억하고 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오래전에 해지된 번호라는 안내 음성만 들려왔다. 수화기를 내려놓기 전, 그는 마지막으로 기석의 목소리를 들었던 순간을 떠올렸다.통신이 끊어지기 직전 기석은 남은 대원들을 이끌고 철수하겠다고 보고했다. 도윤은 그들에게 돌아보지 말고 지정된 경로로 이동하라고 명령했으며, 이후 무전기에서는 거친 잡음만 흘러나왔다.그날 이후 기석이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직접 들은 적은 없었다.도윤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움직였다. 오래된 연락처와 업체 정보를 확인한 끝에 기석이 운영하는 작은 경비업체의 주소를 찾아냈을 때는 이미 오전이 상당히 지나 있었다.***경비업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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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도윤이 고개를 들자 검은 점퍼를 입은 중년 남자가 계단 위에 서 있었다. 머리에는 흰머리가 늘었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생겼지만, 사람을 살피는 날카로운 눈빛만큼은 기억 속 그대로였다.박기석이었다.마지막 작전에서 무전을 주고받던 부하가 삼 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다. 도윤이 그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 기석은 계단에 주저앉은 낯선 남자를 발견하고 몇 칸 내려왔다.“괜찮으십니까? 다치셨으면 구급차를 불러 드릴까요?”도윤은 대답하려다가 목이 메는 것을 느꼈다. 살아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기석의 이름조차 함부로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가장 먼저 안부부터 묻고 싶어졌다.“기석아, 살아 있었구나.”기석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는 도윤의 눈매와 턱선, 왼쪽 눈썹 가까이에 남은 흉터를 차례로 살피더니 천천히 한 걸음 물러섰다.“누구십니까?”“강도윤이다.”그 이름을 듣는 순간 기석의 어깨가 굳었다. 잠시 후 그는 계단 위쪽의 사무실 문을 돌아보았는데, 누군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지 확인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습니까?”도윤은 기석의 표정을 읽었다. 반가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두려움과 경계심이었다.“내 얼굴을 알아보겠나?”기석은 입술을 깨물었다.“강도윤 지휘관님은 삼 년 전에 전사하셨습니다. 그분 사진을 구해서 얼굴까지 비슷하게 꾸민 겁니까? 누가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장난은 하지 마십시오.”기석은 도윤을 부축하려고 팔을 잡았다. 그러나 손길에는 계단 위로 데려가려는 의도보다 건물 밖으로 돌려보내려는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오른팔이 붙잡히는 순간 도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석은 그 변화를 알아차리고 손을 놓았지만, 경계하는 표정만큼은 풀리지 않았다.“팔은 왜 이렇습니까?”“마지막 작전 이후에 다쳤다.”기석은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고개를 저었다.“그만하십시오. 저희는 그분 장례를 치렀습니다. 시신도 없는 관 앞에 서서 경례했고, 돌아오지 못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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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그 손은 언제부터 그렇게 된 겁니까?”“삼 년 전부터다. 왼쪽 다리도 마찬가지고.”“어디에서 무슨 일을 겪었습니까?”도윤은 물병을 내려놓았다. 마지막 작전 이후의 일을 설명하려면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부터 이야기해야 했지만, 기억이 끊어진 부분이 있었고 아직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사건도 많았다. 무엇보다 기석의 주변에 어떤 위험이 남아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꺼낼 수는 없었다.“설명하겠다. 다만 지금은 네가 믿을 수 있는 것부터 확인해.”기석은 고개를 숙였다.“정말 그분이라면 왜 이제야 오신 겁니까?”그 질문에는 지난 삼 년의 모든 시간이 들어 있었다. 자신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뿐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동안 감당해야 했던 상처까지 설명해야 했다.“돌아오려고 했다. 그것밖에는 지금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구나.”기석은 더 묻지 않았다.그때 건물 아래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작은 가방을 멘 여자아이가 출입구를 지나 계단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기석은 딸을 발견하자 급히 내려가 가방을 받아 들었고, 혼자 왔다는 말을 듣고는 다음부터 반드시 연락하라고 당부했다.도윤은 난간에 몸을 기댄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삼 년 전 기석의 아내는 임신 중이었고, 작전이 끝나면 아이가 태어난다며 부대원들이 함께 축하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 태어날 날을 기다리던 아이가 어느새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기석이 살아 돌아와 가정을 지켰다는 사실은 반가웠지만, 그 모습을 보는 동안 자신이 놓쳐 버린 시간도 선명해졌다.아이는 아버지 뒤에 있는 도윤을 발견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아빠, 저 아저씨는 누구야?”기석은 대답을 망설였고, 도윤은 아이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아빠를 오래전에 알던 사람이야.”아이는 기석을 올려다보았다. 기석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도윤을 향한 경계심은 거두지 않았다.그때 도윤의 시선이 건물 출입구 너머로 움직였다.검은 승용차 한 대가 도로 가장자리에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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