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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화

Author: 숲속의사슴
안에서 들려오는 빛나의 울음소리가 날카로운 칼처럼 시유의 가슴을 베었다.

당장이라도 모든 걸 무시하고 안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여준이 차갑고 단단한 벽처럼 길을 완전히 막고 있었다.

“결정했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나랑 들어가서 할머니 앞에서 끝까지 연기할 건지, 아니면... 지금 돌아갈 건지.”

시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 깊숙이 파고들며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시유는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성격이었다. 자신에게 그렇게 상처를 주고 딸까지 빼앗아 간 사람들과 한자리에 앉아 화목한 가족인 척하라고?

절대 할 수 없었다.

할머니가 자신에게 잘해 줬던 건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호의를 빌미로 자신을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오늘 밤 여준은 더 이상 좋은 척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대놓고 힘으로 맞서겠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빛나는 아직 저들 손에 있었다.

억지로 안으로 들어가려다 크게 충돌하면 어떤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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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68화

    여준은 마침내 시유를 상대할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딸은 시유의 약점이었다.빛나만 자기 곁에 붙잡아 두면 결국 시유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딸이 곁에 없는 순간순간이 시유에게는 고통일 테니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어쩌면 바로 내일 아침 선물을 들고 얌전히 찾아와 할머니에게 사과할지도 몰랐다.그 생각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 득의양양한 웃음이 걸렸다.“진작 이렇게 했어야지.”뒤쪽 정원에서 부인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부인걸은 뒷짐을 진 채 천천히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굳은 얼굴에는 만족감이 묻어 있었다.“여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야. 달래든가, 세게 나가든가. 달래도 안 되면 남자답게 힘을 보여 줘야지. 저렇게 기세등등하게 굴게 놔두면 안 돼.”여준이 아버지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시유처럼 달래도 안 되고 강하게 나가도 통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결국 힘을 보여 주는 수밖에 없어요.”“자기가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꼼짝 못 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아야죠.”부인걸은 만족스럽게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눈빛은 노련하고 냉정했다.“그래야지. 부씨 집안 남자가 여자한테 끌려다녀서야 되겠어? 네 큰누나와 막내 누나 일은 내가 사람 시켜 처리할 테니 넌 시유부터 붙잡아. 현실을 똑똑히 깨닫게 해.”“고개만 숙이면 예전 일은 다 넘어가 줄 수도 있는 거고.”부인걸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요즘 부강그룹 주가도 불안하고 밖에서도 이런저런 말이 많아. 이럴 때 시유하고 관계를 어느 정도 회복해서 빛나 백일잔치라도 크게 열면 분위기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야.”“부강그룹에도 나쁠 게 없지.”아버지의 말을 듣던 여준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부인걸의 뼛속 깊은 냉정함과 이기적인 성격, 모든 걸 이익으로 따지는 태도를 여준은 예전부터 싫어했다.자신만큼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누구보다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67화

    안에서 들려오는 빛나의 울음소리가 날카로운 칼처럼 시유의 가슴을 베었다.당장이라도 모든 걸 무시하고 안으로 뛰어들고 싶었다.하지만 여준이 차갑고 단단한 벽처럼 길을 완전히 막고 있었다.“결정했어?”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나랑 들어가서 할머니 앞에서 끝까지 연기할 건지, 아니면... 지금 돌아갈 건지.”시유는 주먹을 꽉 쥐었다.손톱이 손바닥 깊숙이 파고들며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시유는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성격이었다. 자신에게 그렇게 상처를 주고 딸까지 빼앗아 간 사람들과 한자리에 앉아 화목한 가족인 척하라고?절대 할 수 없었다.할머니가 자신에게 잘해 줬던 건 기억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호의를 빌미로 자신을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오늘 밤 여준은 더 이상 좋은 척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대놓고 힘으로 맞서겠다는 태도였다.그리고 빛나는 아직 저들 손에 있었다.억지로 안으로 들어가려다 크게 충돌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자신이 다치는 건 두렵지 않았다.하지만 그 과정에서 빛나가 다치는 일만큼은 절대 허용할 수 없었다.시유가 눈을 떴다.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당신 집에 다시 들어갈 생각 없어, 부여준.”여준은 실망했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생각도 들었다.그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말투에는 모든 상황을 손에 쥐었다는 듯한 여유가 묻어 있었다.“그럼 일단 돌아가.”“오늘 밤은 빛나가 나랑 잘 거야.”“걱정하지 마. 나도 이제 아기 돌봐 본 적 있어. 지난번처럼 서툴게 굴어서 다치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여준은 시유의 굳은 얼굴을 바라보다 덧붙였다.“그런 눈으로 볼 필요 없어. 내가 무슨 유괴범도 아니고.”“빛나는 내 딸이기도 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나도 알아.”“당신도 하루 쉰다고 생각해. 장모님도 좀 쉬시고.”“그리고 나중에 이혼하더라도 나한테는 면접교섭권이 있어. 딸을 데려가 며칠 같이 지낼 수도 있고.”“평생 나한테 애를 보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66화

    “그러니까!”마리가 앞으로 달려들어 여준을 확 밀어내고 시유 앞을 막아섰다.“부여준, 양심도 없어? 먼저 잘못한 건 당신 가족이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시유가 매정하다고 탓해?”“당신이 말하는 관계 회복이라는 게 결국 썩어 빠진 가족들은 뒤에서 감싸고, 시유한테 또 참고 넘어가라는 거야?”여준이 마리를 차갑게 흘겨봤다.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웠다.“나랑 시유 일에 외부인이 끼어들 자리는 없어.”“윤마리, 예전에는 그냥 입만 험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일을 더 키우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이었군.”“시유가 당신 같은 사람 옆에서 부추김이나 듣고 있으니 이렇게 말도 안 통하게 된 거고.”“뭐라고?”마리의 얼굴이 분노로 벌게졌다.여준은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시유를 바라봤다.“빛나는 안에서 안전하게 있어. 오늘 밤은 내가 딸을 데리고 있을 거야. 아빠로서 이 정도 요구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해.”“불안하면 고진구더러 나랑 얘기하라고 해. 법적으로 결정이 나기 전까지 당신 혼자 내 양육권을 빼앗을 권리는 없어.”말을 마친 여준이 손뼉을 세게 쳤다.탁!거실 양쪽 문이 열리더니 제복을 입고 진압봉을 든 보안 요원 20명 넘게 한꺼번에 뛰어나왔다.그 보안 요원들은 일제히 여준 앞을 막아섰다.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였다.시유는 눈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다가 기가 막힌 듯 웃었다.하지만 눈가는 이미 붉어져 있었다.“부여준, 지금 나한테 힘으로 해 보겠다는 거야? 내가 당장 사람 시켜서 이 집 통째로 부숴 버릴 수도 있다는 거 알아?”여준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큰 몸이 만든 그림자가 시유를 완전히 덮었다.“부숴. 안에 있는 딸이 다칠까 봐 겁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시유야, 그동안 난 계속 당신한테 참고 양보했어. 당신 때문에 가족하고도 전부 등을 졌고. 그런데 당신은 내가 참는 걸 약하다고 생각하고 부강그룹의 자존심까지 짓밟았어.”여준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당신이 좋게 끝낼 생각이 없다면 나도 방법을 바꿀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65화

    집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황급히 뛰어왔다.여준을 바라보는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도련님... 큰일 났습니다.”“사모님이 사람들을 잔뜩 데리고 와서 지금 대문을... 부수려고 하고 있습니다.”여준의 표정이 굳었다.본능적으로 품에 안고 있던 빛나를 진명화에게 넘긴 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나가 볼게요.”빠른 걸음으로 현관을 향하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빛나를 데리고 본가로 온 건 철저히 숨긴 일이었다.그런데 시유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알아낸 걸까?설마 새나와 유미까지 찾아내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전부 알아버린 건가?현관에 도착하기도 전에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찬훈이었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부 대표님이 회사에서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그리고 MR그룹 보안팀도 조금 전 전부 철수했습니다. 사모님 쪽 지시가 내려왔다고 합니다.]여준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뭐라고? 시유가 부강그룹에 갔었어?”그 말을 미처 받아들이기도 전, 다른 핸드폰까지 울렸다.여준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로 차갑고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렸다.[부여준 씨 맞으십니까? H시 경찰청 형사과입니다. 가족인 부유미 씨와 소새나 씨가 아동 유괴 혐의로 긴급체포돼 현재 조사 중입니다.]툭.핸드폰이 여준의 손에서 떨어져 바닥에 부딪쳤다.불과 30분 사이였다.시유는 여준의 큰누나와 막내 누나, 소새나까지 모두 경찰에 넘겼다.더 섬뜩한 건 그 모든 일이 자신이 전혀 모르는 사이에 순식간에 벌어졌다는 사실이었다.‘시유가 언제부터 이런 힘까지 갖게 된 거지? 또 영우가 뒤에서 도운 건가?’여준은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그동안 이 결혼을 되돌리기 위해 자존심까지 접어 가며 매달렸다고 생각했다.시유 앞에서 할 만큼 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여겼다.그런데 결국 시유는 자신을 용서하지 않았다.이제는 가족들까지 줄줄이 경찰에 넘겼다.그 사실에 억눌러 왔던 감정이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64화

    “건강하고 똑똑하게만 자라면 됐지, 딸이면 뭐가 어때!”최선희가 여준을 바라봤다.“여준아, 네 엄마 말은 듣지도 마. 딸도 똑같이 귀한 보물이야!”진명화는 입을 삐죽였지만 시선은 저도 모르게 여준 품에 안긴 빛나에게 향했다.“어머니, 이제 와서 그런 말씀 하세요? 제가 딸을 셋이나 연달아 낳았을 때는 안 그러셨잖아요.”최선희가 눈을 흘기며 코웃음을 쳤다.“내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 했어도 너처럼 이렇게 대놓고 하진 않았어.”“내가 하나 묻자. 애 태어난 지 한 달 됐을 때 제대로 챙기기는 했어? 백일 준비는 하고 있고? 네가 낳은 아이 넷은 내가 그런 거 하나라도 빼먹은 적 있었니?”최선희가 혀를 찼다.“그러니 손주며느리가 애 데리고 친정에 가서 안 돌아오지. 내가 보기엔 네가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거야!”최선희는 가벼운 치매 증상이 있었다.정신이 또렷할 때도 있고 흐릴 때도 있었지만, 오랜 세월 사람을 겪어 온 만큼 중요한 순간에는 의외로 정확하게 본질을 짚곤 했다.여준은 최선희의 말을 듣다가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지난 5년 동안 시유는 부씨 집안의 다른 사람들과는 늘 겉돌았다.유일하게 최선희와만 사이가 좋았다.문득 할머니가 직접 나서면 시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때였다.밖에서 대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시유는 여준에게 세 번이나 연달아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여준은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시유는 여준을 너무 잘 알았다.그는 24시간 핸드폰을 몸에서 떼지 않는 사람이었다.전원이 켜져 있다면 전화를 못 들을 리가 없었다.결국 알면서도 받지 않는 것이었다.시유의 속에서 화가 끓어올랐다.여준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기대마저 완전히 사라졌다.저 남자는 매번 말로는 다시 잘해 보겠다고 했다.자기가 잘못했다고, 앞으로는 바뀌겠다고 수도 없이 말했다.그런데 결국 전부 말뿐이었다.정작 일이 생기면 여전히 가장 먼저 자기 생각부터 했다.빛나가 자기 손에 있다는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63화

    여준이 빛나를 안고 부씨 본가에 도착하자 미리 연락을 받은 최선희와 부인걸, 고용인들이 모두 거실에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여준이 빛나를 안고 들어서자 모두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최선희가 가장 먼저 빛나를 받아 안고 한참 들여다봤다.“아이고, 예쁘기도 하지... 벌써부터 이렇게 예쁜 걸 보니 커서 미인이 되겠네.”“여준아, 이 아이는 얼굴에 복이 가득해. 나중에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겠어.”최선희는 연신 감탄했다.옆에 서 있던 부인걸도 빛나를 자세히 바라봤다.늘 굳어 있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그가 눈을 들어 여준을 바라봤다.“너희 둘은 요즘 어떻게 돼 가냐? 그 여자가 아이 데려오는 걸 허락한 거야?”여준은 얼버무리듯 대답했다.“네.”갑자기 낯선 곳에서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서인지 빛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입술을 삐죽이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으아앙!”여준이 아기를 돌본 경험이라고 해 봐야 산후조리원에서 새나와 리오 곁에 잠깐 있었던 게 전부였다.그때도 대부분 산후도우미가 곁에 있었다.빛나가 갑자기 크게 울자 여준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달래 봤지만 좀처럼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여준은 빛나를 안고 계속 거실을 오갔다.등에 땀이 밸 정도로 애를 써도 소용없었다.경험 많은 고용인들이 나서 봐도 마찬가지였다.여준이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소리를 듣고 내려온 진명화였다.진명화는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여준에게서 빛나를 받아 들었다.“그렇게 안고 왔다 갔다 한다고 그치는 거 아니야. 아기가 울면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가 젖었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커.”“너는 얼른 분유 타 와. 내가 기저귀 갈아줄 테니까.”진명화는 입으로는 못마땅한 듯 혀를 찼지만 손놀림은 의외로 능숙했다.빛나를 소파에 눕힌 뒤 우주복 단추를 풀고 흠뻑 젖은 기저귀를 금세 벗겨 냈다.새 기저귀로 갈아주자 편해졌는지 빛나는 울음을 멈췄다.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눈앞의 진명화를 신기한 듯 바라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6화

    마리는 시유가 더 상처받을까 봐, 여준이 메시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는 말은 끝내 꺼내지 않았다.시유가 퇴원하는 날까지도 여준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퇴원 후, 시유와 마리는 젖먹이 빛나와 장순영을 데리고 시유가 반년 전 ‘태양파크’ 아파트단지에 사 둔 집으로 들어갔다.마리의 집은 바로 맞은편이었다. 서로 마주 보는 앞집에 살자는 건 대학 시절부터 두 사람이 농담처럼, 하지만 진심으로 꿈꿔 왔던 일이었다.그래서 반년 전 마리의 맞은편 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시유는 망설임 없이 그 집을 계약했다.집에는 기본 가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5화

    “환자분은 출산 후 체력 소모가 심한 상태입니다. 이전에 대량 출혈로 응급 처치까지 받으셨고요.”“이런 상태에서는 저혈당으로 쓰러지기 쉽습니다. 영양 보충 꼭 잘 하셔야 하고, 감정적으로 크게 흔들리는 일도 피하셔야 합니다.”검사가 끝난 뒤에도 시유는 병실 침대에 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의사는 병실 안에서 마리에게 시유의 상태를 차분히 설명했다.장순영이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사모님은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하셨어요. 첫 보름은 젖몸살이 너무 심해서 음식도 마음대로 못 드셨고, 그 다음엔 아기가 소화를 잘 못 시켜서 밤마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4화

    유민자가 허둥지둥 방에서 뛰쳐나오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지진이에요? 지금 지진 난 거예요?”장순영은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안고 있다가, 요란한 소리에 놀라 맨발로 가방부터 움켜쥐고 현관 쪽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심지어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었다.유민자와 장순영이 거실로 뛰어들었을 때, 두 사람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늘 차분하고 이성적이던 시유가 미친 사람처럼, 한때 그토록 아끼던 장식품들을 하나씩 바닥에 내던지고 있었다.유민자는 다급히 시유에게 달려가 말렸다.“사모님, 그만하세요! 제발 그만하세요! 무슨 일이든 차분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3화

    시유는 액셀을 깊게 밟아, 두 사람의 신혼집이 있는 단독주택 단지 ‘그림빌’로 차를 몰았다.현관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이 집에서 오래 일한 가사도우미 유민자와 시유가 따로 고용한 시터 장순영이 아이를 어르고 있었다.시유의 새하얗게 질린 낯을 본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사모님, 어디 편찮으세요?”시유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괜찮아요. 배가 좀 고파서요. 따뜻하게 닭칼국수 한 그릇만 해 주세요.”장순영의 품에서 아이를 받아 든 시유의 복잡하게 뒤엉킨 마음은, 보드랍고 발그레한 아기 얼굴을 보자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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