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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مؤلف: 숲속의사슴
진명화는 자신이 실언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자기 입을 막았다.

“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너무 화가 나서 아무 말이나 한 거야.”

여준이 더 캐물으려던 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대표님, 보내 주신 사진 확인했습니다. 사진 속 인물은 A국 출신이고, 한 달 전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해외에서는 국제 보안 컨설턴트로 일한 이력이 있습니다.]

여준의 관심은 곧장 그쪽으로 옮겨갔다.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보안?”

“연호 집안이 보안 사업을 하지 않나? 게다가 그 집안 보안 본부가 A국에 있잖아.”

찬훈은 전화 너머에서 잠시 침묵한 뒤 덧붙였다.

[하지만 현재 그 사람과 고씨 집안을 연결할 증거는 없습니다.]

“연결할 필요 없어. 연호가 시유 곁에 경호원을 붙인 거야.”

“고씨 집안이 전 세계에 깔아 놓은 보안망을 생각하면, 고작 두 군데에 불을 동시에 내는 일쯤은 어렵지도 않겠지.”

여준은 그렇게 단정했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늘 장난기 많던 연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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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310화

    가까이서 보니 시유의 피부는 생각보다 훨씬 희고 매끈했다.작은 얼굴에 긴 속눈썹, 살짝 올라간 눈매와 오뚝한 코, 얇은 입술까지.하나하나 뜯어보면 그리 화려하지 않았지만, 묘하게 조화를 이뤄 볼수록 눈길이 갔다.어릴 적 모습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다만 그때의 천진난만함은 눈빛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세월을 겪으며 얻은 차분함과 깊이가 깃들어 있었다.아버지와 오빠가 떠나고 시유네가 가장 힘들었던 몇 년 동안, 영우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시유를 지켜봤다.시유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전부 알고 있었다.그 아이들은 하나같이 영우에게 붙잡혀 다시는 시유를 괴롭히지 말라는 경고를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시유가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던 시절에는 이웃에게 부탁해 먹을 것을 전해주기도 했다.직접 나서지는 않았다.그저 시유가 모르게 뒤에서 챙겼다.심지어 시유가 처음 생리를 했던 날도 기억하고 있었다.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유는 바지에 피가 묻은 걸 보고 겁에 질린 채 집으로 돌아가면서 울고 있었다.우연히 그 모습을 본 영우는 서툴게나마 이것저것 알아본 뒤 마트에 가서 생리대를 샀다.사용법까지 따로 적어 시유의 집 앞에 몰래 놓고 왔다.시유와 임애교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 영우는 그렇게 꽤 오랫동안 두 사람을 뒤에서 챙겼다.하지만 시유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영우가 한 번도 시유 앞에 나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이후 영우는 해외로 유학을 떠났다.건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여러 기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점점 바빠졌고, 시유를 챙기는 일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나중에는 임애교가 빚을 모두 갚고 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시유도 이제는 잘 지내고 있을 거라 생각해 더는 따로 신경 쓰지 않았다.그런데 운명은 참 묘했다.훗날 다시 만났을 때 시유는 이미 자신의 친구와 결혼한 상태였고, 영우 역시 새나와 부부가 되어 있었다.영우는 자신이 시유에게 품은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어릴 적 느꼈던 설렘도 있었고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309화

    시유의 시선이 영우의 얼굴에 멈췄다.잘생긴 얼굴 곳곳에 상처와 멍이 남아 있었다.시유의 눈이 순간 커졌다.혹시 어젯밤 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자신이 영우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하지만 아무리 싸움을 좀 할 줄 안다 해도 사람을 이 지경으로 두들겨 팰 정도는 아니었다.대체 어젯밤 누가 자신들의 술에 손을 댄 걸까?의문이 꼬리를 물었다.시유는 미안함과 불안이 섞인 눈으로 영우를 바라봤다.“영우 씨, 얼굴은...”영우가 가볍게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다.“괜찮아요. 별거 아닙니다.”“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어젯밤 영상은 밖으로 퍼지지 않을 겁니다. 변항 씨가 이미 처리했어요.”‘영상?’‘무슨 영상?’시유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그때 진구가 어젯밤 일을 간단히 설명했고, 영우가 빠뜨린 내용을 조금 덧붙였다.다만 여준의 병실에 갔다가 맞은 일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무엇보다 시유 앞에서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지금도 시유는 충분히 지쳐 있었다.이혼 문제는 길어지고 있었고, 어린 빛나까지 돌봐야 했다.영우는 자신의 일로 시유에게 부담을 더 주고 싶지 않았다.예전부터 많은 일을 혼자 가슴에 묻어 왔다.이번에도 당분간은 그러고 싶었다.모든 이야기를 들은 시유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새나가 자신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술에 약을 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영우와 진구가 조금만 판단력을 잃었어도 자신과 마리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지 몰랐다.그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그러다 시유의 시선이 진구의 목에 남은 흔적에 닿았다.문득 어젯밤 자신도 영우와 차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마리가 약기운에 그렇게까지 정신을 못 차렸다면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설마 나도 마리처럼...’시유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혹시 자신이 먼저 영우에게 매달렸던 건 아닐까?혹시 키스까지 한 건가?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308화

    마리의 엉뚱한 논리에 시유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보통 여자라면 술에 취해 남자와 무슨 일이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 당황하고 후회하는 게 먼저일 텐데.마리처럼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던 걸 아쉬워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시유가 웃으며 말했다.“됐어, 마리야. 적당히 해. 너 자꾸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면 진구 선배님이 진짜 네가 원래 그런 애인 줄 알겠다.”“사실 제대로 연애해 본 적도 없으면서.”마리는 화들짝 놀라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쉿!”얼굴까지 새빨개졌다.“시유야! 그 얘기는 절대 진구 선배님 앞에서 하면 안 돼! 내가 보니까 선배님은 자신감 넘치고 화끈한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단 말이야.”“그러니까 나도 그런 사람처럼 보여야 관심이라도 가져 줄 거 아니야!”마리는 점점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앞으로 선배님한테는 내가 연애도 많이 해 봤고 경험도 엄청 풍부하다고 해 줘. 모르는 게 없는 것처럼!”“어떤 남자든 다 맞춰 줄 수 있는 여자라고!”말할수록 과장이 심해졌다.마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손짓까지 섞어 가며 떠들었다.그 모습에 시유와 연호는 배를 잡고 웃었다.바로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진구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디저트를 잔뜩 들고 들어왔다.마리의 허풍을 끝부분부터 들은 모양이었다.진구의 눈썹이 들썩였다.“꼬맹이. 생각보다 엄청 화끈하네?”마리는 그저 허세를 부린 것뿐이었다.실제로는 연애 경험도 거의 없고 이런 일에는 더더욱 서툴렀다.그런데 하필 자신의 허풍을 진구가 들어 버리고 말았다.마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그대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이대로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었다.진구는 그 모습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가져온 디저트를 옆 탁자에 올려놓고 마리의 뒤통수를 가볍게 쓰다듬었다.“그렇게 자신 있는 줄 알았으면 어제 내가 너무 얌전히 굴었나? 다음에 기회가 되면 네가 말한 만큼 대단한지 한번 확인해 봐야겠는데?”마리는 아예 베개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어디 숨을 구멍이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307화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뒤돌아보지 않은 채 고개만 가볍게 저었다.“아니. 아직 그 두 사람을 마주할 준비가 안 됐어.”변항이 무언가 더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남자는 이미 문을 밀고 어두운 밤거리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길고 쓸쓸한 뒷모습은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없었던 사람처럼.방 안에는 싸늘한 공기와 재떨이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담뱃불만 남았다....다음 날.시유가 정신을 완전히 차렸을 때는 병원이었다.옆 침대에는 마리가 누워 있었고, 두 침대 사이에 놓인 의자에는 연호가 턱을 괸 채 졸고 있었다.시유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미간을 찌푸렸다.왜 마리와 함께 병원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어젯밤 양고기를 먹고 돌아온 뒤 마리와 함께 술 한 잔을 마셨던 것뿐이었다.그 후로는 소파에 기대 잠들었던 것 같았다.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하지만 이상했다.어젯밤에는 빛나가 마음에 걸려 일부러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다.그 정도로 병원까지 실려 올 만큼 취할 리가 없었다.시유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마리도 눈을 떴다.마리는 주변을 확인하자마자 소리쳤다.“시유야! 우리 왜 병원이야?”“어제 그렇게 많이 취했나? 난 좀 많이 마시긴 했는데...”마리가 눈을 깜빡이더니 갑자기 말을 이었다.“나 이상한 꿈도 꿨어. 차 안에서 엄청 잘생긴 남자랑 진하게 키스하는 꿈이었거든. 진짜 현실 같았어.”마리는 아직도 꿈이 생생한지 신이 나서 떠들었다.그 소리에 연호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하마터면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았다.그리고 마리를 흘겨봤다.“그거 꿈 아닌데.”마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고연호, 방금 뭐라고 했어?”“꿈이 아니라고? 그럼 나 어제 누구랑 그런 거야?”연호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걸렸다.“어제 너 진짜 대단했어. 우리 형 목이랑 얼굴에 키스 자국을 잔뜩 남겨 놨거든. 셔츠도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306화

    “그리고 당신도... 외롭거나 힘들 땐 언제든 나한테 와도 돼요.”새나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하며 변항의 눈치를 살폈다.이렇게까지 나서는데 넘어오지 않을 남자는 없다고 믿었다.하지만 변항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표정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새나는 아예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그러자 변항이 곧바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머리 위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쇼는 이제 끝났습니까?”새나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그래서... 마음에 안 든다는 거예요?”변항은 무표정하게 그녀를 밀어냈다.그리고 옷에 뭐라도 묻은 듯 소매를 가볍게 털었다.“전혀요.”새나의 얼굴이 굳었다.“...”변항은 조금도 봐줄 생각이 없었다.“돈이랑 이런 수작으로 절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착각입니다.”새나는 자존심이 상해 얼굴이 붉어졌다.“당신...”변항은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비밀번호. 더 시간 끌 생각 없으니까 빨리 말씀하세요.”새나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화가 치밀었지만 변항의 서늘한 시선 앞에서는 더 버티기 힘들었다.결국 마지못해 비밀번호를 말했다.변항은 바로 핸드폰 잠금을 풀었다.영상 파일을 찾아 삭제하고 관련 자료까지 전부 확인했다.그리고 새나가 보는 앞에서 핸드폰을 바닥에 내리쳤다.몇 번이나 내리친 끝에 핸드폰은 완전히 망가졌다.저장장치까지 못 쓰게 만든 뒤에야 변항은 손을 멈췄다.새나는 최신형 핸드폰이 순식간에 망가지는 걸 보고 속이 쓰렸지만 감히 나서지는 못했다.조심스럽게 물었다.“핸드폰도 망가뜨렸고 영상도 지웠잖아요. 이제 보내 주는 거죠?”변항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아직입니다.”새나의 얼굴에 불안이 번졌다.“왜요?”변항은 차갑게 말했다.“확실히 경고해 둘 게 있습니다. 앞으로 시유 아가씨한테 또 이런 짓을 했다가는 이번처럼 끝나지 않을 겁니다.”새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변항이 가볍게 손뼉을 치자 방 안의 조명이 켜졌다.곧 문이 열리고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305화

    “읍...”새나가 제대로 소리를 내기도 전에 뒤통수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그 순간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 새나는 어두운 방 안에 있었다.눈앞에는 덩치가 큰 남자가 서 있었다.자신을 내려다보는 차가운 눈빛에 새나는 깜짝 놀랐다.“누. 누구세요?”남자는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핸드폰 하나를 꺼냈다.희미한 불빛 속에서도 새나는 단번에 알아봤다.자신의 핸드폰이었다.“비밀번호.”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였다.새나는 남자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 문득 기억해 냈다.평소 시유 곁에서 이런저런 일을 처리해 주던 남자였다.‘이름이 아마... 변항?’영상을 밖으로 넘기기도 전에 이 남자에게 붙잡히고 만 것이다.비밀번호를 알려 줬다가 핸드폰에 있는 영상을 지워 버리기라도 하면 오늘 밤 자신이 벌인 일이 전부 물거품이 될 터였다.새나는 이를 악물었다.“몰라요.”변항이 새나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뒤이어 차갑고 잔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이제 아시겠습니까?”뺨을 얻어맞은 새나는 눈앞이 번쩍거리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얼얼한 뺨을 감싸 쥔 채 비명을 지르듯 따졌다.“당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자가 어떻게 여자를 때릴 수 있어요? 그러고도 남자라고 할 수 있어요?”변항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새나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쥐었다.“제게 남녀 구분 따위는 없습니다. 맡은 임무만 있을 뿐이죠.”“비밀번호를 말하지 않으면 이 방에서 살아 나갈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변항은 조금도 힘을 늦추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뿌리째 뽑힐 듯 잡아당겨지자 새나는 두피가 저릿하고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참다못해 연달아 비명을 질렀다.“아파요...! 너무 아프다고요! 제발 놔주세요! 말할게요! 말하면 되잖아요!”그제야 변항이 머리채를 놓아주었다.새나는 변항을 빤히 바라보다가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눈동자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하지만 비밀번호를 털어놓기는커녕, 느닷없이 변항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혀끝으로 입술을 매혹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4화

    유민자가 허둥지둥 방에서 뛰쳐나오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지진이에요? 지금 지진 난 거예요?”장순영은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안고 있다가, 요란한 소리에 놀라 맨발로 가방부터 움켜쥐고 현관 쪽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심지어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었다.유민자와 장순영이 거실로 뛰어들었을 때, 두 사람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늘 차분하고 이성적이던 시유가 미친 사람처럼, 한때 그토록 아끼던 장식품들을 하나씩 바닥에 내던지고 있었다.유민자는 다급히 시유에게 달려가 말렸다.“사모님, 그만하세요! 제발 그만하세요! 무슨 일이든 차분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3화

    시유는 액셀을 깊게 밟아, 두 사람의 신혼집이 있는 단독주택 단지 ‘그림빌’로 차를 몰았다.현관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이 집에서 오래 일한 가사도우미 유민자와 시유가 따로 고용한 시터 장순영이 아이를 어르고 있었다.시유의 새하얗게 질린 낯을 본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사모님, 어디 편찮으세요?”시유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괜찮아요. 배가 좀 고파서요. 따뜻하게 닭칼국수 한 그릇만 해 주세요.”장순영의 품에서 아이를 받아 든 시유의 복잡하게 뒤엉킨 마음은, 보드랍고 발그레한 아기 얼굴을 보자 겨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2화

    연회장 안.시유의 시선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여준에게 박혀 있었다. 여준은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술잔을 들고, 새나를 데리고 테이블마다 돌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제 친구 영우가 해외 현장에 장기 파견을 나가 있어서, 돌아오려면 1년은 더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제가 영우 대신 인사도 드리고, 술도 대신 받겠습니다.”“새나는 아직 몸조리 중이라 술도, 찬 음료도 조심해야 합니다. 새나 몫으로 주시는 잔은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시유는 입안으로 넘어간 오렌지 주스가 유난히 차갑고 쓰게 느껴졌다. 가슴 안쪽

  •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제1화

    “여보, 우리 아기 오늘 태어난 지 한 달 됐잖아. 나랑 아기 데리러 올 수 있어?”임시유는 속싸개에 싸인 딸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수화기 너머에서 부여준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들려왔다. 감정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갑자기 일정이 생겼어. 기사한테 당신이랑 아기 태우고 집까지 오라고 할게.]출산할 때도, 산후조리 기간 내내 여준은 회사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시유와 아기의 곁에 없었다.이제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어 조리원에서 퇴원하는 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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