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어서야 진서준은 잠에서 깼다.진서준이 눈을 떴을 때 그의 침대 옆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그와 가장 가까운 것은 허사연 자매였다.두 사람은 침대 양옆에 각각 서 있었다.진서준이 깨어나자 허사연은 서둘러 물었다.“서준 씨, 목은 안 말라요? 배는 안 고파요?”예전 몸 상태였다면 하루 동안 안 먹어도 괜찮았다.하지만 오늘은 운동량이 많았기에 조금 배가 고픈 것 같았다.“조금 고프네요.”진서준이 말했다.“삼계탕 끓여놨으니까 얼른 먹어요!”그것은 허사연이 오후에 끓였던 삼계탕이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삼계탕을 데웠었다.“고마워요.”진서준은 감격했다.“나한테 뭘 그렇게 예의를 차려요?”허사연은 조금 불만스러운 듯 눈을 흘겼다.“침대 헤드에 기대요. 내가 먹여줄게요.”허사연은 한 손에는 그릇을, 다른 한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진서준에게 국을 떠먹였다.그 광경에 여러 미인이 부러워했다.진서준은 조금 부끄러웠다. 방 안에 사람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내가 알아서 먹을게요.”“안 돼요. 서준 씨는 지금 환자니까 내 말대로 해요!”허사연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그리고 난 서준 씨 여자 친구인데 밥을 먹여주는 게 뭐 어때서요?”말을 마친 뒤 허사연은 국을 한 숟가락 떠서 진서준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입 벌려요.”허사연이 부드럽게 말했다.진서준을 입을 벌려서 삼계탕을 마셨다.“안 뜨거워요?”허사연은 국을 먹인 뒤에야 온도를 확인해야 한다는 걸 떠올렸다.그녀는 한 숟가락 떠먹어 보았다. 온도는 괜찮았다.그녀는 계속해 진서준에게 국을 떠먹였다.진서준은 조금 흥분되었다. 허사연이 조금 전 숟가락을 썼기 때문이다.허윤진은 질투심 때문에 몸을 돌려 방에서 나갔다.“괜찮아 보이니 난 먼저 나갈게요.”진서준은 그제야 허윤진이 온 걸 발견했다.하지만 진서준은 그녀를 불러 세우지 않고 그녀가 나가게 내버려두었다.곧 한보영 등 사람들도 방에서 나갔다.“유정아, 조천무가 두 사람을 괴롭히지는 않았지?”진서준은 유정을 보
“엄재욱은 국안부 사람이에요. 권해철 씨와 한씨 일가가 나선다면 국안부에서는 분명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저 때문에 그런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어요.”진서준이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국안부의 강대함을 알게 된 진서준은 모든 일에 조심해야 했다.“서준 씨, 나 엄청 쓸모없죠?”허사연이 물었다.“왜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진서준은 의아했다.“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난 아무것도 못 하고 옆에서 지켜봐야만 하잖아요.”허사연은 미안한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진서준은 허사연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는 고개를 숙인 뒤 허사연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아뇨. 사연 씨는 아무것도 못 한 게 아니에요. 사연 씨는 내게 죽음을 마주할 용기를 주었어요. 난 사연 씨 덕분에 나 혼자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허사연은 진서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돼주진 못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많은 힘이 되었다.가끔 사람의 의지는 엄청난 힘을 갖기도 한다.오늘도 그랬다.탁현수가 마지막으로 공격했을 때, 진서준도 사력을 다했다.그때 진서준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가족들과 친구들이었다.그들이 있었기에 진서준은 탁현수의 그 일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서준 씨, 나도 수련하고 싶어요. 나도 서준 씨처럼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허사연이 말했다.“좋아요. 서라를 구해내고 나면 우리 같이 서남 강주로 가요. 그곳에 은영과가 있어요.”진서준은 작게 말했다.“은영과가 있다면 사연 씨도 수련할 수 있어요!”“좋아요. 약속해요!”허사연은 기뻤다.“그래요.”두 사람은 그렇게 평온하게 서로를 안은 채로 서로의 숨결을 느꼈다.허사연이 갑자기 말했다.“서준 씨, 우리 결혼해요!”그 말에 진서준은 당황했다.그는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고, 또 내년 3월 신농산의 약속을 완수하지 못했다.이제 내년 3월까지 7달 정도 남았다.진서준은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고, 신농산에서 돌아온 뒤 허사연에게 프러포즈할 생각이었다.“싫은... 거예요?”
유지수의 묘사를 들은 진서준은 머릿속에 한 영약의 이름이 떠올랐다.바로 옥선화였다.장철결에는 그 꽃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외형은 천산설련과 아주 흡사하지만 색깔과 그것의 약효는 천산설련과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게다가 그 약을 찾는 건 몹시 어렵다고 한다. 강주의 성약당에도 없을지 몰랐다.“유지수, 날 난처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대체 어디로 가서 옥선화를 찾으라는 거야?”진서준은 매우 분노했다.그가 보기에 유지수는 진서라를 돌려주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어려운 미션만 주는 거로 생각했다.“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난 옥선화를 원해. 못 찾으면 각오해야 할 거야. 5일 줄게. 기한을 넘기면 날 탓하지 마.”말을 마친 뒤 유지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진서준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주먹에서 소리가 났다.옥선화가 어디에 있는지만 알아도 시도해 볼 수 있었다.그러나 문제는 옥선화가 어디 있는지 전혀 모른다는 점이었다.그날 밤, 진서준은 어떻게 진서라를 구해낼지 고민하느라 잘 자지 못했다....경성, 국안부.백발이 성성하지만 27, 28살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천의방 제40위인 최현우는 국안부 호국장군으로 청연진군으로 불렸다.마찬가지로 국안부 호국장군인 송경식은 천의방 제39위로 천자진군으로 불렸다.두 사람은 경성을 지키고 있었다.그들이 있어서 경성의 큰 가문들은 마구 날뛰지 못했다.“남주성에 대단한 놈이 나타났던데?”“맞아. 겨우 20대인데 실력이 무시무시하더라고. 아마도 경성의 한 대가문의 자식인가 봐.”점심에 진서준이 탁현수를 죽이고 9명의 종사를 죽인 일은 이미 사방팔방으로 소문이 났다.특히 소식이 빠른 국안부는 엄재욱 등 사람들이 죽은 후 한 시간 뒤 그 사실을 알았다.하지만 국안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가까이 있던 호국사를 보내 엄재욱 등의 시신을 수습했을 뿐이다.그들은 진서준의 일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었다.무도와 술법과 횡련, 거기에 검의까지 깨우친 인재라
용잡이 계획.그들은 화진이라는 이제 막 떠오르는 용을 죽이려고 했다.대가문의 자식들은 그들의 암살 목표가 되었다.화진이 번성하고 강대해진 뒤, 국안부의 호국장군 8명이 나라를 지킨 덕에 해외 세력은 잠깐 잠잠해졌다.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고 있었다.“그놈들 정말 지독하네.”최현우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송경식이 말했다.“진서준이라는 놈이 진씨 일가의 사람인지 아닌지는 곧 알 수 있을 거야. 지금은 당장 진서준을 국안부로 끌어들여야 해. 우리 국안부라는 이름이 있어야 혈운 조직, 성약당, 강남 서씨 일가, 김씨 일가, 그리고 해외 세력도 전부 잠잠해질 테니까.”최현우는 쓴웃음을 지었다.“그 녀석 나이는 많지 않은데 사고는 정말 많이 치고 다니네.”“우리가 인재를 아끼지 않았다면 우리 국안부까지 적으로 돌렸을 거야.”조금 전 송경식이 말한 조직들은 전부 진서준과 악연이 있었다.진서준이 국안부로 들어온다면 성약당, 그리고 강남의 두 가문은 손을 쓰기 전에 본인들이 국안부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고려하게 될 것이다.국안부의 호국장군 8명은 엄청난 자들이었으니 말이다....보운산 화령문.한 사람이 그곳에 나타났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혈운 조직의 대성 종사 권시준이었다.화령문이 폐허가 된 걸 본 그는 예준섭 등 네 명이 이미 죽었을 거라고 짐작했다.“대체 누가 그들을 죽인 거지? 진서준이라는 자식일까? 아니면 화령문의 늙은이들일까?”권시준은 대체 누가 예준섭 일행을 죽인 건지 몰랐다.그러나 누가 죽였든 절대 진서준은 가만둘 수 없었다.이때 권시준은 문자 하나를 받았다.문자 내용을 확인한 권시준은 깜짝 놀랐다.“남주성에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진 마스터가 설마 진서준은 아니겠지?”권시준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일단 진서준의 행방부터 찾아봐야겠어.”권시준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인천 공항.서남쪽에서 날아온 비행기가 착륙했다.비행기 안, 한 사람이 아
창격이 죽었을 때 제마 법왕은 이미 그 사실을 감지했었다.당시 창격을 제자로 받아들였을 때 제마 법왕은 그의 체내에 흔적을 남겼었다.그 흔적으로 제마 법왕은 창격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창격이 죽는다면 그 흔적이 사라지게 된다.제마 법왕은 바로 그 흔적에 근거하여 창격을 찾아낸 것이다.어찌 됐든 창격은 마교 사람이었고 그의 제자였기 때문이다.제자가 살해당했으니 제마 법왕은 절대 가만있지 않을 생각이었다....같은 시각.손승호는 비행기를 타고 남조 한신으로 왔다.그는 서진의 박주신 형제가 죽은 사실을 박씨 일가에 알리러 온 것이다.그는 박씨 일가의 손을 빌려 진서준을 죽일 생각이었다.박씨 일가, 손승호는 박주신 형제의 아버지 박인성을 찾았다.박인성은 인의방 10위인 해외 강자였고 선천 1품이었다.“박인성 씨, 박인성 씨 두 아들이 화진의 진서준이라는 놈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그 진서준이라는 놈은 박인성 씨 아들의 머리를 축구공으로 삼아서 가지고 놀았습니다!”손승호는 진서준을 극악무도한 사람으로 묘사했다.그리고 진서준이 박주신 형제의 시체를 마구 학대했다고 말했다.박인성은 그 말에 너무 화가 나서 앞에 놓여 있던 대리석 탁자를 단번에 가루로 만들어버렸다.손승호는 그 모습을 보고 몰래 기뻐했다.“진서준, 네가 이번에도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박인성은 눈이 벌게진 채 손승호를 바라보았다.“내 아들을 죽인 범인은 어디 있어?”손승호는 박인성의 모습에 깜짝 놀라서 서둘러 시선을 피했다. 그는 감히 박인성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했다.“지금 화진 남주성에 있습니다. 아마 집에 있을 거예요. 박인성 씨가 자기를 죽일 거라고는 꿈에도 모를 겁니다.”박인성은 그 말을 듣고 곧바로 하인에게 화진 남주성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공편을 구하게 했다.내일 아침 일찍 그는 화진 남주성으로 가서 자기 아들을 죽인 놈에게 복수할 것이다....정월문.문희수와 경두진 두 사람은 이미 사문으로 돌아갔다.정민식은 두 사람이 폐인이 된 걸 보고 기쁘기
식사를 마친 뒤 한보영은 곧바로 사람을 시켜 옥선화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다.만약 유용한 정보를 얻게 된다면 10억을 상으로 줄 거라고 했다.돈을 준다는 말에 한씨 일가의 부하들은 미친 듯이 옥선화의 행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점심 때쯤, 한씨 일가에 두 명의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한서강이 직접 그들을 맞이했다. 그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설 종사님, 양 종사님!”두 사람은 국안부에서 보낸 정안사였다.그들은 진서준을 국안부에 영입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진서준 씨 이곳에 있나요?”설 종사가 물었다.두 사람이 진서준을 찾아온 걸 알게 된 한서강은 속으로 불안해했다.그는 그들이 진서준을 잡으러 온 건지, 아니면 뭘 하러 온 건지 알지 못했다.만약 진서준을 잡으러 온 거라면, 또 진서준과 충돌이 생기면 큰일이었다.“진서준 씨는 쇼핑하러 가서 집에 없습니다. 볼일 있으시면 제가 진서준 씨께 전해드리겠습니다.”한서강이 말했다.“아뇨, 저희는 여기서 진서준 씨를 기다리겠습니다.”설 종사와 양 종사는 진서준이 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한서강은 곧바로 사람을 시켜 차를 내왔고 본인은 핑계를 대고 잠깐 자리를 비운 뒤 진서준에게 연락했다.“진서준 씨, 큰일이에요!”“무슨 일이죠?”진서준은 허사연 등과 쇼핑하고 있었는데 한서강이 큰일 났다고 하자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국안부에서 종사 두 명이 찾아왔어요. 지금 우리 집에서 진서준 씨를 기다리고 있어요.”한서강이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에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덤덤히 웃었다.“기다리라고 해요.”“하지만... 하지만 저 사람들이 진서준 씨를 잡으러 온 거라면요?”한서강은 서둘러 말했다.“국안부는 제가 1품 대종사를 죽인 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절 잡으려고 일반 종사를 보냈을까요?”진서준은 웃으며 말했다.한서강은 진서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진서준을 잡으려고 한다면 적어도 대종사 두 명은 필요했다.“그렇다면 진서준 씨는 그들이 무엇
한서강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국안부가 성립하고부터 지금까지 국안부의 요청을 거절한 무인은 없었다.국안부에 가입한다면 해당 지역에서 엄청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진정한 권력자들인 시장들도 그들을 존경하고 정중히 대해야 했다.수많은 사람이 국안부에 들어가길 원하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그런데 진서준이 그 기회를 차버렸다.“진서준 씨, 잘 생각해 보세요. 국안부에 가입하면 정말로 승승장구할 수 있을 겁니다.”한서강은 서둘러 진서준을 설득했다. 그가 마음을 바꿨으면 해서 말이다.하지만 진서준은 확고했다. 한서강은 절대 그를 설득할 수 없었다.“두 사람에게 전하세요. 전 국안부에 가입하지 않을 거라고.”말을 마친 뒤 진서준은 전화를 끊었다.한서강은 한숨을 쉰 뒤 거실로 나갔다.“두 분, 진서준 씨는 곧 돌아올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죠.”한서강은 감히 그들에게 사실을 전하지 못했다.그는 진서준이 돌아온 뒤 다시 한번 그를 설득할 생각이었다.“빨리 오라고 하세요. 저희의 시간은 매우 귀합니다.”양 종사가 짜증스레 말했다.다른 한편, 진서준은 허사연 등과 쇼핑을 마친 뒤 호텔을 예약했다.그는 한서강이 말한 일을 완전히 잊었다.“서준 씨!”호텔에 들어서자마자 한 여자가 진서준을 불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얼마 전 진서준이 구했던 그 연예인 배수정이었다.“정말 서준 씨네요!”배수정은 진서준인 걸 확인하고는 매우 흥분해서 빠르게 그에게로 다가갔다.“서준 씨, 배수정 씨도 알고 계세요?”옆에 있던 한제성은 배수정을 보자 눈을 빛냈다. 당장이라도 침을 흘릴 것 같았다.그는 배수정의 팬이었고 그녀가 출연한 모든 드라마를 다 봤었다.배수정 실물을 본 한제성은 흥분 때문에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한제성의 실없는 모습에 진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얼마 전에 제가 구해줬거든요.”진서준이 설명했다.“네?”한제성은 당황했다.그는 배수정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진서준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이 일은 강은우가 제멋
한씨 일가의 도련님이 연예인 앞에서 저렇게 저자세로 나가다니.한보영은 비록 연예계에 종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연예계가 얼마나 깨끗하지 못한지 알고 있었다.유명한 연예인 중 99%는 깨끗하지 못했다.눈앞의 배수정은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긴 했다. 그러나 한보영은 그녀가 틀림없이 성 상납을 한 적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흥분한 한제성 앞에서 배수정은 아주 침착했다.그녀는 싱긋 웃었다.“좋아요.”배수정이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자 한제성은 너무 흥분해서 기절할 것 같았다.한제성은 연달아 십여 장을 찍은 뒤 만족스럽게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허사연은 배수정을 보면서 물었다.“배수정 씨, 고양시로 오신 건 새 작품을 촬영하기 위해서인가요?”“아뇨.”배수정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지나가던 길이었는데요. 저녁에 차 타고 강남 금운으로 갈 생각이에요.”“거기는 왜요?”한제성이 궁금한 듯 물었다.“김씨 일가에서 파티를 주최하는데 제가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했거든요. 김씨 일가 가주님 딸이 돌아온 걸 축하해주기 위해서라고 하던데요.”배수정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설명했다.그녀는 회사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상당히 당황스러웠다.딸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유로 파티를 열고 배수정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니?너무 사치스러웠다.그러나 김씨 일가에 대해 알아본 배수정은 금방 속이 후련해졌다.김씨 일가는 강남에서 두 번째로 대단한 가문으로 재력이 엄청났다.진서준은 배수정의 말을 듣자 안색이 바로 돌변했다.“김씨 일가 가주가 설마 김형섭인가요?”“네, 아세요?”배수정은 놀랐다.김씨 일가는 아주 대단한 가문이었기 때문이다.진서준은 당연히 김씨 일가를 알고 있었다. 며칠 전 김연아의 생일 파티 때 김형섭과 다툰 적도 있었다.김연아가 김씨 일가로 돌아가지 않을 거로 생각했었는데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걸까?설마 김형섭이 김연아를 위협한 걸까?김연아는 진서준의 친한 친구였기에 진서준은 그냥 지켜볼 수가 없었다.그는 곧바로 휴대전화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