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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같은 방향

مؤلف: 지호
last update تاريخ النشر: 2026-07-23 18:58:22

“나만 너 좋아하는 줄.”

휘웅의 마지막 말이 떨어진 뒤, 지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작 여덟 글자였다. 그런데 그 짧은 문장이 가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그동안 혼자 품어 온 감정을 모조리 뒤흔들었다.

지호는 대본을 품에 안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만으로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그런데 휘웅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다니. 그것도 자신만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말하다니.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어떤 말을 돌려줘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입술은 몇 번이나 달싹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휘웅은 그런 지호를 재촉하지 않았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까지 대본을 넘기던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평소처럼 느긋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얼굴에 남은 미소는 어딘가 어색했다.

지호는 그제야 알았다. 태연해 보이는 휘웅도 긴장하고 있다는 걸.

그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놓이게 했다.

“가자.”

휘웅이 먼저 카페 출입문 쪽을 향했다. 지호는 품에 안은 대본을 가방에 넣어 끌어안고 그의 뒤를 따랐다.

카페 밖으로 나오자 선선한 저녁 바람이 달아오른 얼굴을 스쳤다.

주말 저녁의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웃으며 지나가는 연인들, 친구들과 장난을 치는 학생들, 길가에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지호에게는 모든 것이 조금씩 달라져 보였다.

옆에 강휘웅이 걷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지호는 괜히 발 아래만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들었다가 휘웅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조금 전 들었던 말이 다시 떠오를 것 같았다.

'나만 너 좋아하는 줄.'

그 문장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놀이공원에서 휘웅을 처음 봤던 날부터,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포카칩을 건네도. 버스에서 손을 놓지 말라고 해도. 다 먹으면 다시 만나야겠다고 말해도.

그저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휘웅이 원래 다정한 사람이어서, 자신이 혼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거라고 수없이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그 생각이 들 때마다 심장이 간질거리다가도, 이내 겁이 났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을까.

“윤지호.”

갑자기 이름이 불려 지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인도 뒤쪽에서 자전거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조심.”

휘웅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커다란 손이 지호의 어깨를 감싸 제 쪽으로 당겼다. 몸이 가볍게 끌려가며 이마가 그의 가슴께에 닿았다.

짧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단단한 몸과 따뜻한 체온, 익숙한 비누 향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자전거가 두 사람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괜찮아?”

휘웅의 목소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렸다.

“네. 괜찮…….”

지호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아직도 휘웅의 손이 자신의 어깨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같았으면 단지 놀랐을 접촉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알아버린 뒤에는 손 하나, 눈빛 하나까지 전부 다르게 느껴졌다.

휘웅도 뒤늦게 가까워진 거리를 깨달은 듯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어색하게 목덜미를 한 번 쓸었다.

“다칠 뻔했네.”

“그러게요.”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달랐다. 불편하거나 답답한 침묵이 아니었다.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조심스럽게 다음 문장을 기다리는 시간에 가까웠다.

한참을 걷던 지호가 겨우 입을 열었다.

“오빠.”

“응.”

“언제부터였어요?”

휘웅의 걸음이 아주 조금 느려졌다. 무엇을 묻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앞을 바라보며 생각하더니,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글쎄.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휘웅은 길가의 작은 돌멩이를 발끝으로 툭 밀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자꾸 네 생각을 하고 있더라. 딱히 이유도 없이.”

지호의 심장이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휘웅은 그제야 지호를 돌아보았다. 꾸며낸 말도, 사람을 설레게 하려고 계산한 대사도 아니었다. 자신의 마음을 처음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솔직하고 담백한 얼굴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좋아하고 있더라.”

지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눈가가 조금 뜨거워졌다.

휘웅에게는 사소했을지 모르는 순간들을 혼자만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자신에게만 특별했던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마음을 키우고 있었다.

그 사실이 기뻐서, 오히려 겁이 났다. 조심스럽게 간직해 온 첫사랑이 정말 현실이 되는 순간 같았기 때문이다.

휘웅이 지호의 얼굴을 살폈다.

“왜 울 것 같은 표정이야.”

“안 울어요.”

“그럼 다행이고.”

그는 더 묻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지호가 스스로 감정을 정리할 때까지 가만히 옆을 지켜주었다.

그 다정함이 좋아서 지호는 결국 작게 웃었다. 휘웅도 따라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나란히 걸었다. 어깨가 가끔 가볍게 스쳤지만, 이번에는 누구도 굳이 거리를 벌리지 않았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 거리. 지호는 품에 안은 대본을 고쳐 안으며 슬쩍 옆을 올려다봤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비밀이, 지금은 나란히 걷고 있는 이 사람과 함께 나눈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첫사랑이, 사실은 처음부터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로 오늘 하루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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