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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집에 가는 길

作者: 지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2 11:59:48

“지호야, 이쪽으로 와!”

유진이 손짓하며 부르는 소리에 지호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시작은 그저 조별 과제 뒤풀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유진이 다른 과 동기들과 미리 짜 둔 과팅 자리였다. 좁은 룸 안에는 처음 보는 얼굴들이 가득했고, 다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소개를 주고받고 있었다.

“유진아, 나 이런 얘기 못 들었는데.”

지호가 작게 속삭이자, 유진이 눈을 찡긋했다.

“그냥 밥만 먹고 가면 돼. 재밌을 거야.”

재밌을 리가.

지호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만 만지작거렸다. 맞은편에 앉은 남학생이 뭔가 열심히 말을 걸어왔지만,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숨이 막혔다. 웃어야 할 타이밍에 웃고, 대답해야 할 타이밍에 대답했지만, 정작 머릿속은 텅 빈 것 같았다.

'그냥, 집에 가고 싶다.'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지호는 결국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화장실 좀.”

유진에게 눈짓으로 양해를 구한 뒤, 지호는 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화장실 대신 곧장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더 버틸 자신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선 지호는 닫힘 버튼을 다급하게 눌렀다. 문이 절반쯤 닫히려던 순간이었다.

“어.”

누군가 손을 뻗어 문을 다시 열었다.

지호는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강휘웅이었다.

“오빠가 여긴 왜…….”

지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휘웅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동학을 만나러 왔다가 우연히 마주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문이 닫히고, 좁은 공간에 둘만 남았다.

휘웅은 대답 대신 지호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러다 짧게 물었다.

“왜 혼자 나와.”

“그냥… 답답해서요.”

솔직한 대답이었다. 휘웅은 잠시 말이 없다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음부터 과팅 같은 거 나가지 마.”

“…네?”

지호가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휘웅은 이미 시선을 정면으로 돌린 뒤였다. 표정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장난인지, 진심인지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숫자가 하나씩 줄어드는 동안, 지호의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뛰었다. 1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마자, 지호는 인사도 제대로 못 한 채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와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그런데도 얼굴은 식을 줄 몰랐다. 조금 전 엘리베이터 안에서 있었던 일이 자꾸만 떠올랐다.

'다음부터 과팅 같은 거 나가지 마.'

장난처럼 들리기도 했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빨라.”

지호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휘웅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함께 내린 뒤 자연스럽게 헤어질 줄 알았는데, 그는 어느새 지호의 바로 뒤까지 따라와 있었다.

“안 가셨어요?”

“가야지.”

휘웅이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보호자님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안 심각한데요.”

“거짓말.”

그는 피식 웃으며 지호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귀까지 빨개졌어.”

지호는 반사적으로 양손으로 귀를 가렸다.

“안 빨갰거든요.”

“그래?”

“네.”

“그럼 다행이네.”

전혀 안 믿는 표정이었다.

지호는 괜히 앞만 보고 걸었다.

평일 오후 대학가 거리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술집 간판 불빛이 골목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이고 있었고, 멀리서 누군가 웃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둘 사이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정확히는, 지호 혼자 어색했다. 휘웅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

오히려 조금 전 엘리베이터에서 사람 심장을 뒤집어 놓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태평한 거야.'

지호는 슬쩍 휘웅을 올려다봤다. 가로등 아래 비친 옆모습은 여전히 말도 안 되게 잘생겼다. 높은 콧대와 짙은 눈매, 무심한 얼굴. 그런데 가끔 저 입꼬리가 올라갈 때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배고픈데.”

휘웅이 불쑥 말했다.

지호가 걸음을 멈췄다.

“네?”

“과팅 갔는데 제대로 먹은 게 없어.”

“그건 오빠가 늦게 와서 그런 거 아니에요?”

“아.”

휘웅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너무 순순히 인정해서 지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웃네.”

“…안 웃었거든요.”

“또 거짓말.”

그가 작게 웃었다.

이상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숨이 막힐 것 같았는데, 밖으로 나오니 다시 평소의 휘웅이었다. 장난을 치고, 툭툭 놀리고,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웃게 만드는 사람.

“떡볶이 먹을래?”

지호가 고개를 들었다. 길 건너 포장마차를 가리키며 휘웅이 물었다.

“갑자기요?”

“갑자기는 아니고.”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계속 먹고 싶었어.”

“그럼 친구들이랑 드시지.”

“싫었는데.”

“왜요?”

휘웅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너랑 먹고 싶어서.”

너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지호의 심장은 전혀 아무렇지 못했다.

그는 그런 지호의 반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사람처럼 횡단보도 쪽으로 먼저 걸어갔다.

“안 와?”

지호는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포장마차 안은 따뜻했다.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마주 앉자, 아주머니가 메뉴판도 가져다주지 않은 채 물었다.

“학생들, 떡볶이랑 튀김?”

휘웅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순대도 주세요.”

“내 거예요?”

지호가 묻자, 휘웅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응.”

“제가 순대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몰랐는데.”

익숙한 대답이었다. 지호가 피식 웃었다.

“또요?”

“왠지 좋아할 것 같았어.”

며칠 전 복숭아 음료를 건네던 날과 똑같은 말이었다. 지호는 괜히 종이컵만 만지작거렸다.

잠시 후 음식이 나오자 휘웅은 아무렇지도 않게 떡볶이 접시를 지호 쪽으로 밀어줬다.

“많이 먹어.”

“오빠도 드세요.”

“응.”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한참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휘웅이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네?”

“너 과팅 체질은 아닌 것 같아.”

지호가 떡볶이를 먹다 말고 그를 바라봤다.

“왜요?”

“아까 나올 때 표정 봤거든.”

“무슨 표정이었는데요?”

휘웅은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전교 1등이 갑자기 강제로 MT 끌려온 표정?”

“뭐예요, 그게.”

“딱 그랬어.”

지호는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과 억지로 웃고 떠드는 것보다, 지금처럼 둘이 앉아 떡볶이를 먹고 있는 시간이 훨씬 편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지호는 괜히 마음이 이상해졌다.

그때였다. 휘웅이 문득 물었다.

“윤지호.”

“…네?”

“너 원래 다 이렇게 경계해?”

“제가요?”

“응.”

그는 턱을 괸 채 지호를 바라봤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는 잘 안 웃잖아.”

지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이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었다. 친해지는 데도 오래 걸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휘웅 앞에서는 자꾸 웃게 됐다.

“잘 모르겠어요.”

지호가 작게 중얼거리자, 휘웅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다행이다.”

“뭐가요?”

그가 콜라 컵을 손끝으로 굴리며 말했다.

“나한테는 조금 풀린 것 같아서.”

순간, 지호의 심장이 아주 조용히, 하지만 분명하게 내려앉았다.

포장마차 밖으로 밤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멀리서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지호는 문득 깨달았다. 놀이공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잘생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터미널에서는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강휘웅은 점점 더 특별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자기만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두 사람은 나란히 정류장 쪽으로 걸었다. 아까보다 한산해진 거리에는 두 사람의 발소리만 나직하게 울렸다.

정류장 앞에 다다랐을 때, 휘웅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지호도 덩달아 멈춰 섰다.

“왜요?”

휘웅은 대답 대신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 표정이 평소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장난기도, 나른함도 아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지호야.”

“…네?”

그가 입을 열려다, 잠시 멈췄다.

지호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무슨 말이 나올지 알 수 없어서, 심장이 먼저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휘웅은 끝내 말을 삼키듯 픽 웃어 버렸다.

“아니다.”

“…네?”

“다음에 말할게.”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지호는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선 채, 방금 그가 삼킨 말이 무엇이었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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