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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팜므파탈, 불길에 기름을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8 12:05:03

깊은 밤.

그 시각, CH-컴퍼니 테헤란로 본사 10층 휴게실.

걸그룹 ‘에스텔라’는 신곡 발매를 앞두고 땀에 젖은 안무 연습을 이어가다 잠시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하나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더니, 경멸과 은밀한 호기심이 뒤섞인 열띤 목소리로 비난을 쏟아냈다.

“어머, 신하늘 그 여자.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악녀네. 증거도 쫙 깔렸잖아?”

하나의 말에 두나는 신하늘이 명품을 두른 채 차준호와 공식 석상에 등장했던 기사 사진들을 훑으며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언니. 김희주 의원이 터트린 게 마냥 억지는 아닌가 봐. 새벽에 대표님이랑 그렇게 은밀하게 가까이 지내면서도 뒤로는 참 여러 남자를 만났네요.”

그동안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나나까지 입을 삐죽이며 한마디를 거들었다.

“처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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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오후.회진을 돌던 의료진이 VIP병실로 와서 나와 차준호에게 단단히 경고를 내리고 떠났다.[차 대표님, 대수술을 받은 지 겨우 사흘째입니다. 아무리 휠체어로 이동하시더라도 복부에 힘이 들어가면 봉합한 수술 부위가 터질 수 있어요. 절대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신하늘 님도 수액이 다 들어가기 전까진 안정을 취하셔야 하고요.]하지만 정작 우리 중 그 누구도 제 몸 하나 가눌 마음의 여유 따위는 없었다.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입맛이 전혀 없었지만, 어떻게든 견뎌내기 위해 억지로 미음 몇 숟가락을 삼키고 자리를 옮겼다.강진욱이 마지막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서늘한 선고를 내린 직후라, 중환자실 앞 복도에 앉아 있던 차진아와 고미주 여사의 눈은 이미 붉게 퉁퉁 부어 있었다.중환자실의 육중한 자동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차가운 복도 너머로 누군가의 삶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듯한 오열과 둔탁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차준호를 시작으로 고미주 여사, 그리고 차진아까지⋯. 각자의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위해 무균병동 문턱을 넘었던 이들이 하나둘 돌아왔을 때,그들의 눈동자는 이미 삶의 의지나 초점을 완전히 잃어버린 납빛이었다.그리고 마침내, 내가 그 문턱을 넘어야 할 차례가 되었다.서늘한 멸균 비닐 무균복을 덧입고, 마스크와 위생 장갑, 헤어캡까지 꼼꼼히 갖추었다.전신을 감싸는 알코올 소독액의 서늘하고 찌릿한 감각을 두른 채, 나는 마침내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처럼 느껴지는 그 이질적인 공간으로 천천히 발을 들였다.***중환자실 무균병동 안은 숨이 막힐 정도로 삭막했다.천장을 어지럽게 가로지르는 수많은 기계 배선과 낮게 가라앉은 차가운 공기,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 규칙적이지만 위태롭게 울리는 전자음들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84. 희망: 거친 운명에 늘 승리한 나

    L그룹 회장 취임식을 단 며칠 앞둔 이아준의 회장실은 상당히 분주했다.요 며칠 자신도 신하늘의 선거 운동을 따라다니고, 병원을 들락날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그러다 보니 일은 밀렸고, 수십 조가 오가는 사업을 결정하고 쇄신하는 브리핑이 이어지자 뒷골이 당겨와 쓰러질 것만 같았다.통유리창 너머 한강의 물결은 봄햇살을 받아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임원단들과 L그룹의 각종 지표가 띄워진 대형 모니터 화면은 전부 퍼렇게 내리막만 꽂아대고 있었다.하지만 그 모니터를 띄워 놓고도 이아준의 노트북 옆쪽에는 작은 헤드라인으로 정치 뉴스가 실시간으로 깜빡이고 있었다.[‘임신’ 사실 숨긴 채 총선 레이스를 완주한 신하늘, 득표율 압승으로 국회 입성][임신을 무기로 삼지 않은 그녀, 오직 공약과 정책으로 승부한 신하늘 당선인의 저력은 K정치의 새 지표를 열다][외신도 주목한 신하늘의 행보⋯ 한국 정치가 나아갈 새로운 지평이 되다][차준호 CH컴퍼니 대표, 아내의 곁에서 묵묵한 외조 후 탈진, 온 가족이 입원 중으로 알려져]기사의 댓글 창에는 그녀를 향한 전 세계적 갈채와 찬사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기존 정치인들처럼 동정표를 구하거나 네거티브 프레임도 거부한 신하늘이었다. 특히 개인의 신상 이슈를 프레임으로 활용하지 않고, 오롯이 정직하게 정면 돌파해 낸 신하늘의 행보에 사람들은 환호했다.화면을 천천히 시선으로 쓸어내리던 이아준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세상은 겉으로 드러난 승전가와 신화에 열광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지만, 그 화려한 가면 뒤에 숨겨진 진실을 아는 그로서는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아려왔다.‘하늘아⋯ 아이를 갖고도 그 지옥 같은 선거판을 버텨내다니. 게다가 차준호에게 이식까지 하려 한 건 너무했잖아. 대체⋯ 얼마나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 비밀의 밤, 잔인한 선물

    ‘이 나쁜 자식!’지난 3년간 내게 보인 그 모든 다정함은 한낱 유희였을까? 차준호에 대한 배신감에 속이 문드러져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부서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자존심을 끌어모아,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며 도도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대표님은 그동안 절 어찌 보셨는데요?”나는 유리창 너머로 썰물처럼 번지는 화려한 야경을 사납게 응시하며, 심장에 박힐 날 선 말을 뱉어냈다.“네 주변에 남자가 들끓어 보였거든.”뻔질나게 전화를 걸어오는 남사친 둘을 두고 한 오해였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동안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1. 사람 미치게 하는 거짓말 같은 날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정적을 깨우는 밤 11시 반 무렵.창밖으로는 하얀 눈꽃이 송이송이 흩날리며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고 있었지만, 강남 C 호텔 25층 로열 스위트룸 내부는 숨 막힐 듯 팽팽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조도를 최대한 낮춘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차준호라는 거대한 포식자에게 온전히 잠식당한 채, 밤을 녹여내는 은밀하고도 위태로운 시간을 보냈다.내 몸의 지도를 그보다 더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었다. 귓가를 어지럽히는 그의 뜨겁고도 습한 숨결이 예민한 목덜미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9. 빌런을 좋아한 건가. 이런 망할.

    난 차준호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오전에 회사에 들른 뒤 자료를 챙겨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진창에 처박힌 내 마음처럼 흐릿했다.가던 중에 벨이 울려 확인하니 반가운 도국이었다.-하늘아, 어디야?요즘 부쩍 날 챙겨 주는 도국과 이아준이었다. 회사 일로 바쁜 날 염려해 주는 동시에 고민이 있는 엉망인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여러모로 신경 써주니 고맙기만 했다.“바쁜데, 뭘 또 전화까지. 난 병원 가는 길.”-어제도 밤새 게임같이 해 놓고 피곤하겠네.“오늘 3시 출근이라 늦잠 잤어. 참,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8. 내가 미쳤지.

    무슨 그런 거짓말을.내 머릿속에선 운명 교향곡이 요동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수면 부족과 카페인의 부작용일까. 평소 차분함과 다혈질이 공존하던 내 감정은 이미 균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화살은 이미 날아갔고 물은 엎질러졌다.“재미있네. 나는 신 비서를 좋아하지도, 사귈 리도 없을 텐데?”차준호는 내 말을 믿지 않았는지 코웃음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목에 닿은 펜던트를 무의식적으로 만지다가, 그의 손길이 닿았던 순간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이걸 그가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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