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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고독을 즐기며 예견된 파멸을 걷는 남자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7 12:05:07

병원 복도에는 하얀 소독약 냄새가 공기 중에 자욱하게 맴돌며, 마치 유령의 숨결처럼 서늘하게 피부를 핥고 지나갔다.

차진철 회장의 눈빛에는 칼날처럼 날이 서 있었다. 그것은 듣고 싶지 않은 잔인한 진실을 터뜨려 버린 나를 향한 원망이자, 무너진 자존심이 내뿜는 독기였다.

“신 비서, 선거로 바쁜 몸일 텐데 남의 집안일에 유난 떨지 말고 어서 돌아가!”

피 끓는 아비의 절박함인 동시에, 무너져 내린 위엄을 지키기 위한 비겁한 화풀이였을지언정 난 반발하지 않았다.

오한이 서릴 정도의 무시와 멸시를 해도 차준호만 살릴 수 있다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차 대표는 절대로 이식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어. 큰일이야, 신 비서. 제발 살려줘.]

고미주를 통해 알게 된 그 잔인한 진실이 귓가를 울렸다.

그렇기에 나는 차진철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끌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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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243. 그가 내 발밑에 바치는 찬란한 선물들

    서울의 밤공기는 3월 말의 미온을 머금지도 못한 채, 10층 옥상 표면을 차갑게 쓸어내리고 있었다.강제로 통화를 잘라버린 그의 행동에는 망설임이라곤 단 1밀리그램도 섞여 있지 않았다.철저히 자신의 궤도대로만 세상을 돌리려는 남자.바로 지독히도 차준호다운 무자비함이었다.“대표님, 남겨질 저는 어쩌라고요? 회장님은요?”속에서 검은 잿가루가 흩날리듯 타들어 갔으나, 그를 향해 던진 내 절박한 눈빛은 차준호의 오만한 웃음 앞에 무력하게 튕겨 나갔다.달빛을 오롯이 쏟아부은 듯 신비롭고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단어는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내 인생이잖아. 내 마음이야.”또. 또 그 전형적인 차준호식 회피이자 오만이었다. 가슴 바닥에서부터 뜨거운 오기가 밀려와 목구멍을 찔렀다.“대표님은 정말 나쁜 남자예요. 이렇게 한 사람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으면, 최소한 책임이라도 지셔야죠!”내 비명이 옥상 바람에 흩어지자마자, 그는 슈트 주머니에서 지난번 제주도에서 보여준 작고 묵직한 벨벳 케이스를 꺼내 들었다.딸깍. 밤의 정적을 깨뜨리는 정갈한 마찰음과 함께, 은은한 달빛을 튕겨 내는 반지 한 쌍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러니까 책임진다고. 손 내밀어, 반지 껴.”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그를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통에 숨소리가 잘게 떨려 나왔다.“저랑 결혼해서, 평생을 함께할 것도 아니잖아요!”오래오래 살아서 백년해로하고, 아이를 낳아 함께 늙어가며 주름진 손을 잡아줄 ‘진짜 가족’이 되어줄 것도 아니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7. 완벽한 타인의 숨결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유령처럼 떠돌던 이름의 실체.신하늘, 신 비서. 차준호는 누워 있는 내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울리던 그 이름이 내심 신경 쓰였다.하지만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실체를 마주한 순간, 관자놀이가 끊어질 듯 욱신거리며 지독한 두통이 밀려왔다.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왜 이토록 심장 가장 깊은 곳을 거슬리게 긁어내리는 걸까. 기묘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졸졸 쫓아다녀 철벽만 치기 바빴던 강소희랑 같이 사고가 났다니. 하지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한 톨의 아쉬움도 일지 않았다.대신 눈앞의 신하늘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6. 천하의 나쁜 남자

    기자를 상대하는 동안 나 자신도 성장하고 있었다.카메라 앞에서 당당해지고, 브리핑하거나 질문에 응답하는 순간에도 능숙 능란해져 있었다.차분한 척, 완벽한 듯, 긴장감이 첫날보다는 옅어졌다. 사람은 역시 학습의 동물이라고 무슨 아나운서가 된 양 나는 그리 기자들을 상대했다. -차준호 대표님이 대화가 가능하다던데. 확실히 강소희와 사귀는 사이가 맞는지 확인하셨습니까? 답변 부탁드립니다!“차준호 대표님께서는 일체 사생활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회사 측에서도 이번 사건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언제 CH에서는 공식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5. 뒤틀린 소유욕: 폭풍 전야

    종일 정신 없다가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린 것 같았다.커피에 의지해온 탓일까. 카페인의 날카로운 자극이 현기증을 부추겼다.그가 왜 하필 기억을 잃은 걸까.3년치 기억만 사라지다니. 비극 같으면서도 우습게 느껴졌다.빌어먹게도 나는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카메라 군단이 다시 몰려들었다. 간신히 버티던 나는 기계적인 목소리로 답변했다.그런데 병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고미주와 강진욱의 대화에 일순 어깨가 흠칫거려졌다.[강 박사님, 차 대표는 언제 일반 병동으로 이동하나요?][네, 최종 검사가 끝나는 대로 오늘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4. 폭풍의 눈이 열리다

    이아준은 통화 도중,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신하늘과 도국과의 옛 기억 속에 깊게 잠겼다.화려한 마천루가 즐비한 강남의 이면, 세종동 서쪽 끝자락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빈민가가 있었다. 그곳에 위치한 ‘하늘 보육원’은 세 사람의 유년이 뿌리내린 곳이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고 나이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유일한 세계이자 가족이었다.이아준은 태어나자마자 차가운 보육원 앞마당에 버려진 신세였다. 그러나 운명은 잔인하고도 변덕스러웠다. 뒤늦게 그가 국내 최고 재벌가인 L그룹의 잃어버린 혈통임이 드러났고, 하루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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