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한남동 저택이 차준호의 갑작스러운 발작으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차진철의 얼굴은 창백해지며 손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고미주는 입술을 깨물며 차준호를 안고 있는 나만 노려보았고, 차진아는 울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차준호의 목이 조여드는 듯 숨이 가빠졌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신음소리를 토했다.
어수선하게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차진철이 소리부터 질렀다.
“준호야! 준호야!”
난 눈물이 뺨을 적시는 것도 잊은 채 그의 몸을 끌어안으며 응급처치 방법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대표님! 제가 구해드릴 테니 조금만 참으세요!”
작년 초겨울, 그가 똑같은 증상으로 쓰러졌을 때도 나는 그가 어떻게 될까 봐 공포에 떨었다.
지금 이 순간도 그를 살리기 위해 모든 신경을 차준호에게 집중했다.
그는 숨을 들이마시기만 하고 내뱉
대체 차준호는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저, 15% 조직 적합성(HLA) 일치하는 공여자가 바로 저예요. 대표님, 제발 수술받으세요. 또 좋은 날 오겠죠.”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 사이에 15%의 조직 적합성이 나왔다는 건 의학적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수치였다. 이건 분명 우리의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유일한 줄기였다.“신 비서, 아이를 가졌는데 그럼 안 되지!”“어머나, 내가 못 살아. 그럼 안 돼!”차진철 회장과 고미주가 가슴을 치며 내게 달려들어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나 역시 알고 있었다. 지난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몸이 심하게 쇠약해져 있었고, 뱃속의 아이마저 유산의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차준호는 대체 어떻게 이 모든 진실을 다 파악하고 있었던 걸까.“대표님, 이 고비를 넘겨야 미래도 있는 거예요!”절규에 가까운 나의 고백이 터져 나온 순간, 차준호를 둘러싸고 있던 병원 전체에 비현실적인 정적이 사정없이 감돌았다.그때 차준호는 만사 귀찮다는 듯 특유의 오만한 미소를 입가에 어설프게 내걸며 낮게 대답을 건넸다.“신하늘, 나 비정한 사람 만들 거야? 아이 벌써 포기하면 안 되지. 나 말고 그동안 과로한 신하늘이 좀 입원해야겠네. 어차피 선거는 이길 테니까.”이 남자는 죽어가는 이 순간마저 지독할 만큼 든든하게나를 지키려고 했다.“어떻게 할까요, 회장님.”강진욱 박사는 덤덤한 표정으로 차진철 회장을 바라보았다.“회장님, 도와주세요!”나 역시 광기 어린 눈으로 강진욱 박사의 어깨너머 우뚝 서 있는 차진철 회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차진철 회장은 형
3년 전, 그를 처음 보았던 순간.세상에 이토록 아름답고 견고한 사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난 두 눈을 의심했었다.평범한 인간의 굴레를 벗어던진 채, 중세 시대 거대하고 웅장하게 지어 올려진 성(城) 같이 철벽처럼 느껴진 남자였다.물론 손꼽히는 명문 재벌가의 후계자이자 거대 기업의 대표라는 배경이 그를 더욱 대하기 어렵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이아준이나 도국처럼 완벽한 미남들을 매일 보고 자라 심미안이 남다르다고 자부하던 나조차, 차준호라는 사내가 가진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체격도, 혈색도, 타고난 건강미마저 넘쳐나던 그 압도적인 사내가 힘없이 고개를 떨군 채 쓰러져 있었다.이런 위태로운 모습을 그동안 몇 번이고 지켜봐 왔지만, 오늘도 나는 인생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공포 속에서 그를 병원으로 끌고 와야 했다.“대표님······ 제발, 눈 좀 떠 보세요. 제발요!”불과 조금 전, 출구조사 발표 직후 나는 이젠 다 되었다는 안도감으로 그에게 수술받을 것을 종용했었다.라온초등학교 운동장 위, 가슴 벅찬 당선의 환희가 불꽃처럼 터져 나오던 그 순간, 그에게 빈틈이 생겼을까 싶어 슬그머니 파고들었었다.이렇게 가슴 뜨거운 순간을, 오래 살다 보면 자주 만날 수 있을 텐데. 그와 함께 더 많이 웃고, 그 삶의 행복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어서, 참아왔던 애원을 다시 한번 그에게 쏟아부었었다.하지만 그는 꼿꼿하게 서서 늘 그렇듯 나의 절박함을 가볍게 거절했다. 자꾸 쓸데없는 수를 쓰지 않는 게 좋을 거라는 냉정한 말만 내뱉으며.그리고 그 아슬아슬한 실랑이가 이어지던 바로 그 순간, 그가 거목이 베어지듯 무너져 내렸다.허기찬과 선우현이 사력을 다해 뒷수습을
JW소속사 프라이빗 주원형의 펜트하우스 거실.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스크린에서는 자막들이 쉴 새 없이 교차하며 잔인한 숫자의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속보] 현재 개표율 10% 돌파, 세종동 신하늘 후보 1위 우세![개표 결과] 신하늘, 압도적인 표 차이로 일찌감치 선두 유지! 서울의 중심 세종동 지각변동![정가 분석] 김희주 사퇴 효과 무색, XX당의 몰락과 신진 세력의 약진!강소희는 홀린 듯 화면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화면 속, 승리의 영광을 입은 신하늘의 곁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차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어린 시절 처음 본 순간부터 송두리째 영혼을 빼앗긴 압도적인 존재. 차준호는 강소희의 첫사랑이었고,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단 하나의 사람이었다.하지만 결국 자신은 그의 삶에 단 한 줄의 각주조차 될 수 없었다. 그 잔인한 진실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그녀의 목구멍을 사정없이 긁어내렸다.수술을 거부한 채 저 몸으로 대체 얼마나 버티려는 걸까. 그녀의 마음속에 늘 뜨겁게 자리했던 차준호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빛을 독점했던 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연모를 품는 것조차 과분해 숨을 죽여야 했던 어린 날의 자신이 비참하게 일렁였다.“지금 생각해 보니, 신 비서와 난 악연이었던 것 같아요.”강소희가 고해성사하듯 낮은 목소리를 뱉어내자, 주원형은 말없이 그녀의 곁을 지켰다. 그의 다정한 위로조차 닿지 않을 만큼 강소희의 세계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난 세종동 서쪽 마을 판자촌 출신이었거든요. 할머니 손에 맡겨져 그곳을 전전하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하마터면 ‘하늘 보육원’이라는 곳으로 갈 뻔했죠. 그러다 운 좋게 해외로 입양된 거고요.”“··&midd
드디어 아침이 밝았다.선거 당일의 공기는 미세먼지와 황사가 어제보다 한층 지독해져, 대지마저 내 마음만큼이나 무겁고 탁하게 눌려 있었다.창밖으로 건너다보는 세종동의 풍경은 불투명한 회색 안개에 휩싸여 한 치 앞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은 이미 거대한 전쟁터였다.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속보들이 섬광처럼 눈을 찔러왔다.[속보! 김희주 후보, 어젯밤 돌연 사퇴! 과연 그 표심은 신하늘에게 향할까?][운명의 시간, 세종동 민심의 향방은? 신하늘, 승리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나][정가 이슈, 신진 정치인의 화려한 탄생 예고! 금배지 거머쥘까······ 해외 언론도 조명][글로벌 시선! 전 세계에 K-선거 열풍 일으킨 신하늘, 최종 성적표는?]김희주는 마지막 순간까지 치졸했다. 패배를 직감하자마자 비겁하게 도망치듯 사퇴하며 마지막까지 내 탓이라고 독화살을 쏘아댔다.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으려는 그 악의적인 셈법에 치가 떨렸지만, 그런 정치적 소음 따위는 지금 내게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대세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내 온 신경은 오직 곁에 서 있는 차준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평소라면 이미 거실에서 노트북을 열어 두고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을 텐데, 그는 정오가 다 되도록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억지로 몸을 일으키는 차준호의 안색은 잿빛이었고, 표정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예민하게 서 있었다. 뒤늦은 식사를 마치고 옷을 차려입고 나오는 동안에도 그의 상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집 앞을 가득 메운 [스카이 블루] 지지자들 앞에서도 차준호는 특유의 오만하고 도도한 미소를 유지했지만, 내 손
폭풍 전야의 고요가 세종동의 초라한 침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모두가 떠나고, 서로의 노고에 감사하며 악수를 나누고 헤어진 지금. 시계는 이미 새벽 2시를 지나치고 있었다.하루 중 가장 짙고 참담한 어둠이 방 안을 집어삼키고 있는 시간이었다.요 며칠 미세먼지가 얼마나 지독했던지 종일 야외 유세를 하며 들이마신 공기는 폐부 깊숙이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목이 까끌거려 침 한 번 삼키는 것조차 버거운 밤이었다. 온종일 세상을 흔들던 확성기 소리와 지지자들의 환호성은 유리창 너머 아득한 소음으로 밀려났고, 실내에는 오직 우리 두 사람의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짙게 깔려 밀도를 높였다.어스름한 간접 조명만이 은밀하게 침실에 부서지는 가운데, 나는 그의 서늘한 체온에 기대어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선거 운동이라는 잔혹한 레이스를 마친 뒤 마주한 이 시간은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세공품처럼 치명적으로 위태롭고도 아름다웠다.이제 정말 끝인가.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내일의 해가 뜨면 오늘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리라는 예감이 전신을 훑었다.“후련하네요.”내 말이 끝나자마자 차준호는 복잡한 내 속내를 정돈해 주듯, 길고 곧은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 나를 향한 그의 시선은 평소의 오만함을 벗어던진 채, 오직 나만이 읽을 수 있는 깊은 애틋함으로 일렁이고 있었다.“신하늘, 잘 버텼어.”“또 하라면 절대로 못 할 것 같아요. 정말······ 죽을 만큼 피곤했거든요.”내 몸 상태는 최악이었고, 차준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귓가를 간지럽힐 만큼 다정한 웃음소리를 흘렸다.차준호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며 여전
선거를 단 하루 앞둔 화요일, 세종동의 공기는 폭염에 대지가 들끓는 한여름처럼 숨이 턱 막힐 듯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오늘 밤 12시까지입니다! 단 한 표, 단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더 잡아야 합니다!”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이승은의 날카롭고 명확한 음성이 캠프 전체의 정적을 깨부쉈다.그녀의 지휘 아래 선우현과 허기찬이 유세 원고를 최종 점검했고, 수많은 자원봉사자는 차량의 마이크와 음향 장비를 풀가동하며 동선을 체크했다.오늘 밤까지 남은 시간은 이미 가혹한 카운트다운에 돌입해 있었다. 법적으로 허용된 시간이 종료되기 전까지 단 1분 1초도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는, 사생결단의 마지막 스퍼트가 시작된 것이다.유세차 상단에 올라선 나는 공약을 하나하나 토해냈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유권자들은 미친 듯이 내 이름을 연호했다.휴가까지 내고 달려온 20, 30대의 젊은 [스카이 블루] 지지자들은 나의 매 걸음을 구름처럼 따라다녔다. 허기찬은 거리를 메운 인파 사이를 누비며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손바닥이 짓무르도록 신호봉을 휘두르며 안전을 확보했다.이승은의 치밀한 지휘 하에 나는 세종동 전역을 샅샅이 훑으며 폭풍처럼 질주했다.그리고 그 정중앙에는 나를 버티게 해주는 차준호가 있었다.지독한 통증이 이미 시작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비틀거리지 않았다. 태양 아래 당당히 서 있는 남자는 나약한 환자가 아니었다.세상의 모든 권력을 내 손에 쥐여주기 위해 판을 흔드는, 오만한 군주 그 자체였다.그는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자세로 나를 위해 선거 점퍼를 입고 외조하는 남편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었다.나를 대신해 마이크를 잡고, 나를 위해 목청껏 내 이름을 세상에 외쳤다. 그리고 언제나 내 손을 꼭 잡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유령처럼 떠돌던 이름의 실체.신하늘, 신 비서. 차준호는 누워 있는 내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울리던 그 이름이 내심 신경 쓰였다.하지만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실체를 마주한 순간, 관자놀이가 끊어질 듯 욱신거리며 지독한 두통이 밀려왔다.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왜 이토록 심장 가장 깊은 곳을 거슬리게 긁어내리는 걸까. 기묘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졸졸 쫓아다녀 철벽만 치기 바빴던 강소희랑 같이 사고가 났다니. 하지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한 톨의 아쉬움도 일지 않았다.대신 눈앞의 신하늘
기자를 상대하는 동안 나 자신도 성장하고 있었다.카메라 앞에서 당당해지고, 브리핑하거나 질문에 응답하는 순간에도 능숙 능란해져 있었다.차분한 척, 완벽한 듯, 긴장감이 첫날보다는 옅어졌다. 사람은 역시 학습의 동물이라고 무슨 아나운서가 된 양 나는 그리 기자들을 상대했다. -차준호 대표님이 대화가 가능하다던데. 확실히 강소희와 사귀는 사이가 맞는지 확인하셨습니까? 답변 부탁드립니다!“차준호 대표님께서는 일체 사생활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회사 측에서도 이번 사건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언제 CH에서는 공식
종일 정신 없다가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린 것 같았다.커피에 의지해온 탓일까. 카페인의 날카로운 자극이 현기증을 부추겼다.그가 왜 하필 기억을 잃은 걸까.3년치 기억만 사라지다니. 비극 같으면서도 우습게 느껴졌다.빌어먹게도 나는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카메라 군단이 다시 몰려들었다. 간신히 버티던 나는 기계적인 목소리로 답변했다.그런데 병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고미주와 강진욱의 대화에 일순 어깨가 흠칫거려졌다.[강 박사님, 차 대표는 언제 일반 병동으로 이동하나요?][네, 최종 검사가 끝나는 대로 오늘
이아준은 통화 도중,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신하늘과 도국과의 옛 기억 속에 깊게 잠겼다.화려한 마천루가 즐비한 강남의 이면, 세종동 서쪽 끝자락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빈민가가 있었다. 그곳에 위치한 ‘하늘 보육원’은 세 사람의 유년이 뿌리내린 곳이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고 나이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유일한 세계이자 가족이었다.이아준은 태어나자마자 차가운 보육원 앞마당에 버려진 신세였다. 그러나 운명은 잔인하고도 변덕스러웠다. 뒤늦게 그가 국내 최고 재벌가인 L그룹의 잃어버린 혈통임이 드러났고, 하루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