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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칭찬을 해 줘도 문제네

Author: 노에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30 04:04:58

오전 6시 30분.

흉부외과 회의실에는 네 명이 앉아 있었다. 교수 한 명. 펠로우 한 명. 레지던트 두 명. 끝이었다. 나는 회의실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이게 다예요?”

3년 차 레지던트 김민재가 허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선배님, 놀라지 마세요.”

“뭐가?”

“원래 다섯 명이었어요.”

“한 명은?”

“어제 사직서 냈어요.”

나는 입을 벌렸다.

“어제?”

“네.”

“왜?”

민재가 회의실 앞쪽을 흘끗 봤다. 그곳에는 강태혁이 앉아 있었다.

“교수님이 어제 수술 끝나고….”

“끝나고?”

“‘그 정도 실력으로 흉부외과 의사를 하겠다는 게 환자한테 민폐’라고 하셨거든요.”

“…….”

“그 선생님이 오늘 아침에 짐 싸서 나갔어요. 피눈물을 흘리면서요.”

나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강태혁의 악명은 과장된 게 아니었다. 이 인간은 정말로 사람을 내쫓았다. 본인은 교육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재난에 가까웠다.

“그럼 지금 남은 레지던트가….”

“저랑 선생님이요.”

“2년 차는?”

“없어요.”

“1년 차는?”

“없어요.”

나는 잠시 천장을 올려다봤다.

‘하느님.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의사가 되어서 돈만 바라봤던 것이 저의 죄목입니까?‘

그때 강태혁이 입을 열었다.

“한채이. 거기 서서 뭐 해?”

“인력 현황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파악했으면 앉아.”

나는 군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강태혁은 스크린에 영상을 띄웠다.

“오늘 오전 응급 수술 환자. 64세 남성. 상행 대동맥 박리, 혈압 불안정. 수술 지연하면 위험하다. 한 선생이 수술 계획 설명해.”

나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자는 상행 대동맥 박리가 확인됐고, 영상에서 심낭삼출이 동반되어 있습니다. 우선 혈역학적 상태를 확인하고, 마취과와 관류팀을 포함해 응급 수술 준비를 진행하겠습니다. 수술 범위는 병변의 실제 범위와 수술 소견에 따라 결정해야 합니다.”

“좋아. 그럼 수술 들어가.”

“네.”

“민재는 중환자실. 어제 입원한 환자들 확인하고, 문제 생기면 바로 보고해.”

“네, 교수님.”

“그리고 한채이.”

“네.”

“수술 끝나고 오후 수술 준비까지 네가 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교수님.”

“왜.”

“안타깝게도 저에게 분신술은 없습니다.”

“알아.”

“그런데 왜 자꾸….”

“네가 분신술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교수님 개인적인 소망이시고요.”

“불만 있으면 실력으로 증명해.”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교수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뭐가?”

“사람을 이렇게까지 싫어하게 만드는 재능이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강태혁은 차트를 덮었다.

“한채이.”

“네.”

“수술실에서 보자.”

아. 또 시작이다.

***

오전 7시 18분.

수술실은 전쟁터였다. 환자는 마취를 받고 있었고, 수술팀은 각자의 역할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수술 가운을 입고 수술대 옆에 섰다.

마지막으로 강태혁이 들어왔다.

“브리핑.”

나는 환자의 상태와 영상 소견, 수술 계획을 간결하게 설명했다. 그는 중간에 한 번도 끼어들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불길했다.

“좋아. 시작해.”

수술이 시작됐다.

초반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예상보다 병변 범위가 넓었고, 수술 중 환자의 상태가 불안정해졌다. 강태혁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BP.”

(** BP: Blood Pressure(혈압)의 약어)

“현재 확인 중입니다.”

“확인 중이라는 말 하지 말고 수치.”

마취과에서 수치를 전달했다. 강태혁은 즉시 다음 지시를 내렸다.

“관류팀, 준비 상태 확인. 마취과는 혈역학적 변화 계속 공유해. 한채이, 지금 보이는 소견 말해.”

나는 수술 부위를 확인했다.

“병변 범위가 예상보다 넓습니다. 추가 평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수술 계획을 조정해야 합니다.”

“어떻게?”

나는 빠르게 판단했다.

“현재 소견을 기준으로 병변 범위를 다시 확인하고, 필요한 치환 범위를 결정해야 합니다. 준비된 대체 계획을 팀과 공유하겠습니다.”

강태혁이 짧게 말했다.

“해.”

그 순간부터 수술실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누구도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강태혁의 지시는 정확했고, 팀원들은 즉각 반응했다. 그의 손은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인간은 미친개다. 하지만 수술실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의사였다.

그리고 내가 이 과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었다.

나는 강태혁의 지시에 맞춰 움직였다. 필요한 것을 확인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상황이 바뀌면 즉시 보고했다. 한 번도 손을 떨지 않았다.

수술은 길어졌다. 그러나 결국 환자는 안정적인 상태로 수술실을 나갈 수 있었다.

“수술 종료.”

강태혁이 말했다. 나는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한채이.”

“네.”

“마지막 판단은 좋았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정말요?”

“그럼 내가 거짓말하겠어?”

“아니요. 교수님은 사람을 괴롭히실 때도 진심이시니까요.”

“칭찬을 해 줘도 문제네.”

“제가 교수님한테 칭찬을 받는 날이 올 줄 몰라서요.”

강태혁은 장갑을 벗으며 나를 바라봤다.

“착각하지 마. 오늘 잘했다고 내일도 잘하는 건 아니니까.”

“네. 내일은 또 욕먹겠죠.”

“알면 됐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였다. 칭찬은 딱 한 문장. 잔소리는 평생치. 그런데 수술실 문을 나서려는 순간, 강태혁이 뒤에서 덧붙였다.

“그리고 한채이.”

“네?”

“밥 먹어.”

나는 멈칫했다.

“…네?”

“아침도 안 먹었잖아.”

“그걸 어떻게….”

“수술 중에 네 손이 평소보다 조금 느렸어.”

그가 무심하게 말했다.

“저혈당이면 판단력 떨어져. 네 몸 관리도 실력이야.”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교수님.”

“왜.”

“지금 걱정해 주시는 겁니까?”

강태혁이 나를 쳐다봤다. 정말로 사람을 죽일 듯한 눈빛이었다.

“내 수술에 들어오는 사람이 쓰러지면 귀찮으니까.”

“아, 네.”

“그리고 밥 먹고 정신차려서, 오후 수술 준비해.”

“…역시나.”

“뭐라고?”

“아닙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경례하듯 손을 올리고 돌아섰다. 뒤에서 강태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채이.”

“네!”

“까불지 마.”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미친개 교수님!”

“…너 거기 서.”

나는 오늘도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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