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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مؤلف: 연나리
기태우가 이렇게 빨리 사직 처리를 해주다니.

온진아는 충격과 비통함에 휩싸였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를 내쫓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누가 돌아오라고 했어?”

맞은편의 기태우가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수화기 너머로 듣던 그 냉혹하고 건조한 말투 그대로였다.

그래, 이것이 바로 그녀가 아는 ‘기태우’였다.

“어제 전화로 말했잖아.”

온진아는 최대한 그의 눈을 피했다. 그 서슬 퍼런 냉기에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가 허락했었나?”

“엄마가 위독하시다고 분명 말했어.”

“그래서 뭐?”

기태우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째려봤다.

“회사가 네 사적인 감정까지 책임져야 해?”

그가 온진아를 보는 시선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잔잔한 수면처럼 아무런 파동도 없이 그저 철저한 무시만이 담겨 있었다.

“회사 가서 직접 징계받아.”

징계라니?

사실 온진아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차피 퇴사까지 한 마당에 그가 자신에게 뭘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말을 꺼냈다간 분명 귀찮은 실랑이가 벌어질 터, 지금 그녀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징계 문제는 회사 가서 인사팀하고 제대로 얘기할게. 오늘은 다른 용건으로 왔어.”

“용건 있으면 가정부랑 얘기해.”

기태우는 더 이상 그녀와 대화할 마음이 없는 듯 시계를 흘긋 보더니 자리를 뜨려 했다.

이를 본 온진아도 더 이상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나 지금 돈이 필요해.”

그 말을 들은 기태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얼마나?”

그의 질문에 온진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내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겨우 안착하는 기분이었다. 목소리에도 절로 힘이 빠졌다.

“3억 4천.”

이내 이 남자가 오해할까 염려되어 황급히 덧붙였다.

“엄마가 편찮으셔서 입원하셨는데 지금 내가 가진 돈을 다 합쳐도 3억 4천만 원이 더 필요해.”

말을 마친 온진아는 앞에 서 있는 남자, 자신의 남편이라 불리는 기태우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래도 허락해 주겠지. 일은 제쳐두더라도 그들은 부부이니까.

대학교 때부터 서로 알던 사이였고 결혼도 기태우가 먼저 제안했으니 아주 조금은 정이 남아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게다가 결혼한 지 벌써 삼 년, 이 긴 시간 동안 온진아가 그를 얼마나 뜨겁고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분명 느낄 수 있을 터였다. 3억 4천만 원은 기태우에게 그야말로 푼돈이었다. 매일 걸치는 외투 값도 안 되는 금액이니까.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그의 동의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차가운 콧방귀와 노골적인 비아냥만 날아왔다.

“야, 온진아, 너 대체 무슨 염치로 나한테 돈을 빌려달라는 거야?”

그 한마디가 차갑고 딱딱하게 그녀의 얼굴에 내던져졌다. 마치 날카로운 귀싸대기처럼 조금 전 그녀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온진아는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슨 염치라니?

기태우의 아내라는 사실, 지난 몇 년간 기천 그룹을 위해 수천억의 이익을 안겨다 준 사실, 그리고 그의 재산 절반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 이런 이유들로 부족하다는 말인가?

하지만 온진아는 이 이유들을 단 한 마디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기태우의 차갑고 비꼬는 듯한 눈빛과 마주치자 이 말을 꺼냈다가는 스스로 수치를 자초하는 꼴이 될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빌리는 거야. 나중에 갚을게.”

“빌려? 뭐로 갚을 건데?”

그녀가 한발 물러섰음에도 기태우의 기세는 꺾일 줄 몰랐다. 오히려 상대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그의 태도에 온진아는 초조함을 느끼며 쏘아붙였다.

“그럼 내 월급이랑 연말 보너스 미리 당겨 받는 걸로 할게. 이 정도면 되겠어?”

“네 월급으로 3억 4천을 언제 다 갚아?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기태우는 여전히 차가운 태도를 유지했다.

순간 온진아의 눈가가 시큰거렸다. 억울함과 괴로움이 한꺼번에 훅 밀려왔다.

“굳이 이렇게까지 매정하게 굴어야겠어?”

“매정해? 내가?”

기태우는 그녀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마치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라도 되는 양 무덤덤하게 쏘아붙였다.

“너야말로 우리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은데.”

‘관계? 우리가 어떤 관계인데?’

온진아는 묻고 싶었다. 법적으로 엄연한 부부 사이가 아니던가? 설마 생판 모르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고?

하지만 채 입을 떼기도 전에 위층에서 갑자기 처절한 강아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온진아는 그 소리에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강진으로 파견 가기 전, 그녀는 ‘또또’라는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키웠었다. 떠나갈 때 함께 데려갈 수가 없어 또또를 집에 남겨두고 가정부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했는데 지금은 가정부도 이미 바뀌었고 그렇다면 또또는?

온진아는 더 이상 기태우와 실랑이할 겨를도 없이 곧장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강아지의 울음소리가 더욱 애처로워졌다.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마침내 모퉁이를 돌자 강아지의 모습이 보였다. 영락없이 그녀의 또또였으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또또 외에도 그 모퉁이에 기유영과 기하람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기유영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고 기하람은 또또 위에 올라타 쉴 새 없이 발길질을 해댔다. 심지어 때리면서 계속 욕까지 퍼부었다.

“뚱뚱하고 못생긴 아줌마야, 넌 우리 엄마가 될 자격 없어!”

온진아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이성을 고함을 질렀다.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야?”

다만 그 고함에도 기하람은 폭주를 멈추지 않고 되레 차가운 시선으로 온진아를 쳐다보더니 계속해서 또또를 때렸다.

온진아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재빨리 달려가 기하람을 번쩍 들어 올리고는 또또를 품에 안고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하지만 또또는 이미 눈빛이 흐릿해졌고 숨이 넘어갈 듯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고 나서야 온진아는 또또의 이마에 사진 한 장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깔끔한 배경에 하얀 셔츠 차림, 바로 자신과 기태우의 커플 사진이었던 것이다.

단지 사진 속 기태우의 모습은 잘려나가고 오직 그녀 혼자만이 남아 있었다. 살짝 지은 미소와 수줍고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 지금 이 참혹한 광경과 대비되니 그야말로 극과 극이었다.

순간, 온갖 감정이 뒤섞여 가슴을 옥죄었다. 온진아는 분노로 손을 부들부들 떨며 자제력을 잃고는 그대로 기하람을 향해 손을 뻗었다.

줄곧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던 기유영이 갑자기 기하람을 자기 등 뒤로 홱 잡아끌며 온진아 앞을 가로막았다.

“적당히 하시죠. 고작 개 한 마리 가지고 애한테 이게 무슨 짓이에요?”

“애요? 이 세상 모든 아이가 다 똑같은 ‘아이’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에요.”

온진아는 분을 참지 못하고 쏘아붙였다.

“게다가 애가 이 모양인 게 결국 어른들이 잘못 가르친 탓 아니겠어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유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단숨에 높아졌다.

“이봐요, 온진아 씨! 지금 뭐라고 했어요? 나 가르치려고 드는 거예요?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고함을 질러요. 주제를 알아야지.”

기유영의 도발에 온진아보다 먼저 반응한 것은 그녀 품에 안긴 또또였다. 마치 그 살벌한 기운을 감지한 듯 녀석은 다시 한번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더니 온진아의 품속에서 발작하듯 몸을 비틀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온진아는 안쓰러운 마음에 또또의 머리를 쓰다듬고 한참을 달랬다. 그제야 녀석은 겨우 진정했다. 온진아는 더 이상 기유영과 실랑이할 시간이 없었다. 또또의 상태를 봐서는 당장 병원에 데려가 봐야 했다.

이제 막 발길을 돌리려는데 뒤에서 기유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온진아 씨! 그쪽은 애초에 우리 오빠랑 급이 안 맞아요.”

이번에는 비아냥거림을 넘어 노골적인 도발이 실려 있었다. 듣고 있자니 이건 뭐 기태우의 여동생이라기보다 오히려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여자처럼 보였다.

온진아는 차갑게 그녀를 노려봤다.

“급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기유영 씨가 판단할 문제 아니죠!”

이제 더는 참을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결혼하자고 먼저 말한 건 태우였거든요.”

그런데 웬걸, 이런 말을 듣고도 기유영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눈빛에 만족감과 야유가 깊어졌다.

“그래요? 그럼 우리 오빠가 왜 그랬는지, 누구 때문에 그랬는지도 곰곰이 따져봐야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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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견 보낼 땐 언제고 이혼하자니 난리야?   제30화

    가장 먼저 반응한 건 기유영이었다. 술을 따르던 손끝이 멈칫하더니 얼굴에는 불쾌함과 분노가 서렸다. 아까 온진아를 보긴 했지만, 평소보다 예쁘긴 해도 감히 자신에게 견줄 급은 아니었다.하지만 자신의 주의를 끌어야 할 남자들이 온진아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 한유건에 이어 우원빈까지, 다들 자신만 바라봐야 마땅한 사람들인데 말이다.한유건은 여전히 덤덤한 표정을 지을 뿐 속내를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반면 기태우는 흥미롭다는 듯 우원빈을 쳐다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우원빈은 그 시선들이 부담스러웠고 차선재의 질문이 지나치다고 느꼈는지 욕설을 내뱉었다.“X발! 미쳤냐?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어.”차선재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자신은 이 상황에서 그에게 아무런 악의도 없으며 그저 온진아만을 대상으로 할 뿐이라고 시위하듯이 말이다. 그녀는 차선재에게 마음껏 놀려도 되는 존재이니 뭘 시도해도 괜찮다고 여겼다. 어차피 재미 삼아 하는 일이고 어떤 결과가 따르든 책임질 필요는 없었으니까.우원빈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기태우 곁으로 다가가 술잔을 들었다.“저놈 말은 신경 쓰지 마. 원래 주둥이가 가벼운 놈이잖아.”기태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잘 손질한 과일을 기유영에게 먼저 건네고 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그 여자가 나한테 무슨 타격을 주겠어.”“그렇지...”우원빈은 씁쓸하게 술을 들이켰다.“내가 예전에 잃어버린 여동생 이야기한 적 있지?”“응, 그건 왜?”어디 알고만 있을까? 기태우는 그동안 우원빈을 위해 잃어버린 여동생의 행방을 대신 조사해주고 있었다.우원빈은 답답한 듯 말을 이어갔다.“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방금 온진아를 보는데 순간 그 애 생각이 나서.”기태우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잔을 부딪쳐 왔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너 요즘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럴 거야. 걔일 리가 없잖아.”결혼하기 전, 기태우는 사람을 시켜 철저히 조사했었다. 온진아를 선택한 건 평범한

  • 파견 보낼 땐 언제고 이혼하자니 난리야?   제29화

    “진아야, 그래서 올해는 태우한테 무슨 선물 준비했어?”차선재가 판을 깔며 비아냥댔다.“마침 다들 모였으니까 여기서 꺼내 봐. 괜히 태우한테 따로 줘서 우리가 나중에 전해 듣게 하지 말고. 너무 번거롭잖아.”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유영의 입가에 비웃음이 서렸다.온진아는 정색하며 반박했다.“분명히 말하는데 나 오늘 여기 기태우 보러 온 거 아니야. 너희들이 있는 줄 알았으면 애초에 발도 안 들였어.”“그걸 믿으라고?”차선재가 콧방귀를 뀌었다.“선재야.”그때 기태우가 제지하고 나섰다. 인내심이 바닥난 듯 더는 이 소란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자. 시작할 시간 됐어.”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기유영을 껴안고 걸음을 옮겼다. 우원빈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도 그 뒤를 따랐다.그들 일행이라면 치가 떨리는 온진아였다. 게다가 우원빈은 과거에 자신을 괴롭혔던 주동자 중 한 명이었기에 그녀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뭘 봐?”우원빈은 대답 대신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영락없는 호박색 눈빛,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우연한 일이 어디 있겠나 싶어서였다.세상에 호박색 눈동자가 한둘인가? 길 가다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기 동생이라고 착각할 수는 없을 터였다. 게다가 전에 기태우에게 들었을 때 온진아는 부모님도 계시고 어릴 때부터 부성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었다.우원빈은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굴고 있다고 생각했다.이럴 바엔 차라리 기유영에게나 더 잘하는 게 낫지. 그녀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눈앞에서 자란 아이였으니까. 얌전하고 사랑스러운 기유영은 꼬맹이 때부터 그들을 오빠라고 부르며 졸졸 따라다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친동생과 다를 바 없었다.우원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온진아를 한 번 더 훑어보고는 대답 없이 자리를 떴다.온진아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역시 기태우와 어울리는 놈들답게 하나같이 제대로 된 인간이 없었다.유일하게 한유건만이 자신을 괴롭힌 적은 없는 듯했지만, 그 역시 매일 기

  • 파견 보낼 땐 언제고 이혼하자니 난리야?   제28화

    “네가 여긴 웬일이야?”차선재가 가장 먼저 다가와 온진아의 앞길을 떡하니 가로막았다.온진아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그를 돌아가려 했다. 바로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에서 날카로운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오늘은 남편 생일입니다.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온진아는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알람을 껐다. 예전에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 기태우의 생일을 놓칠까 봐 설정해 두었던 반복 알람이었다. 올해 돌아온 뒤로는 온통 정신없는 나날들이라 아예 존재조차 잊고 있었는데 하필 이런 최악의 타이밍에 울릴 줄이야.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근처에 있던 차선재 일행은 그 메시지 내용을 똑똑히 듣고 말았다.차선재는 낄낄거리며 온진아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그녀가 이 자리에 나타난 이유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날 선 조롱을 내뱉었다.“아하, 태우 생일이라 일부러 찾아온 거야? 근데 어쩌나, 한걸음 늦었네. 방금 봤잖아, 태우 곁에는 이미 축하해 줄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거. 유영이는 너보다 예쁘고 우아하고 피아노까지 잘 치는데. 넌 도대체 가진 게 뭐야?”차선재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휘어졌다.“매년 네가 직접 만든 그 조잡한 선물들? 아니면 닭살 돋아서 읽기조차 힘든 그 연애편지들 말이야? 솔직히 말해줄까? 태우 그거 받을 때마다 질색했어. 매번 우리한테 다 처리하라고 던져줬다고.”순간 온진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차선재를 빤히 쳐다보았다.기태우를 사랑했던 지난날, 그의 생일 선물만큼은 온진아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였다. 정성이 담기지 않은 기성품보다는 마음을 담는 게 낫겠다 싶어 해마다 손수 무언가를 만들었다.기태우가 자신의 마음을 다 받아주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선물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져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자신의 순수한 마음이 담긴 글귀들이 수많은 사람의 비웃음 속에 읽혔을 거라 생각하니 온진아는 분노로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너희는 예의라는 걸 몰라?

  • 파견 보낼 땐 언제고 이혼하자니 난리야?   제27화

    유다미가 온진아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어때? 괜찮지?”“응, 생각보다 좋네.”“그럼 앞으로 자주 오자. 넌 그동안 스스로를 너무 옥죄며 살았어. 온통 남을 위해서만 살았잖아.”온진아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친구의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중, 유다미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쪽 업계 사람들이 늘 그렇듯 의뢰인의 급한 연락일 터였다. 그녀는 온진아가 충분히 편안해진 것을 확인한 뒤, 잠깐 전화를 받고 오겠다며 자리를 떴다.혼자 남은 온진아는 조금 더 무대와 가깝고 주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아늑한 자리로 옮겨 앉았다.어느새 무대 위 연주자가 바뀌어 있었다. 거리가 좀 멀어 얼굴이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늘씬한 몸매에 기품이 느껴지는 상당한 미인이었다.그녀가 등장하자마자 객석 곳곳에서 감탄사와 함께 셔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압도적인 미모와 우아한 분위기에 모두가 넋을 잃은 듯했다.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그 여자는 천천히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미녀의 고혹적인 선율이 현장을 순식간에 뜨겁게 달궜다.그런데 그때, 여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지금 연주한 곡은 특별한 사람을 위해 연주한 것이라며, 그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멘트를 덧붙였다.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도대체 그 행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저런 미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지 궁금해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하지만 온진아의 심장은 차갑게 내려앉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기유영이라는 걸 알아차렸으니까. 그렇다면 그 주인공은 당연히 기태우일 터였다.예상대로 다음 순간 무대 위로 검은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기태우가 올라갔다. 훤칠한 키에 날카로운 이목구비,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분위기는 무대 위 하얀 드레스의 기유영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완벽한 선남선녀의 모습을 연출했다.기태우가 나타나자 객석은 야유나 의문 따위 온데간데없고 환호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이 너무 잘 어울린

  • 파견 보낼 땐 언제고 이혼하자니 난리야?   제26화

    온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줬어.”“그래서 그 자식은 뭐래?”온진아는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다른 일로 정신이 없어서 합의서만 내려놓고 바로 나왔어. 근데 걔 성격상 분명 먼저 변호사한테 보여주고 득실을 따져볼걸?”이 업계에서 오래 일한 유다미는 그런 부류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합의서를 변호사에게 맡기는 건 그들에겐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그들의 유일한 목적이니까.“맘대로 하라지. 그런 놈들을 상대할 방법은 나한테도 많으니까. 내가 없는 동안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바로 연락해.”“알았어.”온진아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아마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걔도 나랑 이혼하고 싶어 할 테니까. 그래야 기유영이랑 떳떳하게 지낼 수 있잖아.”유다미가 분통을 터뜨렸다.“야, 그런 인간쓰레기한테는 시간 낭비하지 마. 가장 좋은 방법은 엮이지 않는 거야.”“알아.”이혼 이야기가 나오자 두 사람 모두 기분이 다운됐다. 이에 유다미가 곧장 제안을 건넸다.“내일 기분 전환할 겸 나랑 좋은 데 가자.”“어디?”“가보면 알아.”다음 날 아침, 온진아가 눈을 뜨기 무섭게 유다미의 ‘대작전’이 시작되었다. 화장부터 의상까지 몇 시간을 공들인 끝에 거울 앞에 선 온진아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멍하니 넋을 놓았다.거울 속에는 분명 본인의 얼굴이건만 풍기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본래 피부가 하얀 편이었던 그녀에게 유다미가 골라준 하늘색 드레스는 신의 한 수였다. 화사한 색감과 하얀 피부가 어우러져 마치 눈처럼 맑고 고운 느낌을 자아냈다. 거기에 정성스럽게 다듬은 머리와 꼼꼼한 메이크업까지 더해지니 뚱뚱하다는 단점은 온데간데없었다. 오히려 복스럽고 매끄러운 느낌의 고전적인 동양미인 자태가 오롯이 살아났다.“우리 진아 진짜 예쁘네.”유다미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한편 온진아는 말없이 거울만 바라봤다.“왜? 마음에 안 들어?”유다미가 또다시 질문을 건넸다.“아니, 좋아.”온진아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멍하니 중얼

  • 파견 보낼 땐 언제고 이혼하자니 난리야?   제25화

    구미란이 물었다.“그럼 태우는 그런 대단한 사람을 어떻게 안 거야?”기태우는 당연히 모른다. 알았다고 해도 온진아에게 소개해주었을 리가 없고. 순간 온진아는 어머니께 모든 진실을 털어놓을까 고민했지만, 어머니의 애틋한 눈빛과 야윈 뺨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잘 모르겠어요. 아마 일하다 알게 됐겠죠.”온진아는 어머니께 물을 권해드렸다.“엄마는 지금 몸 회복하는 게 최우선이에요.”구미란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투병 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딸의 말이라면 끔뻑 죽는 그녀였다.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구미란은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서 쉬라며 온진아를 다독였다. 모처럼 맞은 주말이니 잠도 좀 자고 푹 쉬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앞으로는 별일 없으면 병원에 너무 자주 오지 말라고,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으니 걱정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니 또또 외에는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집에 유다미가 와 있었다.“뭐야? 이번 주는 일이 바빠서 못 온다며!”온진아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원래는 그랬지.”유다미도 막 도착했는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근데 다음 달부터 한 달 내내 출장이 잡혔거든. 중간에 도통 시간이 안 날 것 같더라고. 너 혼자 놔두려니 영 마음이 안 놓여서 짬 내서 얼굴이라도 보러 왔어.”“무슨 걱정을 해. 나 스물네 살이야, 어린애도 아니고.”온진아가 웃으며 대꾸했다.“나이 먹는 거랑 속 깊은 건 별개지. 스물넷이 뭐, 아직 한참 어린 나이구먼. 나한테는 여전히 애기야, 애기.”유다미는 그렇게 말하며 캐리어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온진아에게 건넸다.“뭐야 이건?”그녀는 정교하게 포장된 상자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열어봐. 너 주려고 산 선물이야.”“선물?”온진아는 놀란 듯 되물었다.“응,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상자를 열자 명품 브랜드의 가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광고에서 본 적이 있는 제품,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럽고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디자인이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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